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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시 30분 런던에서 파리로
오리엔트 직행 특급 열차 반 골루 특급 열차 테헤란 특급 열차 메셰드 야간 우편 열차 카이베르 고개 완행 열차 라호레 연락역행 카이베르 우편 열차 변경 우편 열차 시믈라행 칼라 우편 열차 뭄바이행 라자니 특급 열차 자이푸르발 델리 우편 열차 대형 트렁크 특급 열차 라메스와람행 완행 열차 탈라이마나르 우편 열차 16시 25분 갈발 열차 호우리 우편 열차 만달레이 특급 열차 마이미오향 완행 열차 라시오 우편 열차 농카이발 야간 열차 버터워스행 국제 특급 열차 쿠알라룸푸르행 황금화살호 싱가포르행 북극성호 사이공-비엔호와 여객 열차 위에-다낭 여객 열차 아오모리행 하츠카리 특급 열차 삿포로행 오조라 특급 열차 교토행 히카리 초특급 열차 오사카행 고다마 열차 시베리아 횡단 열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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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남을 통한 자유
“꿈, 희망, 새로움, 동경… 그리고 떠남”
사람들이 기차에 갖는 느낌은 좀 특별하다. 까마득히 뻗은 철로에 서면 누구나 야릇한 기분에 휩싸이고 만다. 빠르고 쾌적한 항공 여행이 그 어느때보다 보편화된 시대지만, 그럼에도 기차 여행에는 우리를 유혹하는 무언가가 있다. “비행기가 주는 진땀 나는 공포감과도 거리가 멀고 장거리 버스의 기름내와 멀미, 또 자동차 운전자를 괴롭히는 무력감 같은 것이 없지 않은가. … 크고 편안한 기차를 타면 목적지마저도 필요치 않다. 그저 창가 자리 하나면 족하다”고 작가는 기차의 매력을 얘기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곳에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마주앉아 도란도란 함께 얘기 나누고 어울릴 길동무가 있어서 더욱 즐거운 것이 기차 여행인 것이다. 어린 시절 기차가 지나는 거리에 살았기에 작가에게 기차가 주는 느낌은 더욱 각별하다. 그리고 “언젠가 세상의 모든 기차를 타보리라” 꿈꾸었던 작가는 마침내 유라시아 횡단 여행으로 그 첫발을 내딛는다. 온갖 낭만과 음모의 배경이었지만 지금은 식당칸조차 없는 오리엔트 특급 열차, 탁자마다 생화가 놓여 있고 맥주와 포도주가 그득한 반 골루 특급 열차, 일주일에 한 번 장에 가는 소수민족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카이베르 고개 완행 열차, 노골적으로 박시시(팁)를 요구하는 테헤란 특급 열차, 여섯 등급으로 나뉘어 그 사회의 계급제도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인도 열차, 십수 년간 계속된 게릴라전으로 열차 맨 끝칸은 통상 무장 호송칸인 버마 열차, 조용하고 깨끗해서 오히려 더 불안한 일본 열차, 똑같은 풍경이 몇 날 며칠씩 계속되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하바로프스크 호, 보스토크 호, 로시야 호) 등 작가가 탄 기차는 가히 ‘세상의 모든 기차’라 할 만하다. “떠남은 곧 치유라” 사람들이 여행하는 목적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작가가 그리는 참다운 여행의 묘미는 바로 “여행을 위한 여행”에 있다. 뚜렷한 목적지 없이, 별다른 목적 없이 그저 여행을 위해 여행하는 작가처럼 우리도 어디론가 훌쩍 떠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고 자조 섞인 푸념을 늘어놓을 수도 있겠지만, 작가의 수려한 글솜씨에 빠져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함께 기차 여행을 하는 것처럼 즐겁다. 차창 밖 풍경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 듯 삼삼하고, 기찻간 사람들이 정겹다. 게다가 “이틀사흘 연달아 끊임없이 어딘가로 이동하면서 사이사이 책을 읽고 식당칸에서 밥을 먹고 점심 뒤에는 낮잠 자고 초저녁에 여행기를 정리한 뒤 한잔 걸치면서 지금 지도에서 어디쯤 와 있는지 헤아려보는” 즐거움은 기차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묘미다. 또 장거리 기차 여행은 “포도주 고르는 것과 같아서, 한 장소에 도착하면 표본을 꼽고 점수를 매긴다. 관광은 다음 열차가 떠날 때까지만이고, 그래서 탐식은 금물이지만 언제든 돌아올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작가가 여행한 기나긴 여정만큼이나 책도 두껍지만 끝까지 읽고 나면 폴 써루식 여행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 “창 밖에 아시아가 있다” 단 며칠만의 체류로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모두 섭렵한다는 것은 애당초 어불성설일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차창 밖에 펼쳐지는 풍경과 역사의 모습, 잠시 체류하는 도시들의 모습에서도 그 사회의 일면이나마 깊이 들여다보고자 애쓴다. 작가는 “그 나라만의 기발한 시설과 승객들을 만나는 열차 안 풍경은 그 사회를 판박이한 모습이라, 열차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그 나라의 개성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타이의 기차에는 양옆에 유약을 덧칠한 용그림이 그려진 목욕 항아리가 있고 스리랑카 기차는 승려들을 위해 좌석을 비워놓으며, 인도 기차는 채식주의 식당차와 육등칸, 이란 기차에는 기도용 돗자리, 말레이시아 기차에는 국수 매점, 베트남 기차는 방탄 유리, 그리고 러시아 기차에는 차량마다 차 끓이는 주전자 ‘사모바르’가 있다.” 유고슬라비아에선 고압적인 경찰들이 검표를 하고, 석유로 떼돈을 번 테헤란은 흡사 미국 서부 개척 시대 같은 분위기에 마구잡이 개발 공사로 예스러움은 온데간데없다. 베트남은 싸구려 간이 건물과 폐허만 남겨둔 채 미련 없이 떠나버릴 미군들과 “온몸이 망가진 다음 버림받은” 난민들이 득시글거린다. 거기서 작가는 “제아무리 최악질에 최단명한 제국주의라 할지라도 도시 계획과 유지 보수 사업에서만큼은 제 역량을 보여주는 법”인데 미군은 그러한 의지조차 없었다고 개탄한다. 종교와 정치가 공히 지독한 관료주의에 찌든 버마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곳이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도 없는 곳”이고, 싱가포르는 “사무실에 앉아서 어음에다 서명하고 커피잔 만지작거리면서 우편물이 오기만을 기다리던 세월, 수영장에 딸린 슬롯 머신에서 허송한 세월을 보상받기 전에는 떠날 수 없다는 듯, … 거의 모든 사람 입에서 떠난다는 소리가 나오지만 정작 떠나는 이는 아무도 없는 곳이다.” 하지만 작가의 눈길이 늘 비판적인 것은 아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장관을 선사하는 베트남의 산들을 보고는 놀라움과 부끄러움을 금치 못하며 “탐스럽게 무르익은 아름다움이 사람의 눈길을 붙들지 않았더라면 프랑스도 이 나라를 식민지로 삼지 않았을 것이며 미국도 그토록 오랜 기간을 싸우지는 않았을 것”이라 찬탄하고, 파키스탄의 페샤와르에서는 먼훗날 “발코니 달린 집 하나 구해 저녁놀 바라보며 늙어가고 싶을” 만큼 예쁜 도시라고 감탄한다. 또 수백만 인파 속을 팔짝팔짝 날렵하게 헤쳐나가는 절름발이 사내의 모습에서 인도의 미래를 본다. “아시아의 아침나절은 힘찬 비누질과 함께 씻겨진다”는 작가의 말은 바로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는 1970년대 아시아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