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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 인도여행
사진 찍는 카피라이터의 사유와 상상, 그리고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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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프롤로그. 여행하다, 사랑하다, 사진찍다, 이 셋은 같은 말이다

step 1 인도에 간다는 것
하나. 왜 하필
둘. 오래 전에 떠나온, 오래도록 그리운
셋. 떠나있던 나날들
넷. 혼자의 방으로
다섯. 새는 어둠을 물고
여섯. 처음부터 다시

step 2 바라노니, 바라나시
일곱. 이놈의 바라나시
여덟. 사무친다는 것
아홉. 남김없이 타버린다는 것
열. 바라다, 바라보다
열하나. 지상에 흐르는 천상의 강
열둘. 갠지스의 빛과 색
열셋. 우유의 바다를 휘저어서
열넷. 당신에게 안부를 보냅니다
열다섯. 하루살이들
열여섯. 세상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진실

step 3 천 개의 기둥
열일곱. 녀석들
열여덟. 검은 북극성
열아홉. 손톱부터
스물. 이름이 뭐예요?
스물하나. 춤추는 마말라푸람
스물둘. 천 년 전의 누군가와 천 년 후의 내가
스물셋. 산책
스물넷. 기둥들, 나무들, 몸들
스물다섯. 사탕수수와 블루투스
스물여섯. 셔터를 누르는 순간
스물일곱. 인도의 밤기차여

step 4 사랑은 늘 땅끝이다
스물여덟. 최초의 외로움, 최초의 사랑
스물아홉. 깐야꾸마리와 제주
서른. 세 개의 바다
서른하나. 그냥 처녀인 채로
서른둘. 사랑이라는 욕망
서른셋. 너는 너이고, 나는 나이다
서른넷. 당신을, 먹어치우다
서른다섯. 어떤 떨림, 어떤 파동
서른여섯. 몸으로부터의 자유
서른일곱. 태양 아래 첫 날개
서른여덟. 낭랑 18세 신두야

step 5 무너진 사원에 꽃은 다시 피고
서른아홉. 참파꽃과 원숭이들
마흔. 사원의 아침식사
마흔하나. 밤 깊도록 노래를 들었네
마흔둘. 느리게 만든 빵 같은 도시
마흔셋. 붉은 꽃
마흔넷. 외로운 날이면
마흔다섯. 해와 달이 뜨는 언덕
마흔여섯. 몸으로, 본다
마흔일곱. 빛과 시간
마흔여덟. 박물관들
마흔아홉. 집 없는 자들의 기도

step 6 쓸쓸하고 찬란한
쉰. 아잔타, 아잔타
쉰하나. 그들 인생의 5000분의 1초가 들어왔다, 내 인생에
쉰둘. 리얼라이즈
쉰셋. 펀자비 드레스 차려 있고
쉰넷. 달콤 살벌 무굴제국 가족사
쉰다섯. 아그라성과 타지마할
쉰여섯. 일등석 기차는 오지 않고

step 7 친구가 되기 위해
쉰일곱. 옛 궁전의 안뜰에서
쉰여덟. 열한 마리 염소를 가진 청년
쉰아홉. 바오밥나무는 어디에 있을까?
예순. 오르차의 사랑 이야기
예순하나. 왕들의 사랑과 결혼
예순둘. 사랑은 때때로
예순셋. 맹랑소년 고랍
예순넷. 짜이 가게 가족들
예순다섯. 어린 안내자들
예순여섯. 해질녘 그 언덕에
예순일곱. 거짓말
예순여덟. 알루 파라타
예순아홉. 마지막 기차, 마지막 편지

epilogue 여행은 모든 것을 기억한다
일흔. 여행들
일흔하나. 슬픔들
일흔둘. 사진들
일흔셋. 여행은 끝나지 않는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08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320쪽 | 504g | 152*210*17mm
ISBN13
9788998266103

책 속으로

인도 여행에 대해 쓰고 있는데, 이상하다. 자꾸만 다른 곳에 대해 쓰고 있다. 전에 다녀왔던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 십수년 간 돌아다녔던 우리나라 곳곳과 그 땅에서 느꼈던 수많은 생각들이 자꾸 떠오른다.
이상하다. 내게 인도는 북위 8.4°~37.6°, 동경 68.7°~97.25° 사이에 위치한 총면적 330만km²에 이르는 남아시아의 어떤 나라가 아니라 내가 다녔던 모든 여행이며, 내가 했던 모든 사랑이고, 내 모든 생각의, 복잡다단하고 여전히 종잡을 수 없는 천만 갈래의 길이다. --- p.5

처음 인도에 간 것은 스물아홉이 되던 해였다. 그것은 나의 첫 해외여행이기도 했다. 나는 머지않아 서른이 될 참이었는데, 다른 여자들처럼 서른이 되는 것에 대한 불안이나 불만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서른이란 너무나 젊어서 감당하기 힘든 이십대와 결별하고 서둘러 진입하고 싶은 세계의 입구이기도 했다.
나는 어서 서른셋이 되고 싶었다. 서른셋, 모든 것이 다 정상적이고 안정적일 거라고 믿었던 나이. 그 믿음과 갈망의 한가운데서 난데없이 인도에 가고 싶어졌던 거다. 어떤 계기도 맥락도 없었다. 불현듯, 이란 말이 얼마나 뜨겁고 눈부신지를 이때 알았다. 이유가 없는 모든 것들, 섬광처럼 오는 것들.
남들처럼 유럽도 아니고 좋은 나라들 다 놔두고 왜 하필 거기냐고, 저녁 밥상머리에서 아버지는 통상적으로 물어왔다. 그때나 지금이나 “왜 하필?”이라는 질문을 가져오는 나라는 인도밖에 없다. --- p.16

삼십대를 지나는 동안 여러 나라들을 여행했다. 거의 아시아의 나라들이었다. 이상하게 아시아가 좋았다. 베트남은 미안하고 안쓰러웠고, 라오스는 세상 밖에 있는 것처럼 평화로웠다. 버마는 경이로웠으며, 캄보디아의 앙코르는 가기 전부터 꿈에 나타났다. 몽골에서는 유목은 못해볼지언정 한 바퀴 방랑 정도는 해보고 싶었다. 홍콩이나 마카오, 중국의 몇 개 도시는 지루함 속에서 반짝였고, 태국은 열아홉 살에 집 나간 누이 같았다.
오며가며 네팔을 두어 번 다시 갔지만, 인도로 가는 국경은 넘지 않았다. 또 다시 인도에 가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갈 수 없었다. ‘함부로’ 다시 인도에 가게 되면 오래도록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았다, 고 말하는 것이 옳다. 아주 건너갈 수 없는, 한번 건너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불륜의 사랑 같았다. --- p.23~24

이놈의 바라나시. 내가 여기를 왜 또 왔는가. 이곳의 인간들은 자신들도 배배 굶주리면서 개들은 뭣 하러 동네방네 풀어 키우고 있는 건가? 밥도 못 주면서. 저렇게 뼈가 앙상한 소와 개들 좀 보란 말이다. 목욕재계를 하는 것만으로도 지은 죄와 과오를 씻어낼 수 있다는 신성한 어머니의 강, 저들이 그토록 오매불망 하는 성지라면 좀 더 말쑥하게 관리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또 어디선가 비쩍 마른 계집아이가 나타나 더러운 소매 끝을 눈앞에 내밀었다. 나는 아이 앞을 쌩 하니 지나쳐버렸다. 이따위 나라, 이따위 종교, 이따위 빈민가! 인도에 화가 나고 인도인들에게 화가 나고 바라나시에 화가 났다. 다시 여기까지 온 나한테 화가 났다. --- p.48

한 구의 시체가 다 타는 데는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나는 궁금해졌다. 갠지스를 건너는 뱃사공이 말하길, 우드 파이어wood fire로는 3~4시간. 일렉트릭 파이어electric fire로는 1시간에서 빠르면 30분. 가난한 사람들이나 순례자를 위한 수용소에서는 일렉트릭 파이어로 화장을 해요. 더 싸니까. 굳이 묻지 않았는데 뱃사공이 덧붙였다. 그가 데리고 나온 열두 살 가량의 조카아이가 두 팔로 힘들여 노를 저었다. 우드 파이어는 3000루피, 일렉트릭 파이어는 500루피(우리 돈으로 만 원 정도)면 할 수 있어요. 뱃사공은 이렇게 말했지만, 백단향나무를 장작으로 쓰는 부유한 사람들은 일반인의 몇 배나 되는 비용을 들일 것이 틀림없었다. 아이의 이마에서 땀이 흘렀다. 느긋하게 뱃머리에 앉은 뱃사공이 말을 이었다. 어린이와 수행자들은 화장을 하지 않아요. 죄가 없기 때문이죠. 그들의 주검은 그냥 갠지스에 흘려보내요. 죄 없는 어린 뱃사공이 내가 가리킨 반대편 강에 배를 세웠다. 친구는 고개를 저었지만, 가트 대신 성근 모래밖에 없는 그곳에서 나는 잠시 강물에 손과 발을 담갔다 뺐다. --- p.54

수많은 기둥 중 하필 이 기둥을 쓰다듬었다는 이유로,
이 기둥이 만드는 오후 1시 반의 그늘과 이곳에서 보이는
풍경과 바람을 공유했다는 이유로,
천 년 전의 누군가와 천 년 후의 내가 ‘우리’가 되는 것,
이것이 내가 이 사원을 사랑하는 이유죠.
언젠가 당신이 이 사원에 온다면,
회랑을 따라 도열한 비슷비슷한 기둥 중에서 내가 찾은
기둥의 조망과 온기를 당신도 찾아낼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일,
이것이 내가 이 사원을 그리워하게 될 이유죠. --- p.112

여행에도 상상이 필요하다. 나의 영혼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챌 수 있는 기회, 그것이 여행이다. 언젠가 또 탄자부르의 빅 템플에 가더라도 나는 북쪽 회랑을 따라 걸으며 사원을 천천히 구경하고, 마당 깊숙한 곳, 내가 점찍어둔 자리에 앉았다가 반대편 마당을 가로질러 나올 것이다. 낮의 사원 마당은 화덕 위의 팬처럼 달구어져 있어 최대한 발꿈치를 들고 사푼사푼 걸어야 한다. 정수리에서부터 발바닥까지 일직선으로 관통하는 햇빛 아래 맨발로 사원 마당을 걷는 일은 일종의 정화의식 같다. 그늘 한 점 없는 빅 템플 앞마당을 가로지를 때면, 눈을 살짝 감고 온 몸의 힘을 빼고 걸어야 한다. 그럴 때면 습기 없는 마른 바람 한 줄기가 시원하게 불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땅에 사원을 지시한 왕과 사원을 쌓아올린 석공들과 벽화를 그린 도공들과 완성된 사원에 깃들어 사는 신들과, 과거에서 현재까지 사원을 드나들 며 노니는 새와 다람쥐와 나비 같은 것들의 정령을 느낄 수 있다. 일순간 온몸에 시원한 소름이 돋아나는 것도. --- p.116

‘몸’이라는 말을 들여다본다. ‘몸’이라고 할 때 두 개의 ㅁ은 모음 ㅗ자에 의해 한 치의 틈이나 흔들림 없이 하나의 덩어리로 완성되고 고정되어 있다. 단단하다. 몸을 이루는 두 개의 ㅁ은 그 안에 오장육부와 피와 살과 숨과 혼을 모두 담고 고요히, 닫혀있다. 당신과 내가 샴쌍둥이처럼 하나가 아니라 따로 떨어지는 두 개의 몸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모든 사랑이 기본적으로 천형天刑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가 될 수 없다니. 몸을 가지고 있는 한, ‘사랑으로 하나가 되다’라는 말은 불가능에 대한 절박한 희망의 은유에 불과하다.
너는 너이고, 나는 나이다. --- p.167

밀란 쿤데라의 『불멸』이란 소설에는 먼 여행을 떠나기 전, 애지중지 키우던 토끼를 말없이 먹어치운 노부부 이야기가 나온다. 알랭 드 보통이 쓴 『여행의 기술』에는 풀잎이 너무 아름다워 풀잎을 먹고 싶어 했다는 존 러스킨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것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자 완전한 소유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기억에 관한 이야기이다. 내 몸 밖에 있는 당신을 견딜 수 없는 것. 먹어치움으로써 나와 하나가 되는 것.
당신이 더는 그립지 않고, 당신에 대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고, 당신이 내게 배부르지 않은 건, 내가 당신을 먹어치웠기 때문이다. 시간을 다 먹어치우면 죽음이 오는 것처럼 기억조차 영영. --- p.168~169

여자들은 태양 아래 처음으로 날개를 연 나비처럼 두 팔을 활짝 펼치고 있었다. 나는 키가 작고 마르고 나이 든 한 여자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무 무늬도 없는 흰색의 옷자락을 말리기 위해 한참이나 그 자리에 팔을 뻗고 서 있었다. 두 팔뿐만 아니라 검은 눈과 긴 머리카락, 볼록한 배와 다리, 몸 전체로 태양을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태양을 실은 바람이 그녀의 옷자락에 떨어져 내렸다.
바닷가는 은근하면서도 톡 쏘는 태양의 냄새를 좇아 잘 마른 날개를 퍼드덕대는 온갖 색채의 나비들로 붐볐다. 모두가 생애 처음인 것처럼 눈부시고 황홀하였다. --- p.183

어느 외로운 날이면 나는 루프 탑 레스토랑 한쪽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중세의 마술사처럼 괴팍스런 이름을 가진 비루팍샤 사원을 바라보며 한나절을 보낼 거예요.
아무 생각도 없고 아무 그리움도 없으면 지나가는 노란 바람의 안쪽을 들여다볼 수 있을 거예요. 제 몸속에 나이테를 새기는 나무가 그러하듯이 내 영혼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게 되는 그런 날. 그런 날이면 나는 종일토록 앉아 있어도 누구 하나 뭐랄 사람 없는 저 루프 탑 레스토랑에 앉아, 게으른 종업원이 한참 만에 나타나 찻잔과 찻잔 받침을 부딪치며 달칵달칵 홍차를 들고 오는 소리를 들을 거예요.
두 번째 홍차에도 녹지 않는 설탕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식은 홍차를 홀짝거릴 거예요.

--- p.213

출판사 리뷰

인도로 간다는 것

모든 여행은 인도에서 끝난다고 누군가 말했다. 그런데 이 여자는 그 인도로 첫 해외여행을 떠났다. 스물아홉 나이에 혼자서. ‘그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떠나는 여행이란 그런 것일까. 기나긴 여정으로 몸과 마음을 다 비웠다 채워도 부족한 것일까. 그녀는 30대에도, 그리고 40대에도 인도로 날아갔다. 전생에 인도의 어느 작은 나라 왕가에서 태어난 것처럼, 인도는 편안하고 그립고 아련해서 늘 마음이 쓰이는, 그녀의 마음이 머무는 영혼과 육신의 땅이었다.

이상한 여행기
카피라이터로, 사진가로, 작가로 활동하는 에세이스트 최현주씨는 〈그 여자, 인도여행〉에서 이상한 여행기를 펼쳐보인다. 33일 동안의 세 번째 인도여행을 다녀왔으면서도 특별한 여정을, 유명 관광지를 따라가지 않는다. 요절복통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풀어 놓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목적 의식 강한 인문학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저 인도땅 곳곳에서 한 줄기 바람처럼, 때론 날카로운 벼락처럼 다가온, 그러다 사라지고 만, 끝내 가슴 저 깊은 곳에 스며든 것들을 버무려 여행이 이끄는 새로운 세계로 우리를 데려간다. 남인도 사원에서는 독특한 여행법을 제안하고, 인도의 땅끝마을에서는 사랑에 대한 사유를 드러내는가 하면, 폐허가 된 궁터에선 권력과 사랑과 삶의 관계를 이야기한다. 그것은 곧 타자와 세상과 여행에 대한 사유와 상상의 퇴적물이다.

‘아시아 여행자’의 새로운 시선
인도란 지명이 중심에 있지만 작가는 20년 가까이 몽골 중국 버마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 아시아 10여 개국을 떠돌며 체득한 것들을 살갑게 들려준다. 때로는 한 달 이상씩 방랑자 생활을 하기도 했던 그녀는 몽골의 밤 평원에서, 대만의 허름한 숙소에서, 베트남의 외진 원주민 마을에서 보았던 삶의 무게와 쓸쓸함을, 설화처럼 아련한 러브 스토리를 풀어놓는다. 진정한 ‘여행 생활자’로서의 내면풍경은 우리나라 땅을 밟을 때 선명하게 떠오른다. 마음이 내킬 때면 비행기를 잡아타고, 차를 몰아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동네에서 한 나절을, 때로는 서너 날을 보내면서 그녀는 오늘의 삶과 그 속에서 버텨내는 자신에게 거리두기를 한다. 그렇게 이 생에서 지켜야 할 것과 가꿔야 할 것들을 되새기는 것이다.

여행과 사랑과 사진은 하나다

‘여행하다, 사랑하다, 사진찍다. 이 셋은 같은 말이다. 인도는 내가 했던 모든 사랑이고, 내가 헤매왔던 모든 생각의, 복잡다단하고 여전히 종잡을 수 없는 천만 갈래의 길이다’

프롤로그에서 밝힌 것처럼 〈그 여자, 인도여행〉은 그 천만 갈래의 길로 안내하는 다양한 스타일을 보여준다. 에세이의 격과 서간체의 정(情), 시어의 질서, 인문서의 깊이를 그때그때 동원한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사진이다. 인도여행을 다녀온 이들이라면 으레 보여줄 만한 ‘인도적인’ 이미지를 배반하고 있는데 그것은 사진에 대한 작가의 의식 때문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가끔 달과 바다 같은 관계가 되어서, 낯선 것들끼리 서로 끌어당기기도 하고 밀치기도 하며 인과因果를 맺는다. 시간 속에는 그런 관계를 만드는 한 찰나가 있어서 그 찰나에 낯선 두 존재는 안과 밖에 있으면서 서로 닮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옆을 스쳐가기도 한다. 그 찰나의 이면, 이면의 찰나를 들여다보는 것, 그것이 어쩌면 우리가 셔터를 누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것이 어쩌면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후지와라 신야의 〈인도방랑〉을 너머
후지와라 신야의 대표작 〈인도방랑〉이 방랑하는 청춘과 남자의 여행서라면, 〈그 여자, 인도여행〉은 불안과 혼란의 청춘을 지나온 여자의 여행서다. 〈인도방랑〉이 25세 청년작가가 1969년부터 3년간 인도를 다녀온 여행기라면, 〈그 여자, 인도여행〉은 69년에 태어난 여자가 20대와 30대, 40대에 3번째 인도를 다녀와 쓴 여행기다.
청춘의 방랑을 대변하는 후지와라 신야의 사진과 글이 어둡고 거칠면서도 인도라는 땅의 원시성과 삶의 본질에 대한 집요한 추궁과 탐색이었다면, 후지와라 신야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 틀림없는 〈그 여자, 인도여행〉은 20~30대를 돌아보는 40대의 눈높이를 보여준다. 담담하고 때로는 재치와 여유가 있으면서도 여전히 세상에 대한 질문을 거두지 않은 자의 사유와 호기심, 상상과 통찰이 담겨있다. 그런 점에서 두 책은 자신의 삶과 세상, 타인과 피사체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빛과 사진의 관계에 대한 탐색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여자의 삶, 여자의 여행, 여자의 시선

‘이십대에는 나도 서른셋만 되면 모든 것이 다 평화로워질 줄 알았지. 일도 사랑도 생활도. 그런데 서른 살이 지나고 서른세 살이 되었을 때도 나는 아무 것도 평화로워지지 않았다(중략) 삼십대 후반쯤이나 되어서야 상황은 조금 나아졌다. 사십대가 되자 조금 더 여유가 생겼다. 세상을 서서히 알아가는 것 같았다. 아니다, 세상을 알게 되었다기보다는 나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 그것이 내가 이십대에 그토록 갈구하던 안정감의 실체였다.’

〈그 여자, 인도여행〉은 작가가 자신처럼 불안과 자신감, 우울과 흥분의 20~30대를 건너고 있는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이다. 버스에서 우연히 눈이 마주친 무슬림 아이, 중세의 무희, 인도 땅끝마을의 18세 소녀, 남루하여도 밝은 시골 아낙에 이르기까지, 인도에서 만난 여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작가 자신도 모르게 그들과 깊은 유대감을 갖게 된 흔적을 무의식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도를 여행하는 ‘그 여자’는 비단 작가 한 명이 아니다. 그곳에 살고 있는 그녀들이 모두, 각자, 그들의 삶을 여행하고 있는 것이다.

여행은 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사람들은 전생에 살던 땅이나 적어도 한 번은 밟아본 땅에서 다시 태어나는 법이다.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그 그리움 때문에 이생에서 다시 그곳을 찾아 여행을 하게 되는 것’이라는 그의 말처럼, 생경함을 찾아서라기보다는 어떤 데자뷔, 혹은 어떤 연대감이 그를 여행지로 이끌곤 하는 모양이다.
그곳에서 작가는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인도, 우리가 알고 있던 여행방식, 우리가 알고 있던 이미지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던 세계, 또 스스로가 알고 있던 나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아 헤맨다. ‘나의 여행은 대개, ‘애써서 가는 것’이다’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사랑이 어떻게 누구에게나 같을 수가 있는가? 여행이 또한 어떻게 모두에게 같을 수가 있는가? 그러니 새로운 여행을 하고 싶은 자들, 새로운 여행작가를 꿈꾸는 자들에게 그 여자는 말한다.
‘여행은 질문이다. 답이 아니라 답을 찾으려는 여정이다. 여행을 하며 나는 알았다. 질문에 바로 답을 주는 경우란 없다는 것을. 가치 있는 답일 경우는 더욱 그랬다. 아주 오랫동안 뜸 들인 답, 스스로 찾아내야 하는 답, 그래서 저마다 다른 답. 이것이 여행이다. 이것이 내 인도여행이 기억하는 것이다. 여행은 돌아와서도 결코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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