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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문화일반: 아방가르드와 키치 / 문화의 곤경 파리의 미술: 후기의 모네 / 루누아르 / 세잔느 / 일흔 다섯의 피카소 / 콜라주 / 조르주 루오 / 브라크 / 마르크 샤갈 / 거장 레제 / 자크 립시츠 / 칸딘스키 / 수틴 / 파리 화파: 1946 / 심포지엄 기고문 미술일반: “원시” 회화 / 추상, 재현, 그리고 등등 / 새로운 조각 / ??파티잔 리뷰?? ?미술 이야기?: 1952 / 이젤 회화의 위기 / 모더니즘 조각, 그 그림과 밀접한 과거 / 윈덤 루이이스의 추상 미술 반론 / 비잔틴 미술과의 유사성 / 모더니즘 회화에서 자연이 맡은 역할에 관하여 미국의 미술: 토마스 에이킨스 / 존 머린 / 윈슬로 호머 / 한스 호프만 / 밀턴 에이버리 / 데이빗 스미스 / “미국형” 회화 / 30년대말, 뉴욕 문학: T.S.엘리엇: 서평 / 빅토리아 시대의 한 소설 /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 카프카의 유태성 부록: 더 새로운 라오콘을 향하여 / 모더니즘 회화 역자후기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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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대초에 의욕적인 출발을 시작해서 40년대 후반에 봇물처럼 쏟아진 그의 비평문이 지녔던 독보적인 성격은 그 시기까지도 심지어 미국의 미술비평가들 사이에서조차 유럽 미술의 변방 내지 그늘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던 미국 미술의 가능성을 일찍이, 거의 조롱을 감내해가며 주장했다는 점이다. 그린버그가 간취했던 미국 미술의 가능성이란 2차대전 후 서양 미술의 중심, 더 크게는 서양 문화의 중심이 유럽, 더 정확히는 프랑스, 파리로부터 미국, 뉴욕으로 옮겨올 수 있다는 것으로, 이는 전후 급부상한 미국의 정치경제적 열강의 지위에 걸맞는 문화적 패권의 가능성에 대한 예측이었다.
실제로 2차대전 이후 미국은 이전의 국가적 전통이었던 고립주의에서 급속하게 벗어나면서 소련과 더불어 세계의 열강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이 급작스럽고도 새로운 지위와 어울리는 문화적 역량도 필요로 했다. 전쟁 기간 중 히틀러와 무솔리리에 맞서 동맹을 유지했던 소련과 미국 사이의 우호관계가 파시즘의 몰락과 더불어 전후 열강간 각축관계로 변질되자, 냉전은 시작되었고 이와 더불어 미국의 우월성을 주장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논리가 환영되었다. 미국 미술의 가능성에 대한 그린버그의 독자적인 주장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매우 시의적절한 것일 수 있었는데, 바로 이것이 한 사람의 미술비평가로서의 그린버그와 그가 옹호해온 미국의 새로운 미술, 즉 추상표현주의의 유례없는 성공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무언의 역사적 배경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린버그의 성공이 그 이전 미국 미술의 전통 내지 숙명처럼 여겨져왔던 지방색에 대한 국수주의적 찬양 덕분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유럽의 유구한 역사를 바탕으로 한 서양의 고급한 문화적 전통을 인정하고, 그 전통이 빚어낸 현대 미술의 선조로서 2차대전 이전까지의 “파리의 아방가르드 미술”을 역사적으로 이론화했으며, 나아가 전후 미국의 추상표현주의를 그러한 유럽 현대 미술의 계승자로 옹립해냈던 것이다. 그린버그에 의하면, 유럽의 고급 문화는 산업혁명과 더불어 출현한 대중사회의 도래와 함께 대중문화, 즉 “키치”의 위협 아래 절멸의 위기를 맞이했으며, 이러한 문화적 위기에 대한 반발로서 출현한 것이 “아방가르드” 예술이다. 따라서 “아방가르드”는 모든 것을, 심지어는 예술조차 상품화하는 산업혁명 이래의 현대 사회에 등을 돌리고 “보헤미아”로 떠나 예술의 고유하고도 절대적인 가치를 추구하고, 이로써 문화의 위기 상황에 맞서 예술을 지켜내려는 문화의 보루와 같은 것이다. 19세기 중엽 이후 미술의 영역에서 이러한 “아방가르드”의 정신은 마네-인상주의-세잔느-입체주의로 이어져왔다고 그린버그는 주장했는데, 특히 그는 20세기초의 입체주의가 그 이전 반세기 동안 진척되어온 “아방가르드”의 노력이 집약된 최초의 결실이라고 보았다. 그림 속의 모든 것, 즉 형상과 배경을 모두 작은 단면들로 부수어놓은 입체주의의 화면에서는 보는 이에게 교훈을 주려는 그 어떤 역사나 신화도, 그 어떤 영웅도, 그 어떤 이야기도 설 자리가 없었으며, 이렇게 문학 및 세계와 단절하고 추상적인 화면으로 나아간 입체주의는 모리스 드니의 유명한 선언, “그림이란 전장터의 말이나 누드 여인이나 어떤 일화이기 이전에, 본질적으로 일정한 질서를 따라 조합된 색채들로 뒤덮인 평평한 표면”이라는 주장을 실현했던 것이다. 그러나 입체주의가 실현한 평면성은 지나치게 형태에 집착한 것으로, 몬드리안의 격자 회화에서 보듯이 그림의 틀, 즉 직사각 형태의 지배를 받는 “닫힌 기하학적 추상”의 한계를 드러냈다. 미국의 새로운 미술가들이 돌파한 것이 바로 그 한계였다는 것이 그린버그의 주장이다. 즉 추상표현주의는 틀을 짜지도 않은 맨 캔버스에 작업을 하며, 물감을 흘리거나 뿌리거나 쳐대는 “독창적인” 방식으로 어떠한 형태에도 구속되지 않는 “열린 회화적 추상”을 구현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쟁 이전 파리에 있었던 “아방가르드” 미술의 견인차는 이제 미국의 미술가들에게로 넘어왔다. 이와 같은 논리에 따라 그린버그는 유구한 (고급) 문화의 전통이라는 굳건한 기반 위에, 문화 종주국으로서의 프랑스, 파리의 영예를 역사화하고, 그 역사의 계승자로서 미국, 뉴욕을 부각시키는 데 성공한다. 그 성공의 요인들에는 다양한 미술외적 변수들, 예컨대 냉전의 정치경제학 등도 있었지만, 그린버그의 역사적 논리를 탄탄하게 뒷받침한 엄밀하고 분석적인 비평의 방식이 큰 기여를 했다. 실제로 군더더기가 거의 없고 치밀하게 전개되는 그린버그의 비평은 작품에 대한 인상이나 작가에 대한 신변잡기에 매몰되어 있던 미국 미술비평에 “이론적/학술적” 전환을 일으킨 글쓰기의 모범적인 선구로 꼽힌다. <예술과 문화>는 현대 미술에 역사적 발전의 논리를 부여한 그린버그의 이론적 입장을 가장 선명하고도 일관되게 알 수 있는 그의 대표작이다. 이 점은 특히 그가 이 에세이 선집을 출판하기 위해 골라낸 37편의 에세이들을 거의 모두 수정해서 수록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린버그 자신은 이 수정 작업에 대해, 서문에서 자신의 “독학 과정에 연루되어 있던 그 모든 성급과 낭비를 한 권의 책 속에 보존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보다는 그가 60년대초에 이른 이론적 입장, 흔히 형식주의적 모더니즘이라고 불리는 입장에 맞추어 세심한 교정 작업이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린버그를 전공한 역자는 이 점에 주목하여, 각 에세이의 끝에 상세한 서지사항을 수록했다. 서지사항에서는 <예술과 문화>의 수록 제목과 연도, 에세이 내용의 수정 여부와 정도를 밝혔고, 수정 이전의 제목이 <예술과 문화>의 수록 제목과 다른 경우에는 원래의 제목도 밝혔으며, 처음 수록되었던 지면과 연도, 대표적인 재수록 지면을 밝혀, 필요한 경우 수정 이전의 원문을 찾아볼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역서에는 그린버그 자신에 의해 선별되지는 않았으나, 그가 쓴 가장 중요한 논문들로 꼽히는 유명한 두 편의 에세이, <더 새로운 라오콘을 향하여>와 <모더니즘 회화>도 부록으로 수록했다. 말을 넘치게 하기보다는 간결하게 삼가는 그린버그의 어법 때문에 이해가 쉽지 않았던 용어들에 대한 상세한 역자주도 이 역서의 강점이라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