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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1. E는 무엇인가? 2. 아들들 3. 요셉 4. 호렙 5. 솔로몬의 폭정 6. 여로보암의 혁명 7. J의 수용과 개작 8. 위험에 빠진 아들들 9. E의 요셉 10. 국가 제의와 지방 성소들 11. 혁명의 영성 12. 사법권과 율법 13. 히스기야의 JE 14. 경외, 권력 그리고 신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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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의 처음 사경이 연속적이긴 하지만 동일한 상황에서 동시에 기록되지는 않았다. 그 글을 쓰고 다시 쓰는 과정은 거의 오백 년 동안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사경을 네 권의 서로 다른 책으로 생각하기보다는 구분된 단계를 갖는 일련의 저작 과정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이 적절하다. 사경은 이른바 J, E, P라고 부르는 세 부류의 문헌 혹은 문서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문서층들은 서로 다르지만 그 목적은 같다. 그것들은 이어지는 통치자 혹은 통치 집단 셋이 경쟁자를 물리치고 통치하기 시작할 때 자신들의 통치가 합법적임을 주장하기 위해 작성한 제의 역사이다.
--- p.21 이 책에서 설명한 것처럼 E는 기원전 10세기 후반 이스라엘 산지에서 일어난 혁명을 옹호하며 변증하는 글이다. 여로보암은 군사력을 강화하면서 나라의 사법제도를 다시 확립하고, 이스라엘의 제의를 재조정하였으며, 왕실 건축 계획을 추진하면서 혁명이 정당했음을 주장했다. 그의 이러한 변증문서는 자신의 통치를 강화하는 여러 가지 방편 중 하나였다. --- p.25 E는 창세기와 출애굽기의 본문 속에서 J 및 P와 구별되는 고유한 특징을 지닌 글들을 가리킨다. 동시에 E는 이 글들을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저자를 가리키기도 한다. 19세기 중엽 이전에 대다수 성서역사가들은 창세기와 출애굽기가 하나님을 야훼라고 부르는 본문과 단순히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두 가지 본문만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본문을 J(야훼를 뜻함)라고 불렀고 두 번째 본문을 E(하나님을 뜻하는 히브리어 엘로힘 ?elohim의 첫 글자)라고 불렀다. --- p.31 E는 다윗 왕가를 전복한 여로보암의 혁명을 옹호할 목적으로 이스라엘에서 작성되었다. 솔로몬의 폭정은 이 혁명을 조장했고, 바로 이것이 E를 이해하는 출발점이다. --- p. 85 다윗의 국가는 이스라엘의 규범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나 솔로몬의 국가는 이 규범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정치적이며 사회적 정체성을 지닌 이스라엘은 도시에 기반을 두고 전차부대로 거칠게 압박하면서 교역을 통해 군수물자, 사치품, 농산품과 권력을 과시하는 장식물을 얻는 데 몰두하는 제국주의적 왕들의 중앙 통치에 반대하였다. 솔로몬은 토박이 바로였다. 그가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것은 이름뿐이었다. --- p. 99 E가 추가한 내용은 요셉을 조상 이야기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주인공으로 삼는다. 현재의 요셉 이야기(본서 3장)가 그것이다. 요셉과 비교해보면 이스라엘 역사에서 두드러진 주인공이었던 야곱과 모세도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한다. --- p. 144 정의로운 정치란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라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훈계를 완전히 적용해야 한다. 종교적 제의, 제의와 연관된 사례법을 포함하여 E에 반영되어 있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은 다른 무엇보다도 바로 그런 정치를 상징하며 “하나님 경외”를 실행하고 구체화하고 실천하는 수단이다. --- p. 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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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솔로몬, 현군인가 폭군인가?
솔로몬에 대한 일반의 인식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지혜롭고 유능한 임금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고대 이스라엘 왕국이 솔로몬의 치하에서 사상 최대의 번영을 누렸다고 한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그처럼 지혜로운 솔로몬이 다스리던 이스라엘 왕국이 왜 그가 죽자마자 남북으로 분열되어 서로 싸우다가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을까? 이에 대해 일반적인 견해는 솔로몬이 이방의 종교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솔로몬의 우상 숭배로 인하여 이스라엘이 분열과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다일까? 솔로몬과 백성의 관계는 어떠하였을까? 그는 과연 현군이었을까? 이러한 일반적 견해에 반하여 솔로몬을 폭군으로 규정하고 그의 폭정을 규탄하며, 그 폭정에 대항한 여로보암의 혁명을 옹호한 성서 저자가 엘로히스트이고, 그가 쓴 성서가 본서에서 다루는 E문서이다. 그러면 엘로히스트는 무슨 이유로 솔로몬을 폭군이라고 하였을까? 솔로몬의 선왕(先王) 다윗이 사울 왕국을 무너뜨리고 왕위를 찬탈할 때 내세운 명분은 바로 강제부역의 폐지였다. 파라오가 지배하던 이집트에서 전형적인 모습을 보인 강제부역은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야훼는 인간을 노예로 부리기 위해 창조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것은 야훼의 인간 창조 원리에 반한다. 이처럼 다윗은 강제부역의 폐지를 제1공약으로 내걸고 이스라엘 왕국을 수립하였다. 즉 이스라엘 왕국의 국가 정체성의 핵심이 바로 강제부역의 폐지였던 것이다. 성서에 무수히 나오는 “너희가 이집트의 종이었던 시절을 생각해보라”는 구절이 그것을 반영한다. 이집트의 종이었을 때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생각하여 다른 사람을 종으로 부리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다윗의 사후 솔로몬은 가혹한 강제부역을 실시한다. 이에 백성들은 참기 어려운 고통을 받았지만, 솔로몬의 권력이 워낙 강대하여 반발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침내 솔로몬이 죽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자 백성들은 신왕에게 강제부역의 축소를 청원한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강제부역의 부담을 경감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멍에는 납을 넣어 더욱 무겁게 할 것이며 채찍은 철이 박힌 가죽채찍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열왕기상 12: 14). 이에 백성들은 혁명을 일으키고 여로보암을 혁명 지도자로 추대하였다. 이것이 성서에서 엘로히스트가 말하는 남북 분열의 과정이다. 본서는 이 엘로히스트가 여로보암의 궁정에서 활동하던 서기관이라고 말한다.(엘로히스트가 한 사람인지 아니면 여러 사람인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한다.) 저자의 이러한 관점에 의하면 성서는 인간의 삶을 초월한 문서가 아니라, 역사의 한 시대를 살던 구체적인 인간들의 삶과 욕망 그리고 그들의 투쟁과 타협의 산물로 생성된, 생생하고 역동적인 텍스트이다. 세부적인 사항에서 저자의 관점에 동의하느냐를 떠나서 우리가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시사점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2. 왜 요셉이 그처럼 중요한 인물이 되었는가? 성서에서 요셉은 창세기 전체의 4분지 1 정도의 분량으로 극히 중요하게 다루어진다.(창세기 37장 1절부터 요셉의 이야기가 시작되어, 38장을 제외하고, 창세기의 마지막[50장 26절]까지 계속된다.) 그러면 성서에서 왜 이처럼 요셉이 중요시된 것일까? 다윗이 유다의 후손인 것과 달리 여로보암은 요셉의 후손이었다. 더 구체적으로는 요셉의 작은아들인 에브라임을 시조로 하는 에브라임 지파 출신이었다. 그런데 요셉 이야기는 그 대부분이 여로보암의 궁정 서기관이었던 엘로히스트가 기록한 것이다. 엘로히스트는 야휘스트가 기록한 짧은 요셉 이야기를 엄청나게 긴 스토리로 만들어 요셉을 창세기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재창조하였다. 물론 요셉의 꿈 이야기, 즉 요셉의 곡식단에 형들의 곡식단이 둘러서서 절을 했다는 이야기나 요셉이 파라오의 꿈을 해몽하여 이집트를 위기에서 구하고, 형제들을 구했다는 것도 모두 엘로히스트가 기록한 것이다. 야휘스트에게 모세가 다윗이었듯이, 엘로히스트에게 요셉은 바로 여로보암이었던 것이다. 엘로히스트가 여로보암 궁정의 서기관이라면, 야휘스트는 다윗 궁정의 서기관이었다. 야휘스트는 다윗의 왕위 찬탈을 정당화하는 성서 기사(이것을 J문서라고 한다)를 썼다. 야휘스트가 다윗의 왕위 찬탈을 정당화한 근거가 바로 강제부역의 폐지이고, 따라서 출애굽 사건을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부각시켰다. 이집트 파라오의 강제부역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킨 출애굽! 그런데 엘로히스트의 눈으로 볼 때 솔로몬은 토박이 파라오에 다름 아니었다. 거대하고 호화로운 궁전과 성전의 건축, 대규모의 상비군과 그것들을 위한 막중한 세금과 강제부역 등. 따라서 엘로히스트에게 솔로몬의 폭정에 대한 혁명은 너무나도 정당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엘로히스트는 야휘스트가 다윗 왕가를 정당화한 바로 그 논리로 다윗 왕가를 공격한 것이다. 3. 율법의 보충 엘로히스트는 야휘스트가 기록한 이스라엘의 율법에 많은 것을 보충하였다. 엘로히스트가 보충한 율법에서 특기할 사항은 계급 분화를 방지하기 위한 조항이다. 어떤 사람은 권력자가 되어 노예를 소유하고 어떤 사람은 노예가 되는 상황을 최대한 막으려고 한 것이다. 그래서 채무 노예들은 6년간 일을 한 다음 7년째에는 자유인으로 해방된다(출애굽기 21: 2). 엘로히스트는 자신이 추가한 율법의 맨 앞에 이 조항을 넣었다. 엘로히스트는 이외에도 많은 사례법(가언법)을 두어 자신들이 생각하는, 야훼의 창조 질서에 부합하는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려 하였다. 율법의 관할권, 즉 재판 관할권을 어떻게 할 것인가도 중요한 관심사였다. 엘로히스트는 지방 분권적인 사법질서를 주장하였다. 출애굽기에서 모세의 장인이 모세에게 혼자서 모든 송사를 처리하려 하지 말고 천부장, 백부장 등을 두어 송사를 처리하도록 하라고 조언하는 내용(출애굽기 18: 13~26)은 모두 엘로히스트의 기록이다. 왕의 중앙집권적인 권력이 아니라 지파의 지방분권적 권력을 옹호한 것이다. 4. 성전 건축에 대한 두 개의 시각 성서에는 제단과 성전에 대하여 두 개의 상반된 시각이 나온다. 하나는 제단은 마땅히 다듬지 않은 돌로 쌓은 소박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계단도 만들어서는 안된다. 이것은 야휘스트와 엘로히스트의 시각이다. 이들은 중앙집권적인 제의에 반대하며, 도처에 제단이 있는 상황을 상정한다. 이에 반하여 다른 시각은 예루살렘에 건축된 성전을 중심으로 한 통일적인 제의를 주장한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바빌론 포로기 이후 지배계급이 된 제사장 집단(이들이 쓴 성서를 P문서라고 한다)의 입장이다. 솔로몬의 거대한 성전 건축을 위대한 업적으로 찬양하는 것도 제사장 집단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엘로히스트는 성전이나 궁전 건축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이다. 여기에서도 성서가 이해 관계를 달리하는 정치 세력들의 투쟁과 타협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5. 혁명의 영성: 사회 정의와 하나님 경외 엘로히스트가 혁명을 옹호하면서 구현하려고 하였던 정의로운 사회는 어떤 것이었을까?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맞게 권력을 행사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회이다. 다른 사람을 노예로 부리는 것은 야훼의 인간 창조 원리에 반한다. 그래서 엘로히스트의 슬로건은 ‘출애굽을 상기하자’이다. 야훼의 권능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의 압제로부터 해방되었듯이, 인간을 노예로 부리는 솔로몬, 즉 토박이 바로의 압제로부터 해방되자! 엘로히스트에게 정의로운 정치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다. 종교적 제의, 그것과 연관된 사례법을 포함하여 E에서 보이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은 그러한 정치를 상징하며, ‘하나님 경외’를 실행하고 구체화하는 수단이다. 6. 맺음말 유대인들은 성서(유대인에게 성서는 구약 성서를 의미한다)를 읽는 데 70가지 방법이 있다고 한다. 성서는 그만큼 의미가 넓고 풍부하다는 것이다. 그 중 어떤 방법이 절대적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복음주의적 성경 읽기에 너무 편중되어 있다. 그것은 성경의 풍부한 내용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장애가 될 뿐만 아니라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해석을 고수하는 것이다. 예컨대 성서의 처음 5경을 모세가 썼다고 하는 전통적인 견해(그래서 모세 5경이라고 한다)는 서구 신학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극복되었고, 지금은 성격을 달리하는 여러 필자가 5경을 썼다는 것이 압도적인 다수설이다. 세계적인 신학자, 로버트 쿠트 교수가 현대 신학의 연구 성과를 반영하여 쓴 본서를 통해 우리나라에서의 성서 읽기가 더욱 풍요롭게 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