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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이방인의 인천 살이
2부 격동의 시대를 담다 3부 영국 상인이 바라본 개항도시 인천 4부 개항기 조선의 현실 5부 조선 풍속 도감 논고 개항기의 사진 사정 글래버 패밀리 앨범에 대해서 하나가 영어로 쓴 사진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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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와 하나가 인천으로 건너온 1897년은 대한제국이 수립되면서 사회가 크게 요동치던 시기였다. 복잡한 상황을 파악하려던 29세의 월터와 21세의 하나에게 사진관에서 판매하는 사진이 귀중한 정보가 되었다. 그들의 앨범에 수록된 것은 아름다운 풍경이나 서민의 삶을 전하는 풍속 사진만이 아니다. 갑신정변 실패로 암살된 김옥균의 효수, 명성황후 장례식, 종군 사진사가 찍은 기록 사진 등 시대 상황을 생생하게 전하는 내용도 많다.
--- p.7 상인에게 전쟁은 큰 기회이기도 하다. 젊은 월터 베넷은 이미 일본에서 성공을 거둔 장인에게 배워 현지인들 속으로 들어가 정보 수집에 힘썼을 것이다. 하나는 그런 남편을 도와 사진 정리를 했을지도 모른다. 하나의 영문 필적이 남아 있는 앨범이 나가사키에 보관되어 있었다. --- p.8 일본 나가사키와 조선 인천을 오가며 무역상으로 활동했던 영국인은 탄탄한 재력을 바탕으로 더 큰 부를 낳기 위해 새로운 정보를 획득하려고 사진을 모았고, 때로는 사진사를 불러 촬영도 했다. 유리건판으로 촬영한 글래버 앨범 속의 대형 사진들을 보면 세월의 흐름에 따라 색이 바랬지만, 구도를 잘 잡아 초점을 맞추는 안목과 꼼꼼한 인화 작업을 통해 정성 들여 한 장의 사진을 만들어낸 것임을 확신할 수 있다. 아마도 적지 않은 금액을 지불하여 그런 촬영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 p.142 사진은 찍는 만큼 보존이 중요하다. 130년 전 사진을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토미사부로가 글래버 가문의 앨범을 도서관에 기증했기 때문이다. 사진을 사랑했던 토미사부로는 개인의 기념사진이 후세의 중요한 역사자료가 될 것임을 예견하는 선견지명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 p.144 앨범 속에는 인천을 비롯한 한국 각지의 풍경을 포착한 사진들이 대거 담겨 있다. 토미사부로가 촬영한 것도 있고, 여동생 하나가 자필 캡션을 곁들여 제공한 것도 있는 것 같다. 이 사진들을 처음으로 조명한 이 책이 나가사키와 인천의 역사적 관계를 밝힐 뿐만 아니라 글래버 가문의 패밀리 앨범과 그 역사적·문화적 의의에 대한 추가 연구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p.149 하나는 경복궁 광화문 사진에 “Gate of Middle Palace in which Queen was murdered(왕비가 살해된 중궁의 문)”라고 적는다. 1895년 10월 8일의 대사건이다. 하나가 인천에 온 1897년에는 11월 21, 22일 국모의 국장(國葬)이 거행되어 “Funeral of Queen(왕비의 장례식)” 사진도 앨범에 붙었다. 경운궁(덕수궁) 사진에 곁들인 설명 “Russian and English Legation Seoul(러시아와 영국의 공사관, 서울)”은 1896년 고종의 아관파천(俄館播遷) 무대를 가리키는 말로도 읽힌다. --- p.1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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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 등에 얹힌 길마에 올라타고 환하게 웃는 서양인들의 사진이 눈길을 꾼다. 소를 끄는 아저씨들 앞의 영문도 모른 채 앉힌 아이들은 움직이지 말라는 사진사의 말에도 자꾸 몸을 꿈실거린다. 대형 유리건판으로 전문 사진사가 구도를 잘 잡아서 찍은 사진이 개항기 조선의 현실을 상징하듯 한다.
구한말 나가사키에서 인천으로 건너온 젊은 서양인 부부가 있었다. 영국 상인 월터 베넷과 신혼인 아내 하나 글래버 베넷이다. 20대 젊은 부부는 낯선 땅 인천에서 신혼살림을 꾸미고 내리 아이 넷을 낳아 기르면서 40여 년 동안 인천에서 살았고, 1938년 병사한 하나는 지금도 인천에 잠들어 있다. 130년 전 그들이 무엇을 보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나가사키에 남겨진 사진이 생생하게 말해준다. 모던인천 시리즈 두 번째 책 『글래버 앨범 속의 개항기 조선』에서 빛바랜 사진들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