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한국의 독자들에게
제1장 역사에 구멍 내기 제1부 문제는 하나 제2장 야수의 뱃속 제3장 아파르트헤이트 2탄 제4장 쇼핑중단파 교회 제5장 남근덮개 혁명 제2부 정답은 많다 제6장 시작의 끝 제7장 땅과 자유 제8장 꿈꾸는 캘리포니아 제9장 폭풍전야 활동거점 목록 |
김정아의 다른 상품
|
나는 멕시코에 있던 친구의 전화를 통해 이경해씨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습니다. 통화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그게 2003년 9월이니까, 이 책의 영어본 초판이 나오고 다섯 달이 지난 후였습니다. 멕시코 깐꾼(Cancun)에서 세계무역기구(WTO) 회의가 열렸고, 회의장 주변에서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끈질긴 시위가 계속되었습니다. 한국 농민대표단 소속의 이경해씨도 시위에 참여했고, 제 친구는 그의 죽음을 아주 가까이에서 목격했습니다. 그는 WTO 대표단과 시위대를 갈라놓은 담장 위로 기어올라가 큰 소리로 항의한 후 주머니칼로 자기 가슴을 찔렀습니다. 이 이야기를 전하는 제 친구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내몰렸어. 세계화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야.”
이경해씨의 자살로 전세계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영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언론의 일차적인 반응은 당혹감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왜 그랬지? 미쳤나? 어디 아픈가? 무슨 일이 있었기에 사람이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린 걸까? 한국 농민운동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습니다. 인도·브라질·인도네시아·프랑스 등 많은 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역사가 있습니다. 기업세계화는 중소기업과 지역사회와 비서구문화와 전세계 생태계를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농촌을 죽이고 농민을 죽입니다. 그리고 이경해씨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전세계의 언론과 정치조직은 이런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언론과 정치조직은 기업세계화를 치켜세우며 자화자찬하기에 바쁩니다. 기업세계화가 얼마나 잘 굴러가는지, 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부(富)’가 창출되는지, 얼마나 많은 기업이 규모를 늘리고 있는지, 얼마나 많이 ‘성장’하는지, 세계가 얼마나 서구화되고 ‘근대화’되는지 말입니다. 정치조직과 기업언론의 메씨지는 단순합니다. 세계화, 즉 서구식 경제를 온 세상에 전파하는 것은 좋은 거야. 세계화는 잘 돌아가고 있어. 세계화에 반대하는 몇몇 놈들은 독불장군이자 아웃싸이더이자 불순분자이자 몽상가야. 무시해버려. 곧 사라질 테니까. 그러나 이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세계경제가 고착되고, 권력을 쥔 자들이 점점 강해지고, 힘없는 사람들이 점점 자기 것을 잃어가는 지금, 이들은 이경해씨처럼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수백만이 넘습니다.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들의 메씨지 또한 분명합니다. 세계화는 제대로 굴러가지 않고 있어. 세계화는 우리를 죽이고 있고, 우리의 소중한 것들을 죽이고 있어. 우리는 세계화에 맞서 싸우겠어. 이 책이 처음 나온 2003년 4월 이후, 이 책에서 묘사한 두 흐름인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점진적 확산과 그에 맞선 거대한 반발세력의 확대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세계가 2001년 9월 11일을 기점으로 ‘완전히 변했다’는 말이 주기적으로 들려옵니다. 그러나 우리 귀에 들려오는 많은 말이 그렇듯이, 이것은 미국 특유의 관점입니다. 사실 변한 것은 거의 없습니다. ‘자유시장’ 경제는 계속해서 급속도로 확산됩니다. 확산속도는 더 빨라진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첫 장엔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반대하는 사빠띠스따(Zapatista)반란이 나오는데, 이 협정은 지금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나라가 자유시장의 마수에 걸려드는 상황입니다. 물론 반발하는 나라도 많습니다. 브라질은 좌파대통령을 뽑았고, 볼리비아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 뻔했습니다. ‘워싱턴컨쎈써스’의 실패한 정책을 따르던 시기에 엄청난 부채를 진 아르헨띠나는 지금 빚을 갚지 않고 있습니다. 아르헨띠나 지역사회의 ‘인민회의’에서도 사람들이 정책을 바라보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한편, 아프리카 많은 나라에서 공공설비의 사유화에 맞선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고, 인도 농부들은 국가의 경제모델을 거부하고 있으며, 기업식민주의에 맞선 저항운동이 아시아와 유럽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라크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진짜 이유가 아직도 궁금한 사람은 미국당국이 이라크 정복 후 무슨 짓을 했는지를 보면 됩니다. 은행·통신·기초설비를 비롯해서 200개가 넘는 기업이 민영화되었고, 대부분 미국기업과 영국기업으로 넘어갔습니다. 기업세금이 대폭 줄었고, 외국인투자금지법이 없어졌습니다. 초국적기업들이 이라크로 몰려들어, 국가경제를 사들이고 있습니다. 명목상의 ‘주권’은 새로 생긴 이라크 임시정부에 있지만, 초국적기업들은 이라크경제가 영원히 외국기업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사례를 더 들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는 한 가지 사실만 확인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세계화는 계속되고, 세계화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세계화의 폐해는 줄어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희망은 있습니다. 이 책에 기록된 세계적 차원의 저항운동 역시 점점 빠르게 그리고 점점 강하게 진행되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이러한 저항운동은 지구상에 있는 모든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겨우 시작일 뿐입니다. --- 한국의 독자들에게 |
|
전세계 저항운동의 심장부를 향해 여행을 떠나다
폴 킹스노스는 2001년 갑자기 여행을 떠났다. 그 전해 9월 프라하에서 있던 세계은행(IBRD)과 국제통화기금(IMF)의 연례회의를 막기 위한 시위에 참가해서 얻은 교훈 때문이었다. 좌파든 우파든 옛 답을 갖고는 도무지 새롭게 생긴 문제를 해석할 수 없었다. 그는 당시 『에콜로지스트』라는 잡지를 편집했다. 그와 그가 일하던 사무실에는 매일 세계 각지에서 반체제 저항, 반란, 봉기에 관한 소식이 전해졌다. 물론 ‘주류’언론은 이런 얘기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새로운 정치운동,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는 국제적 규모의 새로운 정치운동이 탄생한다는 걸 직감했다. 그리고 떠났다. 그 운동의 정체가 뭔지, 그 운동이 어디에서 시작한 것인지 알고 싶어 떠난 여행이었다. 그리고 여덟 달 동안 다섯 개 대륙을 여행했다. 이 책은 그 여행기록이다. 세계 최초의 탈근대혁명, 사빠띠스따혁명 맨 처음 그가 도착한 곳은 멕시코의 치아빠스(Chiapas). 1994년 사빠띠스따(Zapatista)혁명이 일어난 곳이다. 물론 아직도 그곳에선 혁명이 ‘진행중’이다. 많은 사람들은 사빠띠스따혁명을 두고 최초의 ‘탈근대혁명’이라고 부른다. 멕시코 남부에 있는 농민게릴라들의 봉기에 이렇듯 큰 이름을 주는 까닭은 무엇일까? 혁명의 전개과정은 유명세 비하면 그렇게 극적(劇的)이지 않다. 왜일까? 킹스노스는 치아빠스에서 그 이유를 알아버렸다. 그는 이들이 원하는 게 다른 게릴라들이 원했던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알아냈다. 그들이 원한 것은 ‘권력의 쟁취’가 아니었다. 그들은 자기 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것이 목표였다. ‘자치’가 목표였던 것이다. 멕시코정부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추종하며 개방정책을 펴는 동안 치아빠스의 민중들에겐 옥수수 몇알만 남게 되었다. 멸종 직전에 몰린 것이다. 그들은 싸우기로 결심했다. 별다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씨애틀에서 제노바로, 그리고 볼리비아의 꼬차밤바로 그의 발길은 곧 이딸리아의 제노바(Genova)로 향한다. 그곳에서는 G8 정상회담이 열리고, 그 회담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질 예정이었다. 킹스노스가 주목하는 새로운 대중운동의 이념은 치아빠스에서 마련되었지만, 그 기틀은 1999년 씨애틀에서 세워졌다. 세계무역기구(WTO) 무역라운드에 반대하며 일어난 씨애틀행진을 가리켜 사람들은 최초의 ‘탈근대’ 가두시위라고 부른다. 이를 계기로 사람들은 적(敵)의 윤곽을 그리기 시작했다. 적은 바로 ‘세계화’였다. 제노바시위는 새로운 대중운동의 원칙을 확인하는 기회였다. 사빠띠스따가 전 세계 저항세력의 지도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제노바시위에는 지도자도 없었고, 지도이념도 없었다. 씨애틀시위와 마찬가지였다. ‘세계화’란 한 문제에 머리를 모았지만, 자기 답‘만’이 ‘보편적’ 진리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었다. 왜 ‘One No, Many Yeses’가 이 책의 원제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어 킹스노스는 볼리비아의 꼬차밤바(Cochabamba)로 갔다. 그곳에서 열리는 세계주민행동당(PGA)의 국제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인터넷과 휴대전화로 무장한 새로운 조직운동을 그는 몸소 체험한다. 스워밍(swarming)이라고 불리는 조직화방식으로 오늘날의 저항운동은 새로운 힘을 얻었다. 주류세계화의 동력이었던 인터넷이 저항세계화에 이바지하는 아이러니를 겪은 것이다. 사실 PGA의 국제대회도 인터넷과 휴대전화로 가능했다. 그는 거기서 한 강연을 듣는다. 강사는 꼬차밤바 물전쟁의 지도자 오스까르 올리베라(Oscar Olivera)였다. 올리베라가 전한 이야기는 이랬다. 볼리비아는 1985년 이후 세계화정책을 충실히 따랐다. 그 결과 라틴아메리카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가 되었고, 상수도마저 초국적기업에 넘어갔다. 초국적기업은 그 가난한 나라의 민중들에게 기존 물값의 300%나 되는 물값을 징수했다. 월 60달러로 사는 가정에 15달러의 물값 청구서가 날아든 것이다. 곧 도시기능은 마비됐다. 이른바 꼬차밤바의 물전쟁이라고 불리는 시민총파업이 세계화정책을 등에 업은 초국적기업과 볼리비아정부를 상대로 싸움을 벌였다. 자국의 국제적 신인도를 운운하면서 초국적기업 편에 섰던 정부는 곧 게엄령을 선포했고, 군중을 향해 총을 쐈고, 17세 소년이 죽었다. 급기야 물전쟁은 볼리비아 전역으로 번졌다. 결국 볼리비아정부는 손을 들었고, 초국적기업은 쫓기듯 볼리비아에서 철수했다. 올리베라 이야기의 핵심은 이 한마디에 들어 있다. “우리 할 수 있어요. 해보니까 알겠어요.” 그렇다면 국가란 무엇인가? 남아공에서 묻다 국가는 세계화의 시녀일 뿐일까? 보수적인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정당성 있는 세력도 있지 않은가? 킹스노스는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남아공으로 간다. 그는 그곳에서 ‘국가’에 너무 희망을 걸면 안된다는 결론을 얻는다. 아파르트헤이트정부가 무너지고 정권이 바뀌면서, 남아공의 흑인들은 새 정부에 희망을 걸었다.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전설적인 지도자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는 신화 그 자체였고, ANC정권은 정의의 수호자를 자처했다. 그러나 지금 남아공 흑인들은 아파르트헤이트정권 때보다 살기가 더 어렵다. 정부가 세계자본의 눈치를 보느라 사회복지비용을 대폭 줄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남아공의 경제정책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보수적이다. 쏘웨토시 근처에는 전기 공급이 중단된 가정에 무단으로 전기를 ‘훔쳐’ 연결해주는 쏘웨토전력위기위원회(SECC)란 단체까지 있는 형편이다. 킹스노스는 남아공 집권당의 고위층을 찾아가서는 왜 이 나라가 아파르트헤이트 때보다 못 사냐고 다그친다. 관료는 예의 관료다운 응답을 한다. 그러나 관료의 언급은 그가 얻은 결론을 더욱 굳게 만들어준다. ANC는 자신들이 진보세력이라고 자처하지만, 결국 그들은 워싱턴의 경제정책을 따르는 관료집단일 뿐이었다. 문화전쟁과 대기업반대전쟁의 전사를 만나다 세상에는 세계화에 맞서 각개전투를 벌이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광고판에 장난을 치거나 고위인사에 파이를 던지거나 인터넷 대안매체를 만들거나 지역 내 대기업의 횡포에 맞서면서 세계화에 저항한다. 킹스노스는 이들의 말에도 귀를 기울인다. 소비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은 광고에 길들여져 있다. 소비와 행복을 구분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세계화의 전략은 이런 서구인의 생활상, 즉 환상을 전세계로 퍼뜨리는 것이다. 세계화는 경제의 획일화인 동시에 문화의 획일화다. 전지구적 시장이 생기려면 전지구적 취향이 필요하고, 전지구적 취향이 생기려면 전지구적 가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문화전쟁이 의미를 갖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 전사를 만나러 그는 전장 한복판으로 달려간다. 물론 미국이다. 그곳에서 그는 여러 부류의 집단과 인간을 만난다. 쇼핑중단파라는 야릇한 교파를 연 목사를 만나고, 대형할인매장에서 조직적으로 물건을 샀다 반품하는, 즉 그들의 영업을 조직적으로 방해하는 그룹을 만나고, 파이세례를 무척 중요한 투쟁방식으로 여기는 집단을 만난다. 또 있다. 킹스노스는 초국적기업의 권한과 영향력을 미국의 소도시에서 제어하려는 여러 움직임도 만난다. 그들의 투쟁방식은 좀더 소박하고 현실적이다. 지방법을 발의해 주민투표를 이끌어내고, 송사(訟事)를 반복하며 개인적 이해를 사회적 의제로 환원한다. 소도시 자영업자들의 동맹을 만들어 대기업의 횡포에 조직적으로 항의하고, 때로는 그 큰 미국을 횡단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한다. 물론 미국에서 벌어지는 이 모든 투쟁의 핵심에는 미국혁명의 이념이 자리하고 있다. 킹스노스는 이 흐름을 무척 흥미롭다고 평한다. 이념과 세대를 초월해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가능성을 조심스레 전망하는 것이다. 세계시장을 돌리는 윤활유, 서파푸아 세계화로 가장 고통을 받는 것은 남반구 사람이고, 빈민층이고, 주변부 원주민이다. 킹스노스는 세계화의 진짜 피해자를 만나러 서파푸아를 찾아간다. 서파푸아는 세계화를 굴러가게 하는 온갖 자원으로 가득한 곳이다. 서파푸아의 근대사가 만행과 수난의 역사였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정부가 대대적인 인종청소를 단행했던 것도, 초국적기업이 들어와 5만 년 동안 살아온 땅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은 것도 다 그 때문이다. 세계시장을 돌리는 윤활유는 파푸아인들이 흘리는 피라고 그는 분노하며 말한다. 인도네시아에서 독립하기 위해 싸우는 서파푸아 사람들을 그는 접선하듯 만났다. 물론 서파푸아의 역사를 거듭 씹어볼 수밖에 없었고, 글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특히 이 글에 나오는 갖가지 사연은 식민지를 겪은 우리네 경험과 중첩된다. 남의 얘기 같지 않은 것은 이 탓이다. 인도네시아 주요 섬에서 강제이주당한 ‘2등 국민’들이 되레 서파푸아 원주민들을 탄압하는 이야기도 그렇고, 산 속에서 어렵게 만난 게릴라대장이 그에게 무작정 무기를 구해달라는 장면은 그저 여행기에서 만날 수 있는 에피쏘드로만 읽히지 않는다. 또 하나의 실험을 만나다 킹스노스는 브라질 남동부의 뽀르뚜알레그리(Porto Alegre)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WSF)에 참가한다. 그는 세계경제포럼(WEF)과 같은 시기에 열리는 세계사회포럼을 들끓는 ‘용광로’라고 표현한다. 세계 각지에서 온 다양한 운동가들이 한데 모여 격정적으로 토론하고 논쟁하고 시위를 벌이고 노는 이 포럼을 달리 뭐라 표현할 수가 없다는 거다. 하긴 1만 2,000명이나 되는 참가자에 일정표만 해도 타블로이드판으로 155면이 되니 그의 말대로 일정을 소화하는 것만도 애초부터 불가능했을 터다. 일주일이란 행사기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세계사회포럼 역시 한 개인이나 단체가 이 행사를 책임지거나 대변하지 않고 ‘최종선언문’을 채택하지 않으며 하나의 정당이나 이념이 독점하지 않는다. 킹스노스가 주목하는 이른바 새로운 형태의 운동, 그대로다. 그리고 그는 브라질의 ‘토지 없는 농민운동’(MST)의 현장도 취재했다. 1979년 브라질 남단의 리우그란디두쑬(Rio Grande do Sul)주에서 땅이 없던 일군의 농민들은 부재지주가 소유했지만 오랫동안 버려진 사유지를 점거하고 자신들의 소유권을 주장했다. 가톨릭교회의 지원과 여론의 도움으로 농민들의 점거는 기적적으로 성공했다. 주정부가 소유권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이들 토지 없는 농민들은 전국적으로 사유지 점거에 나선다. 그리고 그들이 1984년에 모여 만든 것이 MST였다. 이들의 행위는 절도인가, 정의인가? 킹스노스가 던진 질문이다. 그러나 현실의 MST는 이미 ‘땅에서 살고 땅에서 일하는 이들이 땅을 갖는 사회’란 새로운 토지개혁 모델로 자리를 잡았다. 지난 20년 동안 남한의 약 2.1배에 해당하는 땅에 30만 세대의 극빈가구가 정착했다. 그 힘은 물론 MST에서 나왔다. 이미 MST는 라틴아메리카 최대의 사회운동이 된 것이다. 지금도 진행중인 이 운동의 핵심으로 달려가 그는 그들의 생활과 꿈, 그리고 문제점 등을 낱낱이 살폈다. 물론 브라질의 집권세력은 토지개혁이 자신들의 업적이라고 자찬하고 나섰다. 박진감 넘치는 르뽀가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킹스노스의 글은 쉽고도 박진감이 넘친다. 특정한 이념적 틀에 얽매이지 않고 사회현상과 사물을 느낀 대로 본 대로 적은 탓일 것이다. 이 글은 여행의 기록인 동시에 세계화에 맞선 투쟁의 기록이고, 세계화의 만행과 현지인의 고통의 기록, 그 역사의 기록이다. 그가 제안한 대안의 수립과정은 비교적 간단하다. 신자유주의가 세력을 떨칠수록 고통을 받는 사람은 늘어난다. 고통을 받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대안은 필요하게 되고, 대안을 찾는 사람도 늘어난다. 그 사람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고 대안을 내놓는다. 그가 전한 대안은 이미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구한 것이다. 가령, 투기자본을 규제하자, 국제연합(UN)을 활성화하자 등이 그렇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게 있다. 자치마을에서 함께 생활해본 그에게 돈을 비롯한 경제적 수치는 행복의 전부가 아니었다. 주민들은 자신들의 삶에 만족하며 살고 있었고, 그도 그걸 느꼈다. 그들은 부당한 것엔 반대할 수 있었고, 잘못된 것은 고칠 수 있었다. 요컨대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는 걸 느끼면서 살고 있었다. 이 여행을 통해 킹스노스가 깨달은 가장 큰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스스로 자유롭다는 것을 아는 삶! 그는 이런 삶을 살기 위해 세계화에 반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