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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자존심을 지켜준 이 나라에 이런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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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책을 펴내며: 꿈을 좇았던 한민족의 자존심
편집자의 말: 한민족의 자부심을 한바탕 외치려는 책을 엮기까지

세종대왕, 한글을 창제하다 최정호
천 년의 인물, 이순신 김형국
나라 구하러 나선 ‘유승(儒僧)’, 사명당 안경환
조선 실학의 금자탑, 다산 정약용 김성훈
아! 월남 이상재 김동길
안중근, 동양 평화를 외치다 장석흥
안창호, 무실역행(務實力行)의 통합적 지도자 안경환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최 명
6·25전쟁 하면 생각나는 임, 백선엽 김형국
전쟁터에서 꽃피운 인간 사랑 닥터 현봉학 이성낙
선비의 전형 박태준 송 복
나의 스승 함석헌 김동길
김수환 추기경 -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봉두완
문화 독립 운동가 전형필 이성낙
박경리, 포한이 원력이던 소설 문학 김형국

저자 소개 10

1928년 평안남도 맹산 출생으로 연희대학교 영문학과, 미국 에반스빌대학교 역사학과를 졸업했다. 그리고 보스턴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이 후 연세대학교 교수, 교무처장, 부총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태평양위원회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현재 월간 경제풍월에 컬럼을 연재하여 이를 묶어 책으로 지속적으로 출간하고 있다. 저서로는 『길은 우리앞에 있다』, 『어떤 사람이기에,』 끝이 없는 이 길을』, 『대통령의 웃음』, 『가노라 삼각산아』, 『불어 봄바람』, 『영원히 남는 것』, 『Abraham Lincoln』, 『링컨의 일생』, 『하
1928년 평안남도 맹산 출생으로 연희대학교 영문학과, 미국 에반스빌대학교 역사학과를 졸업했다. 그리고 보스턴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이 후 연세대학교 교수, 교무처장, 부총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태평양위원회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현재 월간 경제풍월에 컬럼을 연재하여 이를 묶어 책으로 지속적으로 출간하고 있다.

저서로는 『길은 우리앞에 있다』, 『어떤 사람이기에,』 끝이 없는 이 길을』, 『대통령의 웃음』, 『가노라 삼각산아』, 『불어 봄바람』, 『영원히 남는 것』, 『Abraham Lincoln』, 『링컨의 일생』, 『하늘을 우러러』, 『석양에 홀로서서』, 『길을 묻는 그대에게』, 『그래도 길은 있다』, 『한국청년에게 고함』, 『하느님 나의 하느님』, 『새야새야파랑새야』, 『겨울이 오기 전에』, 『죽어서 흙이 될지라도』, 『내가 부르다 죽을 노래여』, 『사랑의 길 자유의 길』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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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成勳

1939년 전라남도 목포에서 출생했다. 태어나자마자 만주로 건너가 해방 이후 고향으로 돌아왔다. 목포에서 농사를 지으며 협동조합장을 지낸 아버지를 본받아 농민과 평생을 함께하겠다는 각오로 서울대 농대에 진학했다. 서울대학교 농업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전남대학교 대학원, 미국 동서문화센터 하와이대학교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제50대 농림부 장관과 상지대학교 총장을 역임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환경정의 이사장, 내셔널트러스트 운동본부 공동대표, 우리민족 서로돕기 운동본부 공동대표를 역임하며, 환경운동가이자 친환경 유기농업, 남북평화 시민운동의 대부가 되었다.
1939년 전라남도 목포에서 출생했다. 태어나자마자 만주로 건너가 해방 이후 고향으로 돌아왔다. 목포에서 농사를 지으며 협동조합장을 지낸 아버지를 본받아 농민과 평생을 함께하겠다는 각오로 서울대 농대에 진학했다. 서울대학교 농업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전남대학교 대학원, 미국 동서문화센터 하와이대학교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제50대 농림부 장관과 상지대학교 총장을 역임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환경정의 이사장, 내셔널트러스트 운동본부 공동대표, 우리민족 서로돕기 운동본부 공동대표를 역임하며, 환경운동가이자 친환경 유기농업, 남북평화 시민운동의 대부가 되었다. ‘농업이 없는 나라, 농촌이 없는 도시, 농민이 없는 국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신념 아래 우리 농업과 환경생태계를 지켜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농촌 살리기 운동에 앞장서왔다.
상지대 총장을 퇴임한 이후 일체의 공직을 맡지 않았고, 10여 년 시민운동을 한 이후 일체의 NGO 활동에서도 ‘자진 은퇴’했다. 다만, 글과 말로써 우리 밥상의 안전을 위협하는 유전자조작 농산물을 막아내는 데 진력을 다하고 있다.
저서로 《쌀의 정치경제론》(1984), 《더 먹고 싶을 때 그만두거라》(2009), 《워낭소리, 인생 삼모작의 이야기》(2014), 공저로 《장보고 해양경영사 연구》(2003), 《서울을 갈다-대한민국 도시농업의 미래를 말하다》(201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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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炯國

1942년에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도시계획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5년부터 2007년까지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며 동 대학원 원장, 조선일보 비상임 논설위원, 한국미래학회 회장도 지냈고, 대학 정년 뒤에는 대통령직속 녹색성장위원회 제1기 민간위원장을 역임했다. 인문학의 체득은 학예일치(學藝一致)이어야 한다는 소신으로 원주의 토지문화관 건립위원장(1995), 서울스프링페스티벌(실내악) 조직위원장(2006) 등을 거쳐, 2014년부터는 가나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있다. 저서로 『한국공간구조론』 『고장의 문화판촉』
1942년에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도시계획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5년부터 2007년까지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며 동 대학원 원장, 조선일보 비상임 논설위원, 한국미래학회 회장도 지냈고, 대학 정년 뒤에는 대통령직속 녹색성장위원회 제1기 민간위원장을 역임했다. 인문학의 체득은 학예일치(學藝一致)이어야 한다는 소신으로 원주의 토지문화관 건립위원장(1995), 서울스프링페스티벌(실내악) 조직위원장(2006) 등을 거쳐, 2014년부터는 가나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있다. 저서로 『한국공간구조론』 『고장의 문화판촉』 등의 전공서적뿐만 아니라 『김종학 그림읽기』 『활을 쏘다』 『우리 미학의 거리를 걷다』 『하늘에 걸 조각 한 점』 『박경리 이야기』 등의 방외(方外) 서적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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奉斗玩

대한민국 앵커맨 1호로 활동했으며, 제11·12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934년 황해도 수안에서 태어나 1954년 경복고등학교, 1960년 연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1959년 동화통신사 정치부 기자로 언론인 인생을 시작한 뒤, 한국일보 주미특파원(워싱턴지부, 1962-1968년)으로 활동했다. 이 기간 동안 아메리칸대 대학원 신문방송학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귀국 후 중앙일보 논설위원 겸 동양방송 논평위원으로 활동하며(1969-1980년) TBC-TV 저녁종합뉴스 'TBC 시사토론 '동서남북', 일요특집 '안녕하십니까? 봉두완입니다'와 TBC-라디오 '뉴스전망대', '뉴스의
대한민국 앵커맨 1호로 활동했으며, 제11·12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934년 황해도 수안에서 태어나 1954년 경복고등학교, 1960년 연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1959년 동화통신사 정치부 기자로 언론인 인생을 시작한 뒤, 한국일보 주미특파원(워싱턴지부, 1962-1968년)으로 활동했다. 이 기간 동안 아메리칸대 대학원 신문방송학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귀국 후 중앙일보 논설위원 겸 동양방송 논평위원으로 활동하며(1969-1980년) TBC-TV 저녁종합뉴스 'TBC 시사토론 '동서남북', 일요특집 '안녕하십니까? 봉두완입니다'와 TBC-라디오 '뉴스전망대', '뉴스의 현장', '뉴스논평'을 진행했으며 해외 24개국을 순방하며 취재했다. 이런 활동을 바탕으로 1977년 한국방송 해설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1980년 동양방송 통폐합 뒤 정치활동을 시작해 제11·12대 국회의원(마포·용산)을 지냈으나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공천 탈락 후 방황했다. 이후 1989년 한국 천주교 북한선교후원회장, 1990년 성 라자로 마을 돕기회 회장, 1991년 천주교 서울 대교구 한민족 복음화 추진회장, 1994년 세계 크리스챤 꾸르실료 협의회 의장, 1995년 대한적십자사 자원봉사회 중앙협의회 의장, 1998년 대한적십자사 부총재, 2000년 제네바 국제적십자총회 한국대표, 2002년 천주교 한민족 돕기 회장, 2005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장례식 정부대표 조문사절, 2007년 천주교 서울 대교구 '참회와 속죄' 성전 건립위원장, 2008년 성 라자로 마을 돕기회 상임고문 등을 역임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나눔과 봉사의 삶을 살고 있다.

정치에서 물러난 뒤 다시 방송으로 복귀해 MBC 라디오 '여성시대', '전국패트롤 봉두완입니다', KBS 1라디오 '안녕하십니까? 봉두완입니다' SBS 라디오 '봉두완의 SBS 전망대'등을 진행했다. 그밖에도 아리랑TV에서 시사토론프로그램 'In Focus'를, 경인방송에서 '봉두완의 진단 2002', 원음방송에서 아침 라디오 방송 '안녕하십니까? 봉두완입니다'를 진행했다. 저서로 『워싱턴 정가』, 『안녕하십니까? 봉두완입니다』, 『뉴스 전망대』, 『정치전망대』,『봉두완의 목소리』, 『봉두완의 세상 읽기』, 『안녕하십니까? MBC 전국패트롤 봉두완입니다』, 『앵커맨』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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宋復

1937년생. 서울대학 문리과대학 정치학과와 신문대학원을 졸업했다. 이스트웨스트센터 장학생으로 하와이대학교 대학원사회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사회학으로 정치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75년부터 2002년까지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는 연세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본 저서 외에 ≪조직과 권력≫, ≪한국사회의 갈등구조≫, ≪동양적 가치란 무엇인가≫, ≪위대한 만남 서애 류성룡≫ 등의 학술 모노그래프가 있고,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 ≪열린사회와 보수≫, ≪일류의 논리≫ 등의 일반저서 외에 ≪사회 불평등기능론
1937년생. 서울대학 문리과대학 정치학과와 신문대학원을 졸업했다. 이스트웨스트센터 장학생으로 하와이대학교 대학원사회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사회학으로 정치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75년부터 2002년까지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는 연세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본 저서 외에 ≪조직과 권력≫, ≪한국사회의 갈등구조≫, ≪동양적 가치란 무엇인가≫, ≪위대한 만남 서애 류성룡≫ 등의 학술 모노그래프가 있고,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 ≪열린사회와 보수≫, ≪일류의 논리≫ 등의 일반저서 외에 ≪사회 불평등기능론≫, ≪사회 불평등 갈등론≫, ≪볼쉐비키 혁명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서의 권위와 불평등≫ 등의 편저서와 학술논문 80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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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京煥

1948년에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부산고를 나와 서울대학교 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로스쿨을을 거쳐 산타클라라대학 로스쿨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부터 1987년까지 미국 워싱턴 D.C.와 캘리포니아주 변호사로 일했다. 1987년 귀국하여 2013년까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면서 헌법, 영미법, 인권법, 인권사상사, 법과 문학 등 다양한 주제를 강의했다. 그동안 런던 정경대와 미국 남일리노이대학 및 산타클라라대학 방문교수,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한국헌법학회 회장, 2006년 11월부터 2009년
1948년에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부산고를 나와 서울대학교 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로스쿨을을 거쳐 산타클라라대학 로스쿨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부터 1987년까지 미국 워싱턴 D.C.와 캘리포니아주 변호사로 일했다. 1987년 귀국하여 2013년까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면서 헌법, 영미법, 인권법, 인권사상사, 법과 문학 등 다양한 주제를 강의했다.

그동안 런던 정경대와 미국 남일리노이대학 및 산타클라라대학 방문교수,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한국헌법학회 회장, 2006년 11월부터 2009년 7월까지 제4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사회의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을 강화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국제기구조정위원회(ICC) 부의장을 역임했고, 정년퇴임 후에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초대 이사장을 지냈다. 한국인 최초로 국제인권법률가협회(ICJ) 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여성권익디딤돌상(2004)과 대한민국법률가대상에서 인권부문(2012)을 수상했다.

인문학적 소양과 통합적 지성의 배양을 강조하는 이 시대의 문필가로서 『법과 문학 사이』, 『법, 영화를 캐스팅하다』와 같은 교양서는 물론, 『조영래 평전』, 『황용주:그와 박정희의 시대』, 『윌리엄 더글라스 평전』 등 3권의 인물 전기도 썼다. 『동물농장』, 『두 도시 이야기』, 『바틀비/베니토 세레노/수병, 빌리 버드』 등의 영미 문학작품을 번역한 바 있으며, 이 외에도 저 『법, 영화를 캐스팅하다』 ,『법, 셰익스피어를 입다』, 『배심제와 시민의 사법 참여』, 『사랑과 사상의 거리 재기』, 『셰익스피어, 섹스어필』, 역서로 『헌법학입문』, 『지혜의 아홉 기둥』, 『미국법 입문』, 『미국법의 역사』, 『미국법의 이론적 조명』 등 전공인 법학을 비롯한 수많은 사회비평서가 있다. 특히 통합 학문으로서의 법학을 유념하는 저술과 활동에 비중을 두었다.

『문화, 셰익스피어를 말하다』는 오랜 시일에 걸쳐 셰익스피어 법률 주석서를 준비하고 있는 지은이가 사전에 펴내는 『법, 셰익스피어를 입다』(2012), 『에세이, 셰익스피어를 만나다』(2018)에 이은 셰익스피어 에세이 3부작의 완결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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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출생. 독일 마르부르크대학교 의과대학 예과를 졸업하고, 독일 뮌헨대학교에서 의학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프랑크푸르트대학교에서 피부과 전문의와 교수 자격을 취득했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피부과 주임교수,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초대 학장·의무부총장, 가천대학교 명예총장, 국제베체트학회 회장을 지냈다. 2014년 명지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조선시대 초상화에 나타난 피부 병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한국의·약사평론가회장을 지냈고,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를 맡고 있다. 2015년 독일연방공화국 대통령이 수여한 십자공로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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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錫興

1956년 충남 공주 출생. 국민대학교 국사학과를 나와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명예교수로 있으며, 한국근현대사학회장, 문화재위원회 근대분과위원,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 『임시정부 버팀목, 차리석 평전』(2005), 『6·10만세운동』(2009), 『한국독립운동의 혁명 영수 안창호(2016)』 『나창헌 평전(202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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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明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법학사, 1962년)를 졸업했다. 또 미국 The 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정치학석사, 1967년; 정치학박사, 1970년), 미국 Monmouth College 전임강사(1969~1970년), 서울대학교 신문대학원 조교수(1972~1975년),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학과 조교수 부교수 교수(1975~2006)를 역임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다. 『현대중국의 정치』(1974), 『현대중국의 이해』(1975), 『미국정치론』(1975), 『비교정치학서설』(1979, 1985, 1998),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법학사, 1962년)를 졸업했다. 또 미국 The 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정치학석사, 1967년; 정치학박사, 1970년), 미국 Monmouth College 전임강사(1969~1970년), 서울대학교 신문대학원 조교수(1972~1975년),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학과 조교수 부교수 교수(1975~2006)를 역임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다.

『현대중국의 정치』(1974), 『현대중국의 이해』(1975), 『미국정치론』(1975), 『비교정치학서설』(1979, 1985, 1998), 『소설이 아닌 삼국지』(1994), 『소설이 아닌 林巨正』(1996), 『춘추시대의 정치사상』(2004), 『나의 글 나의 정치학』(2006), 『술의 노래』(2014), 『술의 반란』(2018), 『몸과 마음』(2021), 『정치분석입문』(2021) 등의 저서와 『비교국가론』(1985), 『민주국가론』(1985), 『중국정치사상사』(1988, 1999) 등의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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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禎鎬

평생을 언론과 대학의 ‘두에 몬디(두 세계)’에 살고 있는 최정호는 우리나라에서 연재 칼럼을 쓰고 있는 최장수 최고령 칼럼니스트. 1933년생. 아호는 하이재(何異齋), 제대로(諸大路), 노송정(老松亭).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을 졸업하고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를 거쳐 베를린자유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았다. 언론인으로 1955년부터 한국일보, 중앙일보,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에 글을 썼으며 교수로서 1968년부터 성균관대학교, 연세대학교, 울산대학교 등에서 강의했다. 한국미래학회(1968), 한독 포럼(2002)의 발기인으로 창립에 참여했다. 저서로는 『세계의 공연예술기행(전 3권)』
평생을 언론과 대학의 ‘두에 몬디(두 세계)’에 살고 있는 최정호는 우리나라에서 연재 칼럼을 쓰고 있는 최장수 최고령 칼럼니스트. 1933년생. 아호는 하이재(何異齋), 제대로(諸大路), 노송정(老松亭).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을 졸업하고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를 거쳐 베를린자유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았다. 언론인으로 1955년부터 한국일보, 중앙일보,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에 글을 썼으며 교수로서 1968년부터 성균관대학교, 연세대학교, 울산대학교 등에서 강의했다. 한국미래학회(1968), 한독 포럼(2002)의 발기인으로 창립에 참여했다. 저서로는 『세계의 공연예술기행(전 3권)』(2006), 『난타의 문화, 난타의 정치』(2008), 『사람을 그리다』(2009),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가』(201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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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10월 02일
쪽수, 무게, 크기
448쪽 | 770g | 152*220*30mm
ISBN13
9788965236801

책 속으로

다산 스스로 말하기를 “6경 4서로써 자기 마음과 몸을 닦게 하고, 『경세유표』와 『목민심서』 그리고 『흠흠신서』, 곧 ‘1표 2서(一表二書)’로써 천하(국가)를 다스릴 수 있게 하고자 하니, 이로써 본(本)과 말(末)이 구비되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이 적
고 꾸짖는 사람만 많다면, 천명(天命)이 허락해 주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여 불 속에 처넣어 불살라 태워버려도 좋다”라고 적었다.
수많은 저술에서 일관하는 다산의 생각은 무엇이었던가. 한마디로 ‘개혁’이 사상의 요체였다. 그가 살던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전반은 조선 봉건 사회의 해체기로서 누적된 봉건적 병폐가 도처에 드러나고 있었다. 이런 총체적 위기의 상황에서 그는 나라를 구하고 바로 세우는 길은 개혁밖에 없다고 깊이 통찰한 것이다. 그 시작은 모름지기 관료와 정치 지도자들의 마음과 몸가짐의 쇄신에서 비롯되어야 한다고 믿고, 구체적인 개혁 대안서인 『경세유표』의 완성에 이어 『목민심서』를 저술한 것으로 보인다. - 116쪽 ‘조선 실학의 금자탑, 다산 정약용’ 중에서

도산 안창호는 자신의 이름으로 단행본 저술을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산옹(山翁)’ 또는 ‘섬뫼(島山의 한글)’ 등 여러 필명으로 쓴 많은 기고문과 연설문 그리고 노랫말 가사가 남아 있다. 많은 당대인과 후세인이 도산 안창호의 일대기를 썼고 그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해방과 국토의 분단, 그리고 두 개의 나라가 세워지면서 제각기 다른 길을 걸었던 여러 독립 운동 지도자에 대한 후세인의 평가가 극도로 엇갈리는 데 비하면 도산 안창호는 적이 없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영웅이다. - 205쪽 ‘안창호, 무실역행의 통합적 지도자’ 중에서

현봉학은 흥남 부두에 몰려온 피란민의 운명을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며 그들을 구출할 방도를 골똘히 생각했다. 그러나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10만여 명에 달하는 피란민을 육로로 흥남에서 원산을 거쳐 남쪽으로 피란시킨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게다가 비행기로 공수하기에도 그 수가 너무 많았다.
현봉학은 고심 끝에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뱃길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결론짓고는 김백일(金白一, 1917∼1951) 육군 제1군단장과 함께 아몬드 사령관을 찾아갔다. 간절한 마음으로 해군 수송선을 이용해 피란민을 남쪽으로 옮겨달라고 간청했다. 이때 김 장군은 “우리 1군단은 배를 타지 않고 육로로 중공군을 무찌르면서 남하할 테니 그 대신 피란민을 태워 달라!”라고까지 말했다.
이들의 제안을 들은 아몬드 장군은 처음에는 헛된 ‘망상’ 쯤으로 치부하며 냉정하고도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사령관으로선 피란민보다 흥남 부두로 몰려온 유엔군(주로 미군과 한국군) 약 10만 명과 많은 군수 물자를 후송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긴박한 과제였기 때문이었다.
현봉학은 물러나지 않았다. 피란민을 살려달라고 끈질기게 애원했다. 적지 흥남에 남겨두면 피란민은 공산군에 의해 모두 비참하게 죽게 될 거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계속 설득했다. - 299쪽 ‘전쟁터에서 꽃피운 인간 사랑 닥터 현봉학’ 중에서

그때 분연히 일어난 사람은 나의 스승 함석헌이었다. 중국 고전에 능통한 선생은 ‘군(軍)’은 불상지기(不祥之器)라고 외치고 앞장서셨다.
“민주적 헌법이 존재하는 민주적 국가에서 어쩌자고 군인이 정권을 잡겠다는 것인가.”
이것이 선생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국민의 신망이 두텁고 이미 나이 60이 넘은 한 시대의 이름 있는 어른을 군사 정권도 함부로 다를 수는 없었다. 김종필이 나의 스승을 두고 “정신없는 늙은이”라고 비하했던 일이 기억난다. - 345쪽 ‘나의 스승 함석헌’ 중에서

2005년 4월, 바티칸에서 엄수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장례식에 우리 정부 공식 조문 사절로 내가 참석했을 때, 우리나라의 김 추기경이 나중에 베네딕트 16세 교황이 되신 당시 교황청 국무장관 라칭거(Joseph Ratzinger) 추기경과 둘이서 그 엄숙한 장례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진행하는 것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너무 감격스런 나머지 남몰래 눈물까지 흘렸다.
그 전날까지 김 추기경은 소화불량, 피로, 설사로 밤잠을 제대로 못자고 고생했다. 아침결에 찾아온 독일계 여의사가 농담을 했다.
“추기경님, 돌아가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하고는 절친한 사이 아닙니까? 뭐 좀 아프다고 저 같은 의사를 부르세요? 저 베드로 광장에서 울려퍼지는 함성 안 들리세요? 빨리 성인으로, 빨리 성인으로! 아마 지금쯤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성인품에 올라가셨을 테니 친구 분인 그 교황님께 한 마디 부탁만 하시면 이런 별것도 아닌 병은 금방 치유되실 텐데……”
그 말에 김수환 추기경은 박장대소했다. 그날 장례 절차는 아주 엄숙하고 깔끔하게 잘 치러졌다. 온 세계는 생중계 방송된 행사를 빠짐없이 시청했다.
나는 우리 추기경이 그렇게 높은 분인 줄 몰랐다. 돌아가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그렇게 가까운 사이인 줄도 모르고 있었다. 더욱이 나중에 교황 품을 계승한 베네딕트 16세와 함께 추기경 서열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추기경 가운데서 두 번째인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 364쪽 ‘김수환 추기경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중에서

도쿄에 살면서 고려청자만을 수십 년간 고집스럽게 수집해온 영국 변호사 개스비(John Gadsby)가 동북아시아에 몰려오는 전운(戰雲) 때문에 일본을 떠나 귀국하려 하자 간송이 그의 수장품을 모두 인수한 것이다. 1937년에 인수한 품목 중에는 훗날 국보로 지정된 것이 4종, 보물로 지정된 것이 3종에 달했다. 그 밖에 접시, 대접, 사발, 유병(油餠), 향합(香盒) 등 다양한 기종(器種)이 있었으니 영국 외교관의 안목이 절로 감탄스러웠다. 그런 그가 그토록 열정적으로 수집한 애장품의 우선 인수자로 간송을 꼽았다는 것 역시 참으로 예사스럽지 않았다. 그때 간송의 명성이 그만큼 높았으며, 믿을 수 있는 문화 애호가로 우뚝 섰다는 말이었다. - 391쪽 ‘문화 독립 운동가 전형필’ 중에서

위로 받은 것 못지않게 작가와 인연이 있는 사람 치고 원주에서 밥 한 끼 얻어먹지 않은 사람도 없었다. 혼자서 꾸려가는 생활에서 언제부터인가 하루에 두 끼 밖에 먹지 않았다. 그러나 약속된 내방객이 도착하면 때맞추어 식사를 준비한다. 신식 요리를 배운 솜씨는 아니었다. 서울 사람들이 겉절이라 부르는 배추 생김치나, 마당에 지천으로 자란 것을 거두어 담아 푹 곰삭힌 꼬들빼기 김치, 그리고 된장국 맛이 내 입맛에 범상하지 않았다. 식사 수발을 거드는 사람이 없는데도 굳이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우리 전통 시대의 미덕에 대한 애착이 그처럼 깊다는 말이었다.
작가의 집을 나서는 사람에겐 텃밭의 소출을 꼭 쥐어준다. 고추나 배추 또는 대추를 얻지 않은 사람도 없었다. 요즘 시장에 나도는 유기농법 작물도 신뢰도가 들쑥날쑥이라지만, 작가가 가꾼 것은 “자식을 기르는” 정성의 산물이었다. 지력을 많이 소모한다며 고추 농사에 퇴비를 얼마나 부었는지 고추의 육질은 튼실하고 그 맛은 맵싸하면서도 달았다. - 418쪽 ‘박경리, 포한이 원력이던 소설 문학’ 중에서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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