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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나라 신라
이한상
김영사 2004.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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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눈부신 황금의 나라 베일을 벗다
2. 금관 주인의 비밀
3. 신라 미의 절정, 귀걸이
4. 황금빛 스커트, 허리띠장식
5. 새롭게 본 신라황금의 세계

저자 소개 1

李漢祥

대전대 역사문화학전공 교수. 부산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사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동대학원에서 백제사로, 일본 후쿠오카대 인문과학연구과에서 동아시아 고고학으로 각각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2년부터 2003년까지 국립공주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학예연구사와 학예연구관으로 근무했다. 동양대 교수를 거쳐 2007년부터 대전대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2017년부터 2024년까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한국 고대사의 핵심적인 발굴에 관한 이야기를 연재했고, 이는 이 책의 바탕이 되었다. 지은 책으로 《황금의 나라 신라》, 《고분미술 - 공예 1》, 《장신
대전대 역사문화학전공 교수. 부산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사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동대학원에서 백제사로, 일본 후쿠오카대 인문과학연구과에서 동아시아 고고학으로 각각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2년부터 2003년까지 국립공주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학예연구사와 학예연구관으로 근무했다. 동양대 교수를 거쳐 2007년부터 대전대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2017년부터 2024년까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한국 고대사의 핵심적인 발굴에 관한 이야기를 연재했고, 이는 이 책의 바탕이 되었다. 지은 책으로 《황금의 나라 신라》, 《고분미술 - 공예 1》, 《장신구사여체제로 본 백제의 지방지배》, 《고대 동아시아 금속제 장신구문화 연구》, 《삼국시대 장식대도 문화 연구》, 《신라의 성장 과정과 복식사여체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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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4년 06월 16일
쪽수, 무게, 크기
274쪽 | 610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34914600

출판사 리뷰

한국 고대사의 가장 화려한 꽃, 그러나 무관심 속에 잊혀진 황금유물들의 미스테리! 천년왕국 신라가 다시 태어난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황금으로 치장한 신라왕의 시신. 그는 황금왕이었으며 그가 영원히 잠든 무덤은 황금궁전이었다. 금관총에서 황남대총에 이르는 4~6세기 신라 황금유물을 젊은 고고학자 이한상 교수가 학계 최초로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현장에서 풀어내어 1500년 전 고대신라로의 흥미진진한 여행이 펼쳐진다.
신라에 대해서 좋은 말이라고는 단 한마디도 남겨놓지 않은 『일본서기』를 보면, 오직 신라를 부러워하는 한 대목이 있다. 신라는 황금이 넘치는 나라라고. 이 '전설'은 사실이었다. 1920년대 조선총독부를 등에 업은 일본 고고학자들이 경주 평야에 밀집한 신라고분 몇 기를 발굴했더니, 무덤은 황금으로 가득했다.

신라의 천년고도 경주에는 산등성이마다 신라인의 무덤이 즐비하고 그 무덤 속에서는 금빛 찬란한 유물들이 쏟아져 나온다. 신라인은 현세의 삶이 내세까지 이어진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에 사후의 안식처인 무덤 속으로 자신의 권세와 부를 그대로 가져가려 하였다. 신라의 황금유물들은 빼어난 금속세공품일 뿐만 아니라 신라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사료이다.
나뭇가지와 사슴뿔 모양의 기묘한 장식으로 꾸민 금관, 다양한 형식의 굵은고리와 가는고리 귀걸이, 유리구술 수천 개와 금판을 엮어만든 가슴걸이, 세련된 감각을 보여주는 황금목걸이, 금알갱이와 유리가 끼워진 반지, 치마처럼 각종 드리개를 매단 금장식 허리띠, 평소 신을 수 없을 정도로 큰 금동신발….
왜 신라 사람들은 큰 무덤을 만들었고 그 속에 황금빛 찬란한 유물을 부장했을까? 무덤에서 나오는 황금빛 찬란한 보물들과 함께 새겨진 신라 사람들이 꿈꾸었던 세계는 무엇이었을까? 베일에 가려진 신라 고분의 세계를 고고학적인 시각을 통하여 신라인의 꿈과 죽음의 미학을 탐구하였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황금보물에 숨겨진 천년왕국의 수수께끼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이 책은 한국 고대문화의 역동적인 모습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신라 황금문화로 안내하며 그 속에 간직된 신라인의 꿈과 죽음의 미학을 함께 발견하고 있다. 이한상 교수는 10년을 넘게 발굴작업과 출토유물을 정리하고 그 의미를 연구하여 정리해 내었다. 한국 고대사 연구의 자산을 살찌우는 의미있는 작업의 성과물이며 역사의 대중화를 위한 보람찬 양서 중의 한 권이다. 합리적 추론과 해석을 통해 우리 고대사의 비밀에 한 걸음 한 걸음 접근하며 역사상을 복원해가는 진귀한 체험을 하게 한다.


금관을 비롯해 금신발까지 곱게 만들어 무덤 속에 넣어준 신라인, 천년의 황금보물 속에 간직된 신라인의 꿈과 죽음의 미학! 신라 황금문화의 전달자는 누구인가?

4세기대의 신라는 본격적인 성장을 거듭하면서 국제사회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중국 황제 앞에 선 신라 사신인 위두는 “해동의 사정이 예전과 달라졌다”라고 당당한 어조로 말하였다. 이 한마디의 말은 곧 신라의 자신감의 표현이었고 그것을 국제사회에 공표하는 순간이었다. 당시 사회의 역동적인 분위기가 바로 경주 시내 무덤 속에서 고스란히 느껴지고 있다.
신라인들은 현세의 삶이 내세까지 그대로 이어진다고 여겼으며 그 때문에 무덤 속에 수만점의 유물을 함께 묻거나 살아 있는 사람까지 순장하기도 했다. 금관을 비롯해 금빛 찬란한 신발까지 곱게 만들어 무덤 속에 넣어줌으로써 저승에서 사용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 책은 우리의 고대사에 대한 진실한 복원과 재구의 필요성을 한번 더 생각하게 해준다. 유물을 통해 신라 고대사를 추정하고 복원해 나가는 치밀하고 체계적인 연구과정과 그 성과를 통해 새롭게 밝혀진 고대사의 일면을 접할 수 있다는 건 분명 흥미진진한 그 이상이다.


왕의 수보다 더 많은 금관은 누가 썼던 것일까?

경주 시내에 발굴된 무덤에서는 왕의 수보다 많은 수의 금관이 발굴되고 있다. 이 시기 신라왕보다 출토된 금관의 수가 훨씬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왕비나 왕의 가족도 금관을 썼기 때문이다. 금관은 초월적 권력을 지닌 왕의 독점물이라기보다는 왕족이 자신들의 고귀한 신분을 배타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착용한 위세품(威勢品)이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신라왕은 과연 금빛 찬란한 금관을 머리 위에 쓰고 정사를 보았을까? 그러나 금관은 실용품으로 보기 어렵다. 화려한 외모와는 달리 버팀력이 매우 약한 데다 지나치게 장식이 많아 실생활에서 사용하기는 어렵다. 평상시 금관을 썼던 것이 아니라 왕이나 그 가족이 죽었을 때 특별하게 제작해 무덤에 함께 묻어주는 용도였음을 암시한다.


신라 귀걸이는 고구려에서 디자인이 수입되었다는데?

전세계를 통틀어 경주만큼 금귀걸이가 많이 나오는 곳도 없다 한다. 신라의 귀걸이에는 신라인의 미감과 최고조에 이른 금공예 기술이 녹아 있다. 수백 개의 금알갱이를 붙이고 파란색 혹은 빨간색 옥을 끼워넣어 매우 화려한 모습을 연출한다. 신라의 남녀들은 모두 귀걸이를 착용했다는데, 어떤 용도였을까? 현대에는 여성들이 착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신라의 지배층은 남녀 모두 그들이 속한 사회적 지위를 밖으로 드러내기 위해 귀걸이를 착용했다. 비슷한 도안의 귀걸이를 착용함으로써 그들끼리는 자신들이 신라를 이끄는 지배층이라는 우월의식을 느끼려고 했다. 또한 신라의 가는고리 귀걸이는 고구의 귀걸이를 모델로 하여 변용함으로써 다시 신라적인 도안으로 재탄생하였다. 신라 귀걸이의 시대별 디자인 변화와 유행을 연구해 보면 그 당시 고구려와 신라의 대외적 관계를 알 수 있다.


황금빛 스커트를 입은 것 같은 금제 허리띠 장식이 상징하는 것은?

허리띠 부근에서는 약통, 물고기, 숫돌, 족집게, 곡옥, 손칼 등이 출토된다. 허리띠에 물건을 주렁주렁 매달고 생활하는 것은 북방 유목민족의 풍습인데, 신라인의 기원을 밝혀주는 단서가 된다. 원래 허리띠에 물건을 주렁주렁 매달고 생활하는 것은 북방 유목민족의 풍습이다.
허리띠의 모양이나 재질은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나 신분을 나타내는 척도였다. 숫돌과 족집게는 철기를 만들 때 사용하는 도구이며, 약통은 질병 치료와 관련되는 것이고, 곡옥은 생명을, 물고기는 식량 또는 다산을 상징한다. 이로 본다면 이 허리띠 드리개에는 당시의 왕이나 제사장이 관장한 많은 일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요즘 신발 이상으로 매우 큰 금동신발. 신라왕은 이렇게 큰 신발을 신었을까?

왕이 묻혔다고 생각되는 무덤에서는 큼직한 신발 한 켤레가 출토됐다. 왜 신라인들은 이처럼 화려하지만 지나치게 크고 약한 구조의 신발을 만들었을까? 이 신발을 신고 걸으면 순식간에 공들여 만든 신발이 찌그러지고 말 것이다. 따라서 이 신발은 결국 평소 신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승을 떠난 사람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것이다.


신라 황금금문화의 전달자는 누구일까?

직접적으로 고구려, 간접적으로는 그에 인접한 선비족 왕조라고 이 책에서는 추정하고 있다. 그동안 스키타이족 이동설이 제기되기도 했고, 심지어 동로마제국의 황금문화가 전해진 결과로 보는 연구도 있지만, 시간적 공각적인 격차뿐만 아니라 유물간 유사도도 낮음이 그 근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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