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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한자의 탄생, 동아시아 문명의 여명
春 봄, 시작의 어려움 神 청동 그릇의 무늬, 신을 말하다 殺 옛날 옛적 마지막 가시 하나 達 한자, 어렵고 또 어렵도다 제2장 한자, 세상 밖으로 나가 불어나다 鼎 세발솥, 문명을 담은 그릇 字 글자, 불어나다 夷 분열의 시대, 다양성의 폭발 帝 황제의 문자 통일―그림에서 추상으로 제3장 한자는 한나라 글자다 漢 한, 중국을 대표하는 이름 經 생각의 기준 今 옛 기준을 오늘로 불러오다 碑 돌 위에 새긴 영원의 소망, 한나라 예서 제4장 한자, 엄격함에서 벗어나 춤을 추다 三 셋, 많음, 분열 簡 생략과 단순의 위대함 玄 물의 사상, 도가 龍 용과 뱀이 붓끝을 다투다―초서의 세계 제5장 한자의 완성, 문화의 융성 石 돌의 문자, 북조 석각 唐 제2의 거대 제국, 한자의 완성 제6장 한중일 한자 삼국지 東 동쪽으로 온 한자 和 일본의 한자 사정 羲 왕희지의 글씨, 바다를 건너다 제7장 한자, 한 자에서 단어로 譯 동과 서, 한자로 만나다 끝없는 길, 한자의 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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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산 복용자는 항상 따뜻한 술을 함께 마시는 것이 철칙이었다. 그리고 이 약을 먹으면 피부가 극도로 약해지기 때문에 옷도 품이 넉넉한 것을 입어야 했다. 이렇게 보면 위진 시대 죽립칠현의 풍모와 음주 습관 아래 깔린 ‘물리적 이유’가 이해된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약물중독자였던 것이다.(!)”
“우리는 지금 문자메시지, 이메일, 댓글, SNS 등에서 격의 없는 표현으로 흔히 ‘ㅋㅋ’ 혹은 ‘ㅎㅎ’ 등의 표현을 쓴다. 조선시대 편지에도 이와 비슷한 것이 있었다. 가가(呵呵)나 호소(好笑)를 지금의 말로 옮기면 ‘ㅋㅋ’나 ‘ㅎㅎ’쯤 될 것이다. 결국 조선시대 식자층들이 일상에서도 대부분 한문을 사용하는 불편함을 감내한 덕에 역설적으로 우리는 중국에도 없는 풍부한 한자어를 소유하게 되었다.” “조일이 초서를 비난했던 가장 큰 이유는, 공자와 같은 성인의 학문을 배우기도 모자란 판에 사람들이 쓸데없는 말기(末技)에 시간과 공력을 낭비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래디컬리스트 조일이 보기에 초서 유행은 뭘 모르는 이들의 ‘잉여 짓거리’에 불과했다. 그러나 엄숙주의자 아저씨가 목소리를 높이건 말건, 사람들은 이 ‘쓸데없는 기예’에 열광했다. 팔분체가 후한의 멸망과 함께 신기루처럼 사라진 데 비해, 초서는 왕조의 멸망도 아랑곳하지 않고 눈부신 발전을 거듭한다. 이 새로운 예술형식은 돌에 새겨 과시한 ‘권력의 문자’가 아니라 성인의 업적으로부터 멀리멀리 떨어진 ‘파생된 잉여’였기 때문이다.” “진감선사비의 글씨는 글을 꼭 빼닮아, 꽉 짜인 엄정한 형식 속에 담긴 화려하고도 유려한 수식이 돋보인다. 그러나 모든 고전적 예술작품이 그러하듯이, 부조화의 파격은 전체를 지배하는 원칙과 조화를 결코 훼손하지 않으며, 설핏 보면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잘 통제된 채 곁들여져 있다. 각 글자의 범위는 세로가 긴 직사각형의 틀을 벗어나지 않고 배세(背勢, 획이 안쪽으로 휘는 느낌)를 위주로 하고 있어, 선승을 기리는 비문다운 팽팽한 긴장감이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획도 가늘고 단단하여 붓끝을 쉽사리 노출하지 않으면서도, 각은 날카롭고 끝은 뾰족하여 꼿꼿한 강건함을 갖추고 있다.” “사람들 앞에서 기예를 펼쳐 보이는 서예가와 그를 관람하는 관객이 있음은, 이들에게 모두 ‘글씨란 감상의 가치가 있는 하나의 독립된 예술 장르’이라는 전제가 공유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서로 글씨를 돌려보거나 몇몇 친우들만이 모여 감상을 나누던 단계를 넘어, 이제 서예는 공공의 관객 앞에서 펼치는 퍼포먼스로까지 발전했다. 그만큼 이 시대에 이르러 그 장르적 지위는 공고해졌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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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 동양적 우주의 축소판
봄 춘(春)자는 본래 ‘?’ 이런 모양이었다. 풀을 나타내는 초(艸) 아래에 어려울 준(屯)이 있고, 다시 그 아래에 해를 뜻하는 날 일(日)이 있다. 이제 막 순을 틔우는 초목의 잎망울을 닮은 글자다. 추운 겨울을 견디고 새순을 틔워내는 어려움, 그것이 ‘봄’이다. 봄 춘 자에는 이러한 서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렇듯 한자의 구조와 디자인 안에는 동양의 세계관과 미학이 농축되어 들어있다. 한 글자 안에도 무궁무진한 내용을 담고 있는 한자는 동아시아 문명의 미니어처요, 대용량 USB 메모리다. 의미의 굴절을 겪기는 했지만 지금 우리가 만나는 한자들은 대부분 수천 년 전에 태어나 지금껏 생명력을 이어오고 있는 글자들이다. 그렇기에 한자를 조금만 살펴보면 머나먼 옛날, 수천 년 전 고대 사회에까지도 가 닿을 수 있다. 물론 접속이 쉽지는 않다. 진입 장벽이 꽤 높으니 어느 정도의 수고는 감내해야 한다. 그러나 두껍고 무거운 첫 관문만 열어젖히면 눈앞에 광대한 우주가 펼쳐진다. 저자는 동아시아를 움직인 22자의 한자를 소개하며 독자들을 매혹적인 한자의 세계로 안내한다. ■ 4천 년 획의 역사, 동아시아 문명의 역사 기이한 모양의 갑골문부터 날카로운 석각의 글씨, 물 흐르는 듯 유려한 행초서까지. 서체 디자인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 시기는 언제나 역사적으로도 중대한 전환기였다. 한자의 역사는 그대로 동아시아의 문명의 역사다. 한자의 연원을 찾아가는 모험은 동아시아의 문명사를 관통하는 방대한 지적 모험이다. 신성문자 갑골문에서 출발한 한자는 금문의 시대를 거치며 점차 획의 멋에 눈을 떠가기 시작한다. ‘왕과 신’ 양자 간의 매개였던 문자가 ‘왕과 신하들’이라는 다자간의 소통채널로 변화하는 가운데 일어난 변화다. 왕이 ‘하늘의 뜻’을 무기로 삼았던 시대에서, 제사와 의례를 통해 끊임없이 왕권을 설명하고 지배를 확인받아야 하는 시대로 넘어간 문명사의 중차대한 변곡점이다. 통일 제국 진나라에 이르면 한자의 기호화가 완성된다. 공식서체가 된 소전체의 균질한 획, 통일적인 글씨 크기는 통일 제국의 강력한 힘을 보여준다. 거북이 배 껍질 위에서 점괘로 기능하거나, 청동 그릇 안쪽에 새겨져 지배층에게만 전승되던 글자는 진시황의 위업을 자랑하는 비석과 함께 비로소 만천하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한나라 때는 한자가 ‘붓’글씨로서 폭주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팔분체라는 극단적 정형화로 나아가기도 하고, 초서라는 운동성 극대화의 방향으로 달려가기도 한다. 초서의 탄생은 글씨가 지배자의 위업을 기리는 도구에서 벗어나 개인의 예술작품으로 가능성을 확장한 혁명적 사건이다. 남북조라는 극단의 시대는 상이한 서풍을 각기 발전시켜 후대에 풍부한 유산을 남겼고, 당나라라는 거대 통일 제국은 그간 모든 획의 역사를 집대성한 해서를 탄생시킨다. 해서 이후 거대 서체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수많은 서예가들이 문자문화의 꽃을 피우게 된다. 우리의 지식과 사고체계, 제도와 문화는 모두 이 한자의 영향 아래 건설된 것이다. 저자는 친절하면서도 깊이 있는 해설을 통해 우리가 발 딛고 서있는 이 구조물을 찬찬히 살펴볼 수 있도록 돕는다. ■ 역사, 미술사, 서예사, 문화사를 꿰뚫는 단 하나의 저작 한자의 연원을 설명한 책은 많지만, 그 한자가 놓여있던 사회의 밑바탕까지 파고들어가 살피는 책은 전무하다. 《한자의 모험》은 한자의 연원과 그 역사·문화사적 배경, 그리고 글자 자체의 조형미를 연결하며 조망한 최초의 책이다. 명화를 제대로 읽어내기 위해서는 그 그림이 가진 이야기를 알아야 하듯, 한자를 깊이 읽기 위해서는 그 역사적 폭을 함께 봐야 한다. 저자는 역사, 미술사, 서예사, 문화사 등 인접학문을 능수능란하게 넘나들며 한자 한 글자를 둘러싼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종횡무진 경계를 넘나들며 글자가 놓여있던 본래 세계를 재현해놓은 저자의 수고 덕택에, 독자들은 수월하게 당시의 문화적 환경에서 한자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딱딱하게만 보이던 한자는 어느새 본래의 맥락을 되찾고 생생하게 살아난다. 이 독특한 ‘한자의 도상학’은 한자 연구에 새 장을 열어젖혔다. 자형 변천사 이상의 접근이 전무한 한문 연구 풍토에서 단연 눈에 띄는 크로스오버다. ■ 오래된 미래, 한자의 전성기 스마트폰의 시대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힘을 주어 획을 내리긋는 기쁨을 사랑한다. 일견 점점 설자리가 좁아져가는 듯 보여도, 이미지와 타이포그래피의 위상이 높아져가는 지금 한자는 오히려 새로운 전성기를 예고하고 있다. 사물의 모양을 본떠 만든 한자에는 감각과 사유를 깨우는 힘이 있다. 수천 년 전부터 쌓인 문명의 역사를 담고 있는 한자. 한자 안에는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철학과 미학이 함께 뛰놀고 있다. 한자가 가진 콘텐츠는 무궁무진하다. 지금까지의 모험담은 앞으로 펼쳐질 한자의 모험을 위한 전사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한자의 모험은 계속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