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이순신의 두 얼굴 출간 기념 이벤트
|
|
머리말 오늘을 위한 이순신, 평범에서 비범으로
제1장 7년전쟁은 막을 수 있었다 제2장 영웅도 없고 간신도 없다 제3장 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 제4장 그러나 민초들이 있었다 제5장 조선 최초의 해군참모총장 이순신 제6장 이순신 대 원균, 역사의 이분법 제7장 조선을 두 번 살리는 이순신 제8장 이순신, 그 앞 이야기로 제9장 이순신, 그 뒷 이야기로 |
|
『난중일기』가 다른 이에 의해 가필되거나 삭제되었을 가능성은 실로 다분하다. 1592년 1월 1일부터 4월 22일까지의 기록은 ‘친필초고본’에는 없다. 그런데 그의 사후 200여 년 뒤에 발간한 『이충무공전서』의 ‘전서본’에는 그 기간의 기록이 버젓이 실려 있다. 내용 면에서도 친필초고본과 전서본은 차이가 있다. 결국 후세인이 『이충무공전서』를 편찬하면서 이순신의 친필초고본을 빼거나 바꾸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물론 후세인이 이순신의 일기를 생생하게 전달하려는 순수한 동기에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이순신의 무게를 의식하여 그에게 불리한 부분은 살짝 비틀거나 삭제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이순신은 후세에 의해 치장되는 자신의 모습을 원했을 리가 없다. 어쩌면 그것은 이순신을 왜곡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순신을 굳이 우리와 다른 성스러운 존재로 만들지 않더라도 그의 행적을 살펴보면 분명 영웅이었다. 그러한 점을 인정할 수 있다면 우리의 곁으로 이순신은 성큼 다가올 것으로 믿는다. 이순신의 관리능력은 둔전 설치에 그 진면목이 드러난다. 둔전은 전쟁으로 떠도는 민초에게 토지를 제공하여 그 수확의 절반은 경작자인 민초가 나머지는 군대가 거두자는 방안이었다. 이순신의 둔전 설치는 민초와 군대 모두를 살리는 상생의 방안이었다. 당시 실정에서 민간인에게 세금을 물리고 그 세금으로만 군대를 유지하기에는 너무 어려웠다. 이순신은 그 돌파구를 민관합동의 토지경작인 둔전 경영에서 찾았다. 세금을 통한 군대유지가 한계점에 도달하자 그것을 일시에 해결하면서 민생고도 해결하자는 일거양득의 전략이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는 그에게 곤장 맞은 자가 부지기수였고 목을 베인 자도 무수히 많이 기록되어 있다. 이순신은 부하가 잘못을 저지르면 가차없이 처단하였다. 엄격한 군율적용은 군대를 이끌어 가는 기본강령이었다. 그의 1594년 4월 2일 보고서이다. 한산 등 고을의 수령들은 기한이 지나도록 전선을 보내지 아니하고 입대할 수군을 전혀 징발해 보내지 아니한 죄가 있으며 파지도와 병영 등 수군 관하의 관리들은 몇 번이나 독촉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오지 않은 것이 군율을 크게 범한 것입니다. 모두 조정에서 이러한 죄를 다스려서 다른 사람들을 징계하여야 하겠으며 위 전선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달려오도록 그 도의 순찰사 윤승훈에게 각별히 신칙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선조는 3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을 옥에 가두고 심문을 하려면 그에 따른 응당의 죄상을 밝혀야 했다. 선조가 이순신에게 적용한 죄목은 어떤 것일까. 3월 13일 『선조실록』이다. 이순신이 조정을 기망하여 임금을 무시한 죄요, 적을 놓아주어 잡지 않았으니 나라를 저버린 죄요, 심지어 남의 공로를 가로채 남을 모함하기까지 하며, 방자하고 거리낌이 없는 죄이다. 이러한 허다한 죄상이 있고서는 법에 있어서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니 율을 상고하여 사형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 신하로서 임금을 속인 자는 반드시 사형에 처하고 용서할 수 없으므로 이제 형벌을 끝까지 시행하여 실정을 캐어내려 하는데 어떻게 처리해야 함이 좋을지 대신들에게 물어보라. 이순신이 전투에서 승리하는 최종요인은 바로 이것이었다. 수군통제사 이순신이 선봉으로 나서 부하들의 공격을 유도하였다. 물론 아군의 전력이 강력할 경우 수군통제사가 이렇게 최선봉으로 나서면 문제될 수 있다. 그의 부상이나 죽음은 한 명의 전력 손실이 아니라 조선수군 전체의 전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때는 단 13척의 함선으로 부하들이 공포에 짓눌려 있었다. 그들에게 힘을 주고 공격에 나서도록 독려하려면 이순신 자신이 목숨을 담보로 내놓아야 했다. 그 결과물은 이순신의 승리로 나타났다. 이순신의 진면목은 위기 속에서 드러났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