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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보통 사람, 보통의 삶
두 집만 건너도 사는 사람 그대로 괜찮은 존재 나의 몸, 나만 아는 세계 당신도 증명 가능한가요? 나의 장애 증명기 외부에서 시작되는 것들 잘못 그어진 선 모두를 위한 확장 어느 책상 지킴이의 고민 소통의 방식 돌봄의 생태계 상세히 기록될 수 없는 불편 어떤 공연을 좋아하나요? 인간답게, 나답게 다른 기준이 필요해 빚진 마음 안녕을 고할 수 있을까 해방을 꿈꾸다 한 뼘의 용기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 내 삶을 바꾼 운동 선택이 선택의 꼬리를 잇다 벗, 나를 나아가게 하는 사람 에필로그 ‘장애’도 열쇠가 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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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더 자주, 많이 장애인을 마주칠 수 있어야 한다. 자주 마주쳐야 낯선 시선으로 보지 않을 수 있다. 자주 마주치는 이웃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나 역시 평범한 동네 사람이길 바란다. 그저 몸이 좀 불편한 사람, 딱 그 정도. ‘그 정도’일 수 있다면 나는 감사하다.
---p.16 「두 집만 건너도 사는 사람」중에서 장애가 불편에 가까운 말일 수는 없을까? 누구든 팔이나 다리를 다쳐 깁스를 하면 일상생활이 불편하다. 꼭 다쳐야만 그런 것도 아니다. 나이가 들고 노인이 되면 걸음은 현저히 느려지고 기억력도 흐려진다. 그러나 이런 약간의 불편은 살아가며 생길 수 있는 일로 여길 뿐, 장애로 생각하지 않는다. 장애도 그렇게 생각하며 함께 살아갈 방법을 모색할 수 없을까? ---p.21 「그대로 괜찮은 존재」중에서 몸은 한 사람의 전제 조건이다. 인격이 형성되기 이전부터 이미 주어진 형식이다. 장애를 지닌 몸이라는 틀 안에서 나는 나로 사는 법을 익혔고, 한 사람으로 성장했다. 장애가 있는 몸이 내 몸이라서 나는 살기 위한 생활 요령을 익히고, 이따금 외부의 힘을 빌렸으며, 가능성을 발견해 지금의 내가 되었다. 하여 어느 날 갑자기 장애가 사라지는 꿈 따위는 꾸지 않는다. 그런 꿈은 내 몸으로 살아온 시간을 부정하는 일이다. 그 시간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내가 나로 살기 위해 가꿔 온 시간도 소중하다. ---p.29 「나의 몸, 나만 아는 세계」중에서 서류 몇 장이 내 장애를 다 말해 주지 못함에도 그러한 증명 없이는 사각지대에 놓이고 만다. 내가 비장애인이었어도 스스로에 대한 명료한 증명이 필요했을까? 비장애인으로 살아 본 적이 없으니 나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다시금 묻고 싶다. 당신도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서류와의 전쟁을 치른 적이 있는지. ---p.37 「당신도 증명 가능한가요?」중에서 통합교육이 제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장애 학생의 학습 환경이 개선되리라 생각했지, 거주지 주변에 다닐 학교가 없어 왕복 세 시간씩 버스를 타고 다른 지역으로 통학을 하는 장애 학생이 생길 줄은 생각도 못했다. ---p.54 「잘못 그어진 선」중에서 높이는 또 어떠한가. 키오스크의 높이는 평균에 맞추어져 있어 휠체어를 타는 사람이나, 어린아이, 키가 작은 사람 등은 사용이 쉽지 않다. 편의를 위해 도입된 기기 앞에서 누군가는 소외를 경험하고 어떤 이는 또 다른 불편을 경험한다. 세상이 편리와 효율을 추구하는 동안 장애인, 노약자 같은 취약한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 소외된다. 이제껏 모든 것이 대체로 그랬다.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의 처지가 아닌 지금보다 더 나은 편의만을 간구했다. ---p.61 「모두를 위한 확장」중에서 기업의 장애인 전형은 주로 일하는 데 지장이 거의 없는 경증장애인만 선호한다. 경증도 유형에 따라 다르지만, 생활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는 장애인이라면 일반 채용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지만 기업 측 생각은 다른 듯하다. 보조장치가 필요하거나 빠르게 업무를 처리하기 힘든 중증 장애인은 아예 지원 가능한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 더욱 절망적인 것은 이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다. ---p.67 「어느 책상 지킴이의 고민」중에서 돌봄이 필요한 사람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우리는 돌봄이 필요한 사람과 돌보는 사람을 명확하게 분리할 수 있을까? 사실 인간은 누구나 돌봄을 필요로 한다. 갓 태어난 어린아이나 노약자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각 시기에 맞는 적절한 돌봄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성장기가 끝남과 동시에 돌봄도 개인의 책임으로 전환된다. ---p.85 「돌봄의 생태계」중에서 장애는 설명되지 않거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이 더 많다. 구체적으로 형용할 수 없는 괴로움이나 거북함에 대해 증명을 요구하면 대부분 추상적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장애는 상세히 기록될 수 없는 불편이다. 증명도, 명료한 판단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현실은 명료하고 확정적이길 원한다. 정상성에 대한 환상이다. 현실에 우영우 변호사가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p.91 「상세히 기록될 수 없는 불편」중에서 온 인생과 목숨을 걸고 하는 이동권 투쟁이 비장애인에게는 번거로운 민폐로 다가온다는 사실에서 이 사회가 교통약자의 이동권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한지 다시금 절감한다. 내가 대중교통을 능숙히 타려 노력하는 동안 그들은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외쳤다. 이들의 투쟁 덕분에 내 이동권에도 안전바가 하나둘씩 생기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투쟁의 역사가 없었다면, 교통법이 개정되었을까? 내가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을 때까지 기사님이 기다려 주었을까? ---p.121 「빚진 마음」중에서 애초에 장애를 ‘극복’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있다. 장애인으로 살고 있으면서도 사회가 요구하는 ‘완전함’에 얽매여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보다는 벗어나야 할 무엇으로 여긴다는 데 문제가 있다. 나 역시 그랬다. 다수가 누리는 평범함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당연하다 여겼고, 그 속에 들어가려 안달복달했다. ---p.131 「해방을 꿈꾸다」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