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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제멋대로 살아온 인생이었고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제1장 불운이 행운이 되는 발상의 전환병약했던 사람일수록 오래 사는 현실뒤로 넘어져 10일간 입원 생활역 정류장에서 넘어져 코피가 펑펑미국 정부 관계자의 차에 치이다나이를 먹어도 뼈가 튼튼한 이유제2장 마음대로 사는 ‘맛있는 생활’국내산 자투리 쇠고기가 삶의 활력닭고기나 돼지고기가 더 잘 어울리는 요리도 있다냉장고에 가득한 채소, 생으로 먹고 데쳐서 먹고생선은 가시가 걸릴까 봐 먹지 못한다따끈따끈한 밥에 버터를 얹으면 맛있는 한끼껍질을 벗기는 과일은 귀찮아서 먹지 않는다꽤 쓸만한 마트 할인 코너밤에 잘 때는 입에 눈깔사탕을규칙적인 생활은 한 적이 없다담배와 술은 적당히 즐긴다제3장 몸의 이상은 그만두라는 신호시대에 맞서지 않고 스트레스를 흘려보낸다엄지발가락에 내성 발톱이 생겨 괴로워한 날98세이지만 혈액 검사를 하면 ‘이상 없음’변비와 다리에 나는 쥐는 한약으로 고친다급하게 먹으면 복통이 일어난다건강보조식품은 절대 먹지 않는다피부 보습을 소홀히 하면 후회한다아무도 만나지 않는 날에도 화장을 한다욕조는 노인의 사형집행대제4장 99세에도 인생은 꽃길결혼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좋아하는 사람이 없으면 사는 의미가 없다나이가 많아도 당당하게 살아간다밥솥을 한 번도 씻지 않아도 죽지 않는다물건 찾기에 지쳐 ‘벽에 고정’하는 방법을 생각해 내다죽은 뒤에 할 일을 정하니 살 기운이 넘친다외로워서 죽을 것 같다던 친구가 다른 사람이 된 이유100세에 이루고 싶은 꿈이 눈앞에 다가왔다제5장 스트레스는 씩씩하게 피한다속마음을 감추고 그 자리를 넘긴다“야, 이 나쁜 놈아!”하고 외치며 스트레스를 발산한다말과 고양이로 힐링한다안 좋은 일이 있는 날은 사극을 보며 시름을 잊는다좋아하는 책과 만화로 기분 전환한다혼자 떠나는 작은 여행이 좋다제6장 그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의사와 연극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한 이유병원 진료에도 연기가 도움이 된다여의사를 싫어하는 환자도 있다때로는 시어머니의 비위도 맞춰준다인생은 예상치 못한 사건의 연속화재경보기에 도움받는 날들연극을 위해서라면 다이어트도 불사한다제7장 전쟁만은 저세상에서도 반대한다절대 잊을 수 없는 전쟁의 추억전쟁 중에 목격한 끔찍한 현실전쟁 중에는 매일 ‘폭탄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했다연극으로 원자폭탄의 참혹함을 표현하다전쟁은 인간을 미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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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條三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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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맞서지 않고스트레스를 흘려보낸다어릴 적에는 병약해서 죽을뻔할 적도 있었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는 큰 병을 앓은 적이 없다. 의사라는 직업에 종사하면서 연극을 병행하며 전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위궤양이 생긴 적도 없고 만성적인 컨디션 악화에 시달린 적도 없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만사에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내 성품이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인턴 시절에는 남자 선배 의사들이 종종 악담을 하거나 속 좁은 심술을 부렸다. 하지만 그때그때 스트레스를 흘려버리면서 살았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기를 잘했던 것 같다. 끙끙거리며 곱씹었더라면 스트레스가 쌓여서 위에 구멍이 났을 것이다. 지금도 일본에서 여성의 지위는 높다고 할 수 없지만, 옛날에는 남존여비가 무척 심했다.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존재로 대하지 않았다. 분하고 억울했다. 하지만 시대에 맞서지 않고 살아온 것이 오히려 잘한 일 같다. 속으로는 이를 갈았지만 내색하지 않고 ‘어디 두고 봐라’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의사와 연극이라는 일을 양립해왔다. 두 가지를 동시에 해온 것도 다행이었을지도 모른다. 둘 중 하나만 했다면 숨 쉴 구멍이 없었을 것이다. 의사와 연극이라는 두 바퀴가 함께 굴러가 적당히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었다.죽을 때까지 연극을 하기 위해서라도다리와 허리를 단련해야 한다그리고 규칙적인 생활은 한 적이 없다병원을 운영할 때는 새벽 2시쯤에 잠들고 아침 7시에 일어났지만, 연극 연습을 시작하거나 원고 마감일이 다가오면 새벽 서너 시까지 못 자는 날도 있었다. 지금은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어졌으므로 새벽 4시까지 독서를 하거나 원고와 극본을 쓰기도 한다. 그렇게 하고 아침 9시나 10시쯤 일어난다. 젊었을 때부터 의사와 연극을 병행해왔으므로 1년 365일 수면 부족이었을지도 모른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진료를 하는 틈틈이 졸기도 했다. 간호사도 이런 나를 한두 번 본 것이 아니라서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오는 순간 나를 쿡 찔러서 깨워주었다. 긴 세월 이런 생활을 해와서인지 5분만 자면 머리가 맑아진다. 굉장히 쉽게 잠드는 것이다.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분들에게는 죄송한 마음이지만 빨리 잠들 수 있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지금은 시간이 있으므로 두 시간 정도 낮잠을 자기도 한다. 그래도 밤에 잠을 설치지 않는다. 새벽녘까지 깨어 있으므로 낮잠을 자서 수면시간을 보충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수면 다음에는 운동이다. 다리가 약해지면 몸 전체가 약해지므로 가능한 한 걸어 다니려 한다. 집에서 병원까지는 도보 20분 정도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아침 걸어 다녔다. 지금은 진료를 보지 않으므로 되도록 직접 마트를 다니며 가는 김에 산책도 하고 온다. 극단 공연을 하게 되면 계속 서 있어야 한다. 죽을 때까지 연극을 하기 위해서라도 다리와 허리를 단련해야 한다. 이런 목표가 있어서 걷는 게 힘들지 않다. ‘넘어지기 전의 지팡이’라는 일본 속담이 있는데 유비무환이라는 뜻이다. 나는 밖을 걸을 때는 맑은 날이어도 우산을 지팡이 대신 짚고 걷는데 비가 내리면 우산을 쓸 수 있어서 편리하다. 일부러 지팡이를 살 필요는 없다. 있는 것을 활용하면 된다. 최근에는 달리는 연습도 한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달린다기보다 빨리 걷고 있는 듯이 보이겠지만 나로서는 달리기 연습이다.좋아하는 책과 만화로 기분 전환머리를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나는 무대 여배우지만 극작가이기도 해서 책을 자주 읽는다. 대본을 쓸 때는 그 이야기의 역사적 배경과 인물상, 상황 등을 조사한다. 그것을 모르면 정확한 장면을 묘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상 하나만 해도 시대에 따라 디자인이 다르므로 확인이 필요하다. 그럴 때는 어려운 책을 몇 권이나 읽어야 한다. 일로써 읽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 머리가 띵해진다. 좀 쉬고 싶을 때는 단것을 먹거나 낮잠을 자기도 하는데 다른 책을 읽는 것도 휴식이 될 수 있다. 머리를 쉬게 하기 위한 독서이므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을 선택한다. 예를 들어 역사소설은 몇 번이나 읽는 편이다. 내용이 너무 재미있어서 술술 읽힌다.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읽기 편하다. 옛날부터 역사를 좋아했기 때문에 그 연장선상에서 역사소설에 푹 빠진 것 같다. 역사소설 외에 만화책도 머리를 식혀준다. “만화책도 보세요?”라고 놀라는 사람도 있지만 99세도 만화책을 즐길 수 있다. 더욱이 나는 훈훈한 내용보다는 《북두의 권》이나 《고르고 13》 같은 하드보일드나 액션물을 선호한다. 모두 남성을 대상으로 한 만화이지만 이렇게 투쟁심을 불러일으키는 만화책을 보면 왠지 기운이 솟는다.속마음을 감추고그 자리를 넘긴다내가 살아온 시대는 남녀평등이 아니어서 지금은 성희롱에 해당하는 언행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었다. 병원에서 일했을 때는 항상 술자리에서 술을 따르도록 했는데, 당시에는 싫다고 거부할 수 없었다. 그런 말을 하면 ‘여자가 건방지다’는 말을 들을 뿐만 아니라 병원에서 일하는 데도 지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저는 눈치가 없어서 술을 잘못 따라요. 죄송합니다”라고 어찌어찌 그 자리를 넘기곤 했다. 그렇다고 할까, 나는 정말로 눈치가 없어서 옆 사람의 잔이 비어도 멍하니 있을 뿐 빈 잔에 재빨리 술을 따라주지 못했다. 그렇게 해서 ‘눈치 없는 여의사’라는 이미지를 확립했다고 할 수도 있다. 일단 그런 이미지가 생기면 끈질기게 술을 따르라고 하지 않는다. ‘술도 못 따르는 바보’라며 쥐어박혀도 ‘하하하’하고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내심은 ‘바보 같으니, 누가 따라 준대?’하고 생각했다. 그럴 때는 술도 못 따르는 눈치 없는 여자를 연기하는 것이다. 극단에서는 여배우로서 연기 연습을 하고 있었으니 하나도 어렵지 않다. 모든 일에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필요는 없다. 술자리에서는 “산죠, 너 글래머구나”라고 지금이라면 성희롱으로 고소당할 만한 말도 일상다반사였지만, 그것도 웃으며 받아넘겼다. 당시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 더 이상했던 시절이라 어쩔 수 없었다. 병원에서도 여의사가 주도적으로 일하면 ‘건방지다’는 말을 들었다. 실제로 그런 여의사도 있었는데, 그러면 일이 잘 돌아가지 않았다. 못되게 구는 남자 의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끝이 좋으면 다 좋다죽은 뒤에 할 일을 정하니살 기운이 넘친다나는 지금까지 내가 죽은 후의 일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즉, 세간에서 말하는 종활을 하려고 한 적이 없었다. 지금으로써는 죽을 것 같지 않고 해야 할 일도 많아서 미래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 지인이 자식들에게 ‘장남에게는 집과 땅’을 주고, ‘차남한테는 예·적금’을 주겠다는 상속 이야기를 하더니 갑자기 병이 나서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 종활이 그 사람의 죽음을 앞당긴 건 아닐까. 그래서 종활은 아직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쓰면서 세상 사람들은 99세라고 하면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자식이 없으므로 내가 죽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99년간 살면서 처음으로 그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마침 예전 환자 중에 사망 후 여러 가지 절차를 밟아주는 회사 직원이 있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아파트 등 재산 처분과 죽은 후에는 수목장으로 해달라고 부탁하며 비용도 냈다. 이제 한시름 놓았다. 나머지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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