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 하버드 문을 들어서며
2. 냉면집에서 시작된 역시/원형탈모증과 폭식증에 걸린 과학고등학생 3. 만남, 그리고 터닝포인트/하버드에 가기엔 제가 너무 예쁜가요? 4. 5개월의 올인 5. 합격의 순간은 폭발의 순간 6. 헤이, 나나 스타일!/공주가 아니라 하녀였어요 7. 염소똥을 주워먹던 아이/여자는 전교회장 하면 안 되나요? 8. 타고난 천재가 아니라면 만들어진 천재가 되리라 9. 내가 의사였다면 10. 우주 끄타지라도 보내줄게/엄마 아빠, 모자라게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11. 나의 하버드 친구 데이빗 12. 다이어트를 왜 숨겨요? 13. 2003 파나마 쇼크/안티 미스코리아와 미스코리아는 친구가 될 수 있다 14. 너희가 내 체력을 아느냐?/잊지 못할 선생님들 15. 미국 대학 가기 난리부르스/공부보다 힘이 센 것 16. 명상은 도인만 하나요?/선생님의 피가 끓는 소녀 17. 수준별 학습에 반대하나요?/대입시험제도, 바꾸면 안 될까요?/외국 대학 가는 게 두뇌 유출인가요? 18. 나의 백만 불짜리 노트 필기법/책상 위의 컴퓨터를 치워라 19. 수학에도 스토리가 있다 20. 나의 첫사랑은 누구인가/할머니는 나의 베스트 프렌드 21. 옛날 옛적 내가 태어나기 전에 22. 자유 위에 자유 있다/무소의 뿔처럼 23. 아빠는 사고뭉치 24. 수다 패밀리 25 누나, 나랑 놀아줘!/사랑하는 동생 종학이에게 26. 부석사에 가는 마음/이제 꿈에 대해 말하지 않을래요 특별기고. 너나 나나 할 수 있다! |
금나나의 다른 상품
|
찬바람이 억세게 불던 1월의 어느 날, 나는 마지막 작문시험을 치뤘다. 영어시험만 1시간 치른 뒤, 남은 과목을 계속 치기 위해 앉아 있는 학생들을 남겨두고 나 혼자 일어서서 나왔다. 벙어리 장갑을 기고 오래내만에 천천히 걸었다. 잘 봤건 잘못 봤건 이제 모든 시험이 끝났다. 결과에 따라 미국으로 가든 아니면 다니던 학교로 돌아가든 할 것이다. 울고 싶었지만 너무 추워서 관뒀다.
2주 후 성적표가 나왔다. 130점 상승! 믿을 수 없었다. 예상 외로 크게 오른 점수였다. 순간 이 정도면 한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인인 내가 네이티브들처럼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 단지 점수가 크게 향상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내가 이 만큼 열심히 따라잡고 있고 그래서 앞으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나를 받아들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p.57 |
|
세계 최고의 지성에 도전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미녀, 금나나
금나나는 경북대 의예과 1학년 재학 중인 2002년에 미스코리아 진에 당선되었다. 당시 언론은 금나나를 미모와 지성을 함께 갖춘 미스코리아로 평가하며, 기존의 미스코리아 이미지를 새롭게 바꾼 인물로 조명했다. 흔히 세간에서는 미스코리아 경력을 방송이나 연예계 진출의 티켓쯤으로 생각하는데, 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의대에 재학 중인, 장래 꿈이 외과의사인 미스코리아의 탄생은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녀의 미스코리아 당선은, 미인대회가 성의 상품화라는 비난과 함께 여성계를 중심으로 안티 미스코리아 운동이 전개되던 와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스코리아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당당하게 밝히고 나아가 자기 일에 충실한 젊은이로써 자신의 의견과 미래의 꿈을 솔직하고도 구김살 없이 얘기하는 그녀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호감과 지지를 끌어냈다. 그로부터 2년 후, 그녀는 또 하나의 놀라운 소식을 가지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바로 세계 최고의 수재들만 다닌다는 미국의 명문대학인 MIT와 하버드에 합격한 것이다. 작년 여름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참가하고 돌아와 5개월간 준비한 뒤 이루어낸 성과였다. 대한민국 최고의 미녀로 공인된 그녀가 이제 세계 최고의 수재들만 모이는 대학에서 지성의 한판 승부를 벌이게 된다니. 흥미롭지 않은가. 무엇보다, 한국에서 의사로서 안정된 직업을 가지고 편하게 살 수도 있었는데, 그녀는 왜 또 그 어려운 길을 도전한 것일까? 금나나가 미국으로의 유학을 결심하고 추진하게 된 계기는 미스 유니버스 참가였다고 한다. 미스 유니버스 대회를 위한 영어인터뷰 준비를 하면서 처음으로 더 큰 세계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직접 대회에 참가한 후 그 생각은 더욱 구체화 되었다. 국제무대에 서보니 한국의 위상이 아직도 너무 낮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국제무대에서 한국을 대표했던 사람으로서 한국의 이름을 세계에 알릴 책임감도 더 느꼈다고 한다. 어떤 사람에겐 미인대회가 부정적으로만 보이지만, 그녀에겐 자신의 존재감을 확장하고 나아가 더 큰 꿈을 향해 도전하게 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아이러니다. 고정관념에 매이지 않고 모든 것을 뒤집어 생각할 줄 하는 젊은이였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이제 스물한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미 화려한 삶의 경력과 이력을 갖게 된 그녀. 그녀의 내면에 숨어있는 힘과 열정의 본질은 무엇인가. 무엇이 오늘의 그녀를 만들었는가. 알려지지 않았던 뒷이야기는 무엇일까? 원형탈모증과 폭식증에 걸린 과학고등학생, 국내 최초의 의학도 미스코리아 진, 하버드 신입생으로 이어지는 남다른 이력 뒤에 숨은 땀과 눈물 경북 영주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금나나는 포항의 경북과학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과학고 시절 초기, 금나나의 학교성적은 바닥을 맴돌았다. 각 도시의 중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다 모인 학교이다 보니, 경쟁이 만만찮았던 것이다. 힘들게 공부하느라 스트레스로 인한 원형탈모증과 폭식증에 걸렸다. 한 학기 만에야 학교생활에 적응이 되고 성적도 상위권으로 회복되어 원형탈모증세는 사라졌지만, 폭식증은 여전했다. 172센티미터의 키에 허리는 30인치, 몸무게는 62킬로그램을 육박하였다. 고등학교 3학년 늦가을에 수시모집으로 경북대 의예과에 합격한 후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중 체육교사인 아버지의 권유로 100일 다이어트에 들어갔다. 날씬하고 예뻐져서 대학생활도 재미있게 하고 남자친구도 사귀어보자는 마음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대학교 신입생이 된 후 한 달여가 지난 2002년 3월에 100일 다이어트가 끝났고 10킬로그램을 성공적으로 감량했다. 아버지의 권유로 내친김에 미스코리아에 도전, 진의 타이틀까지 거머쥐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이듬해 봄, 2003 미스 유니버스 대회 출전을 앞두고 영어인터뷰 준비를 하기 위해 대구에서 유학원을 운영하는 손희걸 원장을 소개받아 집중적으로 영어공부를 하게 되었다. 이 만남은 금나나의 인생을 바꾸어놓는 계기가 되었다. 단어 50개를 외워오라 해서 숙제를 해가면 다음날은 60개, 그 다음날은 70개를 내주는 하드트레이닝이 시작되었다. 미스 유니버스 대회 인터뷰 예상질문 100여 개를 뽑아놓고 질문과 답을 주고받다 보니 영어 난상토론이 매일 이어졌다. 이 땅의 젊은이들이 앞으로 활동해야 할 무대는 좁은 한국만이 아니라 밖으로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 한국의 젊은이들이 자꾸 밖으로 나가 외국의 뛰어난 두뇌들과 경쟁하고 이겨야 국제무대에서 한국이라는 나라의 위상도 높아진다는 것을 손 원장과의 대화 속에서 자꾸 듣게 되고, 또한 자신보다 어린 학생들이 외국 대학으로 가기 위해 그곳을 들락거리는 것을 보며 금나나는 자기 안의 무엇인가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제껏 내가 우물안 개구리처럼 너무 좁은 세계에서만 살았구나. 나 역시 외과의사가 꿈인데, 이왕이면 더 큰 세상에서 세계 최고의 외과의사에 도전해보는 건 어떨까?’ 좌절과 실망을 딛고 새로운 도전으로 삶의 대반전을 이루어낸 오기 금나나에게는 대학입시에 관한 아픈 경험이 있었다. 당시 문교부 장관이었던 이해찬 씨는 “뭐든 하나만 잘하면 대학에 들어갈 수 있게 하겠다”며 수능의 비중을 크게 낮추고, 대신 내신과 논술의 비율을 높였다. 이 때문에 과학고ㆍ외고 등 특목고 학생들이 무더기로 자퇴를 하고 검정고시를 쳐 대학에 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금나나 역시 과학고 시절 초기 밑바닥을 맴돌았던 학교성적 때문에 내신에서 불리했다. 하지만 경시대회란 경시대회는 모두 참가하는 열의를 보였고 고등학교 2학년 때는 한국 대표로 APEC 과학축전에 참가한 경력도 있었기에, 이런 것들이 반영되어 가산점을 받으면 내신의 불리함은 극복되리라 생각하고 자퇴 대신 그대로 과학고에 남았다. 무엇보다, 어려서부터 과학고를 꿈꾸었고 힘들게 공부를 따라가며 정착한 학교인 만큼 그 학교의 졸업장을 받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 불리한 내신은 굴레가 되었고, 서울 의대를 꿈꾸었던 그녀는 그 학교를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연대ㆍ이대ㆍ고대ㆍ울산대ㆍ아주대ㆍ경북대 의대에 수시원서를 집어넣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내신이 문제가 되어 줄줄이 떨어졌고, 특목고 특별전형이 따로 있었던 경북대에서만 합격통지서를 받았던 것이다. 속이 상했지만 국립대에 들어가 부모님께 등록금 걱정 덜어드린 것으로 위안삼자 하고 대학생활에 충실할 것을 스스로 다짐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그녀는 잠들어있던 자신의 열망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파나마에서 열린 2003 미스 유니버스 대회 참가는 그녀의 외국 대학 도전 결심에 결정적으로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었다. 국제무대에서 그녀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위상을 보게 되었다. 미스 유니버스 대회는 세계 여성들이 미를 겨루는 대회이기 이전에 각 나라의 국력과 자존심을 겨루는 대회였고, 한국은 아시아에서 중국 다음, 일본 다음 가는 나라였다. 스폰서 회사와 총 디렉터, 메이크업 아티스트, 디자이너, 원어민 영어교사 등을 동반하고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일본 대표와, 이제 막 미인대회의 중요성에 눈을 뜨기 시작해 정부로부터 엄청난 지원을 받고 있는 중국의 대표와 비교해볼 때, 별다른 지원 없이 달랑 혼자 와서 옷가방을 직접 메고 다니면서 하나부터 열까지 힘겹게 해내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고 한다(122~127쪽 ‘2003 파나마 쇼크’ 중, 43~44쪽 ‘하버드에 가기엔 제가 너무 예쁜가요?’ 중). 준결승에라도 들기를 바랐던 그녀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가적인 지원 부족, 조직의 한계, 개인적인 한계가 어우러져 빚은 결과였다고 그녀는 분석한다. 한 가지 위안이 있었다면, 인터뷰 강훈련 덕분에 인터뷰 심사에서 72개 국가 중 최고점수인 9.80을 받으며 최고의 인격과 인간성, 세련된 대화술을 갖춘 사람을 칭하는 ‘미스 퍼스낼리티’에 뽑혔다는 것. 아무튼 파나마에서 열린 2003 미스 유니버스 대회는 그녀에게 충격이었다. 세계무대라는 높은 장벽과 자기 자신의 한계에 대해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애국심과 열등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이곳에서 금나나는 자신의 힘을 기르기 위해 다시 한번 세계무대에 도전해보기로 결심한다. 대회가 끝난 후 미국으로 들러 손희걸 원장과 함께 서부와 동부의 대학들을 들러보았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그녀는 선언한다. 이왕이면 아이비리그, 그중에서도 최고라는 하버드에 도전해보겠다고. 그때부터 5개월에 걸친 그녀의 불도저식 올인이 시작되었다. 잘 다니던 의대를 접고 책상 위의 전공서적들을 다 치운 뒤, 다시 수험생으로 돌아가 무서운 집중력으로 공부에 전력질주했다. 그리고 지난 4월, MIT와 하버드로부터 합격통지서를 받아냈다. 당시 그녀의 몸무게는 고등학교 시절의 62킬로그램으로 돌아가 있었다. 고등학교 이후 다시 겪게 된 공부스트레스가 남겨준 흔적이었다. 지금 그녀는 다시 다이어트에 돌입, 미스코리아 당시의 몸무게를 회복하고 있는 중이다. 어제의 좌절을 오늘의 도약으로 바꾸어낸, ‘독종’으로서의 그녀의 면모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나나 너나 할 수 있다, 노력 앞에 불가능은 없다! 금나나는 자신을 이끌어온 것은 욕심과 체력이라고 말한다. 항상 최선을 다해 최고가 되고 싶다는 욕심과, 체육교사인 아버지가 물려주신 건강한 체력이 자신이 해왔던 저돌적인 도전의 바탕이 되었다. 그녀는 학창시절, 아이큐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다. 특히 과학고등학교 시절, 수재?천재 소리를 듣는 많은 아이들 틈에서 지극히 소박(?)한 아이큐를 가진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노력밖에 없었다고 한다. 평범한 두뇌는 자신에게 ‘노력왕’이라는 선물을 준 것이다. 하지만 노력을 통해 그녀는 깨달은 것이 있다. 100미터달리기를 날마다 피나게 연습한다고 해서 누구나 칼 루이스가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전보다는 잘 달리게 된다. 노력의 묘미는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결과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더 잘하게 된다. 이 정도면 가장 확실하게 용기를 주는 결과 아닌가. 태어난 천재가 아니라면 만들어진 천재가 되자는 것이 그녀의 결심이었다. 그녀는 말한다. 천재의 삶은 권태롭고 고독하고, 그래서 자칫 광기로 폭발하기 쉽다는데, 자신은 타고난 천재가 아니어서 천재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재미있게 오래오래 살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그녀의 아버지가 자주 들려주는 말이라고 한다. 그녀는 노력하는 경지까지는 다다랐다고 스스로 평가한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숙제는 즐기는 경지까지 이르는 것. 안티 미스코리아에서 수준별 교육까지, 사회ㆍ교육문제에 대한 당차고 솔직한 의견 미스코리아 대회 주최측은 올해부터 수영복 심사를 폐지했다. 안티 미스코리아 측은 ‘6년 동안의 안티 운동이 이룬 쾌거’라며 좋아했다고 한다. 하지만 금나나는 이런 사회분위기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냥 여타의 다른 축제처럼 보고 즐기면 될 것을 한국은 미인대회에 너무 무거운 이데올로기를 씌워 바라본다는 것이다. 미스코리아가 성의 상품화와 외모지상주의를 조장한다는데, 미스코리아 대회가 없어지면 그런 풍조가 없어질까 하고 반문한다. 하나의 사회현상은 그 시대의 문화, 정치, 사회트렌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다양한 안티 문화는 민주사회에서 사회가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반(反)만 있지 둘 사이에 아무런 합(合)이 없다는 게 안타깝다. 안티 미스코리아가 미스코리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 보다는 그 힘을 보다 의미있게 쓸 수 있도록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도록 대안을 제시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한다(129쪽 ‘안티 미스코리아와 미스코리아는 친구가 될 수 있다’ 중). 그녀는 한국의 교육제도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내신 때문에 서울 의대를 포기하고 그 외 국내 5개 의과대학에도 줄줄이 떨어진 그녀는 MIT와 하버드에서는 붙었다. 한국 대학의 경쟁력이 그만큼 높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것은 이미 여러 통계와 조사 결과를 통해 드러나 있다. 서울대의 경쟁력이 세계 대학 중 수백 위권이라 하지 않는가. 그녀는 내신등급 한 단계, 수능점수 1점으로 학생의 합격 불합격을 단순하게 결정짓는 한국의 대입시험제도에 문제를 제기한다. 미국의 대입시험인 SAT는 매년 10월부터 2월까지 총 6번 치러지는데, 학생들은 스스로 시험 칠 시기를 정하고 과목도 보고 싶은 것을 선택한다. 6번 다 쳐도 되고 한 번만 쳐도 되며, 만족할만한 점수가 나온 과목은 더 이상 안쳐도 되고 좀더 점수를 올리고 싶은 과목은 더 공부해서 그것만 친다. 그리고 점수 자체만 보는 게 아니라 매 시험마다 얼마나 상승했는지를 보아, 그 학생의 앞으로의 발전가능성과 잠재력도 평가한다. 그 외 다양한 봉사활동, 대외활동 경력, 의지와 마인드도 평가대상이 된다. 우리에게도 보다 섬세하고 합리적인 평가방식이 필요하다고 그녀는 얘기한다. 특목고 정책과 수준별 교육, 한국 학생들의 외국 대학 진학을 두뇌유출이라 우려하는 일부시각에 대한 자신의 견해도 솔직하게 드러냈다(161~175쪽). 장미가 아닌 잡초로서의 미스코리아 금나나를 만들어낸 가족과 교육이야기 금나나는 잡초다. 미스코리아라면 누구나 화려한 장미를 연상하지만 그녀는 공주가 아닌 하녀, 장미가 아닌 들꽃이다. 학교 선생님이신 어머니, 아버지를 대신하여 어렸을 때부터 요리를 하여 동생을 챙겨 먹이고, 집안일도 다 했다. 특히 걸레 짜는 데 명수다. 이 책에는 미스코리아라면 이럴 것이다, 하는 이미지를 뒤엎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청바지에 티셔츠를 주로 입고 운동화를 즐겨 신는, 눈썹화장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털털한 미스코리아가 나오고, 운동 특히 달리기라면 사족을 못 쓰는, 지금도 하루 두 시간씩 걷고 뛴다는 무쇠체력의 미스코리아도 등장한다. 무엇보다도 그녀를 돋보이게 하는 건 당당한 말솜씨, 솔직한 성격, 고정관념에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고다. 이러한 금나나를 만들어낸 것은 바로 따뜻한 사랑으로 믿고 지지해준 그녀의 가족이었음을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중학교 가정 선생님인 그녀의 어머니와 체육 선생님인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에게 무한한 자유를 주기로 작정했다고 한다. 부엌에 들어가 음식을 하건 음식 재료로 장난을 치건 마음껏 하게 내버려두었기에 부엌은 아이들에게 흥미로운 실험실이 되었다. 하지만 전제가 있었다. 뒤처리도 혼자 다해야 한다는 것. 그녀는 7,8살 때부터 부엌을 드나들었고, 초등학교 시절에 웬만한 아줌마들도 깨우치기 어렵다는 양념배합의 원칙을 터득했다. 그녀의 부모는 아이들에게 학원을 갈 것을 강요하거나 무엇을 가르치려 들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가고 싶다고 하면 무엇이든 다 배울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5살 때 안짱다리를 교정하기 위해 아버지 손에 의해 무용학원에 보내진 것을 제외하고 서예나 피아노, 그 외 모든 것들은 그녀가 먼저 원해서 배우게 된 것이었다. 아이를 자유롭게 방목하여 키우겠다는 어머니의 철학 덕분에 집안의 벽지는 일찌감치 도화지가 되어 아이들의 그림과 낙서, 전화메모, 엄마 아빠에게 하는 아이들의 부탁과 그에 대한 엄마의 응답으로 채워졌다. 아이들이 거실에서 뛰지 못하게 해달라는 아래층 사람들의 불평에 그녀의 어머니는 서울 동대문 시장을 뒤져 삼단접이식 매트리스를 사다 집안에 깔고 아래층에 불편을 주지 않으며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게 했고, 그녀의 아버지는 아예 그것을 ‘사각의 링’이라 부르며 권투글러브를 사다 주었다(209~213쪽 ‘자유 위에 자유 있다’ 중). 자유를 주는 대신에 뒤처리도 혼자 알아서 해야 했기에 그녀는 어린 나이에 독립심을 배웠다. 고등학교를 선택하는 것도, 전공을 택하는 것도, 미국 대학에 도전하는 것도 모두 그녀 스스로 결정하고 이루어낸 것이었다. 또한 이 책에는 ‘나나의 백만 불짜리 노트 필기법’, 과목별 공부근력 키우기 등 5개월 만에 하버드 상륙에 성공한 미스코리아 선생님의 공부특강이 소개되어 있다. 좌절하지 않고 잡초 같은 생명력으로 늘 새롭게 도전하는 금나나.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예쁜 얼굴보다 따뜻한 마음과 강인한 정신이 아름다운 진정한 미스코리아를 만나는 즐거움을 갖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