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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독자들에게
1. 21세기의 역사인식 2. '옥음 방송'을 다시 읽는다 3. 맥아더와 히로히토 4. '인간선언'이라는 속임수 5. 전후체제란 무엇인가 6. 미일 안보조약과 상징천황제 7. 우리들의 전후 후기를 대신하여 주석 |
Yoichi Komori,こもり よういち,小森 陽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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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말하면 육해군의 통수권을 가진 대원수였던 메이지?다이쇼?쇼와, 이 3대에 걸친 근대 천황의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일체의 관여를 역사 서술로부터 말소함으로써 그 책임을 면죄하고 있다. 이것은 패전 후의 연합군 최고사령관 총사령부(GHQ)와 천황 측근이 만든 논리, 바로 그것이다.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역사교과서가 행하려는 천황제의 재정의는, 대일본제국 헌법 때부터 일본은 ‘상징천황제’적 시스템이었으며 천황은 직접적인 ‘권력’은 지니지 않고 항상 ‘문화적 권위’로서만 기능한 것으로 그려내는 것이 목적이다. --- p.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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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히로히토가 즉위하여 대원수로서의 역할이 시작되고 나서 일관되게 두려워했던 것은 ‘국체’ 자체의 전복을 꾀하는 ‘공산혁명’이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격한 감정에 따라 함부로 사단을 일으키거나 혹은 동포들이 서로 배척하여 시국을 어지럽게 함으로써 대도(大道)를 그르치”는 것이 마지막으로 강력하게 금지된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때까지 천황제 역사에서 한 번도 행해지지 않았던, 천황 자신이 라디오 방송을 통해 직접 신민에게 호소하는 형식의 조서 발표가 선택된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종전 조서’는 패전부터 현재까지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는 전파 미디어 천황제의 시작이기도 했다. --- p.86~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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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반성해야 하는 것은 고마운 ‘성단’이 내려졌을 때, 천자(天子)인 천황의 마음을 괴롭게 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다. 거기에는 ‘전쟁’ 자체에 대한 ‘반성’도, 침략전쟁을 수행함으로써 막대한 피해를 끼친 아시아 여러 지역의 사람들에 대한 가해책임이나 ‘반성’도 존재할 수 없다.
여기서는 15년전쟁은 물론이고 ‘4년’간에 걸친 ‘대동아전쟁’의 개시와 그 수행 주체인 통수권을 지닌 대원수의 역할 자체가 소거되었다. 마치 ‘전쟁’ 자체에 관여하지 않았던 것 같은 위치에 놓임으로써, 히로히토는 고맙게도 ‘성단’에 의해 ‘국민’에게 평화만을 가져다준 주체로 그려진 것이다. --- p.109~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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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서 맥아더의 대소련 전략에 전면적으로 협력하는 것과 자기 보신을 결부시켜 ‘오키나와’를 “소련에 의한 직?간접의 일본 본토 침략에 대한 ‘방파제’로 자리매김”했던 것이고, 지난날 “본토 방위의 ‘사석’”으로 삼았던 ‘오키나와전’의 땅을 다시 ‘국체 수호’라는 자신의 안전보장의 제물로 맥아더에게 바친 것이다. “천황이나 그 측근 그룹에게 오키나와는 일관되게 본토 방위 또는 ‘국체 수호’를 위한 ‘수단’이자 ‘사석’으로 간주되어왔”으며, 사실 이러한 ‘오키나와’의 자리매김 방식은 오늘날에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 p.2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