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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대중음악 평론하며 살아가기1부 쓰면서 듣기: 평론, 노동에 관하여 대중음악의견가의 평론론우리는 모두 편파적이다최소한 나쁜 평론은 쓰지 말자대중음악의견가의 기쁨과 슬픔평론가도 생활인이다오늘도 부끄러운 이유이런 평론가 한 사람쯤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음반 리뷰를 어떻게 쓰냐고 묻는다면평론은 술래잡기평론가와 음악인의 거리무조건 편들기는 위험하다원하는 글은 아직 쓰지 못했다나는 이렇게 듣는다물러날 때를 아는 사람2부 들으면서 생활하기: 음악, 예술에 관하여 오래 살고 싶은 이유음악을 진실하게 하는 시간모르는 삶을 향하는 노래지금 예술은 어디에 있을까불가능한 꿈을 꾸기우리 시대 예술가는 어디에 있을까어떤 음악이 좋은 음악이냐고 묻는다면상업성과 예술성이라는 이분법노래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민중가요를 위한 변명내가 사랑한 민중가요추억하기보다 오늘을 응원하기, 꽃다지와 노래를 찾는 사람들가슴을 울리고 세상을 깨우는 노래, 김광석과 안치환아직도 노래가 필요한 세상좋은 음악은 서울에만 있지 않다노래로 조율할 때3부 생활하면서 다시 쓰기: 세상, 삶에 관하여 꽤 근사한 삶을 살게 된 비결당신의 생각을 듣기 위해 쓴다음반 리뷰를 읽지 않는 세상취향의 시대, 이렇게 살아가면 어떨까자기애 넘치는 세상삶의 즐거움과 의미대통령 윤석열과 함께 듣고 싶은 노래 세 곡이태원참사, 그 후의 몇 가지 생각들불편하지 않은 배움은 불가능하다모든 것은 지나간다지만소소한 즐거움이 삶의 전부일 리 없다에필로그: 계속 만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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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없이 쓴다는 것20여 년을 대중음악평론가로 살아오며 오랫동안 음악에 관한 글을 써온 그에게 평론이란 무엇일까. 음악평론에서 음악의 의도, 표현, 의미, 차별성, 아름다움 등을 빼놓고 이야기하기는 어렵겠지만 서정민갑은 여기에 “소리의 무게”를 덧붙인다. 그는 “음악인이 내놓은 소리와 이야기가 지금의 사회에서 어떤 가치가 있는지 따져보고 소리의 무게를 헤아”(22쪽)리는 것까지를 평론이라 말한다. 한 곡의 음악, 한 장의 음반이 듣는 이와 예술계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서 그는 음악의 가치를 찾는다. 이 가치를 정확하게 찾아내고, 사실관계에 근거해 그 맥락을 보여주며, 이를 통해 찬사나 비난이 아니라 새로운 시선의 제안으로 나아가는 것까지를 그는 평론이라 여긴다.권위에 굴복하고 통념에 기대는 평론은 결국 평론을 쓸데없는 일로 만들어버린다고 말하는 저자는 그런 면에서 ‘눈치 없이’ 쓴다. 평론만으로는 생계를 꾸릴 수 없어 들어오는 심사와 강의, 인터뷰, 공연 연출도 종종 맡으며 먹고살기의 문제를 고민하지만 여전히 들을 수 있고 쓸 수 있음에 안도한다. 평론의 목표는 생계만이 아니지만, 생계를 잇지 못하면 지속할 수 없다. “물독이 차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않고, 단순노동의 반복을 견디는”(45쪽) 일로서 평론을 말하면서도 “이 일을 퍽 사랑하는 모양”(88쪽)이라 잠시 고백하고 “셔터를 내려야 할 때 징징대는 사람, 뒷방에 모여 앉아 잔소리하는 고인물은 절대되고 싶지 않다”(92쪽)고 다짐하는 그의 이야기는 저마다의 노동을 하는 우리의 삶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눈치 없이 듣는다는 것대중음악평론가이지만 듣는 것만큼이나 읽고, 보는 것에 진심이다. 온라인 서점 개인보관함에 담아둔 책이 3901권, OTT 서비스에 보고 싶다고 찜해둔 영화가 3556편, 드라마가 598편이다. 요즘은 일주일에 두세 번 연극까지 챙겨 본다. 그는 이 리스트를 지우기 위해 오래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지금껏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영화/드라마를 보는 동안 고정관념은 번번이 무너졌다. 찾아서 읽고 보고 듣기 전에는 그렇게 쓰는 사람이 있는 줄 몰랐다. 그렇게 말하는 방식이 가능한지 알지 못했다.”(97쪽) 걸작들을 보며 고정관념이 깨지고 어느새 낯선 곳에 와 있었던 경험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세계가 넓어졌다고 말하는 저자는 다른 세상을 꿈꾸는 예술의 힘을 확신한다.음악과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과 함께 그 힘을 제대로 알아보기 위해, 눈치 없이 듣기 위해 그는 온갖 것들을 보고 읽는지도 모른다. 저자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한 줌밖에 안 되는 이들이 싸움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 곁에는 항상 노래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100쪽)을 상기시킨다. 오래된 맥줏집을 지키려는 이들의 한겨울 밤 저녁 문화제 현장에서 기타 한 대와 함께 울려퍼진 “눈물처럼 짭짤해지는 노래”를 음악의 진실한 순간으로 이야기한다. 남성, 백인, 권력자의 이야기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모르는 삶을 향하는 노래, ‘개인’은 넘치고 ‘우리’는 드물어진 세상에서 “삶을 뒤흔드는 사회와 운명과 인간의 욕망”을 말하는 예술을 언제나 기다린다.눈치 없이 산다는 것쓰고, 듣고, 생활하는 일이 딱히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원칙과 신념을 지키기 위해 매일같이 자신을 몰아붙였기 때문일까. 눈치 없는 이 사람도 어느 날 공황발작을 맞닥뜨리고 만다. 평론이라는 노동에대해서든, 음악을 비롯한 예술에 대해서든, 자신의 삶에 대해서든 꼿꼿한 철학으로 우직하게 나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실상은 매일에 고민과 성찰 가득이다. 눈치 없이 쓰고, 듣고, 생활한다는 건 정말로 세상이나 남의 마음을 읽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런 기준을 알면서도 같은 기준으로 타협하지 않음이다. 그러니 고민과 성찰이 끊일 리 없다.그냥 가끔은 눈치 좀 보면 안 될까. 좋은 게 좋을 때도 있는 거 아니냐고, 저자의 이야기들을 읽어나가다 누군가는 한순간 그런 의문을 품을지도 모르겠다. 분위기 파악 잘해서 찬물 끼얹지 않는 게 성숙이고 미덕인 것처럼 여겨지는 세상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 ‘좋은 분위기’란 대개 누구에게 좋은 것일까? 많은 사람이 “개인의 삶과 일상의 즐거움을 옹호할 때, 나는 거대담론과 공공의 삶에 무게를 싣는 사람으로 살다 가고 싶다”(247~248쪽)고 말하는 사람 한 명쯤, 그래서 가끔 눈치 없단 핀잔을 들으며 사는 사람 한 명쯤, 세상에는 분명 이런 평론가 한 사람쯤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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