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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글
1부 삶의 지표를 잃어버리다 1. ‘지구 문해력’을 높일 때 2. 우리는 지지 않는다 3. 화마에 삼켜져 재가 된 생명들 4. 붕괴는 내부로부터 시작된다 5. 낯선 타자에게 보내는 적대적 시선 6. 욕망이 충돌하며 빚어지는 굉음 7. 사람들 사이의 구획 8. 차마 말하지 못한 것 9. 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10. 불온함을 잃어버릴 때 11. 인간이란 무엇인가 12. 전쟁은 희망의 소거 13.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들 14. 우리 위로 떨어지는 섬광 15. 명랑하게 저항하는 사람들 16. 지옥에서 벗어날 용기 17. 우리는 선택 앞에 서 있다 2부 삭막하고 곤두선 전쟁터 1. 표정을 잃은 사람들 2. 결핍에 대한 자각 3. 자기 확신이라는 덫 4. 실체를 알 수 없는 말 5. 폭력이 스쳐 지나간 자리 6. 자취를 감춘 겸손함 7. 이야기는 이야기를 부르고 8. 한계를 지닌 존재 9. 남들과 구별되기를 바라는 마음 10. 고단함, 억울함, 불안함 11. 지배자 중심의 사고 12. 납작한 정신 13. 권태와 무력감으로 물들여진 일상 14. 지나침과 모자람 사이 15. 불안이라는 숙명 16. 외로움은 마음 둘 곳 없음이다 17. 학습된 무기력을 떨쳐버리고 18. 말이 오용될 때 19. 서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때 20. 일상의 균열을 만드는 고통 21. 분주함, 사회적 신분에 대한 표징 22. 이름을 안다는 것 3부 다시 채우는 힘 1. 독서, 전 인간적인 경험 2. 역사가 지향해야 할 방향 3. 추상적인 사랑을 넘어 4. 불확실한 ‘사계’ 5. 둥근 꼴을 이루어 추는 춤으로서의 삶 6. 가슴에 기둥을 세워주신 분 7. 통속적 현실주의를 넘어 8. 가끔은 흔들려도 괜찮다 9. 사회적 자본의 저장소 10. 품격 있는 언어 11. 새로운 삶을 시작할 용기 12. 삶은 기적이다 13. 정화가 필요한 시간 14. 타자에 대한 존중과 배려 15. 환대를 통해 장소를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들 16. 함께 살기 위해 필요한 것 17. 배움의 시작은 바라봄 18. 새로운 삶의 가능성 19. 사람은 저마다 자기 삶의 저자다 20. 증오와 혐오를 녹이고 21. 모든 인간은 시작이다 22. 자기 삶을 살아내는 이들은 거룩하다 23. 타자와 공존하기 위한 여백 24. 새로운 생태계를 만드는 사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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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현대인들 특히 도시인들의 지구 문해력은 매우 떨어진다. 우주의 신비 안에서 우리 삶을 바라보는 통합적인 능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경외감을 잃는 순간 세상은 시장 바닥으로 변한다. 이익이 블랙홀처럼 모든 가치를 삼키는 사회는 위험하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우리 삶을 조망하는 높은 관점이다.
--- 「1부, 1. ‘지구 문해력’을 높일 때」 중에서 세상은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과 그 가족들을 침묵시키려 한다. ‘조용히 해!’ ‘기다려!’ ‘그만하면 됐지 뭘 더 바라!’라며 몇 푼의 보상으로 그 사건이 완료된 것처럼 말하는 이들이 있다. 어처구니없는 참사를 겪은 이들에 대한 진정한 애도는 그런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도록 사회 제도를 개선하고 생명 존중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조롱과 모욕을 당하면서도 물러서지 않는 이들, 망각에 저항하며 기억 투쟁을 벌이는 이들은 결코 지지 않는다. 흐릿해지는 기억을 되살리려는 이들이 있는 한 정의는 무너지지 않는다. 버밍햄 교도소에서 루터가 성직자들에게 편지를 보낸 날짜는 공교롭게도 4월 16일이었다. --- 「1부, 2. 우리는 지지 않는다」 중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끊임없이 경계선을 만들고 사람들 사이의 구획을 만들어 서로 소통하지 못하도록 한다. 적대감이 넘치는 세상에 적응하는 동안 우리 영혼은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분노에 잠식당한다. 감사와 기쁨과 찬양이 깃들 자리는 점점 협소해진다. --- 「1부, 6. 욕망이 충돌하며 빚어지는 굉음」 중에서 플라톤의 철인왕까지는 기대하지 못한다 해도 인문적 교양을 갖춘 이들이 국민의 대표가 되었으면 좋겠다. 복잡하고 다양한 인간의 실상을 깊이 통찰하고, 주변화된 이들의 소리를 귀담아듣고, 역사가 지향해야 할 방향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가진 사람이 필요한 시대다. 그는 또한 우리 시대가 직면한 다양한 위기를 직시하고 그 위기를 헤쳐 나갈 실천적 지혜를 갖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의 사고는 유연해야 하고, 인간에 대한 존중이 그의 심성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을 깎아내리는 것으로 자기 존립의 근거를 삼으려는 사람들, 버럭버럭 피새를 부려 다른 이들의 입을 막아버리는 사람들이 역사의 무대에 오른다면 역사는 퇴행하기 마련이다. --- 「1부, 13.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들」 중에서 계몽된 정신의 특색은 자신이 인식과 행동에 있어 한계를 지닌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머뭇거림은 약자의 특색이 아니라 무릇 진리를 탐구하려는 사람들의 기본적 태도가 되어야 한다. 조금의 회의도 허락하지 않는 절대적 확신은 위험하다. 자기 확신에 찬 사람들일수록 변화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제동장치가 고장 난 열차처럼 위험하다. 새로움이 틈입할 여지가 없을 때 생명은 성장을 멈춘다. 폭력은 다름을 용납하지 못하는 경직성을 숙주로 하여 자란다. 다름을 용납한다는 것이 곧 자기 정체성의 약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 「2부, 8. 한계를 지닌 존재」 중에서 소비사회는 불만족과 불안을 창조함으로 번성한다. 불만족은 타자와의 비교 의식에서 발생한다. 남들과 구별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는 순간 안식은 허락되지 않는다. 잠시 숨을 돌리는 순간 경쟁자에게 추월당할지 모른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경쟁을 내면화하고 사는 이들 사이에 갈등이 없을 수 없다. 평화로운 공존의 가능성이 줄어들면서 현실은 보이지 않는 전장으로 변한다. --- 「2부, 9. 남들과 구별되기를 바라는 마음」 중에서 욕망이라는 전차에 올라탄 인류는 카산드라의 시간을 살고 있다. 소비주의라는 종교가 사람들의 영혼을 사로잡고 있다. 욕망의 확대 재생산을 통해 유지되는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희소성의 기호를 만들어내 사람들을 유혹한다. 욕망과 만족의 시차를 사람들은 견디지 못한다. 안간힘을 다해 얻은 행복의 기호를 손에 쥐는 순간 또 다른 결핍이 눈에 띈다. 행복은 유보되고 피곤한 일상만 남는다. 피로사회는 그렇게 도래한다. --- 「2부, 10. 고단함, 억울함, 불안함」 중에서 피해자들의 아픔은 세월이 지났다고 하여 수그러들지 않는다. 엄연히 있었던 사건 자체를 부정하거나 무화시키려는 이들로 인해 그들의 아픔은 더욱 생생해지고 있다. 존재를 부정당하고 있다는 사실만 해도 기가 막힌데, 그들의 편이 되어주어야 할 정부가 오히려 그들을 역사 발전의 장애물로 여기고 있는 것 같기에 더욱 서럽다. 이러한 역사 인식은 부당할 뿐 아니라 위험하기 이를 데 없다. --- 「2부, 11. 지배자 중심의 사고」 중에서 시비곡직을 가리는 말들로 인해 세상이 소란스럽다. 사람 사이를 횡단하는 말들은 집을 잃은 지 이미 오래다. 말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지 못하고 액면 그대로의 진실을 담보하지도 못한다. 말들이 누군가의 이해관계에 복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 「2부, 12. 납작한 정신」 중에서 저마다 지고 가는 삶의 무게가 무겁다고 아우성을 친다. 권태와 무력감은 우리 일상을 무채색으로 물들여 시간 속에 깃든 영원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물론 세상의 모든 것들은 쇠락하기 마련이지만 그것을 비애로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들을 부당하게 무시하면서 다른 삶을 갈망하는 것은 약자의 버릇이다. 시인 구상은 영혼의 눈을 가리고 있던 무지의 장막이 걷히면서, 자신을 둘러싼 모든 존재가 하나의 메시지임을 깨닫게 된다고 표현했다. 기적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눈을 뜬 이에게 나타나는 현실이다. 일상 속에서 삶의 신비를 볼, 눈을 뜬 사람은 지긋지긋한 욕망의 노예살이에서 해방되는 기쁨을 맛보기 마련이다. --- 「2부, 13. 권태와 무력감으로 물들여진 일상」 중에서 이름은 전조라는 말이 있다. 이름을 듣는 순간 우리 몸과 마음이 동시에 반응한다. 좋아하는 음식 이름을 들을 때 마음이 저절로 따뜻해지고 입에 침이 고인다. 싫어하는 음식 이름을 듣는 순간 낯이 찌푸려진다.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그리움이 물안개처럼 번져오고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마음 가득 불쾌함이 몰려오고 몸이 굳어지게 하는 사람이 있다. 이름은 구별을 위한 기호다. 이름을 안다는 것은 개별성에 눈을 뜬다는 말이다. --- 「2부, 22. 이름을 안다는 것」 중에서 세상에는 인간 정신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헌신하는 이들이 있다. 전쟁의 세기인 20세기에 “모든 생명은 살기를 원하는 생명”이라는 평범한 진실을 통해 새로운 생명 윤리를 제시한 알베르트 슈바이처, 제국의 가혹한 폭력을 겪으면서도 비폭력적 저항을 통해 압제자나 피압제자가 함께 해방되는 길을 제시했던 마하트마 간디 같은 사람이 그러하다. 그러나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더라도 고귀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위험 속으로 들어간 이들도 인간 정신을 고양한 존재라 해야 할 것이다. 모든 고통이다 정신의 숭고함으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인간 정신의 숭고함은 언제나 비범한 고통을 통해 발현된다. 비범한 고통이란 어쩔 수 없이 겪을 수밖에 없는 수동적 고통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고통이다. 약자들을 삼키는 역사의 흐름을 되돌리기 위해 그 격랑 속으로 뛰어드는 사람들이 있다. --- 「3부, 2. 역사가 지향해야 할 방향」 중에서 아라비아 숫자는 사람들을 일렬로 세워 계층화한다. 성인이 되었다고 하여 아라비아 숫자로부터 해방되는 것은 아니다. 연봉, 타고 다니는 차의 배기량, 살고 있는 집의 평수는 사람들을 가시적으로 서열화한다. 주식 시황판을 눈이 빠져라 바라보는 이들은 점멸하는 숫자를 보며 한숨을 내쉬기도 하고 탄성을 지르기도 한다. 아라비아 숫자는 사람들을 우쭐거리게 만들거나 주눅 들게 만든다. 아라비아 숫자는 힘이 세다. 하지만 아라비아 숫자가 할 수 없는 일도 많다. 사람의 품격이나 아름다움, 공감 능력, 책임감, 우정, 사랑 등을 계량화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던가. --- 「3부, 5. 둥근 꼴을 이루어 추는 춤으로서의 삶」 중에서 친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을 맞아들일 여백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지 허물없이 이웃을 맞아들이기도 했던 집은 지극히 사적인 공간으로 변했고, 모처럼 벗들을 만나도 설면하기 이를 데 없다. 직접 대면보다 익숙한 것은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통한 간접적 만남이다. 그 공간에서는 상대방의 글에 ‘좋아요’ ‘힘내요’ ‘슬퍼요’ 등으로 공감을 표현할 수는 있지만, 그의 현실에 깊이 연루되지는 않는다. 안전한 거리가 확보되어 있기 때문이다. 삶의 의미는 다른 이들의 필요에 응답할 때 주어지는 선물이다. --- 「3부, 9. 사회적 자본의 저장소」 중에서 그러나 말이 권력으로 변하면서 사정이 사뭇 달라졌다. 언어가 때로는 칼날이나 채찍처럼 사용되기도 한다. 독재자들은 홀로 말하는 사람이다. 그의 주변에 있는 이들에게 허용된 것은 그의 말을 받아쓰거나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뿐이다. 다른 말은 허용되지 않는다. 권력자의 눈치나 보는 정치인들의 말은 비루하다. 진실과 자유에 복무해야 할 말이 거짓과 분열과 혼돈을 빚는 일에 더 자주 사용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정치권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신뢰의 토대가 되어야 할 말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 「3부, 10. 품격 있는 언어」 중에서 삶의 무게에 짓눌려 어찌할 바를 모를 때, 찾아갈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야 한다. 물론 그 장소는 특정한 공간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고, 공동체일 수도 있다. 아무 말 을 하지 않더라도 그곳에서는 혹은 그의 곁에서는 그저 나 답게 있어도 괜찮은 장소가 있다면 우리는 삶의 곤고함을 이겨낼 수 있다. 정원을 가꾸며 시름을 달래는 이들도 있 고, 밭에서 호미질을 하며 마음을 가지런히 하는 이들도 있다. (...) 세상 도처에 환대를 통해 장소를 아름답게 만드는 이들이 있다. 적대의 바다에서 환대의 샘물을 솟쳐 올리는 이들 덕분에 우리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 「3부, 15. 환대를 통해 장소를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들」 중에서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이소크라테스는 “진정한 설득은 그럴듯한 말에서 나오지 않는다. 말을 통해 전해지는, 그 리고 그 생각을 올곧게 만들어주는 품성에서 나온다”고 말 했다. 정치인들의 말을 사람들이 좀처럼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뚝별스런 그들의 언행 속에서 품성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아렌트는 정치란 “함께-함의 형식을 탐구 하고 보존하기 위해서 함께 행동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인정 과 존중이다. 상생의 정치는 그저 꿈에 불과한 것일까? --- 「3부, 16. 함께 살기 위해 필요한 것」 중에서 동서양 철학을 회통하며 성서의 심오한 의미를 풀어주 던 김흥호 목사님은 스승을 가리켜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사람으로 하여금 자꾸자꾸 자라게” 하는 사람이라고 말한 다. 스승은 삶에 대한 뚜렷한 자세를 가진 사람이요, 자기 를 이긴 사람이요, 스스로 산이 된 사람이라는 것이다. “산 이 있으면 사람은 혼자 올라갑니다. 그 존재는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저절로 남을 오르게 합니다.” 있음 그 자체로 모든 것을 하는 사람이 스승이다. 스승을 만나지 못하는 것이 인생의 비극이라면 비극일 것이다. 바라보고 본으로 삼아야 할 사람을 만나지 못할 때 삶은 빈곤해진다. --- 「3부, 17. 배움의 시작은 바라봄」 중에서 사람은 저마다 자기 삶의 저자다. 누구도 우리를 대신 해 살아줄 수 없다. 손가락의 지문이 다 다르듯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태도 역시 다 다를 수밖에 없다. 내 기준으로 사람들을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산의 모습은 선 자리에 따라 달리 보이기 마련이다. 바라보는 자리가 바뀌면 산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부분적으로만 안다. 인간은 총체적 인식을 지향하지만 그 시도는 언제나 실패로 끝난다. 노자는 『도덕경』 14장에서 “보아도 보지 못하는 것을 일러 ‘평평함’이라 한다. 들어도 들리지 않는 것을 일러 ‘희미’하다고 한다. 잡는데 잡히지 않는 것을 일러 아주 ‘작다’고 한다. 이 세 가지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것들이 섞여 하나를 이룬다”고 가르친다. 세계는 알 수 없는 것투성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 은 알 수 없다”는 속담은 인간의 복잡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 복잡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성숙이다. --- 「3부, 19. 사람은 저마다 자기 삶의 저자다」 중에서 |
맹목적인 증오와 혐오,
분열의 언어가 일상이 되어버린 시대 삶의 지표를 잃어버린 우리에게 던지는 묵직한 질문들 ㆍ유한한 존재의 무한한 착각 - 생존, 경쟁, 그리고 우리가 잊은 책임 역사를 돌아보면 위기가 없었던 적은 없지만, 지금의 상황은 유독 긴박하게 느껴진다. 경기 둔화와 공급망 불안으로 물가는 끝없이 치솟고, 고금리 시대가 도래하면서 서민들의 삶의 기반은 힘없이 흔들린다. 세월호 참사, 후쿠시마 원전 폭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지진과 쓰나미, 여객기 추락 등 인간이 무력하게 스러지는 참상을 우리는 너무 자주 목격하며 살아간다. 국내에서는 거대 양당의 대립, 의무를 저버린 지도자의 무능, 분노한 시민들의 외침이 뒤엉켜 사회 곳곳이 혼란스럽다. 정치가 어지러운 가운데, 기후 위기는 더 이상 예고가 아닌 현실로 다가왔다. 20세기 말부터 불편한 진실로 떠오른 기후 위기로 재해의 규모는 해마다 커진다. 지구가 앓고 있다는 신호는 오래전부터 뚜렷했지만, 사람들은 이를 자신의 생존과 연결짓기를 외면했다. 이런 무관심은 인류가 위기를 극복해왔다는 낙관론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 낙관에 기대어 방치한 탓에 지구는 빠르게 망가져 간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다. 이 땅에 잠시 머무는 손님이지만, 시간과 공간의 제약 속에서 상충하는 감정에 휩싸인다. 한정된 공간에 뿌리를 내리고 싶으면서도 삶의 지평을 무한히 확장하려는 열망이 우리를 이끈다. 이 균형을 찾는 것이 삶의 본질이지만, 도시에 사는 이들은 장소로부터의 소외를 숙명처럼 받아들인다. 안락한 삶의 공간을 꿈꾸지만, 현실은 우리를 밀어내고 집과 땅은 투기의 도구로 전락한다. 부유함에 집착하는 이들은 욕망의 불길에 사로잡혀 늘 부족함만 느끼며, 이를 채우려 타인을 경쟁자로 간주하고 공존의 공간을 망가뜨리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조지 스타이너는 우리가 “훼손된 행성의 손님”임을 무겁게 깨달아야 한다고 했다. 손님이라면 떠날 때 머물던 자리를 더 아름답게 남겨야 마땅하지만, 우리는 미래 세대의 몫까지 미리 끌어다 쓰며 욕망의 들판을 내달린다. 누군가의 설 자리를 빼앗는 것은 그들을 절망의 벼랑 끝으로 내모는 무서운 일이다. ㆍ‘기다리라’는 말의 폭력성 - 유예된 정의, 침묵을 강요당한 이들 어느 시대나 사회 변화를 위해 헌신하는 이들을 괴롭히는 것은 악한 이들의 몰이해보다 선량한 이들의 얄팍한 인식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아침마다 시위를 벌였을 때, 공당의 대표는 이를 서울 시민을 볼모로 삼은 반문명적 행태로 몰아세웠다. 장애인들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 존재하지 않는 듯 취급받아왔지만, 그들이 목소리를 내자 많은 이가 불편함을 드러냈다. 세월호 참사 때도, 전장연 시위 때도, 혼란스러운 지금의 정국에서도 권력 있는 이들은 “기다리라”는 말을 반복한다. 누릴 것을 누리며 살아가는 이들은 현상 질서를 어지럽히는 존재를 불온하게 여기고, 때가 되면 저절로 해결될 일을 앞당긴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마틴 루터 킹은 정의의 실현을 늦추는 것이 정의를 가로막는 것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그는 “‘기다려라!’라는 말은 대개 ‘안 된다!’는 뜻”이라며, “흑인의 지위 향상을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백인시민평의회’나 ‘KKK단’이 아니라 정의보다 ‘질서’ 유지에 더 집착하는 온건한 백인들”이라고 지적했다. 시위는 평온한 일상을 흔들어 틈을 만들고, 투명 인간처럼 여겨지던 이들을 뚜렷이 드러내는 행위다. 억울하게 떠난 이들과 그 가족들을 침묵시키려는 세상에서, 담장을 쌓는 이들은 담장 너머 사람들을 비존재로 여기거나 안락한 삶을 위협하는 위험으로 간주한다. 난민, 이주노동자, 장애인, 탈북민, 정서적 고립 속에 사는 이들, 반복되는 대형 참사와 산업재해로 고향을 잃은 이들까지. 그들의 존재를 불편해하는 사회의 냉정함이 그들을 더 깊은 벼랑 끝으로 내몬다. 낯선 타자에게 적대적인 시선을 던지며 정신적 안식처를 빼앗을 때, 세상은 위험한 곳으로 변한다. 끊임없이 경계를 긋고 소통을 막는 세상에는 과시와 자극, 혐오의 언어만 넘쳐난다. 인문적 품격과 교양은 자취를 감추고, 사람에 대한 존중 대신 자기 과시적인 말들만이 들끓는다. 욕망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좁혀질 기미 없이 벌어지고, 그 틈을 선망과 원망이 파고들며 냉소와 적대감이 거리를 휩쓴다. 정치의 무대에서는 자극적이고 날카로운 언어가 난무하며, 품격과 역사적 감각을 잃은 이들이 눈과 귀를 어지럽힌다. 흉기처럼 날카로운 말들이 세상을 떠돌며 무심히 지나가는 이들에게 상처를 남기고, 그 상처가 쌓일수록 마음의 여유와 회복력은 줄어들어 사람들은 사소한 차이조차 용납하지 못한다. ㆍ지금, 삶의 무늬를 다시 짜야 할 때 - 퇴행의 시대에 회복해야 할 존중의 언어와 인간에 대한 믿음 살아 있는 것은 부드럽고, 죽은 것은 딱딱하다. 살아 있는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만, 고사목은 흔들리지 않는다. 흔들림은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며, 낯선 세계와의 만남에서 오는 당혹감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대립되는 세계와의 긴장 속에 머물 때 인식의 지평이 넓어지고 정신의 유연성이 커진다. 익숙한 세계에만 안주하려 하면 우리는 퇴보한다. 경계선 위에 서서 변화를 포용할 때 자기 갱신이 이루어진다. 인생은 저절로 흘러가지 않는다. 우울에 잠기지 않고 삶의 기쁨을 깨닫기 위해서는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를 풀어낼 지혜를 모아야 한다. 삶의 터가 장터로 변하고 신비에 대한 감각이 사라진 자리에 경외심, 연민, 자비, 성찰, 환대 같은 낯설어진 가치를 다시 채워 회복해야 한다. 말이 타락하면 세상은 혼란으로 치닫는다. 이 혼돈의 시대에 인간의 본질을 통찰하고,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역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입장을 가진 인문적 교양을 갖춘 이가 우리의 뜻을 대변해줄 수 있어야 한다. 시대의 위기를 직시하고 실천적 지혜를 추구하며, 사고는 유연하고 인간에 대한 존중이 깊이 뿌리내린 지도자가 필요하다. 타인을 깎아내리거나 소리를 질러 입을 막는 이들이 무대에 오르면 역사는 후퇴한다. 머리를 맞대도 풀기 힘든 현실의 실타래를 오만하고 무지하며 무정한 이들에게 맡기는 것은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일과 같다. 지금은 전환의 시대다. 그 어느 때보다, 삶의 무늬를 다시 짜야 할 때다. 자기 삶을 살아내는 이들은 거룩하다 “세상에 희망이 있냐고 음울한 목소리로 묻는 이들이 있다. 욕망의 문법에 따라 도태되지 않으려고 질주하다 보니 숨은 가빠지고, 어느 순간 외로움과 상실감에 확고히 사로잡혔지만, 그렇다고 하여 멈추어 설 수도 없다는 절망감 속에서 터져 나오는 일종의 비명이다. 희망을 자기 외부 어딘가에서 찾으려는 이들은 낙심할 수밖에 없다. 희망은 스스로 빚는 것이다. 인간은 새로운 시작이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거꾸로 돌아가는 것 같은 세월이지만 비애에 침윤되지 않고 듬쑥하게 자기 삶을 살아내는 이들은 거룩하다.” - 김기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