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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이름 없는 악기들의 소리를 듣는 밤 | 김행숙(시인) 005
[시] 나무 연습 016 어린 날의 밤 017 한밤의 주기율표 018 비의 놀이터 020 구름 놀이 024 ‘ㅁ’의 골짜기에서 슬픔이 고장나 026 똥 029 오래된 단위 030 배꼽을 찾아서 032 고아의 잠 033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같이 034 2021년 본인상 - 역병의 시대, 애도를 금함 037 삶은 모래 039 나무들의 시체 043 구름을 본다 045 거북의 털 046 알고 있는 것들을 쓸 때 모르는 것이 되어버리는 047 아저씨가 왔다 051 두 마리 054 고장난 냉장고 055 심지 056 귀 안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057 등장인물 059 판단 보류 062 붉은 낙엽 063 등단에 부쳐 064 블루를 건너서 너에게 갈게 065 새 나라의 어린이 068 안부 070 현재 유령 073 [희곡] 숨 - 여기에서 가장 먼 곳 077 [닫는 글] 숨 - 여기에서 가장 가까운 곳 | 김선율(배우·극작가) 151 [닫는 시] 곧 거울이 깨질 시간 | 남지은(시인) 1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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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존재도 시간 안에 있을 수밖에 없어
그 절망 안에 살 수밖에 없어 --- 「한밤의 주기율표」 중에서 방금 받은 이 삶이 반쪽으로 갈라져나가는 소리가 들려온다면 곧 거울이 깨질 시간 목소리가 알려준 모르는 것들을 알고 싶어져요 --- 「고아의 잠」 중에서 가벼운 것들이 살기 위해서 북쪽으로 몸을 날린대요 날아가서 날아가서 살아야지 --- 「거북의 털」 중에서 아마도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종이를 찢는다 종이가 사각거린다 메모를 버려도 어떤 문장은 손끝에 남아 있다 --- 「알고 있는 것들을 쓸 때 모르는 것이 되어버리는」 중에서 닿을 수 없는 것에 닿으려고 잊을 수 없는 것을 잊으려고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려고 모두 타버리고 나만 남아도 슬프지 않을 것 같아 --- 「심지」 중에서 한 공간에서 오직 단 한 사람만이 이야기한다 그 입술은 아무도 모르게 관객석의 틈 사이로 숨길을 내 한 사람은 생각한다 혼자 남았는데 무엇을 더 이야기할 수 있을까 --- 「등장인물」 중에서 찬란해지기 위해서 부서지는 파도 좀 봐 무너진다 무너지면서 투명해지는 몸을 봐 두 손을 모으면 할 수 있는 것을 해 두 손 모아 손뼉 칠게 두 손 모아 기도할게 --- 「안부」 중에서 나는 순간입니다 꿈, 몸, 숨 같은 것에 숨어들기도 합니다 --- 「현재 유령」 중에서 깜빡깜빡 점멸하며 흰 불빛을 내뿜고 있다, 온몸의 비행이다. 아마도, 이름을 찾는 중이다. 어둠은 반딧불이의 ‘비 - 춤’과 함께 서서히 아침을 불러들인다. --- 「숨 - 여기에서 가장 먼 곳」 중에서 당신은 천상의 악기 수리공. 이 악기를 다루는 법에 대해 알려줄게요. 비를 두드리듯이 두드려야 해요. 숨을 쉬듯이 숨을 불어넣어야 해요. 사랑하는 사람을 매만지듯이 짚어줘야 해요. --- 「숨 - 여기에서 가장 먼 곳」 중에서 겨울에 식물들은 꼭 죽은 것 같잖아요. 그런데 이듬해 봄이 되면 또다시 새싹을 피우잖아요. 우리도, 사람도 그런 거 아닐까요? 계절을 돌고 돌아 피고 지는 존재. 지구 반대편에서 눈을 뜨면, 무엇인가를 다시 볼 수 있게 되면, 그 계절은 봄이었으면 좋겠어요. 죽음과 같은 계절을 지나온 생명들을 마주하고 싶어요. --- 「숨 - 여기에서 가장 먼 곳」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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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1 역할을 맡은
아이는 팔을 벌린다 고도를 기다리며 선명해지는 가지 손을 잡으면 풀냄새가 났다_시 「나무 연습」 전문 2008년 연극배우로 데뷔한 주선옥은 [하카나]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하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나타냈다. 배우로서 입지를 다진 그는 2014년 「너를 읽다」를 시작으로 극작 활동도 활발히 이어갔다. 특히 「다락 - 굽은 얼굴」은 2022년 제8회 무죽페스티벌에서 작품상을, 「소년소녀 모험백서」는 2023년 제8회 청소년을 위한 공연예술축제에서 청소년이 뽑은 최고 작품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한편, 그는 무엇보다 시를 사랑한 시인이었다. 대학 시절 김행숙 시인을 은사로 만나 시 창작의 길에 들어섰고, 이후로도 오랜 시간 시의 언어에 깊은 애정을 기울였다. 『꼭 안아주기』는 부서짐과 견딤, 슬픔과 투명함, 고독과 다정함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존재의 무게와 시간의 흐름을 응시하며 그 안에서 부서지고도 다시 살아가는 힘을 탐구한다. 그의 창작 세계가 얼마나 깊고 넓은지를 잘 보여준다. 회색 물고기가 삼킨 여름 하늘에 까치발로 서 있기 비를 받아먹는 아이의 입술을 기억하기 모두 모두가 서쪽으로 걸어가는 여름 해를 바라보고 있기 기울어지는 것들에는 이유가 있다 합창을 한 뒤 낮잠을 자거나 하품을 하거나 옆집 창문에 귀를 기울이는 “그애가 온대요” 꼭 안아주기 서쪽 끝까지 안아주기 그림자가 사라질 때까지 안아주기_시 「구름 놀이」 전문 2024년 4월 10일, 선옥이 갑작스레 우리 곁을 떠났다. 언제 어디서나 생각의 파편을 메모하던 그의 모습은 선옥을 아는 모두의 기억 속에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다. 평소 깊이 교류하며 가까이 지내던 김선율 배우?극작가가 유고를 정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선옥의 노트북과 핸드폰에서 시, 시작 메모, 희곡, 가사 등 1천여 개의 파일이 발견되었다. 이후 김행숙, 남지은, 이설빈 시인이 유고를 맡아 다듬고 교정하는 작업을 이어갔다. 수많은 원고 중에서 선옥의 목소리가 뚜렷하게 들려오는 시들과 희곡 작품을 가려내고, 여러 차례 의견을 나누며 본뜻을 헤치지 않는 선에서 수정했다. 서문은 김행숙 시인이 맡았다. 시인은 오래도록 선옥의 시와 희곡을 가까이에서 읽어온 사람이다. 그렇기에 선옥이 못다 쓴 미래의 책을 떠올리며, 우정의 마음들에 힘입어 이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책의 끝에는 김선율 배우?극작가가 선옥과 나눈 대화를 더듬으며, 선옥이 생의 마지막까지 퇴고를 거듭하며 애정을 기울였던 희곡 작품 「숨 - 여기에서 가장 먼 곳」의 의미를 되새긴다. 남지은 시인은 추모 시 「곧 거울이 깨질 시간」을 통해 오래된 친구 선옥에 대한 그리움과 애도를 넘어, 그 존재의 빛을 기억하겠다는 마음을 전한다. 선옥의 1주기를 맞아 유고집을 제작하고 낭독공연을 열기 위해 친구, 선후배, 지인 등 103명이 모금에 참여하며 그 뜻을 함께했다. 동주 이야기를 선옥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사후에 전설이 된 동주가 아니라, 오로지 무명인으로 시 쓰는 삶을 살았던 동주. 동주는 ‘시 쓰는 사람’이 되고자 했습니다. (…) 선옥과 함께 동주를 자꾸 생각하게 되는 것은, 동주 자신의 삶을 보살핀 무명의 글쓰기에 대한 감동 때문입니다. 선옥을 생각하면 밀려드는 감동이 같은 것입니다. 세상에는 유명한 동주 때문이 아니라 무명한 동주‘들’이 있어서 지켜지는 어떤 아름다움과 고결함이 있습니다. 실로 시를 쓰는 시간은 이름 없는 무명의 시간입니다. 시를 읽는 시간이 또한 그러합니다. 이 세계에 그런 시간이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선옥이 있어서, 세상은 조금 더 아름다웠습니다. “내 방은 옆집에 있었다”(「어린 날의 밤」)고 선옥은 말했습니다. 이제 이 세계는 선옥의 옆집입니다. 선옥의 옆집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선옥의 웃음 입자가 닿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이 선옥의 작은 기척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선옥에 닿으면 나도 당신도 어제보다 다정할 것입니다. 우리는 숨을 섞고 나누는 사이입니다._김행숙 시인, 「이름 없는 악기들의 소리를 듣는 밤」 부분 주선옥의 글이 가진 힘은 무명의 시간 속에서 피어난 고결함과 아름다움이다. 김행숙 시인은 서문에서, 주선옥의 삶과 시가 윤동주의 무명의 글쓰기와 닮아 있다고 말한다. 사후에 전설이 된 유명한 윤동주가 아니라, 무명 속에서 시를 쓰며 살았던 사람으로서의 윤동주를 떠올린다. 무명인으로서 시를 쓰는 삶이 주는 감동과 아름다움, 그것이 바로 주선옥의 글에서도 느껴지는 울림이다. “시를 쓰는 시간은 이름 없는 무명의 시간”이라는 시인의 말처럼, 주선옥의 시와 희곡은 조용히 사람들의 마음속에 스며들어 온기를 더한다. 마치 무명 속에서 홀로 싸우며 견디는 이들을 꼭 안아주듯 다정하게 머무른다. ‘꼭 안아주기’라는 책 제목은 바로 그런 따뜻한 위로와 감싸안음의 상징이다. 강유정 문학비평가는 이렇게 말한다. “선옥은 그가 있다는 것, 존재의 무게를 알게 해주는 그런 사람. 다정한 선옥은 짧은 생애 그 다정함을 못 이겨, 수많은 몸이 되어 연극을 하고, 희곡을 썼을지도 모르겠”다고. 그가 뜨겁게 살아낸 ‘글 쓰는 삶’은 “온몸의 비행”(「숨 - 여기에서 가장 먼 곳」)이었다. 윤성희 소설가는 말한다. “그곳에서 선옥은 시를 쓰겠지? 언어의 산에 쌓여 있는 많고 많은 자음과 모음을 찾아서.” 하여, 선옥의 글쓰기는 마침표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의 다정한 문장은 이제 이곳에 이 책으로 남아, 우리를 언제까지나 껴안아줄 것이다. 왜 다른 언어를 쓰는 많은 나라가 모두, 만날 때와 헤어질 때 같은 발음을 쓸까요? 안녕. 그게 무슨 이유든 난 이 말이 좋아요. 만남과 헤어짐은 서로 반대편에 있는 의미이지만, 그래서 가장 먼 곳에서 만날 수 있는 거니까._희곡 「숨 - 여기에서 가장 먼 곳」 부분 작가의 말 침묵과 사이, 그리고 정적이 가지는 말의 뜻이 살아나는 공연이 되기를 인간의 삶, 곳곳에 잠들어 있는 음악들이 깨어나기를 언어는 사라지고 이야기가 오래도록 기억되기를 우리들의 손과 숨과 삶이 만나는 시간이 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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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옥은 그가 있다는 것, 존재의 무게를 알게 해주는 그런 사람. 다정한 선옥은 짧은 생애 그 다정함을 못 이겨, 수많은 몸이 되어 연극을 하고, 희곡을 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넘나드는 삶을 그 세계에서 살았을 테니까요. 우리가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가는 동안…… 이렇게 다시 글을 읽으며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다행이다, 라고 되뇝니다. - 강유정 (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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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옥의 시와 희곡은 작디작은 목소리로 전하는 안부 같다. 신음, 비명, 저림, 날숨, 속삭임, 화이트 노이즈 등 다양한 형태로 번져나가는 소리는 끝끝내 여음으로, 여운으로 남는다. “메모를 버려도” “손끝에 남아 있”는 “어떤 문장”처럼, “두 손 모아” 간절히 그러쥘 수 있는 희망처럼, 낯선 이의 “손을 잡아 일으켜세운” 기적처럼. 그의 작품 속에서 손을 내밀고 숨을 내쉬고 소리를 내뱉는 동안, 작디작은 것들이 일제히 기립해 법석이기 시작한다. -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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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도 놀이터가 있겠지? 나는 거기에서 노는 어린 선옥을 상상한다. 이름 없는 회전 놀이기구에 이름을 지어주는 다섯 살 선옥. 메아리의 귀를 찾아 술래잡기하는 여섯 살 선옥. 비를 받아먹는 아이의 이름을 기억하는 일곱 살 선옥. 별이 보고 싶어 잠자리채로 구름을 휘휘 젓는 여덟 살 선옥. 슬픔에 잠긴 친구를 만나면 마음 따뜻한 선옥은 이렇게 속삭여주겠지. 뾰족하게 꺾인 슬픔을 미음이라고 불러보라고. 그곳에서 선옥은 시를 쓰겠지? 언어의 산에 쌓여 있는 많고 많은 자음과 모음을 찾아서. 그곳에서 선옥은 노래를 부르겠지? 마술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주는 밤이 찾아오길 이곳에서 나는 기다리겠지. - 윤성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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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악기들의 소리로 가득한 밤하늘을 헤아리며, 주, 선, 옥, 세상에서 가장 멋진 웃음소리를 가졌던 천상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선옥이 살아낸 무명의 글쓰기에 대한 감동이 밀려옵니다. 세상에는 유명한 동주 때문이 아니라 무명한 동주‘들’이 있어서 지켜지는 어떤 아름다움과 고결함이 있습니다. 선옥이 있어서, 세상은 조금 더 아름다웠습니다. - 김행숙 (시인, 국문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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