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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판 서문 / 지은이 서문 / 추천의 글
디트리히의 본회퍼의 초상 약어표 / 가계도 / 활동 도시 1부. 신학에 끌리다 1장. 유년기와 청소년기 1906-1923 I 선조들 II 브레슬라우 친가 III 베를린 IV 신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하다 2장. 대학 공부 1923-1927 I 튀빙겐 II 로마 III 베를린 IV 박사 학위 논문 V 세미나 논문들 VI 난생 처음 국민교회에 발을 들여놓다 3장. 바르셀로나에서 수련목회자로 사역하다 1928 I 수련목회자의 길을 선택하다 II 스페인 III 바르셀로나 독일인 교회 IV 미래 설계 4장. 베를린 대학교 조교 시절 1929-1930 I 대학교수 자격 취득 II 사귐 III 미국 계획 5장. 미국 체류 1930-1931 I 미국 II 친구들 III 유니언 신학대학교 IV 고향 2부. 그리스도인 됨의 대가(代價) 6장. 대학 강사생활과 목회생활 1931-1932 I 본 II 교리문답서 III 케임브리지 IV 신학자에서 그리스도인으로 V 대학교 VI 교회 VII 에큐메니칼 활동 7장. 베를린 1933년 I 2월: 조작된 혼란 II 3월: 히틀러 법령 III 4월: 독일그리스도인연맹 IV 5월: 젊은 개혁자들 V 6월: 정부 위원 VI 7월: 교회 선거 VII 8월: 베텔 고백 VIII 9월: 아리안 조항 8장. 런던 1933-1935년 I 교구 목사 II 교회 당국에 대한 1차 공격, 1933-1934년 겨울 III 치체스터의 주교 조지 K. A. 벨 IV 파뇌 V 제국교회 당국에 대한 2차 공격, 1934-1935년 겨울 VI 계획들 9장. 신학원 1935년 I 신학원들 II 칭스트와 핑켄발데 III 교안 IV 형제의 집 V 에큐메니칼 활동 VI 슈테글리츠 결의문 10장. 핑켄발데 1936-1937년 I 시행령 제5조 II 스웨덴 여행 III 교회연대에 관한 논문 IV 히틀러에게 보내는 항의서 V “대외 봉사” VI 1936년 샹뷔 VII 핑켄발데 신학교의 말년 VIII 핑켄발데의 최후 11장. 수련목회자 모임 1938-1940년 I 힌터포메른의 수련목회자 II 최악의 상태에 이른 교회투쟁 III 합법화 IV 정치의 소용돌이 V 영국, 1939년 3월과 4월 VI 미국, 1939년 6월과 7월 VII 전쟁 VIII 그리스도인에서 동시대인으로 3부. 독일의 운명에 참여하다 12장. 출장 여행 1940-1943 I 전시의 고백교회 II 직업 문제 III 신학 IV 첫째 단계: 정보, 1941년 봄 V 둘째 단계―평화 계획들, 1941년 가을 VI 셋째 단계: 쿠데타 통지, 1942년 VII 체포 VIII 약혼 IX “한계 상황” 13장. 테겔 형무소 1943-1944 I 한스 폰 도나니를 상대로 한 심문 II 본회퍼에 대한 수사 III 테겔 감방 IV 성숙한 무력(無力)의 신학, 하나의 보론 14장. 제국보안본부 유치장에서 1944-1945 I 프린츠-알브레히트 슈트라세 II 부헨발트 III 플로센뷔르크로 가다 IV 나머지 이야기 부록 A. 초센 문서들에 관하여 B. 감옥에서 읽은 책들 디트리히 본회퍼 전집 / 약칭 풀이 연표 주 찾아보기 옮긴이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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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리히 본회퍼는 체격이 다부졌다. 어머니의 금발과 푸른색 눈동자를 타고났고, 예민한 입과 도톰하면서 날렵한 입술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았다. 두 손은 가냘파 보여도 힘이 대단했다. 대화를 나눌 때면 대개 왼손가락에 낀 반지를 만지작거리곤 했는데, 거기에는 본회퍼 가문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본회퍼는 특히 강인한 사람이었다. 늘 강의와 글쓰기에 몰두하고, 결단을 내리고, 그 근거들을 추적하고, 사람들을 돕거나 그들의 주의를 일깨웠다. 요컨대 그는 자신의 압축된 생애가 요구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 힘을 다했다. --- p.32 「디트리히 본회퍼의 초상」 중에서
충성심의 분열을 겪어 보지 못한 사람과 민족은 가장 양심적인 사람이 치욕을 당해야 하는 한계 상황을 그대로 느끼기 어려운 법이다. 당시의 한계 상황을 자기의 원칙에 의거하여 성급하게 가늠하거나 그 상황의 특수성을 일부러 무시하는 자는 그 상황의 윤곽을 날조하고 그 세월의 실재를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보통의 안목 없는 예법으로는 독일의 명성을 더 이상 구출할 수 없었다. 이 세상에서 사리사욕을 꾀하여 조국에 손해를 끼치려 하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국가전복죄“에 속한다. 하지만 오스터, 도나니, 본회퍼의 경우는 정반대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 p.935 「11장. 수련목회자 모임」 중에서 본회퍼는 1942년 성탄절에 공모자들을 위해 쓴 ‘10년 후’라는 소론에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한다면, 자유를 누리는 가운데 시간을 포착하여 위험에 맞서는 책임 있는 행동 속에서, 그리고 참된 자비 속에서 그리스도의 너른 마음에 참여해야 한다. 이 참된 자비는 불안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고통당하는 이들을 해방하시고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비롯된다. 하는 일 없이 기다리며 흐리멍덩하게 구경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아니다. 자기 몸으로 겪어 얻은 지식들이 아니라, 동료 형제들―그리스도께서는 이들 때문에 고난을 당하셨다―의 몸을 통해 얻은 지식들이 그리스도인을 행동과 자비로 부른다.” --- p.1016 「12장. 출장 여행」 중에서 플로센뷔르크에서는 이날 새벽녘에 사형 집행이 이루어졌다. 수용소에서 근무하던 의사는 당시에 자기가 지켜보고 있는 본회퍼가 누구인지를 전혀 알지 못했다. 10년 뒤 그는 아래와 같이 기록했다. 그날 아침 5시와 6시 사이에 카나리스 제독, 오스터 장군,……자크 판사 등의 피고들이 감방에서 끌려 나왔다. 군사법원의 판결문이 낭독되었다. 막사에 있는 한 방의 반쯤 열린 문을 통해, 나는 본회퍼 목사가 죄수복을 벗기 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주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이 신비한 힘을 지닌 사람이 기도하는 방식을 보고 가장 깊은 감명을 받았다. 어찌나 경건한지,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확신할 정도였다. 그는 형장에서 다시 짤막한 기도를 드린 다음, 용감하고 침착하게 계단을 밟고 교수대로 올라갔다. 그는 몇 초 뒤에 죽었다. 나는 지난 50년 동안 의사로 일하면서, 그토록 경건하게 죽음을 맞이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 p.1293 「14장. 제국보안본부 유치장에서」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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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리히 본회퍼 서거 70주년 기념,
에버하르트 베트게의 가장 권위 있는 기록으로 그를 만나다! - 강영안, 채수일, 임영수, 박영돈, 유해무, 김기석, 김영봉, 손희영, 김회권 외 추천 “이 책은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에 나침반이 될 명저(名著)다!” 21세에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24세에 대학교수 자격을 취득한 ‘천재 신학자’, 독일교회가 정치 세력과 야합하는 것에 강력하게 반발하며 소신을 굽히지 않은 ‘투사’, 20세기 초반 전 세계를 혼란 속에 몰아넣은 히틀러에 맞서 그리스도인의 양심을 지킨 ‘순교자’ 디트리히 본회퍼의 전기다. 본회퍼의 제자이자 친구인 에버하르트 베트게가 1967년 완성한 이 전기는, 한국 독자들에게 처음 선보이는 본회퍼 전기의 결정판이다. 본회퍼의 출생부터 죽음까지의 세밀한 이야기를 비롯하여 그의 가족과 주변 사람들, 동시대에 살았던 정치·역사·신학적 주요 인물들을 함께 다룸으로써, 이 책은 디트리히 본회퍼라는 한 사람을 중심으로 한 시대를 재구성한 방대한 작업이 되었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본회퍼 개인의 이야기뿐 아니라 현대사, 교회 투쟁사, 저항 운동사, 에큐메니칼 운동 초기의 단면과 신학의 단면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은 진정한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고자 고민하는 이들에게, 신앙과 삶, 목회와 신학의 균형을 지키며, 정의와 윤리를 위해 생명까지 내건 신앙인의 모범을 제시해 줄 것이다. 20세기 기독교 순교자, 디트리히 본회퍼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전기! 에버하르트 베트게의 『디트리히 본회퍼』는 출간 이후 반세기가 넘은 지금까지도 본회퍼 전기의 ‘결정판’으로 인정받고 있다. 오랫동안 가까이에서 본회퍼를 알았고, 그와 뜨거운 우정을 나누었던 베트게야말로 본회퍼의 내면을 그 누구보다 가장 잘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는 아주 작은 단서만 발견해도 집요하게 추적하여,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본회퍼의 글들을 찾아내고 알려 왔다. 베트게가 아니었다면 본회퍼가 남긴 원고와 편지, 강의 노트 등을 정리한 본회퍼 전집은 물론, 그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기록인 이 전기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밀도 높은 자료와 분석과 필치로 디트리히 본회퍼라는 한 인물의 삶과 사상과 정황을 흥미로우면서도 생동감 있게 담아내었다. 본회퍼의 성장 과정, 신학자로서의 입문과 발전, 목회자로서의 영적 분투, 그리고 저항적 순교사에 이르는 전 생애가 입체적으로 그려져 있다. 이 책은 “형제들 가운데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한 이”에 대한 기억을 앞으로도 생생히 유지할 것이고, 디트리히 본회퍼를 신학자-그리스도인-동시대인으로 기억하는 전기로 남을 것이다. 본회퍼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꼭 읽어야 할 책이며, 본회퍼의 이 통전적인 기독교 신앙과 신학 유산을 절실히 계승해야 할 한국교회에 꼭 필요한 책이다. 특징 - 디트리히 본회퍼의 제자이자 친구인 에버하르트 베트게가 쓴, 본회퍼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전기. - 본회퍼 개인의 생애가 세밀하게 담겨 있을 뿐 아니라 현대사, 교회 투쟁사, 저항 운동사, 에큐메니칼 운동 초기의 단면과 신학의 단면을 종합적으로 엿볼 수 있는 방대한 전기. - 새로 확인된 사실들과 완간된 디트리히 본회퍼 전집을 참조하여, 1967년 출간된 초판의 내용을 수정·보완한 개정판. - ‘하나님의 사람 시리즈’ 15권. 독자 대상 - 디트리히 본회퍼의 생애와 그의 신학을 깊이 있게 탐구하고자 하는 이들. - 히틀러 전후 독일교회의 상황을 비롯하여, 20세기 초반 당시의 역사적·신학적 흐름에 대해 알고자 하는 이들. - 신앙과 삶, 목회와 신학의 균형을 지키며, 정의와 윤리를 위해 생명까지 내건 신앙인의 모습을 배우고자 하는 이들.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 연보 1906년 2월 4일, 브레슬라우에서 태어나다. 1923년 튀빙겐 대학교에서 신학공부를 시작하다. 1924년 여름학기부터 베를린 대학교에서 공부하다. 1927년 12월 17일, 라인홀트 제베르크 밑에서 「성도의 교제」(Sanctorum Communio)로 박사 학위 취득. 1928년 1월 17일, 22세에 1차 신학고시에 합격하다. 2월 15일, 바르셀로나에서 수련목회자 사역을 시작하다. 1929-1930년 베를린 대학교에서 빌헬름 뤼트게르트의 수습 조교로 일하다. 1930년 7월 5-8일, 24세에 2차 신학고시에 합격하고 「행위와 존재」(Akt und Sein)로 대학교수 자격 취득. 9월 5일부터 1931년 6월까지 미국 유니온 신학교에서 연구하다. 1931년 8월 1일, 베를린 대학교 신학부에서 대학 강사로 일하기 시작하다. 11월 15일, 목사 안수를 받고 (1932년 3월까지) 베를린 베딩에서 견신례 학급을 맡아 지도하다. 1932년 7-8월, 베스터부르크, 체르노호르스케 쿠펠레, 제네바, 글랑에서 열린 에큐메니칼 회의에 참석하다. 1933년 2월 1일, 라디오 방송에서 ‘지도자 개념의 변화’라는 제목으로 강연하다. 9월, 니묄러와 함께 목사긴급동맹 초안을 작성하다. 성명서 「전국총회에 고함」 발표. 10월 17일, 27세에 런던에서 목사직에 취임하다. 1935년 4월 26일, 칭스트(발트 해)에서 신학원을 시작하고 2개월 뒤 핑켄발데로 이전하다. 1936년 2월, 베를린 대학교 신학부에서 ‘나를 따르라’라는 제목으로 마지막 강의를 하다. 8월 5일, 제국교육부 법령에 따라 대학교수 자격을 박탈당하다. 1937년 2월, 에큐메니칼 런던 대회에 마지막으로 참석하다. 9월, 게슈타포가 핑켄발데 신학원을 폐쇄하다. 11월, 31세에 『나를 따르라』(Nachfolge) 출간. 12월 5일, 쾨슬린과 그로스-슐뢴비츠에서(나중에는 지구르츠호프에서) 수련목회자 모임 시작. 1938년 1월 11일, 베를린과 브란덴부르크에 체류하는 것을 금지당하다. 프리치 사건을 공동으로 조사하던 한스 폰 도나니와 오스터에게서 쿠데타 계획을 처음으로 알게 되다. 9월, 괴팅겐에서 『신도의 공동생활』(Gemeinsames Leben) 집필. 1939년 3월 10일, 런던으로 가서 조지 K. A. 벨 주교, 피스르트 호프트, 라인홀드 니부어, 게르하르트 라이프홀츠와 상의하다. 6월 2일, 미국으로 출발하여 20일에 귀국을 결심하다. 7월 27일, 베를린으로 되돌아오다. 1940년 3월 15일, 지구르츠호프에서 학기를 종료하다. 3일 뒤 게슈타포가 지구르츠호프 수련목회자 모임 폐쇄를 명령하다. 9월, 발언 금지 조치를 당하다. 관할 경찰서에 주소지 신고 의무를 부과받다. 9-10월, 클라인-크뢰신에서 『윤리학』(Ethik)을 집필하다. 방첩대 뮌헨 지부에 배속되다. 1941년 10월, 베를린에서 유대인이 추방당하기 시작하자, 유대인 구출 계획인 “작전 7”을 수행하다. 1943년 1월 13일, 37세에 마리아 폰 베데마이어와 약혼하다. 4월 5일, 한스 폰 도나니 부부, 요제프 뮐러 부부와 함께 체포되다. 1944년 1월, 수사책임자 뢰더가 교체되어 기소가 무기한 연기되다. 7월 20일, 슈타우펜베르크가 히틀러 암살을 시도하다. 9월 22일, 게슈타포 수사관 존더레거가 초센 방첩대 방공호에서 문서철을 적발하다. 10월, 탈주 계획을 세웠으나 같은 달 5일 클라우스 본회퍼, 뤼디거 슐라이허, 에버하르트 베트게 등이 체포되는 바람에 연좌제를 우려하여 계획을 포기하다. 8일에 프린츠-알브레히트 슈트라세 게슈타포 지하 감옥으로 이송되다. 1945년 2월 7일, 부헨발트 강제수용소로 이송되다. 4월 3일, 부헨발트에서 레겐스부르크로 이송되고, 이틀 뒤 히틀러의 정오 면담에서 말살 명령이 떨어지다. 4월 6일, 쇤베르크(바이에른 삼림지대)로 이송되다. 이틀 뒤 플로센뷔르크로 이송되어, 야간에 즉결재판을 받다. 4월 9일 새벽, 플로센뷔르크 강제수용소에서 빌헬름 카나리스, 한스 오스터, 칼 자크, 테오도르 슈트륑크, 루트비히 게레 등과 함께 39세의 나이로 교수형에 처해지다. 한스 폰 도나니는 작센하우젠에서 살해당하고, 같은 달 23일에는 클라우스 본회퍼와 뤼디거 슐라이허, F. J. 페렐스가 베를린에서 총살당하다. 복 있는 사람에서 펴낸 ‘하나님의 사람’ 시리즈 1 『전능자의 그늘』 _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한 증인, 짐 엘리엇의 삶과 신앙 2 『영광의 문』 _북미 선교사들의 영원한 심장, 젊은 5인의 순교 이야기 3 『에이미 카마이클』 _하나님의 거룩한 전사 4 『디트리히 본회퍼』 _에버하르트 베트게가 생생하게 그려낸 본회퍼 전기의 결정판 5 『순례자의 노래』 _위대한 복음전도자, 스탠리 존스의 영적 자서전 6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생애와 일기』 _원본에 충실한 국내 최초 완역본 7 『프랜시스 쉐퍼』 _20세기 기독교 문화 형성의 가장 중요한 인물 8 『조나단 에드워즈와 그의 시대』 _새롭게 쓰여진, 조지 마즈던의 조나단 에드워즈 전기 9 『고백』 _가난한 자들의 친구, 도로시 데이의 영적 순례기 10 『아직 끝나지 않은 길』 _위대한 복음주의 선교신학자, 레슬리 뉴비긴 자서전 11 『그리스도가 왕이 되게 하라』 _아브라함 카이퍼의 생애와 그의 시대 12 『아더 핑크』 _하나님의 숨은 보석, 20세기의 위대한 성경학자 13 『C. S. 루이스』 _별난 천재, 마지못해 나선 예언자 14 『칼 바르트』 _20세기 신학의 교부, 시대 위에 우뚝 솟은 신학자 2015 CTK ‘올해의 책’ 대상에 「디트리히 본회퍼」 본회퍼 전기의 결정판으로 불리는 「디트리히 본회퍼」는 본회퍼의 제자이자 친구인 에버하르트 베트게가 1967년 완성했으며, 본회퍼의 출생부터 죽음까지의 세밀한 이야기는 물론 그의 가족과 주변 사람들, 동시대를 산 정치, 역사, 신학적 주요 인물들까지 망라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본회퍼 개인의 이야기와, 교회 투쟁사, 저항 운동사, 에큐메니칼 운동 초기의 단면과 신학까지 엿볼 수 있다. CTK는 2015년 ‘올해의 책’으로 「디트리히 본회퍼」를 선정하는 데 특별히 고민하지 않았다. 그만큼 선정위원들의 평가는 크게 엇갈리지 않았고, 1468쪽의 이 두꺼운 책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