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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어디서 레몬이 또 났대
어디서 레몬이 또 났대 010 루이 C.K.에 관한 소고 053 2부 웃음은 결코 깨끗할 수 없다 그리고 자꾸 웃음이 나왔다 064 인간 미만의 무엇 또는 인간 바깥의 무엇 082 강간 농담 성공하기 092 조커 만드는 레시피 106 3부 농담과 번복 글방 오리엔테이션 140 영혼이 빠개지는 소리 150 이불, 이태원 155 모래처럼 파도처럼 눈송이처럼 168 어느 노잼 인간의 한 방 181 농담과 번복 1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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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는 생의 크고 작은 비참함이라는 소재를 단연 사랑한다. 코미디적 시선은 이런 비극에 시간적인 거리와 심적인 거리를 부여하며 현상에 대한 온전한 몰입과 일치를 의도적으로 훼방 놓는 시선이다. 코미디가 무엇을 준다면 그것은 시간일 것이다. 생각할 시간. 생각하되 의미와 가치를 재촉하지 않는 시간, 아무것도 승화하지 않는 시간, 섣불리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버리지 않는 시간.
--- p.15 안전하고 불편하지 않은 코미디가 가능하므로 당신은 코미디를 사랑해도 좋다는 것, 그것은 거짓말이다. 그것은 코미디에 관한 거짓말이면서 사랑에 관한 거짓말이다. 좋아하는 것의 본질을 반 이상 잘라낸 뒤에야 좋다고 말하는 것은 비겁하고 모욕적인 태도다. 그렇게 얻어진 결백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잘 상상되지 않는다. 떳떳한 사랑을 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나는 모른다. 내가 아는 사랑은 본래 수치스럽기 때문이다. --- p.22 나는 살아감과 나이 들어감의 마디마디마다 이 추잡한 인간의 농담을 떠올리고 찾아보고 낄낄거리고 때로 적용한다. 돈이 너무 없을 때는? 루이 C.K.의 파산 농담을 찾아본다. 돈이 너무 없어서, 얼마나 없냐면 0원보다 더 없어서, 파산을 하려도 돈을 벌어야 되게 생겼다는 농담을. 어깨가 아플 때는? 마흔에 병원에 가면 벌어지는 일에 대한 루이 C.K.의 설명을 듣는다. (…) 의사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할 뿐이다. 예,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 p.58 바닥에 웅크린 한 여자의 어깨를 젊은 남자가 두드렸다. 엄마, 엄마, 일어나. 곧 면회야. 아빠 보러 가야지. 오전 10시가 가까웠다는 뜻이었다. 여자는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나 가방으로 손을 뻗더니 검은 봉지에 담긴 오이를 꺼내 한 입 물었다. 와작! 수분을 충전한 여자가 다시 꺼이꺼이 울면서 위생복과 마스크를 입었다. 오이…? --- p.67 이후로 나는 웃음을 탐구하는 사람은 사실은 힘의 문제를 탐구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내 느슨한 도식은 이랬다. 힘을 너무 많이 가진 사람은 폭력적이 된다. 힘을 너무 적게 가진 사람은 슬퍼진다. 두 경우가 모두 비극이다. 그 사이 어드메에 희극이, 웃음이 있다. 다음번엔 꼭 웃기고 싶었다. --- pp.98-99 당신도 외톨이거나 외톨이였는지 궁금하다. 그렇다면 혹시 숨을 참는 버릇이 있거나, 숨이 잘 안 쉬어진다고 느낄 때가 많은지도. 나는 외톨이를 생각하면 벽장, 화장실, 참호, 지하 벙커, 나무 덤불 등에 몸을 숨긴 채 손으로 입을 꼭 틀어막고 있는 누군가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외톨이들은 숨을 참는다. 정체가 발각되면 안 되니까. (…) 만약 외톨이가 숨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파- 뱉어버린다면 그의 이상함이 만천하에 탄로날 거다. 적군이 그를 찾아낼 거고, 괴물이 그를 들어 올릴 거고, 경찰과 나즈굴이 그의 목덜미를 잡을 거다. ---- pp.112-113 그러니까 나는 비웃음 당하는 일이 어떤 인간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심지어는 내가 정말 싫어하는 인간이 당하고 있을지라도. 비웃음 몇 번 당한다고 죽을 정도로 인간이 연약하지 않음을 나도 안다. 그중에서도 무대까지 올라가서 자기 생각을 말하겠다는 인간의 자의식이라면, 훈련을 위해서라도 그의 자의식은 다소간 곱게 두들겨질 필요가 있다. 글을 쓰겠다는 나를 친절하게 다듬어준 사람들 덕에 내가 더 큰 창피를 모면할 수 있었듯이. --- p.127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냐고? 나는 웃음이란 아주 지저분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웃음은 벌리는 일이고, 찢어지는 일이라고. 벌어진 틈으로 공기와 세균과 바이러스가 들어가는 일이라고. 웃음은 결코 깨끗할 수가 없다고. 웃기는 일과 웃음거리가 되는 일이 너무나 인접해 있어서 아찔하다. 그럼에도 웃기고 싶다. 그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 p.135 다음에 또 할까? 네, 부디 그렇게 하시기를 권합니다. 한 번 쓴 후에 다시 쓰세요. 반복할 뿐만 아니라 번복해도 됩니다. 그건 좀 아니었다고 해도 됩니다. 아는 것뿐만 아니라 잘못 알았던 것에 대해 써도 됩니다. 했던 말을 엎다니 좀 모양이 빠지지 않나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웬만하면 오래도록 무결할 방향으로 써야 한다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번복이 간지입니다. (…) 그러니 이렇게 말해두겠습니다. 모든 문장은 번복될 수 있다. 오늘 쓰고, 내일 틀렸다고 쓸 수 있다. --- p.1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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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을 한다는 건 이런 뜻이다.
슬픈 일이 있었고, 그럼에도 살아 있다는 것.” 바깥은 살을 베는 듯한 겨울바람이 매섭게 지나가는데, 온 식구가 추위를 이기기 위해 거실에 이불을 깔고 누웠다. 누구도 쉬이 잠들지 못하는 밤, 어린 안담은 학교에서 배워온 농담을 던진다. “개미네 집 주소가 뭐게? 정답은 허리도 가늘군 만지면 부러지리.” 피식 웃는 식구들에게 안담이 다시 던진다. “모기는? 소리도 무섭군 물리면 가려우리. 네 배는? 네 배도 빵빵하군 만지면 터지리.” 피시식 웃던 식구들이 마침내 쓰러진 볼링핀처럼 데굴데굴 구르며 배를 잡을 때까지 자꾸만 시도한다. 저자는 어린 시절 그 겨울밤을 선명하게 떠올리며 “그것이 나의 첫 공연이었다”고 말한다. 그러곤 이내 번복한다. 실은 아니라고, 그렇게 단박에 성공했을 리가 없다고. 농담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첫 번째 농담의 기억이 선명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그들은 평생 너무 많이 시도했으니까. 저자는 농담이 무엇인지를 엄마에게서 배웠다. 살아 있나 보지? 농담을 하는 걸 보니까? 슬픈 일이 있었어? 농담을 하는 걸 보니까? 저자는 깨우친다. 살아 있으면 슬픈 일은 생기게 마련이고, 우리는 슬픈 이야기를 굳이 웃기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계향에게 배운 코미디의 원리를 담은 문장을, 내 안에서 새 순서와 새 의미로 배치해본다. 우리는 대개 우습고, 그것은 슬픈 일이다. 그러고도 죽지는 않고, 죽지는 않는 한 우리는 그에 관해 농담할 수 있다. 또는 이렇게도 바꾸어본다. 우리는 대개 슬프고, 그것은 우스운 일이다. 그에 관해 농담하는 동안은 우리는 죽지 않는다. _본문에서(51면) “나에게는 나의 자조가 소중하다.” 연약하고 때로 수치스러운 기억조차 가장 막강한 농담의 연료로 태워버리는 텍스트 퍼포먼스 내가 던진 농담에 시원한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의 쾌감을 우리는 좀체 잊지 못한다. 농담을 하는 건 그런 기분을 다시 얻고 싶어서 아니면 그저 잠깐의 어색함을 넘기기 위해서일지 모른다. 하지만 농담이란 실은 얼마나 위태로운 말하기인가. 농담은 단순한 웃음의 기술이 아니라 힘과 욕망, 사랑과 실패가 동시에 드러나는 말의 형식이며 때로는 스스로를 통째로 판돈 삼는 도박이다. 안담은 쓴다. 가장 위험 감수가 높은 방식으로 가장 화려하게 자멸하길 선택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에 대해서. 자기 삶을 농담이란 이름의 시한폭탄으로 만들어야만 겨우 견딜 수가 있게 되는 사람들의 나쁜 습성에 대해서. 실로 안담에게 농담이란 삶이 주는 ‘레몬’에 대한 과잉 대응이자 초과 달성이다. 삶은 바로 그런 방식으로 삶을 능가하고, 삶에 개겨대는 ‘기세’를 통해서만 계속된다. _이연숙(리타) 추천사 중 안담은 “가장 위험 감수가 높은 방식으로 가장 화려하게 자멸하길 선택하는 사람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티그 노타로, 해나 개즈비, 루이 C.K.와 같은 스탠드업 코미디언들의 무대와 그들이 스스로를 던지면서 일으킨 웃음, 일으키지 않기로 한 웃음의 의미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그런 그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애잔함과 사랑스러움과 경외가 있다. 안담 작가는 스스로도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에 오르기도 하는 퍼포머로서 자신의 가장 연약한 부분, 때로는 수치일 수도 있는 기억을 대담하게 무대로 가져간다. 그것들이야말로 가장 막강한 농담의 연료임을 알기에. “모든 문장은 번복될 수 있다.” 내 오류를 껴안고 다시 던지는, 서늘하고 불온한 농담들 『농담과 번복』은 무결함의 강박을 깨부순다. 무결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세계를 확신에 차 반복하려 하지만, 안담에게 자신의 오류를 껴안고 기꺼이 말을 바꾸는 ‘번복’은 얼마든지 반복되어도 좋은 것, “오히려 간지”인 삶의 태도이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글방에서 “한 번 쓴 후에 다시 쓰세요. 반복할 뿐만 아니라 번복해도 됩니다”라고 조언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오늘 쓴 삶의 문장을 내일 고쳐 말할 수 있는 유연함. 모든 문장은 번복될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 내 오류를 껴안고 다시금 던지는 불온한 농담들. 이것들이야말로 살아 있는 모든 자들의 숨통을 틔운다. 말하고, 후회하고, 고쳐 말하고, 또다시 어긋나는 그 반복 속에서야말로 삶은 계속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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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담은 쓴다. 죽다 살아나서 하는 농담에 대해서. 아니 농담하기 위해서만 그런 경험이 필요했다 농담하는 허세 심한 사람들에 대해서. 굳이 ‘딸피’ 상태에서 가장 위험 감수가 높은 방식으로 가장 화려하게 자멸하길 선택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에 대해서. 심지어는—편지 중독자 ‘시라노’가 그랬듯이—죽어가는 와중에도 내가 죽어가는 모습이 어떠냐고 끝내 농담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자기 삶을 농담이란 이름의 시한폭탄으로 만들어야만 겨우 견딜 수가 있게 되는 사람들의 나쁜 습성에 대해서. 즉 자기학대와 자기남용의 주권에 대해서. 실로 안담에게 농담이란 삶이 주는 ‘레몬’에 대한 과잉 대응이자 초과 달성이다. 누구도 강요한 적도 부탁한 적도 없는 무한 ‘레모네이드’ 제공 사건. 삶은 바로 그런 방식으로 삶을 능가하고, 삶에 개겨대는 ‘기세’를 통해서만 계속된다. 그리고 어쩌면 이는 우리 인생에서 유일하게 가치 있는 고집이다. 우리에게 다행히도 안담은 자기 자신이란 예시를 통해 농담 근육의 묘기를 선보인다. 너무 웃다 울게 되고 너무 울다 웃게 되는 폭소와 오열의 임계에서 안담은 능수능란하게 우리 독자이자 ‘관객’의 호흡과 속도를 조절한다. 말맛과 리듬이 주는 기쁨과 풍요는 안담의 글을 퍼포먼스처럼 경험하게 한다. 독자가 아직 깨닫지도 못한 그의 웃을 또는 웃길 힘을 시험하고 촉진하며 안담은 쓴다, 그리고 말한다. 결국 모든 것이 전부 사랑하고 사는 삶을 위한 것이라고. 이런 단순한 진실을 솔직하게 쓰는 일도 어렵지만 재미있게 쓰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장담컨대 안담은 우리 시대 최고의 산문가다. - 이연숙 ((리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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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은 무섭다. 농담을 하는 것도 농담거리가 되는 것도 무섭다. 소름 끼치는 농담의 과녁이 되거나 틀려먹은 농담의 책임을 지는 상상은 우리가 뜬눈으로 꾸는 최악의 악몽이다. 수치심은 사회적 자아에게 죽음과 다름없는 추방의 공포고 수치심을 판돈으로 걸고 연료로 태우는 농담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한 가장 막강하고 위험한 발화다. 농담은 웃을 수 있는 자와 없는 자를 가르고 의미와 무의미를 가르고 유대를 다지거나 낙인을 찍어 추방한다. 웃음과 비웃음의 경계는 가냘프고 말은 칼이 된다. 하지만 칼끝이 어디를 향할지 휘둘러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정확히 과녁을 찌를지, 빗나가 엉뚱한 피해자를 만들지, 되레 자기 배를 쑤실지, 정말로 끝까지 알 수 없다. 바위에 박힌 엑스칼리버 같은 이 위험천만한 칼을 감히 잡아 뽑고, 버겁고 아프고 다쳐도 제대로 휘둘러보겠다 자꾸만 자꾸만 작정하는 이는 얼마나 용감한가.
『농담과 번복』은 농담이라는 칼을 잡고 농담 같은 삶과 맞서는 어마어마한 용기다. 농담의 힘을 똑바로 바라보고 책임을 되새기는 일, 누구보다도 먼저 자기 자신을 농담거리로 삼아 농담하고 번복하고 농담하고 번복하며 정밀하게 기예를 연마하는 엄혹한 수련이다. 번복을 무릅쓰며 뉘앙스를 정교하게 조정하는 치열한 글쓰기, ‘나로부터 미끄러지지’ 않고서 삶에 도사린 어둠에 맞서려는 끝없는 애씀이다. (나는 이상한 사람인데 다른 사람도 그걸 다 아는 것 같아, 만천하에 치부를 드러내게 되면 어쩌지, 거짓말 같은 무서운 일들이 닥쳐오면 어쩌지.) 안담의 농담은 무서운 어둠의 핵심으로 거침없이 저벅저벅 명랑하게 걸어 들어간다. 농담을 한다는 건 번복을 불사하는 일, 농담거리가 되는 데 익숙해지는 일, 스스로 우스워지는 일, 우스워지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일, 연민과 혐오를 오가다가 가운데 회색빛의 드넓은 공간을 다 차지하는 일이다. 이 책은 우리를 웃기고 울리고 불편한 스탠드업 코미디의 관객처럼 자리에서 들썩이게 만들다 기어이 그 선뜩한 찬 손으로 심장을 덥석 움켜쥔다. 두려움 속에서 두려움 너머에서 우리에게 말해준다. 상처와 상실과 폭력도 어이없이 오지만 사랑과 위로와 연결도 “모래처럼 파도처럼 눈송이처럼” 바스라지고 부서지다 쏴아아 밀려든다고. - 김선형 (번역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