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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1. 역사적 부정직 유대인 대학살에 대한 기억 유대인 대학살이 있기까지 유대인 대학살 가로채기 희생자임을 자처하는 주장들 2. 교의적 부정직 바오로 6세의 비극 : 서곡 바오로 6세의 비극 : 회칙 배제된 여성들 교황이 거느린 고자들 사제 계급제도 오그라드는 그리스도의 몸 은총의 수리학 침묵의 공모 동성애자 사제직 마리아론의 정치학 생명의 선물 3. 정직성 논쟁 진실의 시대 액턴의 한없는 진실 뉴먼의 신중한 진실 4. 진리의 광채 아우구스티누스 대 예로니모 아우구스티누스 대 콘센시우스 자유를 주는 진리 주요 문헌 명칭 옮긴이 후기 |
Garry Wi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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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기에는 방탕한 10대가 혈연관계 때문에 교황에 선출되고(요한 12세), 그런 그가 10년 뒤에 유부녀의 침상에서 죽는 일도 있었다. 물론 오늘날의 교황제도에서 이런 추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 안에는 여전히 이중 의식과 지적 부정직, 기만 구조가 존재한다. 이런 기만 구조는 성 추문이나 살인, 정복전쟁과 같은 과거 교황들의 죄에 비하면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지성의 배신에서 비롯된 훨씬 은밀한 타락이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바로 이런 기만 구조의 배경과 실상을 폭로하고 이제 가톨릭인 모두를 이 기만의 억압에서 해방시켜야 한다고 호소한다. 저자 게리 윌스는 문화비평가이자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 역사학 교수로 게티즈버그의 링컨(Lincoln at Gettysburg)으로 1993년 퓰리처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미국 예술과학아카데미 회원이다.
저자는 교황직의 기만 구조를 역사적 부정직과 교의적 부정직 두 부문으로 나누어 검토하고 있다. 먼저 역사적 부정직 문제는 유대인 대학살과 관련된 교황청의 침묵과 변명, 나아가서는 가톨릭이 나치의 희생자임을 자처하며 심지어 유대인 대학살을 가로채는 파렴치를 저질렀음을 보여준다. 교의적 부정직 문제에 대해서는 사제 독신제와 동성애, 피임, 교회 직무에서의 여성 배제 문제, 사제계급제도, 마리아론에 담긴 교황의 정치적 의도 등 가톨릭 교회의 중요한 현안들을 예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서 광범한 문헌을 인용해 그 연원을 살펴보고 거기에 담긴 기만 구조를 철저히 해부하고 있다. 1. 유대인 대학살과 역사적 부정직 나치 시절, 교황 비오 12세는 독일인들의 극악한 만행에 대해 교황이 분명히 한 말씀해야 한다는 수많은 호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 대학살에 관해 한 번도 공개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1946년 8월 3일 “본인은 과거에 여러 기회를 통해 광적인 반셈족주의가 히브리 민족에게 가한 박해를 단죄한 바 있었다”고 말했다. 이것은 고의적인 거짓말이다. 나치의 만행에 대한 교황의 침묵은 사실 “유대인들이 예수를 살해한 신의 살해자로서 저주받은 민족이며, 그들의 고난은 이러한 저주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유대인에 대한 가톨릭의 오랜 박해와 무관치 않다. 그럼에도 현 교황 요한 바오르 2세는 대학살에서 희생당한 유대인 수녀를 억지로 가톨릭 순교자로 만들어 시성함으로써 가톨릭이 가해자가 아니라 나치의 희생자임을 내세우기에 이른다. 1942년 아우슈비츠에서 수녀로 죽은 에디스 슈타인은 가톨릭으로 개종한 유대인이다. 슈타인은 1942년 나치의 네덜란드 유대인들에 대한 일제 검거 과정에서 가톨릭 평신도인 그녀의 언니와 함께 수녀원에서 체포되었다. 그녀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이미 교직을 박탈당하고 심지어 자신이 몸담고 있던 한 수녀원에서 쫓겨난 적도 있다. 그녀 때문에 다른 수녀들의 안전이 위협받는다는 이유에서였다. 나치는 가톨릭이라는 신앙에 대한 증오 때문에 슈타인을 체포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살해한 것이다. 그럼에도 요한 바오르 2세는 슈타인을 신앙 때문에 죽은 순교자로 만들어 시복하고(1987년) 이어서 성인품에 올리기까지 했다(1998년). 슈타인에게서 유대인 대학살에서 희생당한 가톨릭인을 찾아내기로 작정한 바티칸은 온갖 기만 구조를 동원해 슈타인이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 가톨릭인이었기 때문에 죽었다고 하는 우스꽝스러운 주장을 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시성이 됨으로써 자기 민족인 유대민족과 완전히 분리되기에 이른다. 이는 그녀가 생전에 극구 피하고자 노력했던 일이다. 결국 그녀의 시성은 유대인들의 반발을 사고 가톨릭 내부에서도 환영받지 못했지만 바티칸은 기어코 그 일을 밀어붙였다. 2. 사제 독신, 여성 사제 배제, 피임, 사제계급제도와 교의적 부정직 성서는 낙태나 피임, 혼인한 사제, 여성 사제 배제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다. 그럼에도 교회는 여성의 열등성과 불결성을 누세기에 걸쳐 강조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이를 강요해 왔지만, 막상 복음서들에는 예수 자신이 여성을 비하하는 태도를 취했다고 볼만한 아무런 흔적도 나와 있지 않다. 사실 여자들은 예수가 활동하는 동안 내내 예수의 시중을 들었고, 위기가 닥쳤을 때도 예수를 버릴 가능성이 가장 낮은 사람들이었다. 초대 교회에서 여자들은 아무런 제한 없이 다양한 사목 직분을 수행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누세기에 걸친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미사를 집전할 자격은 물론 미사가 집전되는 제단에 접근할 자격조차 박탈당하게 된다. 예수의 집단 속에 있던 여성들은 칸막이 뒤에 격리되지도 않았고, 초기 형태 수녀들의 집단으로 이해되는 자기들의 집단을 만들어 세상을 등지고 살지도 않았다. 초창기 교회에서 정상적인 기대치는 남자가 결혼을 한다는 것이었다. 독신은 해명을 요구하는 이상한 일이었다. 사도들 역시 모두 결혼한 남자들이었다. 바울로가 사도들에게 독신을 권장하면서도 지극히 조심스럽게 말하고 강력하게 요구하지 않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4세기 후반에도 아우구스티누스는 혼인한 주교와 다정하게 서신을 주고받으며 그 아들의 교육에 관해 조언해 주고 있다. 그럼에도 교황 바오르 6세는 “다른 이들이 나처럼 독신으로 지내기를” 바란다면서 이것이 하느님의 명령이라고 강력히 주장한다. 남성 사제의 독신을 주장하는 근거는 여성을 교회의 사목직에서 배제한 근거와 비슷했다. 예식에 걸맞은 청결을 요건으로 내세웠던 것이다. 지속적으로 육체관계를 갖는 사제들은 “불결한 몸과 불결한 손으로 다른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셈이라는 논리였다. 오늘날 가톨릭 교회 안에서 사제의 축성하는 힘은 사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의식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신약성서나 초기 그리스도교 문헌에는 사도들이 그처럼 축성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다. 그럼에도 가톨릭 교회는 이것을 사도들로부터 전해 오는 주요한 힘으로 내세우고 있다. 예수는 오늘날 가톨릭 교회에서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와 같은 특권을 가진 남성 사제를 결코 세운 적이 없다. 사제는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에서 선임했을 뿐 오늘날처럼 교황이 임명하는 사제제도는 없었다. 3. 동성애 사제와 사제 급감 문제 사제 독신을 강요함으로써 오늘날 가톨릭 교회 안에서는 사제들의 동성애가 만연하고 사제의 숫자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미국의 1백88개 교구 가운데 아동들을 상대로 한 사제들의 성추행 문제로 소송이 발생하지 않은 교구는 단 한 곳도 없다. 1994년 9월에는 60명의 사제 또는 수사가 아동 학대죄로 수감되어 있었다. 『캔자스 시티 스타』지가 2000년 1월에 실시한 광범한 조사는 에이즈로 사망한 사제들이 알려진 것만 최소 4백 명이며, 어쩌면 그 2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일반인들에 비해 그 비율이 4배에서 8배까지 높은 수치이다. 1965년 미국에서 사제직 수업을 받고 있던 신학생 숫자는 거의 5만 명에 달했다. 그러나 1997년에 그 숫자는 10분의 1로 줄었고, 2년 뒤에는 그 숫자가 다시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10개의 본당에 한 곳꼴로 상주하는 사제가 없다. 그럼에도 바티칸은 시종일관 사제 모집과 유지에 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교계는 이런 위기를 자기 자신에게조차 숨기려고 애쓰고 있는 것이다. 사제 독신은 사실상 잘 지켜지고 있지도 않다. 성직자의 성 습관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이 분야의 권위자 리처드 사이프(Richard Sipe)는 그의 평가서에서 사제들 가운데 대략 20퍼센트가 한 번쯤 여성과 성관계를 맺고 있고, 8~10퍼센트는 여전히 여성과 모종의 긴밀한 유대를 모색하고 있었으며 사제들 가운데 20퍼센트가 동성애 지향적이었고, 대략 80퍼센트는 적어도 이따금 자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교황은 결국 사제 독신을 고집함으로써 사제의 숫자를 급격하게 축소시켰고, 별로 독신적이지도 못한 체통 잃은 무리들을 만들어냈다. 많은 비평가들은 남성 동성애자 사제들이야말로 교황 요한 바오르 2세가 자기 교회에 물려주고 있는 진짜 유산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고 있다. 4. 기만 구조와 교회의 윤리적 권위 추락 오늘날 많은 사제들은 피임이나 낙태, 동성애와 같은 민감한 사안에 대해 교황청의 지침을 그들의 교회에서 적극적으로 설교하지 않고 있으며, 평신도들은 교회에는 열심히 다니면서도 그런 지침들을 조용히 묵살하고 있다. 세상에서 마지막 남은 권위적 기구라고 하는 가톨릭 교회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그것은 사제들 자신이 교황청의 가르침을 진심으로 믿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진심으로 믿지 못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유포시킬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현재 교회의 교의로 통하는 것 가운데 상당 부분 주장들은 지적으로 너무 천박해서 조그만 자존심만 있어도 그것을 자기 주장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인 것이 사실이다. 피임을 단죄하는 근거로 이용되고 있는 이른바 ‘자연법’ 논리와 아마추어 심리학이 그런 것이다. 그럼에도 교회는 왜 이런 엉성한 논리를 영원한 진리라고 주장하는가? 그것은 교회의 가르침은 불변의 진리이며 교회의 가르침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곧 교회의 권위가 무너진다는 강박관념 때문이다. 그래서 무리한 논리를 동원해 과거의 잘못된 가르침을 옹호하느라 교황권을 남용하는 기만 구조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만 구조는 결국 교회의 권위를 실추시킬 뿐이다. 우리는 흔히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말한다. 이제는 가톨릭인들 모두를 이 기만의 억압에서, 우리 시대에 은밀히 자행되고 있는 교황의 죄에서 해방시켜야 할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