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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도시 서울'을 찾아서
1. 근대화와 서울 세종로, 이 감시의 거리에서 그 많던 산동네는 어디로 갔을까 세운상가, 폭압적 근대화의 상징 청계고가도로의 그늘 아래 2. 두 얼굴의 서울 시민아파트의 운명 황학동 블루스 난곡이여, 안녕 저 번쩍이는 비만의 성채 속으로 3. 사라지는 600년 역사도시 인사동은 어디로 가는가 슬픈 정동 초라한 골목길, 그러나 사라지는 북촌 텅 비어 신성한 사직단 저 아름다운 녹음의 공간, 종묘 4. 문화도시 서울은 어디에 죽어버린 대학로에서 이태원, 관광특구를 가다 압구정동은 전깃줄에 휘감겨 명동, '밝은 동네'를 찾아서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 혹은 센트럴 시티 5. 생태도시의 꿈 '숲속의 도시'를 꿈꾸며 여의도에서 희망을 찾는다 난지도 옆 월드컵 경기장 중랑천 잉어의 눈물 희망의 땅, 용산 만보기를 마치며 |
洪性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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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행적인 개발만이 난무하는 ‘난장판 도시’ 서울 이야기!
청계천 복원과 서울 잔디 광장 조성, 여기에 대중교통체계의 일대혁명이라고까지 불리는 대중교통체계개편에 이르기까지 서울은 하루도 쉴 틈 없이 바삐 변화하고 있다. 바로 얼마전에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거룩한 도시이고 서울시민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며, “수도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고 약속까지 하지 않던가. 이쯤되면 서울은 한 개인의 소유물로 전락해버렸다는 착각까지 들 정도다. 저자는 ‘구조와 경관, 그리고 사람’이라는 면을 강조하면서 서울을 바라보았다. 여기서 저자가 무엇보다 강조한 것은 ‘구조’다. 도시는 우선 인위적으로 생산된 물리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구조는 도시의 물리적 틀인데, 이것은 하부구조와 상부구조로 크게 나뉜다. 가지가 울창한 나무는 뿌리도 그만큼 넓게 퍼져 있다. 마찬가지로 도시의 하부구조가 건실해야 상부구조도 멋들어지게 마련이다. 서울이 멋진 도시가 되기 어려운 것은 무엇보다 하부구조가 엉망이기 때문이며, 이런 마당에 난개발이 이루어져서 상부구조마저 엉망진창으로 망가지게 되었다. 서울 만보는 싸움이었다! ‘서울 만보’라는 부제를 썼으나, 이는 결코 여유있고 넉넉한 산책이 될 수 없었으며, 단순한 ‘만보기’보다는 훨씬 무겁고 답답한 내용을 담고 있다. 서울에서의 만보는 ‘싸움’과 다를 바 없었다. 서울의 거리에는 우리의 오감을 즐겁게 하기보다는 괴롭게 하는 것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눈을 괴롭히는 간판들로 가득하고, 귀를 때리는 소음이 넘치고 있다. 피곤해도 잠시 앉아 쉴 곳을 찾는 것 자체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만보를 통해 우리는 서울의 모습을 우리의 온몸으로 배우고 익히게 된다. 기존의 것들을 싹 밀어 없애고 번쩍이는 큰 건물을 짓는 것이 서울의 문제를 고치는 길이 아니라 오히려 서울을 아예 없애는 길이라는 것을 우리는 온몸으로 알게 된다. 서울이 워낙 크고 복잡한 곳이어서 어디를 어떻게 돌아볼 것인가를 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저자는 우선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도심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서울의 특색을 살필 수 있는 지역들을 배치했다. 그리고 자연과 사람의 관계를 세로축으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가로축으로 해서 도시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는 관점을 세우고 서울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좋은 도시’는 자연과 사람이 서로 잘 어울리고, 또한 사람과 사람이 서로 잘 보듬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품고 서울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몸으로 확인하고, ‘좋은 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길은 어디에 있는가를 찾기 위해 열심히 누볐다. 진정한 도시의 의미는 무엇인가? ‘도시’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활발히 상거래를 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도시는 단순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상거래를 하는 곳이 아니다. 도시는 우리를 자연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며, 다양한 문화적 가치와 성과를 몸으로 느끼고 즐길 수 있는 곳이며, 우리의 여러 가능성들을 활발히 키워줄 수 있는 곳이다. 이런 특징을 잘 이해하고 구현해야 비로소 ‘좋은 도시’가 나타날 수 있다. 도시는 사회의 공간적 구현체다. 그러므로 도시는 사회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현대의 도시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사람을 위하지 않는 도시’고, 다른 하나는 ‘사람을 위한 도시’다. 전자가 더 많은 이윤을 향한 이기적 경쟁의 논리에 사로잡힌 ‘난민의 도시’라면, 후자는 공익의 원리에 바탕을 두고 아름답고 편안한 구조와 형태를 갖춘 ‘시민의 도시’다. 우리의 서울은 어떤 상태인가? 2004년 초에는 대기오염으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매년 11,000명의 사람들이 조기 사망한다는 놀라운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2002년 봄에 외국의 컨설팅회사가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서울의 ‘삶의 질’ 지수는 세계 215개 도시 중 90위권이고, 환경지수는 더욱 떨어져서 겨우 150위권에 머물고 있다. 서울이 세계적으로 살기 좋지 않은 도시라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자연을 파괴하는 서울의 난개발은 계속되고 있다. ‘난민의 도시’라는 오명을 벗고 ‘시민의 도시’가 되고 싶은 서울! ‘난민의 도시’를 ‘시민의 도시’로 바꾸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전체 인구의 절대 다수가 도시에서 살게 된 만큼 ‘난민의 도시’를 ‘시민의 도시’로 바꾸는 일은 우리에게 너무도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다. 이것은 단순히 도시라는 물리적 공간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공간의 변화를 매개로 사회를 바꾸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크게 네 가지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첫째, 무엇보다 ‘난개발’을 막아야 한다. 더 많은 이윤을 노리고 아무 곳에나 제멋대로 큰 건물이 들어서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둘째, 자동차 중심의 거리를 보행자 중심의 거리로 바꾸어야 한다. 지하도와 육교가 있는 곳에서 길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자동차다. 사람을 보호하고 교통을 원활하게 한다는 명목으로 지하도와 육교가 만들어지지만, 그 명목의 실상은 철저히 자동차를 주인으로 모시는 것이다. 셋째, 제멋대로 들어서 있는 전봇대와 전깃줄을 모두 깔끔하게 정리해야 한다. 지금 이 나라의 모든 도시는 심각한 ‘전깃줄 공해’로 시달리고 있다. 넷째, 건물을 어지럽게 만드는 장본인인 간판들을 정리하고 어디서나 쏟아져나오는 소음들을 막아야 한다. 우리의 도시는 소음공해에 찌들어 있다. 이러한 네 가지 변화는 사실 상식적인 것이다. 우리의 도시가 안고 있는 문제는 이러한 상식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한마디로 서울을 비롯한 한국의 도시는 한국의 정치만큼이나 ‘몰상식’하다. 이제는 이런 상태를 더 이상 내버려둬서는 안 될 것이다. 시민의 힘으로 ‘좋은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자동차가 아니라 보행자의 관점에서, 전봇대가 아니라 가로수의 관점에서 도시와 거리를 보는 것은 그 출발점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도시와 관련된 여러 제도들을 바꾸고, 공간의 소유 및 이용방식을 바꾸고, 궁극적으로 우리의 공간관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또한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혹세무민을 일삼는 엉터리 전문가나 시민을 바보로 여기는 행정당국에게만 맡겨둬서는 안 된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전문가와 행정당국을 철저히 감시하고 비판할 수 있는 시민참여다. 물론 이 경우의 시민은 투기행위를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기며 공간정의를 추구하는 근대사회의 주권자로서 시민을 뜻한다. 지난 100년 간 줄기차게 망가진 서울을 보듬어 그 역사와 문화와 자연을 되살릴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시민의 참여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