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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序 7
첫째 비구니와 일곱째 아이 13 둘째 왕의 사촌과 정승의 얼자 27 여종과 빈객 39 평해 손가의 아비와 아들 48 소년과 갈매기 56 방랑객과 미인 63 매부와 처남 67 셋째 사미와 비구 77 승려와 여종 85 비구와 우바니 92 비구와 비구니 98 젊은 스승과 늙은 제자 102 비구와 늙은 궁인 113 넷째 출궁한 궁녀와 승은한 궁녀 123 비구와 젊은 궁인 130 늙은 궁인과 여종 135 다섯째 자칭 왕손과 협녀 145 영의정과 좌의정 153 남과 여 158 판의금부사와 승려 162 여섯째 영의정의 외아들과 그의 아내 175 영의정의 며느리와 부원군의 소실 182 비구와 신녀 190 역도와 일곱째 아이 196 일곱째 새끼 무당과 아기 신령 205 역관의 처와 아기 야소 210 어미와 딸아기 225 작가의 말 2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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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님께 여쭙습니다. 죄 없는 며느님을 죽이고 어린 손자들을 절도로 유배 보낸 것으론 부족하더이까? 아비 없이 태어나, 어미 젖도 못 빨아보고 죽은 일곱째 아기씨를, 이제 와서 불러내는 이유가 무엇이오? 죽은 아이가 살아날까 두렵소이까? 그렇다면 자꾸자꾸 불러보시구려. 항차 그 두려움이 죽은 아이를 살려내고야 말 테니! 죽었다 살아난 아이를 또 죽이진 못할 테니!”
---pp.22-23 “사나이가 어째 이리도 말갛게 생겼을꼬. 이슬만 먹여 키웠다니? 원, 통째로 씹어 먹어도 비린내가 안 날 거 같네.” 외숙모는 서방 눈치를 보아가며 남몰래 뒤란으로 태철을 불러내 누룽지나 부침개, 개떡 등속을 쥐여주곤 했다. 태철의 살갗과 불두덩을 슬쩍 더듬는 일도 잦았다. ---p.59 나는 여기 사람이 아니야. 여기 사람이면 비리고 더러운 걸 이만치 싫어할 리 없지. 부모며 일가친척과 생김새, 식성이 이리도 깡그리 딴판일 리 없지. 나는 저 흰 새처럼 알에서 났을지 몰라. 어느 고귀한 여인이 알을 낳곤 놀라서 손도 집에 버렸을지도. 알에서 난 자가 인간 세상에서 인간으로 살 수 있을까? ---p.61 만송이 해서海西에서 끌어모은 스무 살 안팎의 사병들은 자기네를 사람대접하는 견을 지체肢體처럼 사랑하고 상제上帝처럼 우러른다. 무당이나 광대나 갖바치나 갈보나 땡추 소생인 그들에게 정승의 외아들이지만 천출賤出의 한을 품은 견은 하늘이 내린 미인, 용마를 타고 온 아기장수. 견의 눈썹이 위아래로 꿈틀거린다. 저 높은 하늘과 저 단단한 땅 사이에 내가 있고 저들이 있다. 항차 저들이 내 명치뼈 켜켜이 쉬슬 듯 박힌 이 설움과 분통의 알갱이를 씻어주리라. ---p.68 태철은 사하촌寺下村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미나리꽝 옆 옹달샘에서 손을 씻었다. 어미 생각, 원정의 음성이 겹쳐 마음이 적이 소란스럽다. 태철은 손뿐 아니라 마음까지 씻고자 발원하며 세수진언을 외운다. “활활 타는 저 불길, 끄는 것은 물이러니. 타는 눈, 타는 경계, 타는 이 마음, 맑고도 시원한 부처님 감로. 화택火宅을 여의는 오직 한 방편. 옴 주가라야 사바하. 옴 주가라야 사바하. 옴 주가라야 사바하.” ---p.79 “아이고, 무어 좋을 게 있다고 사람으로 태어났던고. 사람으로 날 바에야 천것으론 나지 말 일이지. 기어이 천것으로 날 바에야 계집으론 나지 말 일이지.” 여인이 태철을 흘낏 돌아보고는 목소리를 높였다. “아직 젊은것이 거듭거듭 흉사를 당하고는, 하늘 아래 마음 붙일 데가 하나 없으니, 아마도 그 탓이겠지요, 결국 이 한여름에 밤낮으로 덜덜 떨면서 혼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눈을 번연히 뜨고도 보지 못하는 산송장 꼬락서니랍니다.” ---p.86 손도의 아들로 살았다면 이런 일을 겪지 않았을까? 처경은 거듭 자문했다. 하지만 손도의 아들로 사는 생각을 하면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양반이 대체 무엇이기에 양반이 발고하면 물증 없이도 사람을 때려잡나? 중은 사람이 아닌가? 중이 이리도 천대받는 신분이었나? 이런 취급을 받으면서도 중으로 종신終身할 수 있을까? 중노릇하면서 이런 일을 당하기는 처음이라 처경은 큰 충격을 받았다. 손도의 아들로도 중으로도 살 수 없다면 어찌 살아야 할까? ---p.108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아기를 지킬 테요. 우리 아기. 아기를 데리고 멀리 떠나려 하오. 아기는 진짜 부모를 모르고 자랄 것이오. 나와 매화가 어미 노릇을 할 참이오. 아기가 아비를 물으면 아비는 지나가는 길손이었다고 말할 테요. 한 가지 약속할 수 있는 것은, 내 피를 받아 목을 축이고 내 뼈를 고아 국을 끓이더라도 아기를 살릴 것이오. 벗이여, 우리 아기를. ---p.138 “자식 덕을 바라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계집사람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 이 아이가 그 힘든 삶을 살아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거야…. 나 또한 사내였으면 안 해도 될 고생, 안 겪어도 될 설움, 무한히 감당하며 살아왔지. 너를 낳을 때도 난산이라 목숨을 걸었고 키울 때도 가난한 홀어미 처지라 힘든 일이 많았다. 그래도 돌이켜보면 네 덕분에 기쁘고 재미나고 좋았던 날도 숱했다. 꿈결에 생각해도 고마운 일이지 뭐니. 나한테 네가 있듯 이제 너한테 이 아기가 있으니 나는 오늘 밤에 자다 죽어도 여한이 없다.” ---p.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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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낮은 곳에서 부르는 노래, 만백성이 염원하는 ‘일곱째 아이’
《일곱째 아이》를 이끌어 가는 화자는 사람 만나서 얘기 듣는 재미에 암자와 절간을 수시로 들락거리는 날라리 불자이다. 신분, 적서, 성별, 당파 등에 따른 차별과 갈등의 경계선에서 조선 사회의 이쪽저쪽을 보고 듣고 겪은 화자가 그 사연을 접하게 된 내력을 도입부에 밝힌 후, 마치 당사자가 된 듯 몰입하여 인물이 처한 상황을 27편의 짧은 이야기로 그려 내고 있다. 27편 모두 공유하는 미스터리는 소현세자빈 강 씨가 별궁에 유폐되었을 때 홀로 낳았다는 일곱째 아이의 행방이다. 이 일곱째 아이는 조선의 민중이 마음속에 그리는 영웅과도 같다. 옛이야기에 나오는 아기 장수와도 같은 존재. 작가는 탁월한 이야기 솜씨로 일곱째 아이를 완벽하게 되살려 냈다.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요승 처경. 처경은 소현세자의 죽은 일곱째 아이라고 사칭한 죄로 스물네 살에 용산 당고개에서 사형당한 실존 인물이다. 작가의 상상력은 실록에 실린 한 줄의 자료에서 출발한다. 일곱째 아이라고 자처하게 되는 승려 처경, 천하게 태어나 양반의 노리갯감으로 시달리며 아이를 일곱이나 낳았으나 한 명도 살리지 못해 눈뜬장님이 된 자련 보살 애숙. 처경과 애숙의 애달픈 이야기가 한 폭의 동양화처럼 애틋하다. 그리고 서얼이지만 여인이라는 것만으로 사람대접 받지 못하는 홍예형, 북방의 산맥과 들판을 말 타고 달리던 여인은 영의정의 서자와 혼례를 치렀으나 그 기세를 꺾지 않으며 이야기의 또 다른 한 축이 된다. 이외에도 절대 권력의 그늘에 엎드린 궁녀가 있다. 화자와 깊은 우애를 나누는 벗이자 승려 처경을 몸주신으로 받아들이고 신내림을 받는 퇴직 궁녀 예옥, 예옥의 방각시로 자라 임금의 사랑을 받았으나 그 때문에 생사의 기로에 서는 현직 승은궁녀 상업 등이 그들이다. 이 인물들은 화자를 통해 조선 후기 사회의 다양한 갈등과 억압 아래 제각기 욕망과 고통을 가지고 피와 땀, 살냄새를 풍기며 오늘의 독자에게 말을 건다. 우리를 위한 이야기 우리가 기다려야 할 영웅은 어디 먼 데서 용마를 타고 올 장수가 아니라 조금 더 진화한 우리 자신임을, ‘한 줌 더 복되고 두 뼘 더 지혜롭고 세 발 더 멀리 나아갈 미래’를 우리 손으로 죽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오목조목 이어 붙인 조각보 형식의 이 역사소설에 담고 싶었습니다. 책에 실린 작가의 말이다. 작가는 늘 ‘여성’과 ‘생명’이라는 주제를 탐색하며 이야기를 쓰고 있다. 소현세자빈인 강 씨를 새로운 세상을 꿈꾼 여인으로 그려 낸 바 있으며 그 시대의 이야기를 강 씨에서 주변 인물로 확장하여 《일곱째 아이》를 완성하였다. 힘없는 이들이 서로를 지켜내기 위해 애쓰며, 새로 태어나는 생명을 지키기 위해 어떤 위험도 무릅쓰는 장면에서는 인간이 품어야 하는 마음은 무엇인가 생각하게 한다. 혹독한 시절에도 생명은 태어나고 삶은 이어진다. 그리고 생명을 품어 내는 어미들이 있다. 생명을 품고자 하는, 품고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한 이야기이다. 오늘을 고단하게 살고 있는 우리도 이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 줄 저마다의 영웅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웅은 먼 데 있지 않다고 작가는 말한다. 오늘을 살아가며 한 뼘 더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나’라는 생명을, 그래서 서로를 북돋우는 생명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덧붙여 조선 시대 속에 살고 있는 듯한 장면 묘사와 수려한 문장은 이 소설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