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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럽 대륙을 품은 섬나라
영국 선주민의 흔적 스톤헨지 영국의 주인 켈트인 카이사르의 첫 번째 브리튼 원정 카이사르의 두 번째 브리튼 원정 클라우디우스 황제와 브리튼 정복 네로 황제와 브리튼인 들의 반란 로마의 실질적 통치 초기 기독교의 브리튼 전래 브리튼의 지방 황제들 로마군의 철수 게르만 시대의 브리튼 게르만족의 기독교 개종 데인족의 출현과 앨프레드 대왕 데인계 잉글랜드 왕 크누트 색슨계 마지막 왕, 참회 왕 에드워드 2. 잉글랜드 왕국 성립 브리튼 섬의 유일한 정복자- 노르망디 공 윌리엄 의문의 죽음을 당한 윌리엄 2세 귀족과 타협한 헨리 1세 무정부시대의 마틸다와 스티븐 플랜태저넷 왕조를 연 헨리 2세 사자심(心)왕 리처드 1세 실지(失地)왕 존 헨리 3세의 반동과 의회의 태동 독창적인 잉글랜드 왕실을 연 에드워드 1세 부친의 유업을 저버린 에드워드 2세 3. 섬에서 대륙으로, 다시 섬으로 유럽 대륙의 지배를 꿈꾸는 에드워드 3세 플랜태저넷 왕조의 문을 닫은 리처드 2세 랭커스터 가의 헨리 4세 헨리 5세와 백년전쟁 후반기 백년전쟁의 종결과 헨리 6세 요크 가의 첫 왕인 에드워드 4세 정치적 제물이 된 에드워드 5세 탐욕의 극단에 선 리처드 3세 4. 종교개혁과 절대왕정 튜더 왕조를 연 헨리 7세 영국형 종교개혁과 헨리 8세 ‘왕자와 거지’의 주인공, 에드워드 6세 ‘피의 메리’로 불린 메리 1세 국민과 결혼한 엘리자베스 1세 5. 시민권과 타협한 왕권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통합 왕이 된 제임스 1세 찰스 1세와 의회의 힘 올리버 크롬웰과 청교도 혁명 찰스 2세와 왕정복고 가톨릭을 국교를 삼으려던 제임스 2세 공동통치- 윌리엄 3세와 메리 2세 스튜어트 왕조의 마지막 왕인 앤 6. 대영제국의 흥망성쇠 하노버 가문의 첫 번째 왕 조지 1세 독일 하노버 전통을 버리지 못한 조지 2세 전제군주를 꿈꾼 조지 3세 섭정 왕 조지 4세 바보스런 윌리엄(Silly Billy) - 윌리엄 4세 대영제국의 주인공 빅토리아 여왕 7. 과거와 미래의 사이에서 평화중재자 에드워드 7세 윈저 왕조의 조지 5세 사랑과 왕위를 맞바꾼 에드워드 8세 입헌군주의 모범을 보인 조지 6세 21세기의 첫 여왕,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왕실 계보 문장 색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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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는 시몽의 통치시기에 시작된 초기 의회의 가치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었다. 특히 시몽이 대자문회(초기 의회)를 이용해 정부정책을 홍보하고, 어떤 문제를 결정할 때 주와 시의 대의원들을 소집해 광범위하고 적극적인 지지를 얻어내곤 했던 부분에 주목했다. 에드워드는 이런 관행을 발전시킨다면 왕권이 약화되지 않을 뿐더러, 민족의식을 고양시키고 왕실의 권위가 높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1275~1307년 사이에 에드워드는 자신이 직접 다양한 방식으로 기사와 시민들을 의회에 소집했다. 특히 주와 시, 그리고 하급 성직자들의 대표를 모두 망라한 1295년 의회는 모범의회라고 불린다. 그러나 이런 의회는 오늘날의 의회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당시 의회는 에드워드가 소집을 결정했기 때문에 의회의 권한이 불분명했다. 또 조직 형태도 아직 초기단계에 머물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민주주의 역사 속에 남게 될 많은 법령들이 의회를 통해 반포되었다. --- 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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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 일어난 사건이 바로 남해거품 사건이다. 1720년 정부가 보증하고 있던 남해회사가 파산상태에 빠지면서 조지 1세와 정부가 남해회사의 합법성이 의심되는 거래에 관여했다는 잇따른 사실이 드러났다. 특혜를 예상하고 남해회사의 증권을 샀던 정치인들은 모두 도덕적 책임을 면치 못할 상황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당시 정계 일선에서 밀려나 있던 월폴과 타운센트의 경우는 이 사건에 깊이 연루되지 않음으로써 국민들로부터 정치적 도덕성을 인정받게 되었다. 이 사건은 그들의 지휘 아래 정리되었으며, 특히 월폴은 이 사건과 깊이 연루된 조지 1세를 곤란한 처지로부터 구해주면서 막대한 권한을 이양 받을 수 있었다. 월폴과 타운센트는 곧장 조지 1세의 측근들을 관직에서 밀어냈다. 1724년 무렵 이들은 완전히 조지 1세의 판단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위치에 올랐다. 이것은 바로 내각이 중심이 되어 운영되는 정치, 즉 수상이 통치하는 정치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 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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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_ 군림하되 통치하지는 않는 권력의 정점 여왕
수많은 왕들이 영국의 왕위에 올랐지만, 그 중에서 자주 회자되는 것은 여왕들이다. 몇몇 여왕의 치세는 영국역사에서도 손꼽을 만큼 태평성대를 이루고, 부국강병을 이룬 시대로 영국인의 가슴에 자부심으로 남아 있다. 강한 해군력과 카리스마 있는 통치로 절대왕정을 이룬 엘리자베스 1세,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여왕 빅토리아, 그리고 무너져가는 왕실의 권위를 다시 세운 엘리자베스 2세. 이들 여왕이 지금도 국민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는 정세를 잘 파악하여 지도자로서 현명하게 처신했기 때문이다. 오늘날까지 칭송받는 이들의 리더십을 읽어 보자. 2_ 전 세계의 체제 민주주의 영국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은 바로 민주주의다. 영국에서 태동한 이래, 수많은 전쟁과 토론으로 갈고 닦아온 민주주의는 현재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는 정치제도이기도 하다. 영국 민주주의의 역사는 1세기 이전으로 올라간다. 현대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원탁 테이블은 아더 왕과 원탁의 기사들에서 그 원형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민주주의의 초기 법령을 제정한 에드워드 1세, 시민과 타협하는 정치체제를 수립한 윌리엄 3세를 거쳐 왕-귀족-시민의 균형을 이루어가며 오늘날의 정치제도로 숙성되었다. 그 자세한 과정을 만나보자. 3_ 영국인의 가슴 속에 살아 있는 셰익스피어와 아더 왕 우리에게 친숙한 미국의 할리우드 문화컨텐츠들은 태반이 영국의 수많은 문화에 기초하고 있다. 모든 비극과 연애담의 원형인 셰익스피어,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년인 해리 포터. 탐정의 대명사 셜록 홈즈, 게임과 소설의 소재로 쓰이는 고대 종교 드루이드, 영국의 막강한 해군력, 아더 왕 이야기 등은 지금도 재생산되고 있는 영국의 컨텐츠들이다.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위용을 떨치고 있는 영국산 문화의 첨병들은 열 살 먹은 어린 아이에게도 영국의 역사를 전파하고 있다. 계속 소비되고 생산되는 방대한 문화 컨텐츠를 보유한 영국. 그 컨텐츠의 중심에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계속되는 왕과 귀족, 시민 계급의 갈등,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문화적 다양성과 포용성이 자리 잡고 있다. 《이야기 영국사》는 수많은 ‘영국산’들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