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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비운의 황태자 서곡
1. 황태자의 눈물 2. 폭풍전야 3. 아버지의 대북사업 4. 경쟁 : 화차 vs 금강산 5. 갈등 : 누가 대표인가? 6. “난 유언장 안 쓴다!” 7. 후계자와 그 형제들 제2부 1차 왕자의 난 1. 한밤중에 난 인사발령 2. 이상한 나들이 3. 몽구 회장 측 시나리오 제3부 2차 왕자의 난 1. 나흘간의 대혼란 : 첫째날 2. 나흘간의 대혼란 : 둘째날 3. 나흘간의 대혼란 : 셋째날 4. 나흘간의 대혼란 : 마지막 날 제4부 3차 왕자의 난 1. 1?2차 왕자의 난 후유증 2. 트로이 목마 제5부 4차 왕자의 난 1. 역 계열분리 2. 정부의 ‘본때’ 제6부 5차 왕자의 난 1. 몽준 의원의 불만 2. “더 이상 현대사태는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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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헌 회장은 왜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나?
“대북사업과 관련하여 가장 큰 관심사가 카지노 및 면세점 허가를 받는 것이었는데 …… 권노갑 고문이 총선이 얼마 안 남았는데 현대에서 좀 도와 달라, 여당을 도와줘 야 대북사업도 잘되지 않겠느냐는 취지로 말을 했다. 그래서 총선 자금용으로 200억 원을 건네줬다. …… 어느 날 이익치 회장이 또 집무실로 와서 ‘권노갑 쪽에서 외화로 3,000만 달러를 달라고 한다’고 보고했다. 그래서 ‘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몽헌 회장(p.244) “몽헌 회장으로부터 ‘난 박수 받을 줄 알았다’라는 말을 여러 차례 들었다. 그는 대북 송금 사건이 터지면서 국민들로부터 욕을 얻어먹는 게 안타깝다고 되뇌었다. 당시에는 북한 측도 몽헌 회장을 성가시게 했고 사업도 자꾸 어려운 상황으로만 빠져 들어갔다. …… 그는 회한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대검찰청으로부터 비자금 조사 를 받으면서 힘들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 몽헌 회장 측 인사(p.249~250) “몽헌 회장은 대기업 총수가 정치인의 비자금을 폭로하면 기업인으로서는 영원히 재기 할 수 없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회사가 부도가 나거나 검찰에 불려가서도 끝까지 이 를 지켜야 한다고 했다. …… 몽헌 회장이 자살한 때가 바로 해외 비자금이 밝혀지기 시작한 때였다. 이익치 회장이 권노갑에게 3,000만 달러를 줬다고 한 것이다. 김충식 사장이 변호사를 데리고 미국에 가서 해외 비자금 송금 서류를 찾았다고 하지 않았나. 실제로는 500만 달러가 사라진 2,500만 달러였다. 허탈감이 밀려 왔을 것이다. 그는 기업인으로서 재기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배심감에 재기의 어려움까지 겹 쳐 무척 괴로웠을 것이다.” --- 장철순 사장(p.294) “몽헌 회장님께서 이익치 회장께 부탁한 말씀이 있다. 다름이 아니라 몽헌 회장께서는 특검에서 김영완을 모른다고 진술했다. 이익치 회장께서도 이에 맞춰서 진술을 해 달 라. 몽헌 회장님의 부탁이다.” --- 강명구 회장(p.282) 금강산 관광 사업은 왜 적자로 출발할 수밖에 없었나? “김대중 대통령은 대북사업 승인서를 정주영 명예회장에게 주며 첫 출항하는 금강산 관광 요금이 얼마냐고 물었다. 몽헌 회장은 원래 북한 측에 지불할 금강산 입산료 등 원가를 따져 한 사람당 1,500달러를 받아야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 자 김대중 대통령은 요금을 1,000달러 이하로 책정할 것을 주문했다. …… 몽헌 회장 은 요금을 내릴 테니 대신 관광선 안에다 카지노와 면세점 사업을 할 수 있게 해달라 고 요구했다.” --- 김충식 사장(p.237~238) “금강산 관광 비용도 나는 1인당 1,300달러는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세용 회장도 그랬다. 그런데 명예회장과 몽헌 회장이 청와대의 김대중 대통령을 만나고 나온 날이 었다. 몽헌 회장은 김대중 대통령이 이산가족 등이 가능하면 많이 갈 수 있도록 1,000달러 이하로 요구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그렇게 했다.” --- 장철순 사장(p.71~72) 이익치 회장은 왜 목숨 걸고 정몽준 의원의 대권 도전을 막았나? “몽준 의원은 나를 상대로 소송까지 걸도록 현대중공업을 사주했다. 자신의 몫 회사라 그랬다는 것은 대한민국 사람이면 다 안다. 그는 비겁하게 뒤에서 모든 걸 조종했다. 강조하지만 나는 현대그룹과 명예회장, 몽헌 회장, 몽구 회장, 몽준 의원 등 정씨 일 가의 일을 하다가 감옥까지 갔다 온 사람이다. 몽준 의원 측은 그런 나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비난하고 끝내는 소송까지 걸었다.”--- 이익치 회장(p.28) “몽준 의원이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 나를 가볍게 보면 혼난다. 그러면 정씨 일가가 크게 후회할 것이다. 몽준 의원의 대선 출마는 아버지 뜻이 아니다.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이다.” --- 이익치 회장(p.174) “몽준 후보가 현대중공업의 ‘뭉칫돈’을 지원 받아 국회의원에 당선된 근거가 있다. 현 대중공업 결산 보고서를 보면 쉽게 드러난다. …… 선거 이전과 이후 연도의 결산 보 고서를 비교해 보면 매번 수백억~수천억 원에 이르는 돈을 쓴 것으로 추산된다. …… 따지고 보면 그는 현대중공업 돈과 직원의 표로 국회의원이 된 사람이다. 재벌 아버지 를 둬 국회의원이 됐다. …… 명예회장은 여러 번 이것을 걱정했다. 지역구를 울산에 서 서울 종로로 옮기라고 했다. …… 그러나 몽준 후보는 ‘자신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이익치 회장(p.176~179) 왕자의 난은 왜 일어났나? “명예회장은 대선 뒤 멘탈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 이후 무슨 일이 벌어졌나 봐 라! ‘이건 명예회장 지시다’ ‘이건 명예회장이 사인해 줬다’ …… 갑자기 이런 말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 그 아들들은 그렇다고 치자. 전문 경영인들까지 이런 소리를 하고 다녔다.” --- 명예회장 비서 출신 인사(p.58) “명예회장은 추운 날씨에 10여 분 간 정신을 잃을 정도로 심하게 다쳤다. …… 다리에 큰 골절상을 입었다. ……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머리를 조금 다쳤다. 이 때부터 명예회장의 눈빛이 초점을 잃기 시작했다.” --- 명예회장 전속 이발사(p.61) “명예회장은 현대그룹에서 너무나 큰 힘이었다. 모든 게 명예회장의 힘으로 움직였다. 그런데 그의 건강에 이상신호가 오자 갑자기 힘의 공백이 생겼다. 따라서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 명예회장 힘의 공백이 결국 형제 간 경영권 분쟁인 왕자의 난을 불러왔다.”--- 몽헌 회장 측 인사(p.112) “명예회장님의 방북(1989년)을 시작으로 대북사업을 추진했으나 별다른 진전이 없었 다. 몽구 회장 측에서 차정식 전무를 앞세워 겨우 화차 임가공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 다. 이를 불만스럽게 생각한 명예회장님이 1998년 초에 이르러 몽헌 회장에게 대북사 업을 맡기게 됐다.” --- 이익치 회장(p.48) "몽헌 회장과 이익치 회장은 몽구 회장 측이 화차 임가공 사업을 이미 상당히 진척시 켰다는 사실을 명예회장에게 보고했다. 명예회장은 몽구 회장을 못마땅해 했다. 왜냐 하면 그가 생각하는 대북사업은 그렇게 작은 것이 아니고 큰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 중동건설 붐같이 대북사업 붐을 일으키자는 것이었다. 북한 건설로 현대그룹의 영광을 되찾자는 꿈이다. …… 명예회장의 경영스타일은 50년을 내다보는 비전이다. 대북사업이 바로 그런 것이다. 따라서 몽구 회장이 추진했던 화차 임가공 사업에 실망 한 것은 당연했다.”--- 몽헌 회장 측 인사(p.5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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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8월 5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날이 무슨 날인지 모른다. 이날과 관련된 그 어느 것도 기억해 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 힌트만 주면 얘기가 달라진다. 누구나 이 날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바로 현대그룹 정몽헌 회장이 자신의 집무실에서 투신자살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날이다. 그는 이날 새벽 3시경 현대그룹 사옥 12층에서 자신을 던져버렸다. 적잖은 사람이 그 소식을 접한 날 자신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기억한다. 그만큼 충격적이었던 사건이었다.
그 후 1년 6개월. 아직도 그 사건은 베일에 가려 있다. 그가 왜 자살을 선택했는지, 과연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다른 방법은 없었는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지만 아직은 아무도 답을 주지 않고 있다. 그 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데도 말이다. 누군가 그 답을 줄 수는 없을까? 누군가 화끈하게 베일을 걷어치우고 속 시원히 그 안을 보여 줄 수는 없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 국민은 한 개인의 비극 뒤에 똬리를 틀고 있는 은밀한 비밀과 함께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기업비리와 정경유착의 음습함을 비로소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일은 역사적으로도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 현대사에서 의혹과 불신으로 가득 찼던 지도층 인사의 죽음이 속 시원히 밝혀진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만일 정몽헌 회장의 죽음 뒤를 덮고 있던 베일이 걷어진다면 이는 사회 지도층 인사의 죽음 뒤를 볼 수 있게 되는 거의 유일한 사례가 될 것이다. 과연 누가 그 같은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김시래 중앙일보 기자는 그 역할에 가장 적합한 인물일 것이다. 2000년 1월 1일 현대그룹 출입을 시작한 그는 무려 5년 가까이 그룹을 취재하며 현대그룹의 격동기를 누구보다 근접한 거리에서 보고 쓰고 느꼈기 때문이다. 한 기자가 출입처를 5년이나 다녔다는 것은 대단히 예외적인 것이다. 어떤 기관이든 길어야 1~2년 출입이 보통인 것이 언론사 현실이기 때문이다. 현대그룹에 회오리가 몰아쳤던 5년 동안 현대그룹을 출입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그가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그는 단순히 보도자료만 보고 기사를 쓰거나 공식 인터뷰에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故 정주영 회장의 사택 관리인이나 전속 이발사까지 만났다. 대북 송금의 키를 쥐고 있는 김충식 사장을 만나기 위해 미국까지 가 은둔 중이던 그를 찾아내 만난 것은 '현대사태' 보도의 절정이었다. 그가 마침내 5년 취재 파일을 열었다. 이번 신간 『“나는 박수 받을 줄 알았다”(상?하)』에는 그가 하고 싶었던 얘기가 모두 담겨 있다. 상권을 보자. 그는 이른바 ‘왕자의 난’으로 불리는 현대사태 전반을 추적하고 있다. 정주영 명예회장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다섯 차례에 걸친 형제 간 경영권 분쟁이 골자다. 정주영 명예회장을 정점으로 세 아들인 정몽헌 회장, 정몽구 회장, 정몽준 의원의 이야기가, 때로는 소설처럼, 때로는 영화처럼,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하권은 이른바 ‘가신의 난’을 다뤘다. 대북사업을 둘러싼 의견충돌이 핵심으로, 정몽헌 회장을 둘러싼 전문 경영인들 간 갈등이 주축이다. 2002년 대선에서 이익치 회장이 왜 그토록 정몽준 후보의 앞길을 가로막았는지 그 궁금증을 풀 수 있을 것이다. 또 책 말미에서는 정몽헌 회장의 자살 후 미망인인 현정은 회장과 시삼촌인 정상영 명예회장의 경영권 분쟁 과정도 밝혀져 있다. 김시래 기자 덕에 우리는 비로소 왜 정몽헌 회장이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게 된다. 김 기자는 그 죽음의 원인을 현대그룹의 왕좌 쟁탈전과 당시 권력기관과의 관계에서 찾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정몽헌 회장의 죽음과 관련된 베일이 어느 정도는 벗겨진 셈이다. 이 책에는 비단 정몽헌 회장의 죽음과 관련된 내용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현대 그룹과 관련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보자. 정주영 ‘왕회장’은 왜 대권을 5남인 몽헌 회장에게 승계했을까? 정몽구 회장은 왜 ‘왕자의 난’에서 패했을까? 정몽헌 회장은 왜 형 회사인 현대자동차를 넘봤을까? 현대그룹과 DJ정권 핵심 인사들과의 관계는 무엇이었을까? 금강산 관광사업은 왜 적자일 수밖에 없었을까? 김충식 사장은 왜 퇴진할 수밖에 없었을까? 김시래 기자는 이 같은 세간의 의문에도 상당한 답을 준다. 『“나는 박수 받을 줄 알았다”』는 우리나라 현대사가 안고 있는 우울한 그늘에 투명한 햇빛을 비춘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