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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의 말
수난 학살 망신 임신 진통 착상 출산 죽음 |
Zoran Zivcov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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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노릇을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오래전에도 그랬지만 요즘 들어서는 나날이 더 힘들어지고 있다. 사실상, 책이 멸종 위기 직전에 처해 있는 종이라는 주장은 전적으로 옳다. 정말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실로 엄청난 손실이 될 것이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그저 그런 평범한 종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대한 진화의 계보에서 아무리 별 볼일 없는 하찮은 것이라 할지라도 어떤 종이 사라진다는 것은 심히 안타까운 일이다. 하물며 이 세상을 찬란하게 빛내 온, 단 두 종의 지적 생명체 중 하나가 멸종 위기에 직면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화상의 대재앙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p.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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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책을 죽음으로 몰고 있는가?
지구상 최고의 지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책이 지금 죽어 가고 있다. 인간의 역사를 대신 기억해 왔고, 인간을 더더욱 지적인 존재로 돋보이게 했던 ‘책’은 그에 합당한 대접은커녕 말도 안 되는 무시를 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소중한 존재라며 입버릇처럼 말하면서 우리는 냄새 나는 화장실에서 책 보기를 밥 먹듯 하고, 침대에 누워 책을 읽다 졸리면 아무렇지도 않게 휙 던져 버리고, 책장이 잘 안 넘어가면 더러운 침을 묻히고, 책장 아무 데나 마구 낙서를 해대며, 싫증 나면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린다. 천만금을 줘도 살 수 없어야 할 책이 서점에서 판매되는 모습은 또 어떤가? 시도 때도 없이 해대는 ‘할인’ ‘세일’ 덕에 헐값에 팔려 나가고 있다. 하긴 이렇게 하는데도 팔리지 않아 바로 폐기 처분되는 경우도 허다하니 할 말 다했다. 서적 외판원의 손에 이끌려 길바닥에 널려 팔리기도 하고 레인코트 주머니에 줄줄이 매달려 팔리기까지 한다. 책이 그동안 인간들에게 어떤 은혜를 베풀었는데, 어디 이게 받을 대접인가? 소중한 존재라 해놓고 무시하기만 하는 우리의 위선적이고 이율배반적인 행태 그리고 자본주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상품 가치가 우선일 수밖에 없는 책의 현실과 마주 설 수 있다. 또 우리의 행동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도 반성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책이 책의 탄생을 말하다. 우리는 보통 서점에 쫙 깔려 판매되는 책을 그냥 단순한 상품으로 생각한다. 한 권의 책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지는 관심 밖의 일이다. 이 소설에서는 책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책의 눈을 통해 보여 준다. 책의 탄생 과정을 임신에 비유하며, 작가나 사장을 제외한 만들어지는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조산원에 비유해 그들의 고뇌를 말한다. 솔직히 우리는 책에 대해서 모르는 게 너무나 많다. 책 한 권이 출판되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손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다. 출판사 사장에게 눈에 들 원고를 작가가 만들어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의 편집 또한 대단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책은 탄생 전반에 걸쳐 상당히 많은 조산원을 필요로 한다. 편집자, 카피 에디터, 전문 편집자, 타자수, 교정원, 식자공, 제본하는 사람 등. 흠집 하나 없는 책을 만들어 내기 위해 조산원들은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부지런한 언어 경찰관인 이들은 조금이라도 책에 흠이 생길까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 그래 봤자 조산원의 이름을 알아 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는데 말이다. 어쩌다 흠 하나를 만들어 냈다가는 그동안 노력했던 것이 헛수고로 돌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흠 찾아내기에 혈안이 된 사람들에게 발각되었다가는 모든 책임을 지고 일을 그만두어야 할지도 모른다. 참으로 불운한 조산원들이다. 이 소설은 우리가 몰랐던 책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에 의해 유쾌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 책은 야비한 음모에 휘말려 있다 마인츠 출신의 괴물이(이 책은 구텐베르크를 괴물로 부르고 있다) 인쇄술을 발명하기 전, 책은 수도원에서 필사되어 존재했다. 수도승이 평생을 필사해도 50권 만들어 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급속도로 발전한 활판 인쇄술이 한 번에 수천 권의 책을 쏟아내게 했다. 덕분에 모든 사람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특권을 누리게 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또 컴퓨터라는 새로운 기기의 등장으로 책은 또 한 번 변화를 겪게 되었다. 출판 시스템은 급속도로 발전하며 전보다 더욱 빨리 책이 만들어지게 되었고, 공정 과정에 참여하던 조산원들도 대폭 줄어들게 되었다. 컴퓨터가 보급되며 결국 사람들은 ‘책은 꼭 종이로 봐야 하는 것인가?’ 라는 회의를 품게 된다. 뭐 하러 무겁게 종이로 된 책을 보는가 말이다. 한 장 한 장 넘기려면 또 얼마나 불편한가. 최첨단 기술이 만들어 낸 놀라운 산물이며 새 시대의 진정한 선구자라는 시디롬 즉, 전자 책이 떡하니 책 대신 자리를 차지할 날이 다가오고 있다. 아니 이미 왔다고 봐야 맞을 것이다. 정말 책은 이대로 죽음을 고하며 영원히 사라지게 될 것인가? 『책 죽이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얼마 전 모 방송 프로그램이 “책! 책! 책!”을 외치며 온 국민의 손에 책을 쥐게 했다. 덕분에 일 년에 책 한 번 떠들어 보지 않던 사람들이 최고의 지성인 책과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책을 지성의 존재로 생각하기보다는 철저하게 자신들에게 지식을 제공하는 서비스로 여기고 있다. 모든 서비스를 받고 나면 필요 없다며 버려 버리기 일쑤인 것이며, 서비스는 쌀수록 좋은 법이니 무조건 싼 가격에 사들이려 한다. 보급이라는 미명하에 시작되었던 책의 할인은 이제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되어 버렸고, 결국 출판 시장 전반에 진통을 만들어 내고 있다. 매년 도서정가제 문제가 대두되고 있으며, 유통망의 불안정한 시스템으로 파산 사태까지 발생하고 있다. 참으로 책의 고난 시대라 아니할 수 없다. 정말 이대로 가다가는 시디롬이라는 대체물이 아니고라도 정말 지구상에서 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위기감마저 든다. 이 소설은 아무렇게나 내던져지고 있는 책의 수난, 팔리지 않는다며 폐기 처분당하는 책의 학살 현장, 그리고 헐값에 팔려 나가는 망신스런 모습을 통해 지금의 출판 시장의 모습을 아주 맵싸하게 꼬집어 내고 있다. 또 왜 이런 사태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역추적해 나가며, 책과 관련된 사람들의 역할과 그들의 고뇌 그리고 오늘날 책에게 닥친 불운의 요인들을 지적해 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