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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뜰까지 바다가 찾아와서
4월의 어느 화창한 아침, 프랑스 파리 근교에 있는 창이 좁다란 아파트에 살던 마리네 가족은 이제 막 이사를 가려는 참이다. 마리는 동네 골목을 마지막으로 뛰어 본다. 뭉클한 마음을 안고서 친구들과 작별 인사도 나눈다. 아쉬움이 밀려드는데, 사실 그만큼 설렘도 크다. 새로 살기로 한 브르타뉴 고장에 가면 뜰이 있는 커다란 집에서 살 거고, 곧 있으면 동생이 태어날 거고, 바다에도 자주 놀러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마주한 새로운 환경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나 달랐다. 특히 태어나 처음 보게 된 바다는 무지막지하게 거대하고 무섭기만 했다. 바다에 압도당한 마리는 뒷걸음질 치다 눈물까지 흘리고, 기대감과 설렘은 고스란히 실망으로 뒤바뀐다. 그런데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온 그날 이후부터 마리에게는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진다. 바다가 저 멀리서 자갈길을 따라 힘겹게 올라오더니, 슬금슬금 땅을 잡아먹으며 매일매일 조금씩 다가오더니, 단 며칠 만에 불쑥 마리네 집 뜰 안까지 들이닥친 것이다. 1층 부엌 식탁에 앉아 있으면 현관 계단을 찰싹이는 파도 소리가 들려올 정도였다. 또래 친구들이 에어 풀장에서 또는 정원용 호스로 물을 뿌리며 놀 동안, 바다를 독차지하게 된 마리의 기묘하고 아름다운 날들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볼로냐 라가치상에 빛나는 작가 카샤 데니세비치만의 환상적인 물빛 풍경들, 새롭고 낯선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를 문학적으로 도와줄 이야기 《나의 뜰까지 바다가 찾아와서》는 우리가 새롭고 낯선 세상으로 나아갈 때 누구나 겪게 되는 무섭고 불안한 심정을 단순한 이야기를 통해 극화한 작품이다. 기대와 실망, 불안과 공포, 그리고 너무나 실제 같은 기나긴 환상(꿈) 속 강렬한 경험 끝에 극복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그린 내면의 드라마이자 정신분석적 치유의 글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표면적으로는 바다(물)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씩 극복하는 과정을 그리지만, 익숙한 곳을 떠나는 것, 정든 친구들과의 이별, 곧 태어날 동생, 냄새까지 낯선 환경으로의 이동 등 일상을 뒤집을 만한 큰 변화를 한꺼번에 맞게 된 주인공의 상황이 저 거대한 ‘바다’로 모두 비유되는 것. 바다는 너무 크고,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우리는 여전히 전부를 알지는 못한다. 정교함과 섬세함으로 연마된 문장들이 마리의 세계를 생생히 묘사하는 동안, 그림은 서사의 전개에 따른 색깔 배치와 점진적인 비중 확장 등의 연출을 통해 마리의 심리 상태를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작품 초반 창문 너머로 하나의 가느다란 선처럼 보였던 그림 속 바다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점차 영역을 넓혀 가고, 어느새 왼쪽의 텍스트 자리까지도 조금씩 넘보다가, 결국에는 양면을 모두 집어삼킨 듯 글 없이 그림으로만 이뤄진 깊은 심해를 이룬다. 물빛 말간 이 아름다운 그림들은 볼로냐 라가치상에 빛나는 카샤 데니세비치의 솜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