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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1부 토끼 키 재기 토끼 키 재기 들통났다! 구꾹구꾹 잠자리 쥐 강아지 귀때기 무 애기 수박 못 ‘개’ 씨앗 귀 아무런 소리 내지 않으며 2부 밤 한 마리 식탁 위로 뛰어오른 고래 당근 실핀 아침 내 이불 밤 한 마리 나팔꽃 참새 짝짝이 양말 호두 껍데기 외할머니 연필심 끄덕끄덕 3부 닮았다 우산과 우산 각시붕어 한 마리 닮았다 다람쥐 입에는 종종종 짝사랑 김 깜짝이야! 벼 벤 뒤 대답 풀벌레 빠진 이빨 4부 복숭아뼈 겨울 건널목 빗물 웅덩이 줄인형 주전자 파리 소파 가을 갠 날 샛노란 별떨기 겨울나무 도장나무, 봄 그늘 복숭아뼈 동시집에 붙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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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시를 마주치는 순간!
깜깜한 한밤중이 까만 고양이를 낳았다 환한 대낮에 깜깜한 밤 한 마리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닌다. ― 「밤 한 마리」 전문 환한 대낮에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고양이 한 마리. 누구나 흔히 볼 수 있고, 무심코 지나칠 법한 풍경이지만 시인은 그 까만 고양이에게서 ‘밤’을 본다. 해가 뜨는 동시에 사라져 버린 ‘밤’이, 하나의 생명이 되어 환한 도시를 유유히 돌아다니다니! ‘밤’을 정지된 시간으로 여기고, 자신이 눈뜬 낮만을 전부로 여기는 사람이나, 목적지를 향해 바삐 걷느라 고양이의 느린 걸음을 눈치채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발견하지 못할 시상이다. 그러나 이상교 시인은 환한 낮과 까만 밤, 높은 하늘과 낮은 땅, 누군가에게는 빠르고 누군가에게는 느리기만 한 시간의 틈새에서 시의 주인공들을 마주친다. 그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보이는 모든 존재, 만나는 모든 인연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이에게만 찾아오는 ‘시’의 순간일 것이다. 그 순간이 너무나 즐거워, 51년간 쉼 없이 시를 써 온 시인은 여전히 시 쓰기를 기뻐한다. 그 기쁨과 설렘이, 그가 오랜 시간 한국 어린이문학에서 가장 부지런한 작가로 불리고, 수많은 독자가 오랜 시간 그 작품을 사랑해 온 동력이 아닐까. 길을 가다가 길고양이 한 마리와 마주쳐도 그건 내게 사건이야. 길고양이는 어딜 쏘다니다 똑같이 쏘다니던 나와 딱 마주친 걸까. 나의 눈과 귀와 마음이 가닿는 존재 그리고 이야기는 나를 꼭 붙잡고 놓아주지 않아. -‘시인의 말’에서 작은 존재에게 보내는 감탄과 응원 문득 바라보면 여름이 가을이 되고, 새싹이 나무가 되고, 씨앗이 열매가 된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그리된다고 해서, ‘성장’이 쉬울 리 없다. 아픔이나 시련 없이 자라는 생명은 없다. 이상교 시인은 자라느라 애쓰는 생명들을 사랑한다. 그래서 그 과정을 쉬이 여기지 않는다. 키 재기 하는 날, 토끼의 키는 치켜세운 귀나 쭉 뻗은 다리가 키우는 것 같지만, 온몸에 힘을 주느라 납작해진 꼬리도 놓쳐서는 안 된다(『토끼 키 재기』). 무의 대가리가 싯푸른 이유는 “땅 밑으로 자라지 않고/위로 치받으며” 크느라 멍 들어서다(『무』). 그리고 제 몫을 살아가느라 열심인 작은 존재들에게는 저만의 빛나는 세계가 있다. 『깜깜한 밤 한 마리』에는 그들을 응원하는 마음이 오롯하다. 빗물 고인 작은 웅덩이가 29층짜리 아파트를 물구나무 세우는 모습에 감탄하고(『빗물 웅덩이』), “작고 서러운 데마다” 붙은 ‘쥐’라는 말은 “쥐구멍에도/볕 들 날”을 기다릴 거라고 당당히 목소리를 낸다(). 비가 옵니다 엄마는 큰 우산 아이는 작은 우산 처음으로 아이 하늘이 따로 뜹니다. ― 「우산과 우산」 전문 비 오는 날, 우산을 쓰고 나란히 걷는 엄마와 아이를 보며 시인은 다시 한번 그 ‘열심’을 떠올린 모양이다. 작은 손으로 제 몫의 하늘을 단단히 받쳐 든 모습을 보며 웃음 짓고, 마음속으로 응원하기도 했을 터다. 그러나 시인의 지혜는 그 우산을 대신 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지켜보는 마음이다. 뿌리와 줄기와 잎과 꽃과 열매를 품었건만 아직은 점 같아 보이는 씨앗을 기다리며, 세상에 나오면 함께 어울릴 마음으로 팔랑이는 나비처럼(『씨앗』). 소리 내어 웃고, 또 일어나 걷는 힘 이상교 시인의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유머’다. 앵앵거리는 파리를 쫓으면서도 ‘어지간히 함께 놀고 싶은가 보다’ 생각하는가 하면(『파리』), 어린이가 당근을 안 먹는 갖은 이유는 왠지 그럴법하다(『당근』). 앞머리에 꽂은 실핀이 뒤통수에까지 “우리 가문에/뼈대 있는 놈 하나 생겼다며” 소문을 낸다 생각하면, 거울을 볼 때마다 웃게 생겼다(『실핀』). 그 웃음은 삶이 녹록지 않은 때에도 변함이 없다. 입원 환자가 되어 링거줄을 달고도 “1405호실 줄인형/지금은 화장실 가는 장면/공연 중.”이라 웃어넘기고, 무성한 잎에 감춰졌던 뼈대를 드러낸 겨울나무가 쓸쓸하기보다는 그 새하얀 뼈대가 햇살만큼 눈부시다(『겨울나무』).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왼쪽 복숭아뼈를 다쳤다 뼈는 괜찮다는데 며칠을 두고 욱신욱신 아프다 딱딱하고 둥그렇게 볼통 튀어나와 다리, 종아리, 발목을 꼭 잡아 주는 두 주춧돌 이다음 큰 나무로 자라 꽃 피고, 잎 돋고 잎사귀 그늘을 지을 단단한 복숭아씨, 복숭아뼈. ― 「복숭아뼈」 전문 평소 이상교 시인은 나이 들수록 어린이와 가까워진다고 말한다. 왕성한 어른만큼 빨리 움직이기 어렵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도 있고, 작은 것을 오래 들여다보아야 하니 어린이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니 삶이 재미있다며 또 한 번 웃는 시인에게는 깊은 지혜가 있다. 우리에게 아픔을 견딜 만한 단단한 씨앗이 있다는 믿음도 있다. 그 믿음이 그의 시에 깊이와 단단함을 더해 가고 있음을 독자는 마음 깊이 느낄 수 있다. 『깜깜한 밤 한 마리』는 50년을 걷고도 여전히, 부지런히 나아가는 이상교 시인의 그다음 걸음을 궁금하게 하는 작품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