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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 땅에서 향기가 피어나는 계절
서강에서의 동거 방식 / 타임머신을 타고 온 씨앗 / 너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 첫 번째 잡초 이야기: 잡초는 없습니다 / 두 번째 잡초 이야기: 숲을 꿈꾸다 / 나의 꽃말을 찾아서 / 향기 나는 삶을 꿈꾸다 / 민들레가 알려 준 삶의 경이로움 / 딱따구리의 살림 여름 ― 물 위로 새들이 솟아나는 계절 물총새의 아름다운 사냥 / 인생의 멋을 아는 베짱이 / 나무가 흘린 땀방울 / 나도 물처럼 살고 싶다 / 새들의 생존을 위한 처세술 / 식물에게 말을 건다는 것 / 물을 두려워하지 않는 물까마귀 / 쓸모없는 나무가 오래 산다 / 누가 동강을 똥강으로 만들고 있을까? / 한 방울 이슬 속에서 찾은 행복 가을 ― 빛깔이 눈을 뜨는 계절 보석보다 아름다운 가을 단풍 / 숲의 치유하는 힘 / 참된 감각이 달아 준 자유의 날개 / 썩고 싶은 낙엽의 마음 / 시간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듣다 / 뿌리에 어울리는 가지 / 천국으로 가는 지름길 / 상처 입은 치유자 / 우정은 숲에 난 길과 같다 / 최고의 나무는 없다 겨울 ― 씨앗이 하늘을 나는 계절 세배하러 온 산토끼 / 숲 속의 고요한 운동회 / 비오리의 특별한 새끼 사랑 / 겨울을 나는 달맞이꽃의 지혜 / 겨울 나무처럼 가면을 벗어 봐요 / 새들의 식사 습관 / 삶을 향한 위대한 만세 / 봄을 만들어 가는 버들강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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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을 지키기 위해 한창 투쟁하던 어느 겨울 깊은 밤이었습니다. 그날따라 얼음 갈라지는 소리가 대단하였습니다. 이제 쓰레기매립장 건설로 인해 수만 년 동안 간직해 온 자신의 맑디맑음을 잃게 될 것을 슬퍼하는 서강의 울음소리였습니다. 도저히 잠들 수가 없어 주섬주섬 옷을 입고 밖에 나가 매서운 강바람이 불어오는 얼음 위에 올라섰습니다. 꽁꽁 언 차가운 강 표면에 얼굴과 귀를 대고 양팔을 벌려 그대로 넙적 엎드려 서강을 나의 작은 가슴으로 안아 주었습니다. 그때 저는 서강과 그 속에 더불어 살아가는 물고기들에게 눈물로 한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울지 마, 어떤 일이 있어도 내가 너의 맑음을 꼭 지켜 줄게!’ 오랜 시간 동안 서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수 있었던 것은 서강의 평화로움과 그 안의 생명들이 내 가슴속에 함께 살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약속을 지켜 준 것이 고마워서일까요? 그들은 자신들 안에 감춰져 있던 이야기들을 나에게 하나 둘 들려주기 시작했습니다. 맑은 물속에 사는 물고기들뿐만 아니라,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 심지어 낙엽 한 장에 이르기까지 이 친구들은 마음을 열고 자신들의 오랜 이야기를 소곤소곤 들려주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들을 마음에 담으며 행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들에게 마음의 문을 여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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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강에서의 동거 방식 ― ‘딱새에게 집을 빼앗긴 자의 행복’이란
새집, 벌집 등 자연이 살다 간 빈 둥지들을 주워다 집 안에 모아 놓는 취미를 가진 작가는 어느 날, 처마 밑에서 장수말벌집을 떼어 낸다. 집주인들이 떠나간 빈 벌집 안에 딱새가 보금자리를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한 채. 딱새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서 며칠 후 외출했다가 돌아온 그는 현관문을 여는 순간, 딱새가 창틈으로 들어와 신발장 위에 둥지를 틀고 알을 품고 있는 장면과 마주친다. 딱새를 놀래지 않기 위해, 집을 출입할 때마다 남의 집에 든 양 몸가짐을 조심해야 했던 그는 두 번 나갈 것 한 번만 나가게 되면서 집 안에 갇힌 꼴이 되어 버렸고, 멀쩡한 현관을 놔두고 도둑처럼 창으로 넘어 다니곤 했다. 그래도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저들의 모습을 엿보던 즐거움, 자연과 함께 사는 행복함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 밖에도 한겨울에 산속에서 그의 집 앞 현관까지 뛰어왔다가 주인이 없어 돌아간 듯한 산토끼의 발자국을 바라보며 ‘내년엔 꼭 산토끼의 세배를 받으리라’ 다짐했다는 등의 작가의 다채로운 경험담들은 독자들을 신비로운 자연 세상에 새로이 눈뜨게 한다. 서강가의 저희 집은 한 지붕 아래 세 가족이 사는 대식구입니다. 작은 집에 세 가족이 살려면 비좁고 불편하지 않냐고요? 그렇지 않답니다. 가끔 오랜만에 연락되는 지인들은 저더러 요즘도 혼자 사냐고 물어 옵니다. 제가 아니라고 대답하면, 다들 반가운 듯이 누구와 같이 사냐고 다시 묻습니다. 저는 천연덕스럽게 “박새, 딱새와 함께 살아요”라고 대답하지요. 너무 싱거운 대답이었는지 다들 “그런 거 말고” 하며 실망하는 눈빛들을 짓고 맙니다. 그러나 정말 그들이 나와 함께 사는 식구들인 걸 어떡합니까? -본문 중에서 ◆ 자연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 《침묵의 봄》의 저자인 레이첼 카슨은 ‘자연을 가까이 하는 기쁨은 땅과 바다와 하늘, 그리고 그 모든 것이 간직하고 있는 놀라운 생명의 경이에 자기 자신을 기꺼이 내맡길 줄 아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고 했다. 자연을 일종의 지식과 정보로만 생각한다면 우리에겐 설명하고 가르쳐 줄 전문가가 필요하다. 그러나 자연이 그간 살아온 공간과 시간의 이야기를 듣고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면, 생명의 아름다움 앞에 놀라워하고 기뻐할 수 있는 열린 눈과 열린 마음만 있으면 충분하다. 작가는 또한 동강의 래프팅 때문에 강여울마다 희귀어류의 보금자리가 허물어져 가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진정한 생태주의와 환경운동이 무엇인지를 독자들로 하여금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알면 사랑하게 됩니다. 사랑하면 더욱 잘 보이게 됩니다. 한 송이 꽃과 한 그루 나무 그리고 한 마리 새와 곤충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면 우리는 더 이상 어느 녀석이 더 희귀하고, 천연기념물이 어떤 종인지, 어떤 녀석이 더 중요한지를 구별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본문 중에서 ◆ 자연의 섬세한 습성과 지혜에 눈을 뜨다 황폐한 땅에 제일 먼저 뿌리를 내려 땅을 기름지게 만들고는 바로 떠나가는 잡초들, 홀씨를 멀리 날려 보내기 위해 작은 키를 쳐들고 고개를 높이 올리는 민들레, 꽃술을 빼먹은 후에 앞발로 더듬이를 입으로 가져가 더듬이에 묻은 꽃가루를 훑어 내리는 귀여운 모습의 베짱이, 나무에 구멍을 뚫으면서도 물관 같은 중요한 부위는 건드리지 않는 딱따구리, 모래밭과 똑같은 보호색으로 자신을 위장하는 꼬마물떼새, 한겨울에 낮은 곳에서 잎사귀를 활짝 열고 햇볕을 받아 크는 달맞이꽃 등 수없이 나열된 자연의 섬세한 습성과 지혜는 자연에게 마음을 연 사람에게만 전해지는 우화들이다. 좁고 갑갑한 어둔 땅속의 씨앗들은 오랜 시간 기다리고 기다리면서도, 언젠가 푸른 하늘을 향해 팔을 흔들며 예쁜 꽃을 피우리라는 소중한 꿈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꿈을 잃어버리는 날, 그때가 죽는 시간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때를 기다리는 지혜를 알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아니면 내일, 내일 아니면 내년……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 시간을 기다리며 오늘도 참고 기다립니다. -본문 중에서 ◆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렌즈, 그 안에서 찾은 행복 아름다움은 특별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발견하는 사람의 열린 눈과 마음에 있다. 사물과 사건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 그것은 우리의 삶을 행복으로 인도하는 비결이다. 좋은 사진이 되기 위해서 피사체에 알맞은 다양한 렌즈를 이용하는 것처럼, 행복한 삶을 만나기 위해서는 세상을 다양하게 바라보는 여러 개의 렌즈를 지녀야 한다. 자연은 서로 다른 모양과 특징들로 인해 다양함이 넘쳐흐르는 세상이다. 대기 중으로 날아가 버릴 작은 이슬 한 방울 속에 온 세상이 찬란히 빛나고 있는 모습들도 다채로운 아름다움을 실감하게 한다. 언젠가 저녁노을을 바라보다가 저도 모르게 풀밭에 그냥 눕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 눈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항상 발 아래로 보이던 자그마한 풀들이 제 얼굴보다 높은 위치로 올라오면서, 가느다란 풀들 사이로 노을 지는 붉은 태양이 마치 거대한 나무숲에 걸린 태양처럼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본문 중에서 ◆ ‘살아 있음’은 ‘교류하는 것’ 눈이 살아 있다는 것은 눈을 통해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과 교류하는 것이요, 귀가 살아 있다는 것은 자연의 아름다운 소리들과 교류하는 것이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를 대할 때 눈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귀 기울여 소리도 들어 보고, 향기도 맡아 보고, 맛도 보고, 만져 보기도 하면서 온몸으로 그를 느낄 때 우리의 감각들이 더욱 풍성하게 살아난다. 성 프란체스코의 기도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주위에 있는 생명들이 빚어내는 아주 작은 움직임에까지 귀를 기울이는 것이었다. 그에겐 새들의 노랫소리뿐 아니라 나뭇잎이 살랑거리는 소리, 다람쥐가 나무 타는 소리 등이 모두 신의 노랫소리였던 것이다. 완전한 기도는 욕망과 생각과 말이 멈춘 깊은 침묵 속에서 신이 들려주는 말씀을 듣는 것이다. 영국 시인 윌리암 블레이크의 ‘한 알의 모래알을 통해 세상을 보고 한 송이 들꽃을 통해 천국을 본다’라는 말, 미국 시인 랄프 왈도 에머슨의 ‘한 송이 꽃 안에서 지구가 웃는다’라는 말들을 이제 작가는 진심으로 이해한다. 갑자기 손등에 무언가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느낌이 들어 눈을 떴습니다. 잣나무를 오르내리던 개미 한 마리가 길을 막고 있던 제 손등으로 올라온 것입니다. 잣나무에서 손을 떼자 깜짝 놀란 개미가 손등에서 손바닥으로, 엄지에서 검지, 중지, 약지, 새끼손가락까지 도망갈 길을 찾기 위해 정신없이 이리저리 오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길을 찾아 헤매는 개미의 걸음걸음이 40여 년 간 깊이 잠들어 있던 나의 감각들을 깨우기 시작했습니다. -본문 중에서 ◆ 삶을 향한 자연의 의지와 용기를 배우다 어항 안에서 언 채로 한겨울을 보낸 꺽지가 겨울이 지나 얼음이 풀리면서 살아난 놀라운 이야기와 몸에 난 흉한 상처로 인해 젓가락이 될 운명을 피하고 장수를 누리는 미루나무 이야기 등은 삶에 대한 애정과 의지를 쉽게 놓아 버리곤 하는 인간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연과 생명의 경이로움에 대해 눈을 뜬 이후로 작가에게는 벌레 먹고 구멍이 숭숭 뚫렸으면서도 삶을 굳건히 견디어 낸 잎사귀들이 더 아름다워 보이기 시작했다. 혹 마음에 상처를 받아 힘들어하는 친구가 있으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까 싶어 작가는 그 잎사귀들을 따로 간직해 두었다. 가을이면 떨어지는 낙엽들 또한 알고 있다. 나무 밑동 어두운 곳에서 조용히 기다리노라면, 언젠가 저 하늘을 향해 팔을 벌리고 춤을 추는 예쁜 꽃과 잎사귀들과 탐스런 열매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지금의 나는 아니지만 또 다른 너의 모습으로 다시 세상과 만난다는 것을. 겨울 숲의 죽어 있는 듯한 고요 속에도 내일의 희망을 품고 달려가는 씨앗들의 행진이 있다.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내일을 준비하는 위대한 행위가 그 안에 숨어 있는 것이다. 나무는 지난봄에 피운 꽃의 영화(榮華)를 기억하지 않습니다. 탐스런 열매의 영광에도 집착하지 않습니다. 때가 되면 모든 것을 비우고 떨어뜨리며 기꺼이 시작을 준비합니다. 지난날을 잊어버리고, 봄이 오면 또다시 꽃을 피우고 최선을 다해 열매를 만들어 갑니다. 나무는 과거와 미래를 떨쳐 버리고 온전히 현재를 살아가는 지혜로운 사람과 같습니다.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불안에 집착하지 않고 이 순간을 누리는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사랑할 수 있고 언제나 기쁨과 감사로 충만한 날들을 만나게 됩니다. 나뭇가지를 스쳐 가는 바람처럼 참으로 자유롭고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