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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심연
10장. 달무리 11장. 비꽃(雨花) 12장. 사랑 13장. 파랑새를 찾아 14장. 침묵 15장. 태풍 16장. 사랑이 나른 기적 17장. 해바라기 에필로그 Side Story: Sexy Bom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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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칵, 찰칵.
그러다 무의식중에 고개를 돌렸다. 카메라를 내린 그의 시선과 마주쳤다. 강렬함 그리고 전율. 온몸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의 시선에 볼을 붉혔다. 언제나 이때쯤이었다. 이 남자를 산자락에서 만난 것도 석양이 넘어갈 이즈음. 석양의 붉은 햇살 한 자락에 그 또한 붉게 물들었다. 숨이 멎었다. 잠시나마 잊고 있던 그의 존재감으로 심장이 또다시 맹렬히 뛴다. 후우. 재희가 겨우 가는 숨을 내쉬었다. 더 이상 참지 못한 자가 약자. 그녀가 먼저 서서히 그에게 다가섰다. “선생님은 알죠?” 움찔거리지도 않은 그의 눈빛을 재희가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는 선생님이 두려워요.” 윤의 코앞까지 다가가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대답하지 않지만, 그는 이를 악물었고 볼을 실룩거렸다. 그곳을 재희의 가는 손가락이 살며시 쓸었다. 윤의 볼이 움찔거렸다. “블랙홀 같아서.” 재희의 말이 끊겼다. 불꽃이라도 튈 것 같은 눈빛. 분명 서로의 마음을 읽었다. 원하는 건가? 이 남자를 정말……? “당신 또한.” 윤의 목소리가 깊게 가라앉았다. 그래서 정말 두렵다. 한 번도 경험치 못했던 소유를 향한 갈망이라서. 상처 많은 이 여자에게 자신 또한 상처가 될까 봐. 그래도 갖고 싶다. 견딜 수 없이 갖고 싶다. “공평하네요. 그래도 내 두려움의 원인을 선생님은 알 것 같아요.” 윤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볼 위에 느껴진 그녀의 손끝이 차갑다. 그것이 마음에 걸려 윤은 그 끝을 쥐었다. “모든 해답은 당신 스스로 갖고 있어.” 나를 이렇게 흔들어놓은 당신이 해답이야. 윤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의 손끝을 쥐고 있던 손아귀에 조금씩 힘이 들어갔다. 벌떡대는 심장이 위태로웠다. “나는 감정 같은 것 믿지 않아요. 특히 좋아한다거나 사랑한다거나……, 그런 건 더욱.” 하지만 솔직히 인정해야 했다. 자신조차 해석치 못한 이 감정은 열외라는 것. 굳은 윤의 표정을 재희는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내게 중요한 것은 현재, 지금이에요.” “현재의 감정에 충실하겠다는 말인가? 언제나 도망갈 수 있도록 한 발은 먼저 빼놓는군.” 윤의 눈빛은 심연처럼 어두웠다. 깊고 또 깊어 블랙홀처럼 빠져들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럼에도 말이다.” 윤이 한 발짝 더 다가갔다. 심장을 두드리는 머루같이 검은 눈동자.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이 여자가 온 세상을 아래로 두고 호령하던 그 여자라는 것이. 윤은 훅, 숨을 내뱉었다. 눈빛이 번쩍였다. “나는 미리 경고했어.” 두려우면 다가오지 말라고. 재희는 미동도 하지 못한 채 윤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뭉근한 떨림을 꾹 눌렀다. “그것이 내 마지막 경고고, 보루였어. 지금 넌 도망갈 준비를 한 채 현재에 충실하겠다고 말하지만, 나는 미래까지 생각해.” 윤의 목소리는 표정만큼 굳었다.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지만 누구도 움직이지 못했다. “결코 너, 놓지 않아.” 그의 심장은 떨고 있는데, 여자는 미동도 없다. 그가 조금 더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그 순간. 흡. 숨이 멈췄다. 그녀의 목을 끌어당긴 윤의 입술이 급하게 부딪쳤다. 강한 힘으로 무섭게 다가와 그녀를 옭아맸다. 간절히 한 사람을 원하게 했다. 석양빛이 아릿하게 주변으로 흩어져간다. 하아! 서로의 혀가 얽히고, 타액이 흘렀다. 야릇한 숨소리가 알싸한 저녁 공기 중으로 흩어지고, 거침없이 서로를 끌어안았다. 폭우처럼 밀려온 감정에 숨이 막혔다. 메에. 그들을 에워싼 양떼들의 울음소리가 너른 초원 위로 빛살처럼 부셔져갔다. ---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