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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꾼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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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서문ㆍ7

『이야기꾼 에세이』
요한 페터 헤벨ㆍ35
소설의 위기: 되블린의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에 관하여ㆍ48
산딸기 오믈렛ㆍ62
리스본 지진ㆍ65
오스카 마리아 그라프: 이야기꾼ㆍ77
속담에 관하여ㆍ83
손수건ㆍ85
이야기와 치유ㆍ94
소설 읽기ㆍ96
이야기 기술ㆍ98
벽난로에서: 한 소설의 출간 25주년을 기념하며ㆍ102
경험지와 부족함ㆍ112
이야기꾼: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작품에 대한 고찰ㆍ124

다른 저자들의 글
침묵과 거울 에른스트 블로흐ㆍ177
거인들의 장난감: 영웅담 에른스트 블로흐ㆍ182
마리 모니에의 수예 폴 발레리ㆍ194
『소설의 이론』 중에서 게오르크 루카치ㆍ197
슬픔에 대하여 미셸 드 몽테뉴ㆍ210
『역사』 중에서 헤로도토스ㆍ219
『보물상자: 온 가족의 친구』 중에서 요한 페터 헤벨ㆍ223

텍스트 출처ㆍ234
찾아보기ㆍ236

저자 소개3

발터 벤야민

관심작가 알림신청
 

Walter Bendix Schonflies Benjamin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은 독일 출신의 유대계 언어철학자, 번역가, 좌파 지식인으로서 한때 20세기 독일어권 최고의 비평가로 자처하기도 했다. 베를린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베를린, 프라이부르크, 뮌헨 대학 등에서 철학을 공부하던 중 나중에 평생의 친구이자 유대사상에서 지적 동반자가 된 게르숌 숄렘을 만난다. 전쟁을 피해 스위스로 간 그는 1919년 「독일 낭만주의의 예술비평 개념」에 대한 연구로 베른 대학에서 최우등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신문과 잡지에 기고를 하고 번역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한다. 1924년 교수자격 논문인 「독일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은 독일 출신의 유대계 언어철학자, 번역가, 좌파 지식인으로서 한때 20세기 독일어권 최고의 비평가로 자처하기도 했다. 베를린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베를린, 프라이부르크, 뮌헨 대학 등에서 철학을 공부하던 중 나중에 평생의 친구이자 유대사상에서 지적 동반자가 된 게르숌 숄렘을 만난다. 전쟁을 피해 스위스로 간 그는 1919년 「독일 낭만주의의 예술비평 개념」에 대한 연구로 베른 대학에서 최우등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신문과 잡지에 기고를 하고 번역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한다.

1924년 교수자격 논문인 「독일 비애극의 원천」을 집필하지만 아카데미 세계로 진출하려던 계획은 결국 좌절하고 만다. 같은 해에 알게 된 연인 아샤 라치스 이외에 나중에 베르톨트 브레히트에게서 유물론적 사유의 영향을 받으면서 비평, 번역, 방송활동을 펼쳐나간다. 파시즘의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한 유럽에서 스스로를 ‘좌파 아웃사이더’로 이해한 그가 택한 길은 교조적 마르크스주의에 거리를 두고, 유대 신학적 사유와 유물론적 사유, 신비주의와 계몽적 사유 사이의 미묘한 긴장을 유지하면서 아방가르드적 실험정신에 바탕을 둔 글쓰기를 통해 현대의 변화된 조건 속에서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성찰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이었다.

1940년 벤야민은 당시 뉴욕에서 사회연구소(프랑크푸르트학파)를 이끌던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지원을 받아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하기 위해 프랑스를 탈출하던 중 스페인 국경 통과가 좌절되자 자결한다. 그로써 그가 13년간 매달렸던 프로젝트, 즉 마르크스의 ‘상품물신’의 구상을 상부구조(문화) 전체에 적용하여 19세기 자본주의와 모더니티의 근원을 고고학적으로 탐구하려던 필생의 저작 『파사젠베르크』(Das Passagen-Werk)는 미완으로 남는다. 스탈린-히틀러의 밀약을 접한 충격에서 쓴 유물론적 역사철학의 결정체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일명 ‘역사철학테제’)는 그가 남긴 최후의 글이다.

발터 벤야민의 다른 상품

새뮤얼 타이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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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uel Titan

브라질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편집자이자 문학 번역가. 프랑스, 독일, 아르헨티나 작가들의 여러 작품을 포르투갈어로 번역했으며, 에리히 아우어바흐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에세이 선집을 편집했다. 현재 상파울루대학에서 비교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연세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했고 동대학원에서 석사를, 비교문학과에서 「모든 매체는 영매다: 소설의 재현과 영화의 복제에 나타난 주-객 매개 비교」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문학, 이론, 번역 강의를 하고 있다. 「정확하고 유려하게 : 『오만과 편견』의 번역을 중심으로」, 「학교엔 귀신이 산다」 등의 논문을 발표했고, 옮긴 책으로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 『발터 벤야민 또는 혁명적 비평을 향하여』, 『죽은 신을 위하여』, 『감정 자본주의』, 『눈과 마음』, 『아나키즘, 대안의 상상력』, 『슬럼, 지구를 뒤덮다』, 『폭풍의 언덕』, 『오만과 편견』, 『동물들
연세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했고 동대학원에서 석사를, 비교문학과에서 「모든 매체는 영매다: 소설의 재현과 영화의 복제에 나타난 주-객 매개 비교」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문학, 이론, 번역 강의를 하고 있다. 「정확하고 유려하게 : 『오만과 편견』의 번역을 중심으로」, 「학교엔 귀신이 산다」 등의 논문을 발표했고, 옮긴 책으로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 『발터 벤야민 또는 혁명적 비평을 향하여』, 『죽은 신을 위하여』, 『감정 자본주의』, 『눈과 마음』, 『아나키즘, 대안의 상상력』, 『슬럼, 지구를 뒤덮다』, 『폭풍의 언덕』, 『오만과 편견』, 『동물들의 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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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10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242쪽 | 280g | 128*188*16mm
ISBN13
9791167903280

책 속으로

책의 운명이라는 것이 있다. 에세이의 운명이라는 것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야기꾼」의 운명은 한 편의 글이 가는 길이 얼마나 놀라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1933년에 독일을 장악한 나치를 피해 망명을 떠난 독일 유대인이 생계유지의 일환으로 쓴 글이라는 것, 훌륭하기는 하지만 널리 읽히지는 않는 러시아 작가를 논의하겠다고 하는데, 그러면서 자꾸 다른 주제들로 넘어간다는 것, 이 글을 실어준 스위스의 특이한 잡지는 1937년에 이 글이 게재된 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되는데, 당시 이 잡지의 구독자 수는 35명이었다는 것, 이 글의 저자는 그로부터 3년 뒤에 나치에게 점령당한 프랑스를 탈출하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그러면서 사방팔방의 비평 작업과 방대한 분량의 미완성 원고를 남겼다는 것. 이 중 어떤 것도 성공담을 구성하는 소재로는 보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발터 벤야민의 「이야기꾼」은 지금 20세기의 문학 에세이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가 되어 있다. 문학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너무나 잘 알려진 글이고, 인류학, 매체학, 문예창작 같은 분야에서도 자주 읽을거리로 추천되는 글이다. 이 글이 처음 나왔을 때 아무런 조명도 받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운명의 놀라운 반전이다.
--- p.9~10

역사가는 “세계사”를 다루는 반면에 연감 편찬자는 세상만사를 다룹니다. 역사가는 원인과 결과의 무한한 얽힘으로 이루어진 사건들의 그물망에 관심이 있지만, 그가 배우거나 알아낸 것들을 모두 합친다 해도 그 그물망의 작은 매듭 하나에 불과합니다. 한편 연감 편찬자는 자기가 사는 도시나 지역이라는 좁은 반경 안에서 일어나는 작은 사건들에 관심이 있지만, 그에게 그 작은 사건은 큰 전체를 구성하는 작은 요소들 중 하나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큰 전체보다 오히려 더 중요한 무언가입니다. 진정한 연감 편찬자는 연감을 써내면서 세상만사의 우화를 함께 써내기 때문입니다. 연감 편찬자가 써내는 현지 역사와 세상만사에는 소우주와 대우주의 오랜 어울림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 p.41

약국에 가서 기다리면서 약이 처방대로 조제되는 모습을 구경해본 적이 다들 있잖아요? 약사는 모든 재료와 입자를 대단히 정밀한 저울에 올리고 1그램씩, 0.1그램씩 달아 약을 조제하지요. 나는 이렇게 라디오에서 뭔가 이야기할 때는 그런 약사가 되는 것 같아요. 이야기 시간을 1분씩 저울에 올리고 이 내용은 몇 분, 저 내용은 몇 분, 그렇게 정확한 비율로 이야기를 조제하거든요. 여러분은 묻겠지요. “헤에? 왜요? 리스본 지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으면, 지진이 어떻게 시작되었나로 시작하면 되잖아요? 그런 다음에는 지진이 났을 때 무슨 일이 생겼나를 쭉 이야기하면 되잖아요?” 하지만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요. 한 집 또 한 집 무너지는데, 한 가족 또 한 가족 목숨을 잃는데, 번지는 불길의 공포, 해일의 공포, 어둠, 약탈, 부상자들의 참상, 실종자들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의 울부짖음…… 이런 이야기, 이런 내용밖에 없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이런 내용은 모든 대형 자연재해에 대한 이야기에 거의 똑같이 들어가고요.
--- p.65~66

〈벨베르호〉에서 그렇게 바르셀로나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나는 불과 몇 시간 전에 작별을 고했던 O선장을 떠올렸다. 그는 내가 살면서 만난 최초의 이야기꾼이었고, 앞에서 말했듯 이야기 기술이 사라져가고 있으니, 그는 아마도 내가 살면서 만날 최후의 이야기꾼일 것이다. 그가 선미 갑판을 오가며 종종 멀리 시선을 던지곤 했던, 그 끝없이 지루해 보였던 시간을 떠올릴 때, 그제야 나는 왜 이야기 기술이 사라져가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권태로워하지 않는 사람은 이야기꾼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삶에서 권태의 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권태와 은밀하고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행위들이 사라지고 있다.
--- p.86

이야기의 치유력에 대해 우리는 메르제부르크 마법서가 존재하는 덕에 이미 알고 있다. 이 마법서는 오딘의 주문을 베끼는 데 그치지 않고 오딘이 애초에 어떤 상황에서 그런 말을 주문으로 사용하게 되었는지까지 이야기해준다. 또한 우리는 치료 초기에 환자가 의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치유 과정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이야기는 많은 경우 치유의 적절한 환경과 조건을 조성할 수 있지 않을까? 병을 이야기의 강물 위로 흘러가게 할 수만 있다면, 병이 그렇게 충분히 긴 강을 따라 하구까지 흘러갈 수만 있다면, 어떤 병이라도 치유될 수 있지 않을까?
--- p.94~95쪽

독자가 왜 자꾸만 소설에 끌리느냐 하면, 소설의 가장 불가사의한 선물 때문이다. 덜덜 떨리도록 추운 삶을 죽음이라는 불로 따뜻하게 데워주는 것이 소설이다.
--- p.111

경험지의 값이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보아 하니 점점 더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경험지의 값이 또 한번 바닥을 쳤다는 것, 외부 세계의 풍경뿐 아니라 인륜 세계의 풍경마저 하루아침에 설마 했던 정도로 변했다는 것이 신문을 볼 때마다 증명되고 있다. ……경험지가 거짓이라는 것이 이렇게까지 근본적으로 까발려진 것은 처음이었다. 전략 영역의 경험지가 거짓이라는 것은 진지전에 의해, 경제 영역의 경험지가 거짓이라는 것은 인플레이션에 의해, 신체 영역의 경험지가 거짓이라는 것은 물량전에 의해, 인륜 영역의 경험지가 거짓이라는 것은 권력자들에 의해 까발려졌다. 마차철도를 타고 학교에 다닌 세대가 하늘 아래 서 있을 때, 그 풍경 속에서 예전 그대로인 것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 그리고 파괴적으로 쓸어버리고 부숴버리는 힘의 장場에 서 있는 작고 약한 인간의 몸뿐이었다.
--- p.125~126

이야기 기술이 왜 소멸해가는가 하면, 진실의 대서사적 측면, 곧 지혜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몰락하기까지의 과정은 일찍이 세속화와 함께 시작되었다. 이것을 그저 “몰락의 현현”으로 보려고 하는 것, 하물며 몰락의 “현대적” 현현으로 보려고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을 것이다. 세속사회의 역사 속에서 생산력들이 발전하면서 나타난 부수 현상일 뿐인 이 과정은 살아 있는 언어의 장으로부터 이야기꾼을 서서히 몰아낸 동시에 그렇게 사라져가는 속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 p.131

이야기를 좀더 오래 기억하고 있으라고 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심리 분석을 하지 않는 것, 설명을 자제하면서 간결하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쪽이 심리적 설명을 자제하는 데 더 자연스럽게 성공할수록, 듣는 쪽이 그 이야기에 기억의 한 자리를 내줄 가능성은 더 커지고, 그 이야기는 듣는 쪽의 경험지에 더 온전히 녹아들게 되고, 그 이야기를 조만간 다른 사람에게 다시 들려주고 싶은 마음은 더 강해진다. 청자의 심신에서 심층적으로 일어나는 이 흡수 과정은 이완의 상태를 필요로 하는데, 이완 상태에 있을 기회가 점점 드물어지고 있다. 수면이 육체적 이완의 정점이라면, 권태는 정신적 이완의 정점이다. 권태라는 꿈꾸는 새가 경험지라는 알을 품는다.
--- p.139

이야기꾼이 자기 재료, 곧 인생과 맺고 있는 관계 자체가 수작업적인 것이 아닐까? 이야기꾼의 과제는 경험이라는 원료를 견고하고 쓸모 있는 독창적인 방식으로 가공하는 것이 아닐까? 속담이 이야기의 상형문자라고 치면, 그런 가공이 어떤 가공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속담인 것 같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속담은 옛날에 있었던 일들의 폐허이고, 거기서 윤리는 담쟁이가 담에 붙어 자라듯 태도에 붙어 자란다고. 이렇게 본다면, 이야기꾼은 스승과 현자의 부류에 속한다.
--- p.172

귀한 것들 중에 어떤 것들은 적절한 조건들이 우연히 일치하는 몹시 드문 경우에만 생겨난다. 다이아몬드, 행복, 대단히 정결한 감정이 그런 것들이다. 하지만 그중에 또 어떤 것들은 대수롭지 않은 사건들과 필수적인 지원들의 무수한 축적을 통해 만들어진다.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고, 시간이 필요한 것 못지않게 평온함이 필요하다. 고급 진주, 깊은 맛이 나는 잘 익은 포도주, 온전히 성숙한 인격은 끊임없이 주어지는 비슷비슷한 이익을 느릿느릿 쌓아나가는 더딘 축재 과정을 연상시킨다. 탁월함을 쌓는 과정은 완벽함에 도달할 때까지 지속된다.

--- p.194

출판사 리뷰

『이야기꾼 에세이』, 10여 년에 걸친
치열한 사유의 결정체이자 다양한 시도의 콜라주


「이야기꾼」은 지금까지 가장 많이 인용되는 벤야민의 글 가운데 하나로, 그의 “비평가적 역량이 지진계처럼 예민하게 드러난 글”이다.「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과 「보들레르의 몇 가지 모티브에 관하여」와 나란히 그의 저작의 중심부에 위치한다. 「이야기꾼」은 벤야민의 베를린 학창 시절에 시작되어 1920년대 후반기에 추진력을 얻은 긴 사유의 결과물로, 그가 1926년부터 1936년까지 발표한 에세이, 신문기사, 서평, 단편 등등의 여러 글에서 시험한 개념, 심상, 논의들이 이 글로 최종 수렴된다. 『이야기꾼 에세이』는 「이야기꾼」과 이러한 글들을 함께 엮어냄으로써 벤야민의 생각들이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더 분명히 드러내고자 했다. 「요한 페터 헤벨」(1926)에서는 “역사가는 세계사를 다루는 반면, 연감 편찬자는 세상만사를 다룬다”라며 이미 이야기꾼과 정보제공자의 구별을 예고하고, 뒤이어 라디오 강연집인 「리스본 지진」(1931)에서는 이야기꾼의 목소리로 재앙을 전하며 한 도시의 재난을 세계사의 파장으로 확장하고, 경험·전통·서사의 연결을 라디오라는 매체 속에서 실험한다.

「손수건」(1932)에서는 실제 이야기꾼의 구술 형식을 구현하며 벤야민의 서사적 실험을 절정으로 끌어올린다. 이어서 「경험지와 부족함」(1933)에서는 기술 문명과 전쟁이 인간의 경험과 전통을 어떻게 붕괴했는지 분석하며, 벤야민 사유의 핵심 주제인 ‘경험의 상실’과 ‘새로운 시작’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한다. 이처럼 서로 다른 형식의 텍스트들이 서로 반향하며, 종국에는 「이야기꾼」(1936)에서 모든 조각이 하나의 콜라주로 결합한다. 이렇듯 이 책은 ‘이야기 기술의 종언’을 이야기하기 위해 벤야민 자신이 거쳐야 했던 이야기의 과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데, 이를 통해 각각의 글이 그의 더 큰 주제들과 어떻게 공명하며, 벤야민의 글쓰기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 역동을 일별할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의 중요한 의의 중 하나다.

“이야기란 삶이라는 소재에 조언을 짜 넣은 것,
그것이 바로 서사 진리이자 삶의 지혜다”


벤야민의 「이야기꾼」은 ‘이야기꾼의 쇠퇴’에 대한 애도에서 시작한다. “우리에게 이야기꾼이란 이미 먼 존재이자 점점 멀어지고 있는 존재다. ……우리는 거의 매일 그 사실을 확인한다. 우리의 안전자산 중에 가장 안전했던 자산, 곧 경험을 공유하는 능력이라는 자산을 누가 훔쳐 가기라도 한 것 같다.” 이야기꾼의 부재가 남긴 침묵은 정보의 언어가 대신 채워버렸다. 사건의 끝없는 흐름, 그 무수한 설명들 속에서 정보는 과잉 상태다. “매일 아침 우리는 세계 곳곳의 뉴스 기사를 접한다. 하지만 독특한 사건을 알게 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사건들은 전부 다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으로 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벤야민은 이야기가 설명되지 않을 때 오히려 활짝 피어난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 한 가지 일화를 찾아낸다. “이집트의 왕 프사메니투는 페르시아의 왕 캄비세스에게 패배하여 포로가 되었다. 역시 포로가 된 딸이 여종 차림으로 물을 길어가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았을 때, 그는 무표정하게 땅만 내려다볼 뿐이었다. 아들이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그는 여전히 무표정했다. 하지만 곁에 두었던 하인 하나가 포로로 끌려가는 것을 본 그는 자기 손으로 자기 머리를 세게 내리치면서 통곡하기 시작했다.” 왜 그랬을까. 벤야민에 따르면, 헤로도토스는 그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는다. 이 역사적 에피소드를 두고 여전히 많은 해석이 오가는데, 시간이 흐르면 무가치해지는 정보와는 달리 이 이야기가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발아력을 간직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설명이 없다는 바로 그 지점에 있다. 그것은 “공기가 통하지 않는 피라미드의 밀폐 공간에서 지금까지 수천 년간 발아력을 잃지 않고 있는 밀알”과 같다.

이야기는 ‘신비로움’을 품고 있다. 그것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으며, 동시에 여러 의미를 지닌다. 전해질 때마다 세부가 달라지고, 새롭게 다시 쓰인다. 이처럼 이야기의 모태가 되는 경험은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는 경험이다. 이 경험이야말로 모든 이야기꾼이 이야기를 길어 올렸던 이야기의 샘으로, 세대로부터 세대로 전수되는 집단적 경험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야기는 일종의 ‘지혜의 서사’이며, 이야기꾼은 ‘삶의 공동체적 경험의 매개자’이자 삶을 영위하는 방식과 태도에 관한 ‘조언자’이다. 벤야민은 경험을 전달하는 방식을 두고 “수공업적 전달 형식” “권태와 은밀하게 연결된 행위” “검증되지 않더라도 그것에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권위”로 표현했는데, 이러한 맥락에서 이야기 기술은 ‘장인적 솜씨’에 닿아 있는 것이다. 비록 산업화·전쟁·매체 변화가 공동체와 이야기 기술의 생태를 잠식하고 있지만, 머리와 손이 다시 만나는 자리에서 그 기술은 되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

경험과 지혜의 회로가 끊긴 시대,
우리는 어떤 형식과 태도로 다시 이야기를 할 것인가


오늘날 우리는 벤야민이 예견한 세계 한가운데 있다. 우리는 이미 책이나 드라마를 보는 대신 유튜브에서 요약본을 찾아보고(그것도 배속으로), 얼굴을 보거나 목소를 들으며 대화를 나누는 대신 문자로만 메시지만을 주고받는 데 익숙하다. 경험을 나누고 공동체의 기억을 전승하는 힘이 이러한 소비적·도구적 맥락에서 사라지고, 공동체의 지혜와 경험을 매개하던 이야기꾼은 가속화된 사회에서 도파민 노예로 전락해버렸다.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생명력을 이어간다고 했다. 벤야민에 따르면 그러한 이야기가 움트기 위해서는 ‘권태’, 즉 자본의 시간 밖에서 생겨나는 멈춤의 시간이 필요하다. “권태라는 꿈꾸는 새가 경험이라는 알을 품듯이” 가만한 시간의 샘에서 이야기는 솟아나는 것이다. 삶의 여유도 없고, 지루함을 견디는 힘도 잃은 우리에게는 요원한 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벤야민은, 마치 환자가 의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치료의 첫 과정이듯이, 이야기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고 강조한다. “병을 이야기의 강물 위로 흘러가게 할 수만 있다면, 병이 그렇게 충분히 긴 강을 따라 하구까지 흘러갈 수만 있다면, 어떤 병이라도 치유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맥락에서 이 책은 오늘날의 독자에게 여전히 살아 있는 물음을 던진다. 우리는 어떻게 다시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가? 이야기는 어떻게 우리의 삶을 구원할 수 있는가? 이 책이 비단 과거의 향수가 아니라 미래의 공동체를 가능하게 할 경험의 새로운 언어를 찾는 요청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추천평

책은 벤야민의 명작 「이야기꾼」이 탄생하게 된 지적 여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며, 그 오래된 문장을 지금 여기에서 다시 숨 쉬게 한다. - 클린트 윌리엄슨 (비평가)
벤야민의 글은 공황이나 절망의 언어로 쓰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차분하고 우아한 문장들로, 책과 비평의 문화 속 깊은 곳에서 나온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가 과장하고 있다고 느껴지지만, 구원의 순간은 끝내 오지 않는다. 8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다시 읽으며 우리는 매 세대가 ‘위기’와 ‘종말’을 예견해왔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어쩌면 벤야민은 우리 시대의 문이 열리던 그 순간부터 이미 눈을 부릅뜨고 그 핵심적 징후들을 똑똑히 바라보고 있었던 건 아닐까. - 필립 오켈리 (아일랜드 작가)
에세이의 대가, 목록의 대가, 이론적 롱테이크의 대가, 단상의 대가, 아포리즘의 대가, 연설의 대가, 교육적 선언문의 대가, 심지어 서평의 대가인 발터 벤야민은 다양한 산문 형식을 자유자재로 다루었던, 진정한 산문의 거장이었 다. - 『가디언』
벤야민은 “인식은 번개 치는 순간, 텍스트는 그 뒤의 긴 천둥소리”라고 했다. 그러나 벤야민 읽기는 그 반대에 가깝다. 빽빽하고 낯선 도시에 떨어진 사람처럼 방향을 가늠해야 한다. 끝없는 천둥 같던 문장이 한 낡은 단어, 한 이미지에 머무는 찰나, 새 빛이 켜진다. - 『뉴요커』
“독일계 유대인 에세이스트 겸 문화 이론가인 발터 벤야민은 독자에게도 비평가에게도 여전히 매혹적인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그런 사람이 또 있었을까…… 없을 것 같다. 문학에 능한 철학자였고, 정치 이론과 미술사에 능통한 크리에이티브 라이터였고, 망각당하고 억압당해온 것들의 헌신적인 수집가였고, 신비주의에도 마르크스주의에 못지않은 큰 관심을 가진 채로 모더니티와 테크놀러지를 관찰하는 기민한 관찰자였다.” - 『파이낸셜 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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