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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에서 / 나쁜 엇길 / 강석표 / 솔밭의 겨울 / 달리는 열차 안의 정지된 공간 / 담쌓는 날 / 백색의 이별 / 메이의 애인 / 콜로세움 / 국경선 넘기 / 강철은 어떻게 / 호각 소리 / 아시시에서 / 만년필 / 누에처럼 / 와선 / 코리안 소스 / 매춘 / 이백 / 509호 물고기 / 하극상 / 다시 아시시 / 충격들 / 꽃의 도시 / 나사못 / 큰형의 비밀 / 이상한 손가락 / 눈빛 또는 혓바닥 / 귀국선 / 새순 / 무엇을 할 것인가? / 무엇을 하지 못했는가? / 첫 사유재산 / 행복한 여름에 / 한가위 아침 / 알프스에서 / 1964년, 가을과 겨울 / 편동성 / 벼락맞은 태권도 사범의 발 / 병역 시피 / 섬광 / 천장 한 모서리 / 젋고 똑똑한 / 수수께기 / 자술서 / 귀향 / 신사적인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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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라는 단어만큼 완전한 정반대의 의미로 쓰이는 것은 없어. 남에선 빨갱이가 미친개처럼 때려잡아야 하는 인간이란 뜻으로 쓰이지만, 북에선 남에서 때려잡아야 한다는 그 빨갱이가 진짜라고 하면 영웅의 대접을 받고 모든 인간이 진짜 빨갱이가 되어야 한다고 항상 교육을 하지. 하나의 단어를 이토록 극명한 대조적 의미로 쓰는 민족이 이 지구상에 또 있는가 모르겠어. 이것이 나로서는 풀 수 없는 수수께끼야.
---p. 5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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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마르자 이번엔 큰형과 나를 죄인으로 만들고 큰누님의 소식을 끊어버린 시대적 조건이 생각났다. 아버지의 암세포엔 시대적 조건도 섞여 있었을 것 같았다. 차라리 잘 돌아가셨다는 생각도 스쳐갔다. 막내의 이런 꼴을 보느니 잘 돌아가신 거라는 생각이 위안처럼 달라붙자 토악질 같은 설움이 북받쳤고, 그들이 뛰어들어와 내 입을 수건으로 틀어막는 소동이 벌어졌다. 혀를 물고 자살이라도 하는 줄 알았을 테지
--- pp. 588-5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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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회갑이 다 되어가는 주인공 허경욱은 2월 하순부터 3월 하순까지 한 달간 생전 처음 유럽대륙을 여행한다. 영국에서 문학비평을 공부하는 조카 허시우(작은형의 아들)가 동행한 여행에서 그는 자기의 살아온 내력과 조카는 잘 모르는 가족사를 들려주면서, 독일로 ‘그’를 만나러 간다. 그리고 그 모든 회고와 여행의 이야기를 한국으로 돌아온 4월 1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출범한 지 80여 년 된 날부터 ‘아비의 기록’으로 엮으면서 아직 열넷, 열한 살밖에 안 된 자녀에게 남긴다.
해거름이면 고래고깃국 냄새가 피어오르는 포항 어느 마을, 삶결 고운 부모 슬하에서 오남매 중 막내로 자란 허경욱.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큰형 허경민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서 사회주의를 접하고 조직 활동을 하며, 귀국 후에도 사회주의운동을 전개해 해방 뒤 쫓기다가 일본으로 밀입국하여 조총련 간부로 일한다. 작은형 허경윤은 형이 빨갱이지만 자기는 군인이 되기를 바란다. 의협심이 강하고 독립적이며 조금은 독단적이기도 한 허경윤은, 매형이자 형의 친구인 이종호의 도움으로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촉망받는 군인이 되고 군사정권의 실력자로 부상한다. 막내 허경욱은 사촌형 허경철의 처참한 죽음, 친형 같았던 왕 서방의 실종과 관련하여 남한 사회에 회의를 느끼고 큰형을 찾아 일본으로 밀입국한다. 큰형 밑에서 조총련 일을 하던 허경욱은 그곳 간부들의 요구에 따라 북한으로 들어가 공부하게 되고, 밀봉교육을 무사히 마친 후에는 남파된다. 이후 고향에 돌아와 임무를 수행하던 중 붙잡혀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북한에서부터 시작된 사회주의에 대한 회의, 군인인 작은형의 장래 때문에 전향서를 쓰고 정권이 바뀌면서 출소하여 결혼하고 가정도 꾸린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온전한 신분을 얻게 되자, 큰형의 아들인 허기주(북한 외교관)와 독일에서 만나기 위해 유럽으로 떠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