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문_삶을 보고 만지고 문질러서1 균열 내는 사람그림을 못 그리는 웹툰작가사랑받고 싶어서사랑받지 못해도데뷔작이라 짧게 하고 싶어요윤정년이 나를 보고 웃었다내게 강 같은 영감여자에 살고 여자에 죽다2 유난한 사랑오타쿠 DNA 가설야비한 나의 용사여덕만레스트 인 피스, 원피스‘그알’을 응원하는 마음플레이리스트와 함께 춤을재미를 찾아서3 살아내는 삶없다기엔 아쉽고, 있다기엔 애매한앞길이 막막해서 신점 보러 간 썰이상적인 작업실아무것도 잘못되지 않았다문제가 많은 몸인가요성공한 작가?미안해 널 미워해
|
|
옆자리에 ‘정년이’가 앉아 있었다그림을 못 그리는 웹툰작가의 지난한 여정등장한 지 약 10여 년 만에 ‘서이레’는 여성들이 가장 믿고 보는 웹툰작가 이름 중 하나가 되었다. 글과 그림을 홀로 쓰고 그린 것으로 오해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는데, 그는 이 책에서 ‘그림을 못 그리는 웹툰작가’의 정체성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초등학생 때부터 만화와 소설을 탐독하며 이미 글쓰기에 욕심내는 청소년으로 성장했으나, 그림에서만큼은 재능을 싹틔우지 못했다고 회상한다. 다만 그 덕에 만화 동아리에서의 앤솔러지 출품 등 글작가와 그림작가의 ‘협업’이라는 재미를 어려서부터 체득할 수 있었다고 덧붙인다.또 저자는 인터넷소설 카페에 남이 쓴 글을 올렸다 혼쭐이 나기도 하고, 열심히 쓴 ‘해리 포터’ 팬픽에 대한 사람들의 무관심에 주눅 들기도 하고, 빼어난 이야기를 쓴 만화 동아리 후배에게 질투를 느끼기도 했던 지난 시절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자칫 부끄럽고 못난 구석으로 비출지라도 어려서부터 외길을 고집하며 글쓰기를 연마해온 일화들은 “없다기엔 아쉽고, 있다기엔 애매한” 재능을 지닌 뭇 범재들에게 깊은 공감대를 불러일으킨다.그뿐만 아니라 글쓰기로 먹고살겠다는 딸을 인정하지 않던 엄마와의 오랜 갈등, 대중적인 취향에 관한 고민, 여성국극 웹툰을 쓰기 위한 악착같은 자료 수집, 자연재해처럼 찾아온 우울증, 웹툰작가의 열악한 처우와 연재 환경까지 작가로서의 삶에 관해서도 꼼꼼하게 옮겨 적는다. 이를 통해 서이레라는 개인의 삶의 단면을 드러내 보이는 동시에 웹툰작가를 둘러싼 현실 문제들도 두루 펼쳐 보인다.훌륭한 작품을 보면 왜 그리 질투가 나는지! 하지만 뒤돌면 어느새 부족함도 질투도 연기처럼 사라지고 쓰고 싶은 욕망만 남는다. 천재를 미워할 시간도 아깝다. 그 시간에 글 써야지! 남 미워한다고 내 작품이 나아지진 않는다. 욕망을 갖게 했으면 재능도 줬어야 한다고? 나는 욕망만으로도 행복한…… 욕망의 노예다._본문에서“내 애정은 유난한 면이 있었다”온 마음을 쏟아온 살뜰한 사랑의 기록저자의 내면을 채워온 ‘사랑의 목록’도 흥미롭다. 그가 좋아하는 대상은 얼핏 한정적이면서도 폭넓고, 대상을 향해 쏟아붓는 관심과 애정은 집요하고도 유난하다. 일찍이 “될성부른 오타쿠 어린이”로서 3D 인간들 대신 2D 인물들에 열광하는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연재 중 쌓아놓은 분량까지 깎아 먹으면서 게임에 몰두하는 어른으로 자라났다. 부족한 자신을 견뎌주는 성격 나쁜 반려묘 덕만과의 첫 만남과 생활은 애틋하고, 약 7년간의 방영분을 두 달여 만에 섭렵한 [그것이 알고 싶다]에 보내는 감사와 존경은 경건하기까지 하다.“나라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 음악”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중이병’을 심화시킨 제이팝부터 애니메이션과 영화 OST, 힙합, 클래식, 밴드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은 마음의 치유제이자 삶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특히 책의 제목이기도 한 [미안해 널 미워해]를 부른 자우림에 대한 사랑은 각별하다. 자우림의 노래를 들으며 “처음 입는 교복, 낯선 학교와 날 선 아이들 그리고 덜 자란 마음을” 버틸 수 있었다는 대목은 뭉클함을 선사한다.그 사람이 노래하자 세상은 분홍 구름이 피어오르는 환상 속 마법의 성이 됐다. 아니 진짜로. 진짜 그랬다. 그 어두컴컴하고 장작 냄새와 구운 달걀 냄새가 피어오르던 찜질방이 향긋한 꿈의 나라가 됐다. 목소리가 예뻤다. 반짝이는 유리구슬 같은 목소리였다. 유리구슬이 은쟁반 위를 도르륵 구르듯 노래했다. 세상에는 이런 아름다운 노래도 있구나. 나는 엉덩이에서 뿌리가 난 사람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영원히 그 반짝임 속에 살고 싶었다.- 본문에서서이레 작가는 산문 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하지만 천연덕스러운 유머와 기개, 잘 벼린 문제의식과 자기반성은 읽는 이의 마음에 정확히 꽂혀 들어온다. 책을 읽은 독자들 또한 자신의 삶에서 사랑하는 것, 미워하는 것, 사랑하면서도 미워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고 어루만지는 귀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작가의 말첫 웹툰 대본을 쓰기 시작한 날로부터 9년이 흘렀다. 9년 전에 한 생각과 9년 동안 한 생각을 여기 담았다. 별 내용 없어 보이는 글도 있지만, 쓰면서 떠오른 질문은 피하지 않고 답하려 노력했다. 돌이켜보면 산문 쓰기란 질문에 끊임없이 답하는 것이었다. 나는 왜 이야 기를 쓰기 시작했을까, 왜 하고많은 이야기 중 웹툰을 쓸까, 왜 이렇게 외골수일까.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했다. 책꽂이의 나뭇결무늬나 어깨 뒤에 난 점처럼, 평소엔 거기 있는 줄도 몰랐던 나를 찾아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