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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만날 기회는 얼마나 될까? 북유럽 바이킹들이 미국이라는 땅에 발을 디디기 천 년 훨씬 이전부터 살아왔던 나무의 이야기가 있다. 그 나무의 성(性)은 여성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식물학적인 정확성을 바탕으로 다른 나무들의 의식과 기억에 다가간다. 또한 자신이 속한 종족의 근원적 기억으로, 즉 지구상에 최초로 존재했던 주목(朱木)의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것이 바로 세상에서 가장 오래 된 나무, 주목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인류의 역사와 밀접하게 얽힌 바로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 인간이여! 처음에 주목은 약간은 순진하고 약간은 허영에 찬 마음에서 두 발 달린 이 ‘희한한 동물’을 짐짓 경멸했다. 처음으로 보는 ‘인간’이라는 존재들이 그녀의 평온한 숲에 침범해 들어와서 유혈의 제물을 바치는 모습을 목격한 것이다. 그 후 다음 세대의 인간들은 장수와 부활의 권능을 지닌 대자연의 상징으로서 당당한 위세를 자랑하는 나무에 존경심을 보낸다. 그녀 역시 자신의 능력을 깨닫게 된다. 주인공인 이 주목은 자신이 새와 벌레들과도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영역에서 자라는 다른 식물 사이에 연결된 버섯균 통신망을 통해 정보를 수집한다. 그리고 주목은 자신이 숲에 살고 있는 다른 모든 종의 식물을 죽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존재라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2천 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산 후, 그녀 자신 또한 죽음을 맞게 된다. 그러나 그 뿌리는 완전히 죽지 않고 남아 있다. 그리하여 다시 새싹이 움터 오르는데…….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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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나무를 좋아합니까?
여기 ‘주목(朱木)’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2,000년 이상의 수령을 누려온 주목 한 그루가 자신의 지나온 삶을 이야기한다. “부드러운 대지에서 천천히 싹을 피워내던 일을 기억한다.”, “하늘거리는 줄기”에 잎사귀 몇 장만 달려 있던 어린 나무는 풍성한 잎으로 모성을 자랑하는 거목으로 자라난다. “그녀(나무는 암컷-자성이다)는 자칫 오만해질 수도 있지요.” 이 나무의 존재를 탄생시킨 저자 귀도 미나 디 소스피로는 그 점을 인정한다. 이탈리아의 귀족가문 출신의 이 작가는 현재 마이애미에서 살고 있다. 미나 디 쏘스피로는 어린 시절, 밀란 북부의 코모 호수에 있는 할머니의 별장에서 지내는 동안, 주목의 붉은 열매에 매료되었다. 대개 굵은 나무줄기 속이 텅 비어있는 오래된 이 나무들은 서구의 신화와 밀접하게 얽혀 있는데, 저자의 매혹적인 작품 『나무의 회상록』에서 바로 그런 신화적 관련성을 찾아볼 수 있다. 작품은 오래 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주목의 탄생에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을 담고 있다. 어린 시절의 주목은 벌레들과 사슴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어머니 나무가 생을 마쳤을 때 그녀는 30년간 애도에 잠긴 채 성장을 멈춘다. 하지만 곧 그녀는 떡갈나무들이 숲을 은밀히 침범해 들어오고 있다는 걸 알아채고 작전을 개시한다. 화학전의 비밀을 터득한 그녀는 자신의 몸에서 만들어낸 독소로 침입자들을 물리치는 것이다. 숲의 여왕으로서 나무는 아일랜드에서 마구잡이로 나무가 베어져 나가는 모습을 두려운 눈으로 목격한다. 또한 그녀 자신도 베어져 쓰러지지만, 땅속뿌리에서 다시 싹을 피워 살아난다. 작가가 나무에 관하여, 특히 나무의 입장에서 글을 쓰기 위해 연구하는데 12년이 걸렸다. 그는 영국과 스코틀랜드, 웨일즈에 있는 주목을 찾아가 보았다. 그리고 나서 세계에서 가장 큰 주목 생태지에서 1 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킬라니 주목을 보았을 때, 그는 마침내 작품의 주인공을 찾아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작가에겐 소위 “시적 허용”이 필요했다. 킬라니의 주목은 웅성(雄性)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과학적 허용을 얻는 것이 쉽지 않았다. 과학자들에게 조언을 부탁했을 때 그들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그는 참고자료의 개요와 저자의 해설을 작성했다. 식물학적인 해설과 주석을 읽고나서 과학자들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그래요, 맞습니다.” “그런 후에야 그들은 작품을 읽으려 했습니다,” 하고 그는 말했다. 작가의 또 하나의 자아라고 할 수 있는 주인공 주목처럼, 그 역시 역사를 보는 긴 안목에 익숙해 있는 편이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그의 집안은 이탈리아에서 1,200년의 가계를 잇는 유서깊은 가문이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태어난 그는 밀란에서 자라났다. 코모 호수에 있는 할머니의 별장에서 지금도 그의 가족은 여름 휴가를 보내는데, 그 주변에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는 그 나무들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연구하고 또 연구했지요,” 라고 그는 말했다. 나무에 관한 연구 뿐 아니라 그는 또한 음악과 문학, 펜싱, 영화제작에도 관심이 깊었다. 스페인계 부인 스테니와 함께 10여년 동안 로스앤젤레스에서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하기도 했다. 1987년, 그는 자동차 사고로 거의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지만 가까스로 살아났고 소송에서 이겼다. 그리하여 당분간 글 쓰는 일에만 몰두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생겼던 것이다. 1989년, 그의 가족은 플로리다 남부로 이사했다. 세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그곳 파인크레스트에는 떡갈나무로 뒤덮인 숲이 있었다. 이곳에서 그는 나무처럼 생각하는 법을 배워나갔다. 『주목의 이야기』는 언어의 재치를 동원하여 식물학을 하나의 멋진 문학작품으로 변모시켜 놓았다. 말하자면, 식물세계의 우화가 우아하고 격조 높은 어조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아일랜드의 역사가 담겨있고, 무자비한 인간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들려온다. 또한 로빈 훗과 성 패트릭도 작품 속에서 새롭게 조명된다. 오늘날, 킬라니의 먹크로스 사원에 실재하는 주목이 세계 최대의 주목은 아니다. 그 나무는 가지도 많이 떨어져 나갔고 줄기엔 이미 이끼가 끼어있다. 하지만 그 주목이야말로 그것이 담고 있는 기억을 대신 써줄 열정을 가진 작가를 찾아낸 유일한 나무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 작가의 작품 개요 아일랜드의 더블린, 글라스네빈에 있는 국립식물원 관장이었던 아이단 브래디 씨는 <나무의 회상록>에 관하여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최고의 낙천주의자만이 이런 제목의 작품을 쓸 것이다. 하지만 한편 달리 생각하면, 아주 먼 조상과 같은 오래된 나무 앞에서 아무런 감동도 느낌도 받지 못하는 무감각하고 아둔한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오래된 나무는 곧 '살아 있는 기념비'이다. 기념비를 뜻하는 영어의 'monument'는 라틴어의 'monere'에서 유래하는데, 그것은 '기억하다'와 '경고하다'의 의미를 동시에 갖는 것이다. 우리 귀에 들리지 않는 것을 들리게 하는 이 작업을 하면서, 나는 '기억'하고 '경고'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구에게? 바로 우리들, 너무나도 근시안인 세상의 인간들에게. -그러므로 사실상 이 작품의 제목 <나무의 회상록>은 그 속에 언어의 유희가 의도 된 것이었다. 전개되는 이야기는 여러분 모두, 우리들 모두, 그 모두에 관한 이야기이다. 동시에 그것은 역사와 전설, 그리고 종교적인 의미 속에 둘러싸인 식물학적으로 특별한 나무로부터 우리들에게 흘러 내려오는 이야기인 것이다. 이 같은 고고한 주제를 다루려면 적어도 나이가 여든 살은 되어야 할 것이고, 또 그것은 적어도 2백 페이지 이상은 되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나는 늘 하고 있었다. 그런데 두 가지 생각이 그런 내 입장을 바꿔 놓았다. 내가 과연 여든 살까지 산다는 보장이 있는가? 보통의 경우 여든 살이 되었을 때 얼마나 많은 강렬한 열정과 힘과 패기가 남아 있을까? 그러므로 이 글의 철학적 출발점이자 걸림돌은 바로 개성이 강했던 젊은 시절의 비트겐슈타인이 그의 <논리철학논고>를 결론짓는 데 택했던 그 유명한 경구였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에 관하여는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 그것은 사실 하나의 딜레마였다. 그러므로 나는 한동안은 절망에 빠져 있었다. 어쩌면 결코 알아낼 수 없는 그것을 결국 알지 못하게 되는 것이 두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미친 듯 혼신의 힘을 다해 연구에 매달렸다. 세계 제일의 식물학자들과 자연학자들에게 연락해서 그들과 서신을 교류하고 만나기도 했다(그 중에서 알란 미첼은 영국제도의 나무에 관한 최고의 권위자로서 이 작품에 나오는 모든 식물에 관해 내게 조언을 해 주었다). 또한 나는 영국과 스코틀랜드, 그리고 아일랜드까지 몇 차례 다녀왔다. 주목의 수와 크기에 있어서 아일랜드는 영국이나 스코틀랜드와 비교가 안 되었다. 수많은 오래된 주목의 모습을 접했을 때 나는 영국과 스코틀랜드의 땅에 감동되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아일랜드에서 나는 그만 넋이 나가고 말았다. 주목의 이야기는 '세계의 나무' 이야기, 혹은 모든 나무들의 이야기이며, 우리 유인원 포유동물의 이야기이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아일랜드처럼 섬 전체가 삼림지에서 목초지로 변해 버린 상실감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곳은 없다. 과거와 같이 땅속에서 버섯균들의 상호 연결작용은 그 본래의 용도를 상실했지만, 나는 그들이 아직 그들의 역할을 수행하여 모든 나무들이 처한 곤경을 귀 기울여 듣는 자들에게 전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엄청난 나무들이 쓰러지고, 껍질이 벗겨져 죽어가고, 혹은 불타는 모습들을 -아일랜드에서 돌아오면서 나는 내 목소리를 내야 할 때가 왔다고 느꼈다, 내 목소리를 통해 주목의 이야기를 전해야 한다는 것을- 그렇다면 회상록을 어떻게 구성해야 할 것인가? 나는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 정반대로 접근하기로 했다. 우선, 나는 아직 여든 살이 되려면 멀었다. 두 번째로, 작품은 마라톤처럼 길게 늘인 것이 아니라 간결하면서도 광시적인 자서전적 환경우화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각 장은 메시지가 담긴 광시적 우화로서 예술적으로 전개될 것이며, 보편적 의미를 지닌 것의 상징으로서 하나의 원형으로 만들 계획이었다. 주목이 성장함에 따라서 각 장은 좀더 복잡하게 얽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비트겐슈타인의 경구에 맞추어, 또한 훌륭한 문학이 그러하듯 끝없이 지껄이는 것보다는 독자 스스로 더 많은 물음을 묻도록 하는 편이 훨씬 낫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