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부 영원한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
2부 이봉주와 함께 한 제2의 지도자 인생 부록 1 오인환의 마라톤레슨 부록 2 이봉주의 어린 시절 ㅣ 이봉주의 경기기록 |
|
영원한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
이봉주는 본래 마라토너로서 자질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이봉주가 세계의 그 어떤 선수보다도 월등한 점이 딱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성실성’이다. 한 예로, 이봉주가 지금까지 달린 거리는 단순히 훈련거리만 따져도 가히 경이적인 수치라고 한다. 풀코스를 총 31회 완주했으며 훈련거리는 무려 158,720km이다. 지구 한 바퀴가 4만km이니 이봉주가 지금까지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훈련한 거리만 최소한 지구 네 바퀴라는 이야기다. 바르셀로나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황영조가 풀코스 8회 완주로 은퇴한 것과 비교해 보면, 이봉주의 훈련량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봉주의 풀코스 완주 31회 기록은 국내뿐 아니라 현역 마라토너 중 최다기록이다.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평균 완주기록도 15회 내외에 머무른다고 한다. 이에 어떤 사람들은 ‘기네스북에 올라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지금도 이봉주는 마라토너로서 ‘환갑’이 넘은 나이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가능하면 40세까지 뛰겠다는 놀라운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이봉주는 선수생활을 하면서 부상 등으로 인해 슬럼프에 빠져 ‘깨끗한 은퇴냐 재기냐’를 놓고 힘든 시간을 보낸 때가 많았다. 또한 마라톤에만 전념해야 할 시기에 소속단체의 불합리한 운영으로 인해 팀을 떠나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고된 훈련을 감내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찾아온 여러 가지 역경에도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그럴수록 마라톤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으며, 자신이 타고난 폐활량의 크기를 두 배 이상으로 변화시킬 만큼의 엄청난 훈련을 묵묵히 소화해냈다. 그리하여 이봉주는 한국 마라톤 최고기록(2시간7분20초), 애틀랜타올림픽 은메달, 보스턴마라톤 우승, 아시안게임 2연패 등을 이뤄내 세계적인 톱 마라토너로 우뚝 설 수 있었다. 묵묵히 달려온 마라톤 인생은 그 무엇보다 아름답다 오인환은 마라토너들 사이에서는 달리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한 마라톤 지도자이다. 한국 마라톤 2시간7분대의 기록 3개를 모두 현장에서 직접 지휘했을 뿐만 아니라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보스턴, 런던, 로테르담, 후쿠오카, 도쿄, 밀라노 등 숱한 A급 국제대회를 가장 많이 경험한 마라톤 감독이기 때문이다. 1994년 코오롱 마라톤팀에서 오인환과 이봉주는 코치와 선수로서 첫 만남을 갖게 되었다. 당시 황영조 등 마라톤 간판스타들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던 이봉주였지만 오인환은 그의 성실한 훈련 태도와 착한 심성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 이후 크고 작은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며 이봉주가 1996년 동아마라톤대회와 애틀랜타올림픽을 통해 당당하게 세계 톱 마라토너 대열에 오를 수 있도록 곁에서 훈련을 도왔다. 또한 이봉주가 슬럼프에 빠져 은퇴의 위기에 내몰렸을 때는 다시 재기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다가 1999년 코오롱을 떠난 오인환은 자신을 따라 팀을 나온 이봉주를 소속도, 스폰서도 없는 어려운 상황 아래에서 직접 훈련시켜 2000년 2월 도쿄마라톤대회에서 이봉주가 한국 최고기록(2시간7분20초)을 세우는 쾌거를 이루어내도록 했다. 고되고 힘겨운 나날들을 함께 보낸 오인환과 이봉주는 ‘바늘과 실’이라 불리며 벌써 10년이 넘게 한국 최고의 감독과 선수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금 한국 마라톤의 중심에는 오인환 감독과 이봉주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오인환 감독이 직접 말하는 마라톤과 이봉주의 이야기는 이봉주와 함께 달려온 기간 동안의 훈련 과정, 국내외 각종 대회를 준비하고 출전했던 이야기들을 고스란히 담은 기록이자, 살아 있는 마라톤의 역사라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