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서론
1. 소비자 주도 디자인 2. 그린 디자인 3. 책임 있는 디자인과 윤리적 소비 4. 페미니스트적 관점 5. 앞으로의 길? |
|
소비자 주도 디자인은 분명히 신제품의 패션화에 많이 의존한다. 유형에 따른 형태를 모색한 모더니스트들의 노력에서 몇 광년이나 떨어지기라도 한 듯이, 소비자 주도기의 디자이너는 즉각적이고 '파격적인'것, 즉 그에 따라 일시적이고 덧없는 것이라 할 만한 것을 찾는다. 흔히 말하듯, 애초의 충격이 클수록 지속하는 힘은 약하다. 그런 상황에서는 디자인이 단지 패션 산업의 부산물, 즉 장식을 위한 패션 액세서리처럼 여겨진다. 시각적인 자극은 일단 구입하고 나면 또 다른 시각적인 자극에 의해 대체된다. '라이프스타일'은 20세기 후반에 있어서 실존주의의 딜레마에 대한 궁극의 해독제라고도 할 수 있는, 단하나의 바람직한 존재 상태라고 여겨진다.
--- p.63 |
|
많은 녹색인들은 그들이 종교적이건 아니건 자연을 예찬하는 태도를 공유하고 있으며 이것은 디자인에서도 자연적으로 자리잡게 된다. 가장 분명한 예―그리고 비非녹색 대중에게도 널리 인기를 얻고 있는 것―는 ‘시골 오두막’ 스타일의 부엌이다. 광고 기사와 ‘이상적인 집’ 전시모형의 제작자들은 ‘녹색 부엌’을 마디가 지고 나뭇결이 있는 (지속성 있는) 목재 상판과 찬장으로 빛나는, 스타일 면에서 전통적이고 ‘시골집’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미 논의한 것처럼, 녹색성이 ‘자연적인’ 외양과 동의어가 되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환경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한 단계에서는 ‘자연적인’ 녹색 미학을 강조하는 것이 납득할 만한 것이었지만, 녹색성이 제품들의 대다수에 침투함에 따라 녹색 미학은 사람들의 취향만큼이나 다양하게 될 것이다.
--- p.140 |
|
1960년, 하이네켄 양조회사의 알프레드 하이네켄은 카리브 해의 쿠라사우 섬을 방문했다. 소비 사회의 잔해로 건축된 지역 주택의 모습에 당황하고 특히 그 주택들이 그의 회사 병들을 포함한 폐기물과 쓰레기로 지어졌다는 사실에 질겁한 하이네켄은 3년 후 WOBO로 결실을 보게 된 아이디어를 착안했다. 이는 1차 대량생산 용기가 건축용 재료로 2차 사용되도록 디자인된 최초의 병이었다. 사실 모든 네덜란드 하이네켄 병은 잃어버리거나 깨지지 않는 한, 평균 30여 번의 ‘여행’을 할 수 있는 회수 가능성을 갖고 있지만, 수거, 재생 설비가 부족한 카리브의 섬에서는 각 병이 폐기되기 전까지 단 한 번 밖에 사용되지 않았다. 하이네켄은 수출용 300밀리리터 표준형 하이네켄 병을 내용물이 비워졌을 때 가옥용 벽돌로 활용할 수 있는 리디자인된 병으로 교체하려고 했다. 하이네켄 제품이 이 섬의 소비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았던 것을 고려해보면, 이것은 정말로 계몽적인 디자인 아이디어였다. 이 병은 해변 훼손과 미비한 쓰레기 수거 체계 문제를 해결할 뿐 아니라 가난한 지역사회에서 값싸고 효율적인 주택 건축 자원이 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 p.147 |
|
인도 같은 나라에서 디자이너가 직면하는 딜레마는 종종 디자이너가 새로운 사무용품에 주의를 돌릴 것인지 아니면 외딴 북동부의 아직 개발되지 않은 등나무와 대나무 자원의 활용 쪽으로 주의를 돌릴 것인지 하는 정도로 극히 대조적인 문제일 것이다. 선택이 언제나 간단한 것은 아니다. 특히 고대 우마차의 개선에 관심을 두는 만큼 우주 공학에도 관심을 갖는 경제에서는 말이다.
--- p.180 |
|
가까운 미래에는, 페미니스트 디자이너와 비평가들이 마케팅 주도 디자인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작은 변화에 불과할 것이다. 대체로 제조업체들은 인지된 필요를 재빨리 상품화할 만한 단기적이면서 가부장적으로 결정된 요구들에 반응하기를 계속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변화들 중 일부는 오직 제조회사의 재정적 이윤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일어날 것이다. 디자인 분야의 광범위한 변화는 사회의 문화와 정치 내에서 일어나는 긍정적인 변화의 결과가 아니고서야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 p.233 |
|
주변에 넘쳐나는 사물 중 디자인이 개입하지 않은 것은 전무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디자인은 이제 현대생활 그 자체이다. 나이젤 휘틀리의 [사회를 위한 디자인]은 디자인이 과연 사회에 이로운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소비가 중심적인 가치로 자리 잡은 현대 사회에서 디자인은 소비에 대한 욕망을 불러일으켜 사람들로 하여금 좀더 소비하도록 하는 도구로 복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리핀코트의 말처럼 “산업 디자이너를 고용하는 단 한 가지 이유는 제품의 판매를 늘리기 위한 것”인 경우가 많다.
휘틀리는 디자인이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구축물이라는 전제 하에 크게 세 가지 이유에서 현대의 디자인을 비판한다. 첫째는 환경적인 이유에서다. 디자인은 산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과도한 디자인은 곧 환경의 파괴를 불러온다. 그런 의미에서 녹색 사고를 실천하는 그린 디자인은 ‘환경을 위한’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휘틀리는 일면 당연히 올바른 것처럼 보이는 그린 디자인을 다시 한 번 살펴볼 것을 제안한다. 환경을 생각하는 것이 일종의 라이프스타일로서 하나의 상품을 포장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패스트푸드의 포장을 플라스틱재에서 종이로 바꾼 것은 환경적으로 올바르게 보일 뿐, 생산하는 데 드는 에너지 및 폐기 비용에 있어서는 친환경적이지 않았다는 일화를 소개하면서 그린 디자인이 이미지 정치에 머무를 수 있음을 지적한다. 둘째, 디자인이 정말로 필요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3장 ‘책임 있는 디자인과 윤리적 소비’에서 다루어진다. 카리브 해의 쿠라사우 섬 주민들이 쓰레기로 집을 지어 살고 있는 모습을 본 하이네켄 양조회사의 알프레드 하이네켄이 진행한 WOBO 프로젝트(하이네켄 맥주병을 건축재로 사용될 수 있도록 리디자인하고자 했으나 결국 마케팅 상의 이유로 좌절되었다), 빅터 파파넥의 [현실 세계를 위한 디자인](국내에서는 [인간을 위한 디자인]으로 번역 출간) 등의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면서 휘틀리는 사회에 유용한 제품을 만들고자 했던 책임 있는 디자이너들의 포부와 좌절, 그리고 절반의 성공을 이야기한다. 또, 필요한 제품을 만들어내게 하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행동 역시 중요함을 지적한다. 소비자의 윤리적 소비와 행동이 제조업체로 하여금 사회에 도움이 되는 제품을 생산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 주류 디자인에 대한 세 번째 비판은 페미니즘에서 나온다. “디자인이 사회의 표현이고 사회가 가부장적이라면 디자인은 남성 중심의 성향을 그대로 담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가장 큰 문제는 디자인 역시 여성을 고정관념화하여 여성의 지위를 열등한 것으로 고착시키는 도구로 사용된다는 데 있다. 그뿐 아니라 디자인계 여성 인력의 절대적 부족은 여성의 ‘암묵적 지식’이 실제 제품에서 활용되지 않는 큰 요인이다. 다소 암담하게도, 휘틀리는 페미니스트적 관점이 디자인 제품에 어느 정도 반영될 수 있다 할지라도 커다란 변화는 결국 문화적, 정치적 변화가 선행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점 또한 지적한다. ‘굿 디자인’이란 단지 미적으로 아름다운 디자인, 세련된 취향을 드러내는 디자인, 상업적인 성공을 가져다주는 디자인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나이젤 휘틀리의 결론이다. 굿 디자인은 ‘사회를 위한’ 가치 또한 고려해야 한다. [사회를 위한 디자인]은 디자인을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소비주의 디자인을 ‘반대’할 뿐이다. 디자인이 사회에 유용한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굳게 믿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오히려 친디자인적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