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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소설을 읽기 전에 다시 세상 속으로 권률이 찾아오다 내 앞에 펼쳐진 바다 이 세상 전체를 겨누는 칼 징징징 우는 칼 다가오는 적 일자진을 펼쳐라 노을 속의 함대 면사첩을 받다 몸속에서 치솟는 울음 우수영을 버리고 고하도로 너는 누구의 군대냐 면의 죽음과 아베의 죽음 부록 ㅣ 이순신 시대의 주요 인물들 |
金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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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전략 목표가 서울이라면, 적의 주력은 벽파진으로 오지 않고 울돌목으로 올 것이었다. 적들은 물이 목포 쪽으로 몰려가는 북서 밀물의 시간에 밀물 위에 올라타서 명량을 빠져나갈 것이었다. 아마도, 밀물이 가장 거칠게 밀리는 보름전후에, 적들은 올 것이었다. 그리고 그 보름 후에, 적과 나는 그 사지에서 가장 힘든 싸움을 겪어야 할 것이었다.
--- p. 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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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관이 놓고 간 대나무 상자를 열었다. 쇠고기 5근과 술 2병이 들어 있었다. 임금의 명에 따라 도원수가 보낸 물건이었다. 갓 잡은 고기는 살이 꿈틀거리기라도 하는 듯이 싱싱했다. 칼 지나간 자리가 씹혀 있었다. 잘려진 단면에서 힘살과 살핏줄이 어지러운 무늬를 드러냈다. 칼이 베고 지나간 목숨의 안쪽에 저러한 무늬한 살아 있었다. 내가 적의 칼에 베어지거나 임금의 칼에 베어질 때, 나의 베어진 단면도 저러할 것인지를 생각했다.
--- p.1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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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전라남도 해남에서 진도로 건너가는 바다는 명량(울돌목)이고, 경상남도 하동에서 남해도로 건너가는 바다는 노량입니다. 아름다운 바다이지요. 이 바닷가 언덕에 오르면 산과 바다와 섬에서 음악이 들려오는 듯합니다. 아침노을에 먼 섬들이 빛나고 어둠 속으로 산들이 저무는데, 저무는 빛들이 물 위에 반짝여서 바다의 음악은 끊임이 없습니다. 이 아름다운 바다는 이순신 장군의 싸움터였습니다. 명량 바다에서 장군은 12척의 배를 이끌고 나아가 적선 300척을 무찔렀고, 노량 바다에서 장군은 돌아가는 일본 군대와 끝까지 싸우다가 전사하셨습니다. 피로 물들고 부서진 배들의 쓰레기로 뒤덮이고 화약 연기 자욱했던, 슬프고 무서운 바다였습니다. 그 고난과 시련의 역사가 깔려 있어서 우리나라의 남쪽 바다는 더욱 아름답습니다. 우리들의 삶 속에서도 아름다움과 고통,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이 그렇게 포개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양쪽을 모두 받아들이는 마음의 힘을 기르는 일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자라나는 일은 쉽지가 않습니다. 나는 어른이 되어서 슬프고 괴로운 날들을 맞을 때마다 우리나라 남쪽 바다에 가서 이순신 장군의 큰 마음을 생각했습니다. 그분은 세상의 한없는 고통을 모두 받아들였고, 그것을 넘어서 앞으로 나아갔고, 희망이 없는 세상에서 희망을 세워나갔습니다. 그 희망의 싹은 고통 속에서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이 세상으로부터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미워하고 학대했던 그 세상을 끝끝내 사랑했고, 단념하지 않았고, 그 세상을 위해 몸을 바쳤습니다. 이 세상에는 아름답고 착한 것들이 있고, 추악하고 더러운 것들이 또한 있습니다. 그것이 세상의 모습입니다. 장군의 큰 마음은 그 악한 것들의 존재를 사실로써 인정하고 그것들과 싸워서 넘어섰습니다. 그리고 그 싸움의 방식은 오직 헌신과 실천일 뿐입니다. 청소년 여러분들은 이 책에서 고통을 감싸안고 받아들이는 장군의 큰 마음과, 보이지 않는 저쪽을 향해 나아가는 장군의 큰 실천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방학 때 우리나라의 남쪽 바다에 가서 아름다움과 고난이 함께 포개진 그 물과 섬들을 깊이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2004년 여름, 34도의 찜통더위 속에서 김훈 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