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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죽을 각오로 쓴 친일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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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두 개의 생년월일
밥을 그릇에 담아 먹건 공기에 담아 먹건 큰 차이가 아니다
두 개의 생년월일, 두 개의 고향, 두 개의 조국
일본을 모방의 천재라고 비웃어 온 조선의 직계 자손들

2. 일본에 눌러 살 수 있을까
일본인 마모루 씨는 맞아 죽지 않았다
섹스를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강아, 나무야, 꽃아 네가 사람이 되어 보렴
일본에 라멘이 있는 한
일본은 너무 까다로와서 나 같은 사람은 못 산다
점령국 사령관에 오르고 싶다

3. 나는 친일파다
나의 대통령을 낀 이런 친일파 행각은 못 막는다
당신은 매국노요, 실망했소
나는 지금 일본에 망명온 게 아닙니다
조영남 씨가 일본의 기미가요를 부르시겠다고요?
나는 험한 지일파의 강을 건넜다

4. 韓류 뒤집어 日류 보기
욘사마 열풍을 통해 실감했다
우리에 대한 일본의 개떡같은 인식
일본 밤 문화의 유학생인 셈이다
하토리 얼마 전 한국에 왔다 갔는데요

5. 일본을 만나다
야스쿠니 신사 앞에선 나는
포르노에 관한 한 일본은 단연 승전국이다
안 그런 사람도 있어요
온 국민이 빠찡꼬에 매달려 있을까
호텔 비너스가 일본에서 성공을 거두었다면
일본 택시의 등받이 하얀 자수천
선데이 인 센다이 1인을 위한 콘서트

6. 나에게 일본을 돌려 다오
예배당에서는 사랑을, 학교에서는 증오를
청추운을 돌려 다아아~오, 일보온을 다아아~오
무궁화와 부지깽이

저자 소개 1

1944년 황해도 남천에서 태어남. 1951년 1·4후퇴 때 충남 예산군, 흔히 ‘삽다리’로 알려진 삽교면으로 영구 이주. 어릴 때부터 노래를 잘해 한양대 음대에 진학했으나 자퇴하고, 다시 서울대 음대 성악과에 입학. 1968년 미8군 부대 주한미8군 쇼단에서 노래를 부르다 1969년 <딜라일라>라는 번안가요를 불러 대중음악계 스타로 등극. 이 와중에 학교 중퇴.(훗날 명예 졸업장을 받아 가까스로 졸업.) 1970년 <와우아파트 무너지는 소리에>란 풍자가요를 부른 다음날 곧장 국가의 부름을 받고 군에 입대. 1973년 군복무 중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부
1944년 황해도 남천에서 태어남. 1951년 1·4후퇴 때 충남 예산군, 흔히 ‘삽다리’로 알려진 삽교면으로 영구 이주. 어릴 때부터 노래를 잘해 한양대 음대에 진학했으나 자퇴하고, 다시 서울대 음대 성악과에 입학. 1968년 미8군 부대 주한미8군 쇼단에서 노래를 부르다 1969년 <딜라일라>라는 번안가요를 불러 대중음악계 스타로 등극. 이 와중에 학교 중퇴.(훗날 명예 졸업장을 받아 가까스로 졸업.) 1970년 <와우아파트 무너지는 소리에>란 풍자가요를 부른 다음날 곧장 국가의 부름을 받고 군에 입대. 1973년 군복무 중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부흥 집회에서 성가를 부른 것이 인연이 되어 제대 후 미국 유학길에 오름. 유학 가기 전 서울 안국동 소재 ‘한국 화랑’에서 첫 미술전시회를 열기도 함.

1979년 미국 플로리다 트리니티 신학교에서 신학학사(B. A) 학위 취득. 1982년 한국으로 돌아와 가수로 복귀. 1990년 카네기홀에서 개인 콘서트를 열기도 함. 한편으로 1992년 <자니윤쇼>와 <열린음악회> 등을 통해 TV매체에 등장. 이후 <조영남쇼>, <투맨쇼>, <체험 삶의 현장>, <조영남이 만난 사람>, <조영남 최유라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 등을 진행하는 등 20세기 말부터 21세기 초까지 방송 활동을 이
어옴.

가수로서 발표한 주요 앨범으로는 『제비』, 『딜라일라』, 『보리밭』, 『지금』, 『화개장터』, 『모란 동백』, 『불 꺼진 창』 등이 있음. 화가로서는 1973년 ‘한국 화랑’ 전시 이후 서울·부산·베이징·뉴욕·LA 등 세계 각지에서 약 40회 남짓 전시회를 열며 스스로 화수(?手)라 칭해옴.

그는 펴낸 책이 여럿인데 그 중 『조영남 양심학』, 『놀멘놀멘』, 『예수의 샅바를 잡다』, 『조영남 길에서 미술을 만나다』,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 『어느날 사랑이』, 『천하제일 잡놈 조영남의 수다』, 『이상은 이상 이상이었다』, 『이 망할 놈의 현대미술』등을 주요 저서로 꼽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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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조영남
1945년 해방둥이로 황해도에서 출생. 1950년 한국 전쟁 때 월남하여 온 가족이 충남 예산군 삽교읍으로 이주, 서울대 음대를 다니고, 미국 플로리다 트리니티 신학대를 졸업. 1968년 '딜라일라'로 가수 데뷔. 1973년 한국화랑에서 연 첫 미술 전시회 이후 오늘날까지 작품활동을 겸하고 있다. 앨범으로 '제비', '보리밭', '화개장터'등이 있으며, 1990년 카네기 홀 개인콘서트를 가졌다. 현재 KBS 조영남쇼 '체험 삶의 현장', '조영남이 만난 사람'등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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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5년 01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208쪽 | 406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59240586

책 속으로

일본은 일찍이 축소의 상징인 도시락 벤토와 트랜지스터라디오를 만들어 냈고, 확대의 상징인 세계 최대 항공 모함과 태평양전쟁 선포 경력을 쌓았다.
우리는 뒤늦었지만 일본의 실체를 가늠해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도 축소 문화, 작은 소리, 여린 소리의 테크닉을 습득해 둬야 한다. 창피할 것 없다. 극단적으로 축소된 작은 소리를 가장 잘 구사하는 기술자가 바로 옆집에 사는데 뭐가 문제인가. 그 집에 가서 초인종 누르고 주인장 불러 툭 털어놓고 한 수 가르쳐 달라고 하면 된다. 쪽팔리는 건 잠깐이다.
그들은 우리가 초인종을 누를 것 같아서 이미 빗장을 내리고 문을 반쯤 열어 놓은 채 기다리고 있다. 다른 것 없다. 잘사는 게 복수다. 혼자 잘살 수 있다고 큰소리치던 북한의 인민공화국을 보라. 아사 직전이다. 나보다 잘사는 나라는 무조건 찾아가 한 수씩 배워야 한다. 두리번거릴 시간이 없다.

--- p.26

이 글을 쓰면서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아! 나는 일본 치하에서 무려 1년이나 살았다. 그러나 50년 이상이나 이 땅에 살면서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일본의 식민지 시절에 태어났다는 사실을 느껴 본 적이 없다. 나는 늘 남 앞에서 떳떳했다.
나는 늘 해방둥이라고 주장해 왔고 일제 강점기와 나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주장해 왔다. 나는 깨끗한 대한 독립의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큰소리를 쳐 왔다.
왜 이런 차질이 빚어졌을까? 어디서 이런 엉터리 계산이 나왔을까? 간단하다. 내가 나를 속인 거다. 내가 나한테 치사했다. 나 스스로 최면을 건 것이었다. 나는 일제 강점기와 관계없다. 나는 식민지 출신이 아니다. 나는 나의 아버지 엄마와는 다르다. 나는 일본의 구정물을 직접 뒤집어쓴 적이 없다. 이런 식의 최면 말이다.
그래서 나는 두 개의 생년월일과 두 개의 고향과 두 개의 조국을 가지고 산다. 일본한테 된통 당하고도 정신 못 차리고 우리 형제끼리 치고 받고 싸우다 이 지경이 되었다. 나의 개인사는 정녕 한겨울 거지 발싸개같이 너절하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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