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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0년 인류주거의 역사 양장
노버트 쉐나우어 저 / 김연홍 역
다우 2004.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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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집의 탄생, 도시 이전의 주거
일시 주거
간헐 주거
이동 주거
계절 주거
반영구 주거
영구 주거

2. 동양의 도시주거
고대 문명의 도시주거
그리스와 로마의 도시주택
이슬람의 전통 도시주택
인도의 전통 도시주택
중국의 전통 도시주택
일본 교토의 도시주택
[한국의 전통 도시와 도시주택]

3. 서양의 도시주거
암흑시대의 도시와 주택
중세시대의 도시와 주택
르네상스 시대의 도시와 주택
19세기의 도시주택
20세기의 주택 : 1900~1950년
20세기의 주택 : 1950~2000년

맺는글

저자 소개

저자 : 노버트 쉐나우어
1923년 트란실바니아에서 출생, 부다페스트와 코펜하겐에서 공부하였고 1959년 캐나다 맥길대학교에서 건축한 석사를 받았다. 1960년부터 1988년 석좌교수로 퇴임할 때까지 맥길대학교 건축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였다. 퇴임 후에도 건축가이자 도시계획가로서 맥길대학교의 '윌리엄 C. 맥도널드' 명예교수로 재직하며 줄곧 주거이론과 주거사를 연구하고 교육하였다. 그의 모교인 부다페스트 기술대학에서 명예박사 수여를 결정했으나, 안타깝게도 그는 이 소식을 들은 후 얼마 안 있어 사망하였다. 전국 건축현상설계에서 수상했고, 퀘벡 건축가협회로부터 메달(1995년)을 수여받았으며, 건축대학협회로부터 '우수교수상(1995년)'을 수상하였다. 그의 인생 가운데 40여 년은 오로지 '집의 의미와 본질, 그리고 주거의 역사'를 공부하고 가르치는 데 바쳐졌으며 이 책은 그 간의 모든 연구업적을 총체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또 다른 저서로는『중정주택』『현대 토착주거 개설』『전후의 도시, 교외, 주거』『수공예와 아르 누보 주거』등이 있다.
역자 : 김연홍
1986년 한양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서울시립대학교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1990년부터 '서울건축'과 '이륙공건축'에서 설계수업을 하였으며 1993년 건축사 자격을 취득한 후 1995년부터 기용 건축에서 소장으로 설계실무를 하였다. '건축대전 특선'과 '진주시건축상(준공 부문)'을 수상한 바 있다. 1999년부터 경복대학 건축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세기 초 러시아를 비롯한 서양의 근대 전위건축 운동의 배경과 뿌리에 대해 연구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건축실무에 대한 실질적인 교훈을 얻고자 하고 있다. 저서로는『건축 CAD의 기본과 도면 작성』이 있다.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04년 08월 06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584쪽 | 1606g | 188*254*35mm
ISBN13
9788988964279

책 속으로

19. 20세기의 도시주택 : 1950년부터 2000년 사이의 주택들. 쇠퇴하는 미국의 도시들, 중정주택, 연립형 타운 하우스, 고층 고급 아파트, 고층 공동임대주택, 포인트 블록, 복합용도 빌딩들, 중층 주택, 덴마크의 공동체 주거, 집으로 개조되는 공장들(뉴욕 소호의 탄생), 신전통적인 주거 디자인과 새로운 ‘도시주의’ 운동.

전쟁이 끝나자 도시는 혼잡해지기 시작했다. 뒤이어 일어난 베이비붐 때문에 주택부족난이 심각해졌고, 살 집을 구하는 젊은 가족들은 도시를 떠나 교외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정책마저 이주를 권장했기 때문에 이것은 곧 대세가 되었다. 도시를 떠나는 이동행렬이 늘어나면서 도시에 대한 관심은 떨어졌다. 이때의 이주자들은 도시에서의 높은 수입이 보장되어 있는, 경제적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젊은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이들의 이주는 도시로서는 큰 손실이었으나 당시 시 당국은 주로 상업, 제조, 공공시설 위주의 개발에만 주력하였다.
주택 용지를 경시한 도시정책은 부정적인 결과를 불러왔다. 상업시설이 교외단지 근처로 위치하려는 경향이 강해져서 도시 외곽의 주요 가로를 따라 상점가가 먼저 생기고 슈퍼마켓과 백화점이 있는 작은 쇼핑센터도 생겼다. 쇼핑센터는 후에 ‘몰’로 확장되었다. 몰에는 적어도 2개 이상의 슈퍼마켓과 2개 이상의 백화점이 있었기 때문에 여러 물품의 품질을 동시에 비교할 수 있었다. 결국 몰은 분수와 이국적인 식물을 갖춘 실내 아트리움이 있는 쇼핑 플라자로 바뀌었다. 여기에 업무용 건물과 위락시설이 더해지면서 플라자는 도심에서 상업적인 부분을 그대로 옮겨와, 교외의 중심으로 새롭게 자리잡았다. 상업적인 사무실과 기업의 본사들이 교외로 이전하였고 경공업 산업들도 공업단지로 옮겨가면서 도시의 분산이 계속되었다.
많은 건축가와 도시 계획가 들은 이런 식의 개발에 어떠한 문제도 없다고 생각한다. 피터 로우는 도시도 시골도 아닌 ‘중간 경관’이 생겨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물리적이고 문화적인 관점에서 아직도 상당 부분의 개발이 진행중인” 이 새로운 환경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참된 혁신과 성장이 이루어지는 장소”로 보고 있다. 그리고 로우는 “전통 도시가 갖는 기능적인 분화와 다양성, 사회적 이질성이 소도시나 전원생활의 분산되고 반도시적인 농촌풍의 생활방식으로 거의 대체될 것(1991, 289-291)”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중간 경관’의 형성, ‘자동차 소유의 증가’, ‘무질서한 교외 스프롤 현상’은 미국을 사회경제학 및 환경적인 측면에서 무조건 자가용 차에 의존하여 이동하는 교외 거주자의 나라로 만들었다. 자가용 차에 대한 의존도 증가는 환경파괴를 불러왔고, 이러한 역효과로 인해 도시와 교외의 대기상태가 모두 심각하게 악화되었다.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도시주민이 대거 교외로 이동하였고, 이것은 기존의 도시에는 악몽이 되었다. 이런 사실은 디트로이트의 쇠락을 통해 잘 알 수 있는데, 이 도시는 공교롭게도 교외 스프롤 현상을 가능하게 한 자동차의 대량생산 덕분에 경제적 기반을 다진 곳이었다. “모타운”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디트로이트는 북미에서 자동차와 음악의 선두 도시였다. 그러나 백인들이 교외로 대거 빠져나가자 1950년에 184만 9,568명이던 도시인구가 1990년에는 102만 7,924명으로 40퍼센트 이상 감소했다(Rusk 1993, 14). 버려진 건물과 빈 마천루, 건물은 철거되고 쓰레기만 남은 건물자리는 디트로이트를 유령도시로 만들었고, 또한 미국에서 인종차별이 가장 심하다는 낙인까지 찍혔다. 교외단지가 번성하는 동안 도시는 몹시 황폐해져 그 그늘에서 병들고 있었던 것이다. (중략)
오늘날 도심 주민들은 집안의 방범과 거리의 안전을 크게 걱정한다. 도심에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기본적으로 두 ㅜ류로 나뉜다. 즉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사람과 보안비용을 충분히 치를 수 있는 사람으로 나뉘는 것이다. 부유층은 경비가 잘 되어 있는 고급스러운 고층 건물이나 “입구를 통제하는” 단지를 찾아서 보안을 해결하는 반면, 빈곤층은 바퀴벌레와 해충이 가득하고, 관리인이 없는 까닭에 건물을 드나들 때조차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하는 공동임대주택에서 산다.
이상적인 상태라면, 각 구성요소가 다른 요소와 서로 보완되어 도시와 교외가 경제적으로 일체를 이루어야 하지만 그렇게 되긴 어렵다. 기존에는 도시와 교외가 똑같은 인적 활동과 자원을 놓고 경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바로 이 경쟁으로 인해 도시는 교외화되고 교외는 도시가 지닌 특징과 기반 시설을 똑같은 수준으로 갖추려고 노력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저층·저밀도의 주택개발 방식과 교외의 공간적인 기준이 도심에는 맞지 않는 것처럼 교외에는 고층 건물이 어울리지 않는다. 도시와 교외는 둘 다 각각 타고난 특성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각각에 맞는 이상적인 환경이 있고 그 고유한 특성을 갖는 다양한 주거유형이 있다.
자택을 교외에 소유한 결과, 전후의 자가용 차 소유도 증가했다. 전쟁 직후인 1950년대 초반에는 미국 가구의 4분의 3 정도가 자가용 차를 소유했지만 1955년에는 한 가구당 평균 자가용 차 보유 대수가 한 대로 늘어났다. 따라서 오늘날 교외의 가정이 두 대의 자가용 차를 소유한다는 것은 사치가 아니라 필수로 여겨진다. 대부분의 교외가 하나둘씩 덧붙여지는 형태로 성장한 반면, 일부는 계획된 단지로 구상되고 건설되었다. 이러한 단지에는 전쟁중 배나 탱크, 비행기 제조업에 종사한 노동자들을 위한 주택건설로 축적된 대량생산 건축기술이 적용되었다. - 본문 481~483쪽에서

전형적인 공동체 주거 집단은 각기 자신의 부엌과 사적인 옥외공간이 있는 12~30채의 독립주택으로 구성된다. 주택에 이용되는 건물유형은 주로 독립형이나 연립형인 1층 혹은 2층 높이의 단일가족 주택이며, 때때로 개방형 계획의 실내배치나 분할 레벨 배치를 하기도 한다. 또한 공동체 구성원들의 결속을 위하여 각 주택들이 친밀하게 그룹을 이루도록 하였다. 공용 건물인 ‘팰레슈스’는 보통 중앙에 위치하며 그 면적은 커뮤니티의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 각 가정은 공용 옥외공간과 공동회관을 이용할 수 있다.
커뮤니티의 또 다른 매력은 공공 보육 및 교육에 적합한 사회적 환경을 제공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편부모 가정뿐 아니라 자녀가 한두 명에 그치는 핵가족의 아이들은 또래 친구나 윗사람과의 적절한 사회적 접촉을 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갖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인데, 공공주택 단지에 가입함으로써 가족의 성인 구성원뿐만 아니라 어린 자녀들간의 사회적 네트워크도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개개의 구성원들은 여러 종류의 전문적 지식을 지니고 있으며, 이들은 서로의 자녀를 돌볼 책임을 공유하고 싶어한다. 결국 일종의 대가족을 형성하는 셈이다. 안전하고 건강한 옥외환경, 다양한 나이대의 아이들 그룹, 편안한 느낌을 주는 성인들과의 사회적 접촉은 아이의 성장과 발달에 매우 좋은 환경이 되어준다. 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상관없이 모든 구성원들이 노래, 춤, 원예, 스포츠, 사진, 봉제 같은 사회적인 레크리에이션 활동을 동등하게 이용할 수 있다.
또한 각 구성원은 주민조합이 관리하는 주거 커뮤니티에 참여할 책임을 갖고 있다. 모든 결정이 민주적 절차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회원은 연간 총회, 월간 회의, 특별위원회 회의에 출석해야 한다. 각각의 자원봉사자에게 주어지는 의무적인 노동의 양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커뮤니티 관리에 필요한 노동에는 누구나 빠짐없이 참여해야 한다. - 본문 537쪽에서

근대건축 운동가들은 주택을 단순히 ‘그 안에서 사는 기계’로 여겼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영혼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 교외의 근린주거에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고 어떤 면에서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다. TV, VCR, 컴퓨터, 휴대전화 같은 기술적인 발명 덕분에 사람들은 집 안에만 머무르며 자발적으로 격리되기도 하지만, 과거처럼 편안한 이웃과 안정되고 안전한 생활을 하고 싶은 욕망도 역설적으로 중요해지고 있다.
‘새로운 도시주의 운동’은 현대 운동의 이른바 합리적인 근린주구가 나오기 전 자동차가 아니라 ‘사람들을 위해’ 커뮤니티를 건설했던 때의 전통적인 개발 패턴을 기반으로 한 계획과 도시설계 방식을 표방한다. 당시 커뮤니티의 거리는 좁았던 반면, 그 자체의 밀도는 더 높았다. 혼자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보다는 걷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는 것이 더 일반적이었고 이웃 사이에 직접 얼굴 보는 일이 많으니 자연스러운 교류도 가능했다. 또한 이러한 전통적인 커뮤니티는 모든 소득층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성향을 띠고 있었다. 반면 오늘날의 새로운 도시주의 원리에 의거한 신전통적인 주택 디자인과 그에 따라 형성된 커뮤니티는 아직은 부유층에 한정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모방하려고 하는 ‘진짜’ 커뮤니티와의 차이점일 것이다. - 본문 543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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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이 책은 2000년에 개정 출간된 노버트 쉐나우어(1923~2001년)의 ≪6000 Years of Housing≫을 완역한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반평생을 캐나다 맥길대학교에서 ‘주거사’를 강의하고 연구하는 데 쏟아부었다. 자신이 직접 발로 뛰며 찾아낸 방대한 자료와 세밀한 연구성과, 그리고 저자가 직접 그린 프리핸드 도면이 함께 담겨 있는 이 탁월한 저작은, 현재까지 주거사 분야의 선구적인 저술이자 ‘고전’으로서 인정받고 있다.

이 책의 집필을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초반이다. 당시 맥길 대학교 건축대학에서는 대학원 과정으로 ‘주거 과목’이 개설되었고, 따라서 그 과정에 해당하는 학생들을 위한 주거사 관련 교과서가 필요했다. 그런데 적당한 책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것은 바로 그간의 많은 건축사가들이 ‘일반주택은 참된 건축이 못 된다’는 견해를 갖고 있음을 반영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말로 아이러니였다. 고대 그리스의 주거형태인 ‘메가론’은 고대 그리스 신전을 짓는 기본적인 블록 역할을 하였으며, 이 외에도 여러 자생적 주거원형들이 다른 건축유형에 그 기초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 본문 552쪽 <감사의 글> 중에서


인류 최초의 주거는 ‘동굴’이 아니다! 그리고 인류 최초의 주거는 ‘남성’이 아니라 주로 ‘여성’이 지었다! - 주거란 시간이 지날수록 진보하고 발달하는 것인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 근대에 이르러 ‘집’으로부터 ‘일터’가 분리되자, 여성이 ‘가사일’에 종속되었다!

우리는 지금 왜 ‘집의 이야기’에 주목하는가? 집과 도시야말로 인간 삶의 내력을 가장 잘 증명해주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부동산이라는 이름의 ‘재산’이 아니라, 본래 ‘집’이라는 공간이 갖고 있는 본질과 회복되어야 할 의미를 되새겨보고 싶기 때문이다. 집은 단순한 ‘건축기계’도, ‘부동산’만도 아닌, ‘가족의 영원한 은신처’라는 사회학적 함의를 담은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이 책이 보여주는 6,000년간의 동서양을 망라한 집의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맨 처음에는 추위와 재난, 야생동물로부터 피하기 위한 ‘은신처’에 불과했던 집은, 점차 인간의 공적이고 사적인 생활을 영위하게 해주는 중요한 공간이 된다. 이 책에는 바로 이러한 변화의 결절점들을 중심으로 한, 유기체로서의 집의 변천사가 담겨 있다.
저자는 또한, 집의 역사와 주거건축을 설명함에 있어서, 기존의 고루한 방식을 탈피한다. 즉, 저자는 ‘집’이야말로 자연적인 환경과 사회경제적인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건축행위의 산물이라고 말하면서, 바로 그러한 이유로 집의 역사를 ‘공간의 유형’이나 ‘구조의 양식’의 관점에서만 보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사회적이고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일부 건축사가들이 그러했듯이, 현학적인 건축이념이나 양식을 운위하기에 앞서 (그런 이야기들을 다루더라도) 보다 본질적인 것들을 자신의 논의의 그물망 안에 두루 포섭시킨다. 예컨대 그 집 안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풍경을 묘사하고, 각종 실(室)들이 시대와 나라, 공간에 따라 어떤 용도로 다르게 쓰였는지, 사람들의 사고방식의 변화에 집은 어떤 양태로 대응해나갔는지, 그리고 주거건축에 담긴 건축가의 의도는 무엇인지까지 읽어내고자 노력한다.

동굴이 ‘구석기시대 최초의 주거’라고 대중적으로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믿음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왜냐 하면 이는 인류의 발전이 “최초의 주거”라고 하는 동굴이 존재하는 지역에서만 제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토착주거의 연구를 통해서 또 다른 흥미로운 가설을 이끌어낼 수 있는데 자생적인 은신처에 있어서도 원형 평면이 직사각형 평면보다 시기적으로 앞선다는 것이다. 원형 또는 말굽형 평면은 은신처의 가장 단순한 형태이다. 이러한 주거지의 본질인 오목한 형태는 어머니의 자궁을 닮았다. 이 형태는 모든 것을 그 안으로 초청하고, 품어주고, 보호해준다. 오목한 원형 평면은 ‘직관적인’ 형태로서,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 형태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정사각형과 직사각형 형태는 이성적·지성적으로 고안된 것이다. - 본문 108쪽 <’은신처’에서 ‘집’이 되기까지> 중에서

어떠한 기후 지역에서든 집이란 인간 생존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필요조건인 ‘먹는 것’, ‘출산’과 버금가는 것이다. 사람들이 식량을 구하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고, 이는 그들 주거의 특성에 그대로 반영된다. 여기저기를 떠돌며 야생 동식물을 채집하고 사냥하는 사람들은 단기적이고 일시적인 주거를 짓고 살았다. 반면에 목축을 하며 살아가는 유목민들은 ‘이동식 천막집’ 같은 주거에서 살았고, 그 골조와 덮개를 가축에 실은 채 야영지를 옮겨다녔다. 따라서 식물을 재배한다는 것은 인간의 정착생활을 의미하며, 이러한 삶의 방식은 식량채집 및 목축을 기반으로 한 짧은 기간의 유목생활과는 매우 대조적인 것이다. 아울러 경작기술의 발달 정도에 따라 그들이 주택에 거주하는 기간도 정해지게 되었다. 가령 농사기술이 덜 발달한 화전경작의 경우 경작자는 몇 년 동안만 그곳에 머물고는 떠나야 했지만, 농기구와 비료를 이용하는 발달된 농업경제하에서는 몇 세대를 이어서 한 곳에 머물러 살았다. 이 단계에 들어서면서 인류는 잉여식량을 얻게 되고, 그에 따라 도시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는 조건을 축적하게 된다. - 본문 548쪽 <당신은 어떤 집, 어떤 도시에서 살고 싶은가> 중에서

양차 세계대전 사이에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건축가는 단연 라이트였다. 그는 이 기간 동안 ‘하인 없는 주택’에 대한 자신의 개념을 구체화했다. 그의 ‘초원양식’ 주택은 곧바로 “주변의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룬 집”으로 알려졌다. 초기 작품과 달리 그의 후기 주택 대부분은 개방형 평면으로 만들어졌는데 커다란 거실과 잘 짜인 식당, 작고 치밀한 침실, 화장실, 동선의 낭비가 없는 공간 구성, 중앙에 위치한 부엌이 그 특징이었다. 특히 이 부엌에서 “주부는 닫힌 문 뒤에서 기계처럼 일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의 일원으로서 더욱더 주인답게 일하게 된다(Wright 1963, 107).” (중략) 개방형 평면의 선구자인 라이트는 주택의 공간감과 거주성을 향상시켰는데 이는 라이트가 ‘상자와 상자’라고 부른 그것, 즉 방과 방을 적당히 배치함으로써 세포형 격리방식에서 탈피했기에 이루어낸 것이다. 라이트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불필요한 수많은 문이 사라졌다(Wright 1963, 34).” 따라서 라이트가 설계한 주택은 서로 같은 것이 없었다. 왜냐 하면 주택은 소유주의 개성이 표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 본문 449쪽에서


주거 평면 및 형태는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는가? - 원형에서 사각형으로, 단층에서 다층·고층 건물로 진화하기까지

선사시대인들에 의해 지어진 최초의 주거는 원형 평면을 갖고 있었다. 그들의 ‘단순한’ 삶에는 손바닥처럼 둥근 원형 주거가 가장 적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착 농경사회로 이행되면서, 주거는 개별적인 ‘단위주거’에서 ‘군집주거’ 형태로 바뀌어가기 시작했고, 따라서 주거 평면 역시 장소와 특성에 따라 다각적인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6,000년간의 주거는 거듭 그 모양과 형태를 변형시켰고, 그 변화는 그때그때 중요한 사회적·기후적 환경에 지배받았다. 이 책에서 다루는 ‘집의 역사’는 주거의 평면이 어떤 진화 양상을 겪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동양과 초기 문명사회에서는 주로 단층의 주택이었던 것이, 점차 하늘을 향해 뻗어올라가는 다층·고층 주택으로 변화하게 되는 제반 요인을 통찰한다.

‘공동주거의 수용 인원이 증가할수록 처음의 원형 평면에서 탈피할 필요성이 생기게 된다. 원형 건물의 스팬은 구조적으로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한계를 넘어 바닥의 면적을 넓히려면 도넛형이나 타원형의 평면형태를 사용해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사각형 평면 형태를 사용해야 한다. - 본문 41쪽에서

원형 평면이 최대한으로 발달하는 것을 방해한 두 가지 본질적인 특징이 있는데, 첫 번째는 구조적인 고려 때문에 확장이나 연장에 제한을 받는다는 점이다. 면적이 커지려면 그와 비례하여 지름이 커져야 하기 때문에 구조의 경간도 벌어져야 하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가 힘들다. 특히 단순한 연장과 건축재료만 사용하는 사회에서는 더더욱 어려운 문제였을 것이다. 반면, 직사각형의 경우 폭이 제한된 상태에서도 길이는 무한정 늘릴 수 있다.
원형 평면의 두 번째 한계는 누적이나 덧붙이는 방식의 확장이 어렵다는 점이다. 그러나 확장에 있어서 직사각형 또는 정사각형의 융통성은 건축재료와 공간활용의 효율성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훨씬 더 편리하고 경제적이다. 결국, 주거 원형의 발전은 다음과 같은 평면 모양의 변화로 설명할 수 있다. 원형에서 출발하여 타원형으로, 그 다음 둥근 모서리의 직사각형으로 발전했다가 마지막으로 직각 모서리의 직사각형이나 정사각형으로 발전한 것이다.
또한 건축 구법의 복잡한 정도에 따라서도 뚜렷한 발전이 있어왔다. 벌집형 움막 같은 가장 단순한 은신처는 지붕과 벽의 구분이 없는 구조로 공간을 둘러싼다. 다음 단계는 벽과 지붕의 분리가 생겨난다. 처음에는 벽과 지붕에 나무나 풀처럼 같은 종류의 재료를 사용하다가 그 다음에는 다른 재료를 사용한다. 즉 벽에는 진흙을, 지붕에는 풀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때만 해도 출입구는 창문과 굴뚝의 역할까지 했다. 그러던 것이 건물요소가 점차 다목적에서 단일 목적으로 바뀐다. 문은 출입용으로 쓰고 창문으로는 채광을 하며 굴뚝으로는 연기를 배출하는 식이다. ‘윈도(window)’라는 말은 사실 ‘윈드 아이(wind eye)’에서 나온 말로 연기구멍과 천창이 결합된, ‘지붕에 뚫린 구멍’을 뜻하는 것이었다. 이 연구를 통해 우리는 건물규모에 관한 또 다른 흥미로운 결론을 얻었다. 즉, 사회경제적 발전이 주거 구조물의 규모 확대를 필연적으로 동반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존 계곡에 사는 인디언의 주거인 ‘말로카’와 ‘보히오’는 이보다 발전된 사회의 주거보다 훨씬 넓다. 푸에블로도 더 정교한 농사법을 쓰는 농경민의 가옥보다 주거지가 넓고 공간구성도 훨씬 복잡하다. 겉보기에는 불연속적인 이러한 발전 단계는 관련된 사회의 사회경제적 구조에 주로 기인한다. - 본문 108~109쪽 <‘은신처’에서 ‘집’이 되기까지> 중에서

실제로 많은 유목민들이 이동 주거에 익숙해져 있어서 고정된 건물에서는 오히려 불편함을 느끼고 밀실 공포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심지어 그들은 고층 건물에 들어가기를 두려워한다. 과거 정착민들은 천막집 생활을 하던 유목민들의 침입을 자주 받았다. 그래서 유목민들의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이러한 건물형태를 개발했다. 예를 들면 탑 모양의 석조주거를 들 수 있는데, 이것은 자주 유목민들로부터 습격당해 어려움을 겪던 코카서스 산 계곡의 정착농민들이 채택한 주거형태이다. - 본문 51쪽에서


안마당을 가진 ‘동양의 전통 주택’에서 배우라! - 중국과 일본, 한국이 오래도록 채택해온 ‘내향형 중정주택’의 매력과 가치!

특히 저자는 동양만의 독특한 주거 유형인 ‘내향형 중정주택(안마당을 갖고 있고, 그 안마당을 향해 열려 있는 형태의 집)’에 관하여 많은 지면을 할애하면서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중정(안마당)이 가진 ‘빛과 공기를 제공한다’는 자연친화적인 가치와 ‘빈부격차 없는 도시를 만든다’는 점에서의 사회경제적 장점을 강조하면서 이 방식이 현대의 중저층 다중주택에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이러한 주장은 훌륭한 전통 한옥의 안마당을 물려받았으면서도, 도시와 농촌 할 것 없이 획일적으로 고층 아파트들을 세워가며 그 ‘높이’와 ‘규모’에만 환호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 좋은 가르침을 준다.

이 내향형 주거형태의 본질적인 성격과 속성은 상당히 많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특징은 중앙에 있는 사적인 성격의 열린 공간인 ‘중정’이다. 마당은 동양 도시주택의 심장부이며 이것을 표현하는 가장 시적인 말로는 ‘하늘의 우물’이라고 번역되는 중국 이름을 들 수 있다. 이 우물은 주택에 빛과 공기와 빗물을 제공한다.
중정주택 개념이 갖는 고유한 특성은 중정이 쾌적한 미기후를 거주자에게 제공한다는 점이다. 외부와 격리되어 있는 마당에서는 식물이나 인위적인 그늘 시설, 또는 분수를 써서 기온과 습도를 쉽게 조절할 수 있다. (중략) 중정주택의 또 다른 고유 특징은 그 내향형 형태로 인하여 가로 및 이웃으로부터 시각적·청각적 프라이버시가 형성된다는 점이다. 동양의 도시주택은 대부분 주 현관에 가림벽이 있어서 가로에서 중정이 직접 보이는 것을 방지하고, 호기심으로 인한 침해로부터 보호하며 가정의 프라이버시가 안전하게 지켜지도록 한다.
또한 가족의 프라이버시를 강화하기 위하여 동양의 도시주택은 공적인 부분과 사적인 부분을 분리해놓고 있다. 전자는 손님들을 맞이하는 영역인 반면 후자는 가족들의 가려진 영역이다. 서양의 관습과는 대조적으로 동양 주택의 가족 영역은 언제나 주거공간의 가장 넓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단지 규모가 큰 집일 때만 공적 영역이 가족숙소만큼 넓고 호화롭게 설계된다.
동양 도시주택의 다른 특징으로는 그 내부공간의 융통성을 들 수 있다. 대부분의 방들이 다목적으로 쓰이는 것이다. 따라서 취침이나 식사 같은 한 가지 기능으로만 한정해서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동양의 주택에서는 먹고, 자고, 가까운 친구들과 여흥을 즐기는 등의 여러 용도로 그 방을 사용할 주인을 정할 뿐이다.
동양의 주거구역들에는 민족이나 종파 또는 직업이나 다른 형태의 조합에 의해 단결된 다민족 집단들을 기반으로 한 공통성과 결속성이 나타난다. 그러나 소득 수준에 따라 모이는 경우는 없다. 주거구역들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 모두의 공동체이며 이런 면에서 경제적으로 계층화된 서양의 도시내 주거구역들과는 차이가 난다. (중략)
그 어떤 나라도 낭비해도 될 만큼 풍족하게 살고 있지 못한 이 세상에서, 동양의 도시주거 패턴의 토지이용 효율성은 토지이용과 에너지 보존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본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이것은 동양의 도시환경이 ‘복제’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단지 그 도시 디자인 원리 중의 일부를 채택해야 한다는 말이다. 예컨대 안전한 주거환경을 만들어주는 가로망의 위계질서 같은 것이 그것이다. - 본문 242~246쪽 <동양의 내향형 중정주택의 생명력> 중에서


격자형 도시체계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 오늘날까지 도시계획의 모범이 되고 있는 ‘격자형 가로체계’와 넓은 직사각형 주거 블록의 출현

그리스가 페르시아에 함락되기 전까지만 해도, 서구 문명 역시 동양과 마찬가지로 ‘밀집된 주거구역’과 ‘세포질형 가로체계’를 갖고 있었다. 또한 비록 좁더라도 동양과 유사한 개념의 안마당(혹은 중정)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제국의 지배자들에 의해 주거개념과 가로체계 역시 변화를 겪었다. 유기적인 옛 패턴을 거부하고 새로운 이념을 육성하고자 했던 로마의 지배자들은 ‘겉보기에 좋은’, 즉 과시적인 형태의 직사각형 도시, 격자형 가로체계를 채택했다. 이로써 오밀조밀한 미로의 형태로 이뤄져 있던 원형의 동양적 도시는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고, 그 자리를 격자형의 네모난 도시들이 대신하게 된다.

페르시아의 유린으로 폐허가 된 그리스는 도시들을 재건해야 했다. 아테네는 이전의 유기적인 도시 패턴을 회복하는 쪽을 선택한 반면, 밀레투스는 새로운 이념을 육성하는 전통에 따라 옛 패턴을 거부하고 격자형 가로 패턴으로 도시를 재건하였다. 결국 이것이 수세기 동안 서양 도시계획의 모범이 된다. 밀레투스의 건축가 히포다무스가 설계한 것으로 보이는 밀레투스의 마스터플랜은 A.D. 1세기 동안 로마인 통치하에서 이뤄진 주요한 확장을 포함해서 그 후까지도 줄곧 적용되었다. (중략) 처음에 그리스 도시들의 주거지역은 접합식의 유기적 성장으로 인한 미로 같은 가로 패턴과 무수한 좁은 골목들로 이뤄져 있어, 동양의 도시들과 흡사해 보였다. 또한 동양의 도시들처럼 주택들은 외관을 꾸미지 않았고 과시에 대한 대중적인 거부감이 있었다. 더욱이 주택들은 크기가 작았다. 그러나 거의 모든 시민들이 그들만의 중정주택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그 사적 영역 안에서 대부분의 가정생활과 경제활동이 이루어졌다. 마당을 제외하면 도시 내에서 정원을 찾기 어려웠으며 기껏해야 주택들의 뒤나 옆에 협소한 옥외공간을 두었을 뿐이다. 주택의 실내공간은 단순했으며 장식도 별로 없었다. 가구도 빈약해서 침대, 매트리스와 베개가 놓인 긴 의자, 의자, 몇 개의 작은 탁자, 수납용 상자가 전부였다. 그들은 덮개가 없는 화로 위에서 요리를 했고, 상에 음식을 얹어 방으로 들고 들어갔으며 식사가 끝나면 다시 가지고 나왔다. 식사시간이면, 남자가 긴 의자에서 일어나서 오기 전에 여자와 아이들이 먼저 작은 테이블 앞에 와서 앉아 있었다. 그들은 홀로 식사하는 것을 야만적인 것으로 여겼고 멋진 식사예절이 문화의 표상이라고 생각하였다. 손님이 없을 때는 온 가족이 식사를 같이 했고, 남자 손님이 올 경우 여자는 잠시 자기 방으로 물러나 있었다. (중략) 로마의 일반인들은 자신들이 유산으로 물려받은 동양식 주거를 선호했다. 그러나 이러한 대중들의 정서는 그 통치자와 공유되지 못하였다. 통치자들은 역사에 뚜렷이 남을 질서정연한 도시계획을 도시에 끌어들이고자 했다. - 본문 146~150쪽에서

르네상스 시기에는 성벽이나 대규모 저택들을 제외하고는 새로운 도시가 거의 세워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재건축과 기존 도시의 확장을 통한 의미 있는 건축행위가 이뤄지기 시작하였다. 기본적으로 이 시대의 도시계획 원칙은 ①넓은 대로와 확트인 곧은 거리 ②고대 도시 건축물의 격자 패턴 ③광장이나 광장군을 단지 기념비성이 있는 장소나 시장, 북적거리는 장소로서만이 아니라 주거광장으로 의미를 확대한다는 것이다. (중략) 도시 경관이 이렇듯 변화된 것은 단지 미학적 강조와 요구 때문만은 아니었다. 16세기에 바퀴 달린 교통수단이 널리 사용되면서 도시의 주요 거리에는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게 되었다. 군사적인 고려 또한 가로 치수와 패턴을 변화시키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따라서 시민들의 자연스러운 개인주의를 반영하는 중세의 도시환경은 독재자의 눈에 거슬렸고, 말할 것도 없이 독재자는 이러한 환경을 연상시키는 물리적인 모든 것을 제거하려 했다. 예를 들어 중세의 좁은 거리와 파리의 쿨드삭이 남아 있었다는 사실은 나폴레옹 3세가 “넓은 대로를 만들기 위해 구역 전체를” 파괴하는 데 충분한 정당성을 부여했다. 중세시대가 끝나자, 대로는 도시의 중요한 상징으로 나타났다. 도시는 지배자의 권위를 떠올리게 하는 궁전이나 거대한 건물 또는 기념물로 유도하는 도시의 축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이러한 예는 프랑스의 궁전도시 ‘베르사유’나 독일 남서부의 계획도시 ‘카를스루에’에서 가장 잘 볼 수 있다. - 본문 318~319쪽에서


파리에 ‘아파트’가 많은 까닭은? - 아파트는 ‘최고의’ 주거가 아니다, 그러나 매우 ‘유용한’ 주거임에는 틀림없다!

먼 미래를 내다보는 건축가들은 한국의 경우 인구가 확연히 감소하게 되는 어느 순간이 되면, 현재 지어놓은 아파트를 죄다 허물어야 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때에는 현재의 아파트값은 말 그대로 휴지값밖에 안 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전히 현재의 한국에서는 아파트가 최고의 주거로 군림하고 있다. 아파트는 말할 것도 없이 근대적 주거유형이다. ‘지구’라는 한정된 땅에서 살 수밖에 없기에 수평적 확장이 불가능한 시점부터 아파트가 탄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파트’에 대한 수용양식 또한 국가마다 다르다. 이 책에서는 영국과 파리, 뉴욕 등의 아파트 주거개념을 잘 비교해서 보여주고 있다.

19세기 동안 전례 없는 도시인구의 증가로, 영국 대도시 주거지의 확장은 유럽대륙과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예를 들어 교외지역의 빌라에 살려는 가구들이 점점 증가한 런던에서는 대부분의 주거 확장이 수평적으로 이루어졌다. 반면 유럽 대륙은 상대적으로 땅이 비좁고, 과거 전쟁에 대비해서 만들어놓았던 방어시설의 이전 비용이 엄두를 못 낼 정도로 비싸서 수평적 도시 분산은 줄어들었다. 이러한 이유로, 런던 시민들과 달리 대부분의 파리 시민들은 교외의 단독주택보다는 도시의 아파트에 살기 시작했다. 19세기 말, 파리의 아파트는 단순한 공동임대주택과는 분명히 구분되는, 도시 속의 세련된 다층 건물로 진화하였다. 새로운 아파트는 넓은 실내공간과 함께 나무가 늘어서 있는 가로수길을 따라 호화로운 가로입면을 자랑했으며, 중앙난방 시스템과 엘리베이터 같은 기계적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중산층뿐만 아니라 상류층에게도 바람직한 주거 대안으로 자리잡았다. (중략) 아파트를 바람직한 대안으로 받아들이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엘리트들이 선호한 넓은 오텔 파르티퀼리에가 과도한 토지를 필요로 한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개인의 타운 하우스에 필요한 도시 용지의 값이 오스만에 의해 파리 시 재개발(1809~1891년)이 이뤄진 후에 엄청나게 올랐기 때문이다. 둘째로, 당시는 자가용이 사용되기 이전이었으므로 많은 부유한 가정은 교외 빌라가 도심에서 너무 멀다고 느꼈다. 그러나 부유층이 아파트 생활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데 무엇보다도 가장 큰 영향을 준 요인은 아마도 파시와 같은, 소위 ‘보 카르티에)’가 가진 풍부한 가로수길, 대로, 로터리, 산책로 등에 있을 것이다. 오스만이 남긴 이 널찍하고 푸른 공공 가로들은 아파트 전면에 좋은 전망을 제공했다. 이와 같이 호화로운 건물 외관과 넉넉한 크기의 방 등이 상류층의 생활조건에도 부합하고 유행에도 앞서는 아파트 생활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임대주택인 ‘메종 아 르와예’가 파리에서는 주거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었음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다가구 주거는 대부분 혜택받지 못한 사람들이 사는 밀집한 공동임대주택이었지만 상당수는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의 벨 에포크 동안 그 호화스러움으로 인해 파리의 명물이 되었던 ‘아파트’였다. 비올레 르 뒤크에 따르면, 메종 아 르와예같이 “여러 가족을 수용하는 주거건물을 세우는 관습은 17세기부터 시작된 것이다(White 1875, 1101).” 예를 들면 루이 14세의 통치기간중에는 상가들 위에 2층 높이의 주거들을 지었고 거기에 덧붙여 거주 가능한 다락층을 그 위에 설치하였다. 상가들에는 발코니풍의 ‘메자닌 층’이 있었는데 이것은 중세 상인주택의 연장선인 것으로 생각된다. - 본문 369~370쪽에서

" 악화되어가는 ‘도시환경’을 어떻게 되살릴 것인가? 세계의 건축가들은 더 나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신도시 설계자들, 행정수도 입안자들은 꼭 참고해야 할 책! "

산업혁명은 말 그대로 전 인류의 삶에 엄청난 지각변동을 가져왔다. 산업혁명이 갖는 아이러니는 그로 인해 ‘도시가 경이로운 성장’을 했다는 것이며, 동시에 그로 인해 ‘경이로웠던 도시’가 엉망이 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산업혁명은 도시 스프롤 현상을 가져와 결국 도시를 ‘과밀화’시켰다. 도시는 이제‘주거’ 대신 ‘공장을 위한’ 공간으로 전락했으며, 주거는 자연스레 ‘교외화’되었다. 주거의 교외화는 교통문제, 빈부격차 문제, 도시 공동화 및 주거형식의 양극화 등등의 문제를 계속해서 일으켰다. 모든 도시들이 고질적으로 앓고 있는 이러한 문제들은 많은 건축가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저자는 비단 ‘집’의 문제를 넘어서서 ‘도시(계획)’의 문제를 탐색한다. 기본적으로 저자는 ‘도시 예찬론자’이다. 그는 도시의 지나친 교외화에 반대하며, 도시가 중세에 그랬듯이 ‘자유’를 상징하는 공간이 되는 동시에 부자와 가난한 자가 함께 어깨를 맞대고 살 수 있는 역동적인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도시 효율을 높이면서도 도시 삶의 질을 높이는 방안이 무엇일지를, 르 코르뷔지에나 하워드, 미스 반 데어 로에 같은 유명 건축가들의 주거개념 등을 중심으로 모색해보고 있다. 또한 저자는 ‘세련된 장소로서의 도시의 잠재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교외와 원래의 도시를 단절시켰던 사회경제적 격차를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아울러 도시의 자기보존보다도 더 시급한 것은 모든 사람들이 자연을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주거환경을 만드는 일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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