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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소설을 읽기 전에 새 칼을 받다 임금의 울음 아무 일도 없는 바다 나의 죽음, 적의 죽음 안개 속에 울리는 쇠나팔 소리 아득한 소문 고금도, 적의 멱통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 명나라 군대의 싸움 면사첩을 불사르다 닻을 올려라. 광양만으로 간다 적보다 먼저 노량으로 들리지 않는 사랑 노래 부록 ㅣ 이순신과 임진왜란 연보 |
金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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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전체로 적의 전체를 맞아야 할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내 몸은 감지하고 있었다. 밤의 먼 바다에서, 내 척후들은 비에 젖었다. 다가오는 시간을 피할 수 없듯이, 더듬어 들어오는 적을 피할 수 없었다. 적은 오지 않았지만, 적은 오고 있었다. 오지 않는 적의 기척이 물결을 따라 느껴져 왔다.
--- p. 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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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체를 이 쓰레기의 바다에 던지라고 말하고 싶었다. 졸음이 입을 막아 입은 열리지 않았다. 나는 내 자연사에 안도했다. 바람결에 화약 연기 냄새가 끼쳐왔다. 이길 수 없는 졸음 속에서, 어린 면의 젖냄새와 내 젊은날 함경도 백두산 밑의 새벽안개 냄새와 죽은 여진의 몸 냄새가 떠올랐다. 멀리서 임금의 기침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냄새들은 화약 연기에 비벼지면서 멀어져갔다. 함대가 관음포 내항으로 들어선 모양이었다. 배는 격렬하게 흔들렸고, 마지막 고비를 넘기는 싸움이 시작되고 있었다. 선창 너머로 싸움은 문득 고요해 보였다.
--- p. 1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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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전라남도 해남에서 진도로 건너가는 바다는 명량(울돌목)이고, 경상남도 하동에서 남해도로 건너가는 바다는 노량입니다. 아름다운 바다이지요. 이 바닷가 언덕에 오르면 산과 바다와 섬에서 음악이 들려오는 듯합니다. 아침노을에 먼 섬들이 빛나고 어둠 속으로 산들이 저무는데, 저무는 빛들이 물 위에 반짝여서 바다의 음악은 끊임이 없습니다. 이 아름다운 바다는 이순신 장군의 싸움터였습니다. 명량 바다에서 장군은 12척의 배를 이끌고 나아가 적선 300척을 무찔렀고, 노량 바다에서 장군은 돌아가는 일본 군대와 끝까지 싸우다가 전사하셨습니다. 피로 물들고 부서진 배들의 쓰레기로 뒤덮이고 화약 연기 자욱했던, 슬프고 무서운 바다였습니다. 그 고난과 시련의 역사가 깔려 있어서 우리나라의 남쪽 바다는 더욱 아름답습니다. 우리들의 삶 속에서도 아름다움과 고통,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이 그렇게 포개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양쪽을 모두 받아들이는 마음의 힘을 기르는 일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자라나는 일은 쉽지가 않습니다. 나는 어른이 되어서 슬프고 괴로운 날들을 맞을 때마다 우리나라 남쪽 바다에 가서 이순신 장군의 큰 마음을 생각했습니다. 그분은 세상의 한없는 고통을 모두 받아들였고, 그것을 넘어서 앞으로 나아갔고, 희망이 없는 세상에서 희망을 세워나갔습니다. 그 희망의 싹은 고통 속에서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이 세상으로부터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미워하고 학대했던 그 세상을 끝끝내 사랑했고, 단념하지 않았고, 그 세상을 위해 몸을 바쳤습니다. 이 세상에는 아름답고 착한 것들이 있고, 추악하고 더러운 것들이 또한 있습니다. 그것이 세상의 모습입니다. 장군의 큰 마음은 그 악한 것들의 존재를 사실로써 인정하고 그것들과 싸워서 넘어섰습니다. 그리고 그 싸움의 방식은 오직 헌신과 실천일 뿐입니다. 청소년 여러분들은 이 책에서 고통을 감싸안고 받아들이는 장군의 큰 마음과, 보이지 않는 저쪽을 향해 나아가는 장군의 큰 실천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방학 때 우리나라의 남쪽 바다에 가서 아름다움과 고난이 함께 포개진 그 물과 섬들을 깊이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2004년 여름, 34도의 찜통더위 속에서 김훈 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