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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노래 상(春歌上)
봄노래 하(春歌下) 여름 노래(夏歌) 가을 노래 상(秋歌上) 가을 노래 하(秋歌下) 겨울 노래(冬) 축하 노래(賀) 애상 노래(哀傷) 이별 노래(離別) 여행 노래(?旅) 사랑 노래 1(戀1) 사랑 노래 2(戀2) 사랑 노래 3(戀3) 사랑 노래 4(戀4) 사랑 노래 5(戀5) 잡가 상(雜上) 잡가 중(雜中) 잡가 하(雜下) 신기 노래(神祇) 석교 노래(釋敎) 해설 엮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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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하신 슈카쿠 법친왕 댁에서 오십수 와카를 지을 때 읊다
守?法親王家五十首歌に 넓은 하늘은 매화 향기 때문에 아스라하고 봄날 밤의 달빛엔 구름이 좀 끼었네(후지와라노 데이카,* 40) おほ空はむめのにほひにかすみつつくもりもはてぬ春のよの月(藤原定家朝臣, 40) 사이교 법사가 권해서 백수 와카를 읊었을 때 西行法師すすめて、百首歌よませ侍りけるに 바라다보니 벚꽃도 단풍잎도 전혀 없도다 바닷가 어촌 마을 가을 석양 무렵에(후지와라노 데이카, 363) 見わたせば花も紅葉もなかりけり浦のとま屋の秋の夕暮(藤原定家朝臣, 363) 데이카의 어머니가 죽은 후, 가을 무렵에 묘소 가까이에 있는 법당에 가서 읊은 노래 定家朝臣母身まかりてのち、秋ごろ墓所ちかき堂にまかりて、よみ侍りける 어쩌다 오는 밤에도 불어 대는 솔바람 소릴 그대는 땅 밑에서 계속 듣고 있겠지(후지와라노 슌제이, 796) まれにくる夜はもかなしき松風をたえずや苔の下に聞くらむ(皇太后宮大夫俊成, 796) 사랑하는 사람의 침소에 다니기 시작한 다음 날 아침에 지어 보낸 노래 人の許にまかりそめて、あしたにつかはしける 어제까지는 만나기만 한다면 죽겠다 했네 오늘 아침엔 다시 안 죽길 참 잘했네(후지와라노 요리타다,* 1152) きのふまであふにしかへばとおもひしをけふは命のをしくもあるかな(廉義公, 1152) 와카도코로 우타아와세에서, ‘깊은 산 새벽달(심산효월)’이라는 주제를 읊다 和歌所歌合に、深山?月といふことを 밤이 새도록 홀로 깊은 산속의 나뭇잎 위로 흐렸다 개어 가는 청명한 새벽 달빛(가모노 조메이, 1523) 夜もすがらひとり深山の?の葉にくもるもすめる有明の月(鴨長明, 1523) ---본문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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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고의 희망, 《신고금와카집》
《신고금와카집》이 편찬되던 헤이안(平安) 시대 말기는 가마쿠라 막부(鎌倉幕府)의 개설과 함께 정치의 주도권이 귀족 세력에서 무사 세력으로 옮겨 가고, 기존의 귀족 세력들은 점차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던 과도기였다. 《신고금와카집》의 선집을 하명한 고토바인(後鳥羽院)과 당시의 귀족들은 대규모의 칙찬 와카집 편찬에 스러져 가는 자신들의 입지 회복과 왕실을 중심으로 한 통합의 희망을 담았다. 《신고금와카집》이 전대의 칙찬집을 뛰어넘는 대대적인 규모로 기획된 점과 《신고금와카집》이라는 가집명에서 알 수 있듯이 최초의 칙찬 와카집이자, 국풍 문화(?風文化)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기에 만들어진 《고금와카집》의 이름을 계승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신고금와카집》의 구성 《신고금와카집》은 1978수의 와카를 수록하고 있으며 마나 서문(?名序), 가나 서문(?名序), 봄노래 상, 하/ 여름 노래/ 가을 노래 상, 하/ 겨울 노래/ 축하 노래/ 애상/ 이별/ 여행 노래/ 사랑 노래 1, 2, 3, 4, 5/ 잡가 상, 중, 하/ 신기(神祇) 노래/ 석교(釋敎) 노래를 포함한 총 2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최초의 칙찬 와카집인 《고금와카집》의 구성 이념을 계승하고 있으며, 이 구성에는 전통성과 역사의식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노래의 선가 범위는 만엽(万葉) 시대부터 당대 가인까지로, 작자 미상의 노래를 제외하고 약 396명의 가인들의 노래가 실렸다. 가장 많은 노래를 수록한 가인으로는 94수의 사이교(西行), 그다음 92수의 지엔(慈円), 79수의 후지와라노 요시쓰네(藤原良?), 72수의 후지와라노 슌제이(藤原俊成), 49수의 쇼쿠시 내친왕(式子?親王), 46수의 후지와라노 데이카(藤原定家), 42수의 후지와라노 가류(藤原家隆), 35수의 자쿠렌(寂蓮), 35수의 고토바인(後鳥羽院), 29수의 슌제이의 딸(俊成?女), 22수의 후지와라노 마사쓰네(藤原雅?), 19수의 아리이에(藤原有家), 17수의 미나모노토 미치토모(源通具) 등으로, 사이교와 슌제이, 데이카 등 미코히다리 가문(御子左家)의 가인들이 많았고 이 점은 가집 전체의 가풍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신고금와카집》의 가풍 《신고금와카집》의 가풍은 만엽, 고금(古今), 신고금(新古今), 이른바 3대 가풍 중 하나로 칭송받으며 근세는 물론 근대의 하기와라 사쿠타로(萩原朔太?)나, 쓰카모토 구니오(塚本邦雄)와 같은 시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의 시대 상황과 《신고금와카집》에 담긴 정서들은 가집의 내용과 성격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모든 세상의 스러져 가는 것들에 대한 공명과 연민을 담거나, 이러한 정서에서 자연을 바라보는 기조를 띠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신고금와카집》의 가풍은 이른바 여정미(余情美)와 요염미(妖艶美), 전체적으로는 유현미(幽玄美)로 특징지을 수 있다. ‘여정미’란 노래를 읽는 이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긴 여운을 느끼게 하는 아름다움, ‘요염미’란 독자를 매료하는 듯한 아름다움을 일컫는다. 또한 이 여정미와 요염미 등 《신고금와카집》의 미의식을 아우르는 것이 유현미라고 할 수 있다. 《신고금와카집》의 편찬자 중 하나인 후지와라노 데이카는 부친 슌제이의 와카 비평에서 등장했던 유현미라는 개념을 《신고금와카집》을 통해서 여정 요염미와 융화시킨 자신만의 유현미로 발전시키고 확립했다. 유현미라는 것은 원래는 불교와 노장 사상 등 중국 사상에서 쓰였던 용어를 차용한 것으로, 사물의 정취가 깊어 헤아릴 수 없고 고상하며 우아하고, 기품이 서려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와카뿐만 아니라 당시의 문예, 예능, 회화, 건축 등 다방면에 쓰여 일본의 중세를 대표하는 미적 관념으로 자리 잡게 된다. 마지막 칙찬 와카집 《신고금와카집》의 편찬 16년 후 조큐의 난이 막부 타도, 왕실 권위 회복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채 실패로 끝나고, 오히려 왕실과 귀족 계급의 몰락을 앞당기게 되었다. 하지만 비록 그런 비운의 아이러니 속에서도 결국 《신고금와카집》 속에 담긴 왕실과 귀족 문화의 복권과 재흥이라는 염원은 문화적 영향력으로 발현해 후대의 일본 문화 전반에 거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신고금와카집》에 담긴 고토바인의 염원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결국 꺼져 가는 불꽃이 마지막에 가장 환한 빛을 발하듯이, 저물어 가는 시대의 마지막 유산으로서 《신고금와카집》의 시대적 의미는 크다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