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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내 삶의 천직은 앵커맨
― 앵커맨으로 살아온 한평생 한국의 앵커맨 1호 탄생 고무신짝 언어의 대변자 KBS와 TBC, 박정희와 이병철 뉴스 ‘씹어주는’ 사람 권력과 방송 그리고 앵커맨 광운대학교 신문방송학과 4학년 봉두완 정직한 눈으로 세상을 보라 진정한 앵커를 기다리는 ‘마지막 앵커맨’ chapter 2 사람이 만드는 세상, 사람이 망치는 세상 ― 내 생애의 사람들 내가 본 대통령들 1 ― 이승만과 윤보선 내가 본 대통령들 2 ― 박정희에서 노태우까지 내가 본 대통령들 3 ― 김영삼과 김대중 혁명은 ‘타이밍의 게임’인가 ― 장면 야당 당수 한번 하시지요 ― 박정희 국민 노릇 하기 힘들다고요? ― 육영수 어이, 잘돼가나? ― 백상 장기영 평화를 빕니다 ― 김대중과 이회창, 승자를 위한 패자의 축하 ‘어머니’가 더 잘 어울리는 여인 ― 그레이스 켈리 정치 그만두고 하느님 사업 좀 하세요 ― 김수환 추기경 chapter 3 비판자에서 ‘욕먹는 사람’으로 ― 8년간의 의정 활동 대변인이 그것도 몰라? 미국은 나쁜 나라? 좋은 나라! 군인들은 정치에서 손떼라 chapter 4 깨달음은 언제나 조금 늦게 온다 ― 주님 곁에서 찾은 행복 가장 아름답고 값진 밥상, 일흔 번째 생일상 꾸르실료가 찾아준 삶의 참된 즐거움 행복을 전하는 파수꾼 ‘노란 조끼’의 사나이 주님의 빛이 전하는 사랑, 대북 지원 활동 chapter 5 아직도 더 말을 해야 하는 몇 가지 이유 ― 일흔 살 현역 원로 없는 사회의 불행 보트 피플, 탈북자, 한국호의 미래는? 우리에게 미국은 무엇인가 |
奉斗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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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두완의 못다한 이야기
봉두완 만큼 다양한 이력의 스펙트럼을 보여 주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신문기자, 앵커, 국회의원, 대학교수를 두루 거친 이가 바로 봉두완이다. 격랑의 시대를 서핑하듯 살아오면서 자의반 타의반 ‘지적?정치적 유목민’이 된 것이다.
이런 그가 <앵커맨>이란 제목의 책을 냈다. 자신의 직업적 정체성이 앵커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사실 한때 정치인으로 변신한 것도 그가 인기 절정의 앵커였기 때문이었고, 정치인으로서 참담한 실패를 맛본 뒤 대학 강단에 서고 앵커로 복귀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입지가 ‘독립 언론’으로서 앵커의 위상에 가장 근접한 인물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책은 그의 ‘칠순 잔치’를 대신한 것이기도 하다. 그는 일종의 유언으로 이 책을 썼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정치적 치부를 드러내는 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 책은 연대기적 서술 방법으로 개인사를 정리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자서전이나 회고록과는 조금 다르다. 그렇지만 앵커의 시각에서 자신의 과거와 오늘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전적 에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책은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첫째, 체험적 앵커론이다. 둘째, 신문기자로 앵커로 살아오면서 만났던 사람들에 관한 얘기다. 일종의 체험적 인물론이다. 셋째, 앵커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했을 때의 인상 깊은 사건에 대한 이야기다. 어떤 의미에서는 실패담에 가깝다. 넷째, 카톨릭 신자로서 자신의 신앙 정체성과 얼마 남지 않은 삶을 남을 위해 살다 죽겠다는 생각을 담담히 펼친다. 다섯째, 한때 권력을 핵심을 근거리에서 지켜봤던 사람으로서 대미 관계나 탈북자 문제 같은 미묘한 사안에 대해 나이 먹은 사람으로서 걱정과 당부를 담고 있다. 체험적 앵커론 이 장에서는 앵커란 무엇이고 그 위상과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자신의 체험을 통해 밝히고 있다. 어쩌면 앵커가 되려는 젊은이들에게 주는 원로 앵커의 조언이기도 한데, 방송을 공기처럼 접하며 사는 일반 독자들도 주체적 방송 소비를 위한 상식으로 알아둘 만한 내용들이다. 그는 앵커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한국 방송 현실에서 앵커의 위상과 한계는 무엇인지를 이렇게 말한다. “우리나라 앵커 시스템의 효시는 미국 CBS의 이브닝 뉴스와 일본 TBS의 뉴스 스코프를 모델로 하여 탄생한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MBC에서도 앵커 시스템을 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내가 최초의 앵커맨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는가 하는 독자들의 의문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뉴스 캐스터와 앵커의 서로 다른 속성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뉴스 캐스터와 다른 앵커의 속성 가운데서 대표적인 것이 진행자의 캐릭터와 퍼스낼리티를 인정해 주는 점일 것이다. TBC에서는 바로 그것을 보장해 줬다. 봉두완이라는 한 인간의 개성을 그대로 인정해 준 것이다. 그럼으로써 봉두완의 어눌한 말투, 직설 어법, 예측 불허의 오프닝 멘트가 또 하나의 미디어로서 한국 사회에 얼굴을 내밀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그의 인기는 대단했는데, 호남 지역에서 인기투표를 하면 김대중 다음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KBS나 MBC가 아닌 민간 상업방송인 TBC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무렵 그는 한의원을 하는 애청자로부터 “말 더듬는 걸 고치는 약을 부치겠다”는 편지를 받기도 했다. 그는 시?청취자의 인기와 사주의 신뢰를 배경으로 자신의 이름을 하나의 브렌드로 만든 최초의 앵커맨이 됐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런 그를 두고 “방송을 장난처럼 한다”, “쇼맨십이 너무 많다”, “방송을 사유화한다”고 비난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했다. 앵커와 뉴스 캐스터의 중간 형태인 한국 앵커의 위상 강화를 위해서. 그래서 그는 ‘자조의 의미’로 자신을 마지막 앵커라고 말하며 진정한 앵커의 탄생을 고대한다. “흔히 신문에서 정직한 보도를 할 수 없었던 그 시절, 나에게 주어진 ‘행간의 자유’는 해프닝에 가까운 치기어린 멘트와 앞뒤 재지 않는 ‘내지르기’였다. 물론 그것은 민영 방송사로서 TBC라는 멍석이 제공한 바도 크지만, 모두가 가난하고 힘들었던 그 시절 아무리 찌그러져도 손해 볼 것 없다는 나의 ‘무식한 캐릭터’가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행복한 앵커이자 또 그만큼 불행한 앵커였다. 한때 독재에 저항한 앵커가 민정당 정권에 참여했다는 자체가 앵커의 불행한 초상이다. 그래서 내가 스스로를 ‘마지막 앵커’라고 하는 것은 자조의 의미가 더 크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거액 연봉의 스타 앵커의 탄생을 고대하는 것이다.” 체험적 인물론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노릇 해먹기 힘들다”고 말하여 이런저런 논란을 빚은 바 있는데 이 말의 원조는 봉두완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그는 한 시사 대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국민 노릇 해 먹기 힘들다”는 말을 한 죄(?)로 청와대의 초청을 받은 적이 있다. 초청자는 육영수 여사였다. 육 여사는 특유의 우아한 자세로 “나도 청와대의 야당으로 애쓰고 산다. 영향력이 큰 방송에서 그렇게 함부로 말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요지의 항의성 하소연을 1시간이나 듣는 고역을 치렀다. 그러고 나서는 박 대통령과 만취가 되도록 대작을 했다. 이런 일화 외에도 이 장에서는 골프장에서 우연히 박 대통령을 만나 술김에 “야당 당수 한 번 하시지요”라고 말한 얘기, 그레이스 켈리와 인터뷰를 한 얘기 등 앵커 시절 인연을 맺은 인물들에 관한 얘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더 재미있는 건 봉두완 특유의 직설 어법으로 역대 대통령을 촌평하는 대목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승만: 국부적 독재자. 윤보선: 비범을 갖추지 못한 영국신사. 박정희: 가부장적 독재자. 최규하: 외교관 스타일의 명목상 대통령. 전두환: 실패한 박정희 계승자. 노태우: 일인자가 전혀 어울리지 않은 일인자. 김영삼: 단순 저돌적 승부사. 김대중: 화려한 언변, 용의주도한 권력지향자.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봉두완의 회고에는 독자의 말초적 흥미를 자극할 만한 요소는 없다. 하지만 그 시대의 한 단면을 추체험하게 하는 매력은 있다. 국회의원 봉두완 정치인으로 변신한 그의 성공과 실패는 ‘전국 최다득표 당선’ VS ‘어떻게 봉두완이가 민정당에 들어갈 수 있어’라는 대립쌍으로 요약될 것이다. 이 장에서는 화려한 정치 입문과 실패, 좌절, 배신, 분노 그리고 신앙을 통해 다시 태어나게 된 과정을 담담히 적고 있다. “많은 젊은이들이 명동 성당을 에워싸고 데모를 벌였다. (…) 이들은 미사를 끝내고 나오는 우리들에게 계란을 던지고 모래를 뿌렸다. 그때 누군가가 ‘저기 봉두완이 있다. 봉두완한테 던져’ 하는 소리와 함께 계란과 모래가 날아들었다. 마음씨 착한 나의 아내는 언제나 그랬듯이 재빨리 내 몸을 감싸고 돌과 계란 세례를 받았다. 그 참담했던 순간에 나는 생각했다. ‘내가 과연 죄인인가? 내 죄가 돌팔매를 당할 정도인가?’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자만심과 욕심에 들뜬 내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앞으로 하느님의 가르침대로 살고 양심에 따라 행동하겠다고 결심했다.” 신앙과 봉사의 삶 정치 일선에서 불러난 후 봉두완은 신앙심에 ‘국회의원 할 때보다 더 잘 사는 모습을 보여야겠다’는 오기까지 더하여 봉사의 삶에 매진한다. 남을 돕는 것이 궁극적으로 자신을 위한 일임을 체득한 것이다. 그는 지금 생애 그 어느 때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만사에서 비껴나 쉰다 해서 누구도 뭐라 할 나이가 아닌데도 분주히 뛰어다닌다. 하나 같이 돈 안 되는 일들이다. 적십자 활동 말고도 ‘생활개혁실천범국민협의회’ 운영위원장으로, 이세중 변호사(의장) 손봉호 교수 등과 함께 호화사치 결혼문화와 장묘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강원룡 목사와 함께 청소년을 위한 ‘클린 인터넷’ 운동도 시작했지만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있다. 방송이나 정부와 연계해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에 여건이 조성될 때를 기다리고 있다. 이 문제는 누가 하더라도 미룰 수 없는 사회적 과제일 것이다. 천주교 관련 봉사 단체 활동은 거의 일상이 되었다. 성라자로마을(나환자촌) 돕기회 회장, 천주교 서울대교구 한민족 복음화 추진회장, 남북한 장애인 걷기운동본부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고, 작은예수회(장애인돕기회), 연령회(임종, 장례봉사단체)에서도 이런저런 구실을 맡고 있다. 앞으로는 천주교의 탈북자 지원 사업의 책임을 맡아 그 일에 진력할 것이라 한다. 한국 사회의 고질적 병폐 중 하나는 실패한 정치인은 실패한 인간으로 끝난다는 점이다. 끝없이 정치적 재기를 노리거나 권력의 주변을 맴돌다가 한 생을 마치는 것이다. 체면과 권력 중독 탓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아직도 왕성한 사회 활동을 보이고 있는 봉두완의 변신과 영원한 현역 정신은,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