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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Ⅰ. 첫 번째 밤 : 고대 왕국과 제국, 그리고 민주주의 여자는 시장에서 장사하고 남자는 집에서 옷감 짜고 - 다른 나라와 풍습과 관습이 반대였던 고대 이집트의 이모저모 사자의 집, 사자의 몸 - 영원히 신비, 피라미드와 미라 이야기 크산티페는 남편의 죽음을 슬퍼했다? - 악처의 아이콘으로 오해받는 소크라테스의 아내를 위한 변명 저 젊은 처녀, 눈부신 넓적다리를 맨살로 드러내네 - 잘 먹고 일하지 않고 운동을 많이 했던 스파르타의 여성들 스파르타 병사들이 전투 전에 머리를 손질한 이유는? - 긴 머리를 초능력의 원천이라고 생각했던 고대인의 마인드 Ⅱ. 두 번째 밤 : 로마 제국 흥망사 자식을 팔거나 죽이는 것은 아버지의 권리였다 - 고대 세계의 아버지들은 왜 그토록 강력한 권한을 가졌을까? 배우가 된 그 황제는 정말로 폭군이었을까 - 로마에서 가장 미천한 직업이었던 배우로 무대에 선 네로의 기행에 대한 극과 극의 평가 양털은 깎아도 가죽은 벗기지 말라 - 피정복민을 관대하게 통치한 로마 제국의 정책 다음 메뉴는 암퇘지의 자궁, 낙타의 발뒤꿈치 요리입니다 - 먹기 위해 토하고, 토하기 위해 먹었던 로마의 음식 사치 검투 경기는 원래 장례식 이벤트였다? - ‘빵과 서커스’라는 말에 숨어 있는 로마의 검투 경기에 대한 오해와 진실 검투 경기 전에 동물을 죽이는 행위에는 의미가 있다? - 로마의 대규모 동물 도살에 숨어 있는 로마인의 진심 죄수 공개처형을 환영합니다? - 고대에서 전근대까지, 경찰력이 빈약하던 시절에 잔혹하게 처형을 했던 이유 Ⅲ. 세 번째 밤 : 중세 기독교의 이중생활 예수는 왜 십자가형을 받았을까 - 명예형인 참수형과 불명예형인 십자가형 이야기 발가벗은 예수에서 옷 입은 예수로 - 십자가형을 받은 예수의 마지막 모습은 왜 바뀌었을까 나는 기독교인이니 나를 죽여주시오 - 기독교인들의 자발적인 순교 열풍은 왜 일어났을까? 토마스 아퀴나스는 죽어서 통째로 삶아졌다? - 성인숭배 의식이 낳은, 웃지 못할 해프닝 교황의 아들은 ‘호부호형’ 못하는 홍길동? - 중세 성직자의 부정부패와 성적 타락의 면면 Ⅳ. 네 번째 밤 : 천년의 암흑, 그래도 중세의 삶은 계속되었다 귀족들의 세 끼 식사, 누가 누가 많이 먹나 - 중세 시대에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던 ‘과식’과 ‘과음’ 중세의 상류층은 왜 고기를 잘 썰어야 했나? - 중세 시대 고기 먹는 법에 숨어 있는 비밀 하얀 밀빵을 먹는 사람들, 순무를 먹는 놈들 - 음식과 의복으로 구별되었던 중세의 신분 회충이 눈으로 기어 나올 때 - 중세의 화장실과 위생 관념 위대한 카롤루스 대제는 까막눈이었다? - 100명 중 99명이 문맹이었던 중세 시대 책과 인쇄의 역사 ‘하루’는 쟁기질할 수 있는 토지의 양이었다? -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약속 시간을 정했을까 따뜻한 돼지를 끌어안고 꿈나라로 가자! - 인간과 가축이 옹기종기 한 공간에 살았던 중세의 농가 이야기 우신예찬과 유토피아, 두 남자 이야기 - 개혁론자 에라스무스와 혁명론자 토머스 모어의 세대를 초월한 우정 Ⅴ. 다섯 번째 밤 : 천년의 밤이 지나고 새벽이 밝아오다 귀부인의 하얀 얼굴, 수은과 납으로 완성되다 -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화장이 낳은 중금속의 비극 하루에 4시간 이상 일하면 안 된다는 법이 있었다? - 인클로저 운동으로 인구는 폭증하고 일자리는 없었던 17세기 런던의 풍경 왕비님, 두통에는 담배를 피우소서! - 미국을 건설한 약탈자와 그들에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된 담배 이야기 총의 탄생이 절도 있는 동작을 만들었다? - 좌향좌 우향우의 기원 ‘태양왕’은 ‘악취왕’이었다! - 루이 14세가 회의 중에 설사하고 포도주를 코로 내뿜은 이유 마리 앙투아네트, 품위에 살고 품위에 죽다 · 245 - 루이 16세 일가의 파리 탈출은 왜 실패했나 언어를 보라, 평등이 보일 것이다? - ‘분리 창조론’에 맞서 인간의 평등함을 증명하려 언어를 연구한 토머스 제퍼슨 Ⅵ. 여섯 번째 밤 : 빵과 잠,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갈림길에서 우리 마누라, 헤어지지 못하니 팝니다 - 근대 영국의 불합리한 이혼 제도 이야기 제발, 10분 더 잠을 자고 싶다! - 산업혁명기, 하루 18시간 이상 일을 해야 했던 잔혹한 ‘그때 그 시절’ 결혼식장에서 신랑은 왜 신부의 오른쪽에 설까? - 결혼식과 웨딩드레스, 결혼제도를 둘러싼 이야기 눈물 젖은 감자, 그리고 대기근의 트라우마 - 19세기 아일랜드 대기근이 낳은 아메리카 이민 이야기 하느님의 이름으로, 노예제는 정당하다? - 19세기 미국 남부에서 노예제도 폐지를 반대한 뜻밖의 이유 미주 그림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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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를 먹을 때 빠지지 않은 것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후추이다. 중세인들은 후추를 유달리 좋아했다. 그들이 왜 그토록 후추를 좋아했는지는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예전에는 중세인들이 가을에 돼지를 잡아서 봄까지 먹었는데 냉장 시설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한 고기를 먹어야 하는 경우가 많아, 후추를 쳐서 고기 상한 냄새를 없앴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런데 이 설명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데 당시에는 후추 값이 고깃값보다 비싼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후추가 재력과 권력을 상징하는 물질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귀족들이 자신들의 신분을 과시하고 동질감을 형성하기 위해 후추를 먹었다는 설명이 가장 유력하다. (중략) 중세 귀족들은 후추를 유달리 좋아했는데, 손님을 초대하면 후추를 담은 쟁반을 따로 제공했으며 후추를 고기에 쳐서 먹었을 뿐만 아니라 후식으로도 먹고, 물에 끓여서도 먹고, 그것도 모자라 잠자기 전에 소화제로도 먹었다. --- p.141~142 고기를 잘라 나누어주는 일은 명예스러운 일로 여겨졌고, 보통 집주인이나 주인이 간청한 지체 높은 손님이 맡았다. 1714년 프랑스의 한 예절서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젊은이들과 지위가 낮은 사람들은 고기를 대접하는 일에 끼어들어서는 안 되고, 다만 차례가 되거든 스스로 가져다 먹어야 한다.” 18세기까지도 상류층에게 고기를 능숙하게 자르는 법은 매우 중요했다. 1530년에 에라스무스는 “고기를 잘 써는 법을 어려서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기록하기도 했다. (증략) 중세의 농민들은 숲에다 돼지를 방목했는데, 가을이 오면 돼지가 먹을 수 있는 도토리 같은 숲의 열매들이 없어지기 때문에, 늦가을이면 연례적으로 돼지를 도살해서 처마에 걸어두고 겨우내 그것을 조금씩 잘라먹었다. 중세인들은 처마에 걸린 돼지를 보면 기뻤고, 가슴 뿌듯함을 느꼈다. --- p.148~149 가축 한 마리로 품질 좋은 양피지를 4장 정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서는 보통 양이나 송아지 30마리가 필요했다. 성경 한 권을 만들기 위해서는 200~300마리의 양이나 송아지를 도살해야 했다. 책 제목은 금을 녹여 붓으로 쓰는 경우도 있었다. 컬러 그림이 들어간 책도 많았는데, 책에 색깔을 입히는 것은 비용과 정성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었다. 예를 들어 파란색을 입히기 위해서는 구리를 녹슬게 해서 그 녹을 채취했다. 이렇게 많은 원료와 정성이 들어갔으니, 당연히 책 한 권의 값은 매우 비쌌고, 책을 가진 집안은 가장이 죽을 때 중요한 가보로 물려주었다. 황제나 왕들이 새로 세워진 수도원에 기증하는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 두루마리 사본이었다. --- p.171~173 중세까지도 서양 사람들은 주로 나무와 흙으로 집을 만들었다. 나무로 만든 중세의 집은 수명이 50년 이하였고, 사람들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집을 헐어서 다른 곳에 다시 짓곤 했다. 이렇게 집이 한 곳에 고정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중세인들은 집이 부동산이 아니라 동산이라고 생각했다. 중세 농가의 전형적인 형태는 긴 집이라고 불렸던 ‘일자형 복합 가옥’이었다. 집 안에는 인간이 거주하는 공간, 헛간, 마구간이 있었는데, 세 공간이 한 처마 밑에 이어져 있었다. (중략) 창문이 없는 상황에서 취사와 난방을 위해서 집 가운데 화로를 설치했는데, 화로에 불을 피우면 금방 온 집안이 연기로 가득 찼다. 창문이나 굴뚝이 없었기 때문에 이 연기는 제대로 배출되지 않았고 많은 불편을 초래했다. 그래서 ‘남정네를 집에서 몰아내는 세 가지는 빗물이 새는 지붕, 마누라의 바가지, 화덕의 연기다’라는 중세의 속담이 생겨났다. --- p.186~187 허름한 집이라도 있는 노동자들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많은 노동자들이 집도 없이 노숙 생활을 하였기 때문이다. 일간지였던 「런던 타임스The London Times」 1834년 10월 12일자 기사에 의하면 50명의 노숙자들이 빅토리아 여왕이 사는 궁전 근처의 공원 벤치에서 잤다. 그렇지만 조금이라도 돈이 있는 사람은 극빈자를 위한 숙소를 이용할 수 있었다. 숙소에는 각각 1페니, 2페니, 4페니짜리가 있었다. 1페니짜리 숙소는 긴 의자를 제공하여 거기에 앉아서 잠을 자도록 한 것이다. 2페니짜리는 긴 로프줄을 쳐놓고 로프줄에 기대어 자게 하는 것이다. 4페니짜리는 1인용 관을 제공한 것이다. 4페니짜리 관 숙소는 구세군이 마련한 숙소로, 다른 숙소에 비하면 여건이 좋았다. 그곳에서 노숙자들은 간단한 음식을 제공받았고 1인용 관 속에 누워서 잘 수 있었다. --- p.276~2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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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귀족은 왜 고기를 잘 썰어야 했을까?
『역사 이야기를 읽는 밤』은 여섯 번의 흥미진진한 밤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밤은 연대기적으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밤에는 고대 이집트에서 그리스와 스파르타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자들이 시장에서 장사하고 남자는 집에서 옷감을 짜는 등, 이웃 나라들과는 풍습과 관습이 반대였던 고대 이집트의 특이한 이모저모를 살피고, 스파르타 병사들이 전투 전에 머리를 손질했던 이유를 통해 긴 머리를 초능력의 원천이라고 생각했던 고대인의 마인드를 읽는다. 두 번째 밤에는 ‘로마 제국 흥망’ 뒷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식의 생사여탈권까지 쥐고 있을 정도로 가부장의 권한이 막강했던 이유, 폭군의 대명사인 네로가 사실은 서민들을 위한 정책을 편 황제였을 가능성과 그 근거를 탐색한다. 그리고 로마가 거대한 제국이 된 밑바탕에는 피정복민을 관대하게 통치한 정책이 뒷받침되었음도 살핀다. 그러나 제국이 된 로마는 점점 타락해갔고, 흥청망청 연회로 세월을 보냈다. 암퇘지의 자궁, 낙타의 발뒤꿈치 요리가 식탁에 올랐던 최강 제국 로마의 어마어마한 음식 사치를 들여다보고, 고대 로마인의 잔인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오해받곤 하는 검투 경기와 동물 도살에 대한 오해도 풀어준다. 검투 경기는 원래 로마의 풍습도 아니었고, 어느 귀족의 장례 이벤트에서 시작했다가 엄청난 인기를 얻자 로마 황제들이 강탈해서(?) 국가 행사로 격상시킨 행사였다. 대규모 동물 도살 또한 피에 굶주린 로마 시민들의 잔인성 때문이 아니라 무시무시한 자연과 맹수에 대한 공포가 컸던 고대인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공개 이벤트였다는 점이 신선하다. 세 번째 밤에는 예수와 기독교에 대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예수가 받은 십자가형은 불명예형이었으며, 당시에는 참수형이 명예형이었다. 예수의 마지막 모습이 벌거벗은 모습에서 옷을 입은 모습으로 바뀐 이유, 성인 토마스 아퀴나스가 죽어서 통째로 삶아진 이유 등 중세의 성인 숭배 의식이 낳은 해프닝을 통해, 알고 보면 웃픈(?) 중세 기독교의 근엄한 뒷모습을 볼 수 있다. 네 번째 밤에는 중세 사람들의 의식주 이야기를 들려준다. 중세시대에 ‘과식’과 ‘과음’은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으며, 중세의 상류층은 고기를 잘 썰어야 했던 깊은 뜻이(?) 있었다. 고기를 통째로 요리해서 먹었던 중세 시대에 고기를 자르는 일은 ‘명예로운 일’이었던 것이다. ‘하얀 밀빵을 먹는 사람들’과 ‘순무를 먹는 놈들’로 구분되었던 중세의 식탁도 엿보고, 인간과 가축이 옹기종기 한 공간에 살고, 돼지를 끌어안고 꿈나라로 가던 중세의 농가 이야기도 펼쳐진다. 다섯 번째 밤에는 중세를 넘어 근세의 새벽에 일어난 일들을 들려준다. 인클로저 운동으로 인구는 폭증하고 일자리는 없었던 17세기 런던에서는 ‘하루에 4시간 이상 일하면 안 된다’는 황당한(?) 법이 있었고, 왕비 카트린 드 메디시스에게 바친 약의 정체는 신대륙에서 가져온 담배였다 등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마지막 밤인 여섯 번째 밤에는 자본주의와 산업혁명 시대이기도 한 근대의 빛과 그림자를 보여준다. ‘10분만 더 잠을 자는’ 것이 소원이었던 산업혁명기 노동자들의 이룰 수 없었던 처절한 소망, 19세기 미국 남부에서 신앙심 깊은 지주들이 노예제도 폐지를 반대한 뜻밖의 이유를 통해 현재로 이어지는 가까운 과거의 풍경과, 현재와 비슷한 듯하지만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알 수 있다. 격동하는 역사 속,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지은이가 [머리말]에서 밝혔듯이, “역사학은 과학이면서 문학”이다. “사실을 복잡한 수식, 언어, 법칙으로 표현하기보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로 펼쳐야 한다.” 그래서 지은이는 “최고의 역사가는 나이 드신 할머니”라고 말한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 어떤 생각을 하든, 결국 인간의 삶의 양식은 비슷하다. 생로병사의 당연한 궤적을 따라가면서, 개인의 삶을 뒤흔드는 거대한 사건에 휘둘리면서 휘청휘청 살아가는 것이 대부분인간들의 삶이다. 그런 삶들을 모아보면 그 모든 것이 역사가 된다. 과거를 살아간 사람들의 소소하고 평범한 삶이 현재의 사람들에게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된다. 그런 이야기로서의 역사책이 주는 즐거움은 옛이야기처럼 즐겁게 읽다보면 ‘역사’라는 인류의 사고와 행동양식의 거대한 변화를 파악하는 동안에 저절로 인식의 지평이 확장된다는 점이다. 격동하는 역사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나를 지키려면 역사를 돌아보는 것이 좋다.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최고의 해답은 언제나 역사에 있기 때문이다. 『역사 이야기를 읽는 밤』은 특정한 나라나 특정 시대, 특정 주제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나라와 시대, 주제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서양 사회가 바뀌어가는 풍경과 문화적 변천을 종횡무진 누빔으로써 좀 더 열린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이야기를 읽는 즐거움은 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