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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름, 고려인
1. 고려인, 그들이 그곳에 살고 있었다 어찌하여 이제서야 왔단 말인가 내 조국은 어디에 있는가, 내 나라는 어디에 있는가 영화 속 해피엔딩은 더 이상 없었다 우리 고려인이 이렇게 값이 없단 말이오 노가이 지나이다 할머니의 사진 한 장 내가 독립운동가 최재형의 딸이오! 미루나무숲과 안 라이사 할머니 한국에 나간 엄마가 그리운 다냐와 윗짜 아아, 정말 끝나지 않는 삶의 질곡이여! 30년만에 사망통지서 한 장으로 돌아온 남편 내 소원은 그저 조국 땅 한번 밟아보는 것이오 체르니고프카의 우가이 막심 할아버지 늙어버린 내 친구 김 왈렌진 어느 조선족 남자의 죽음 형 찾아 수만 리 연해주 땅으로 온 발레리 씨 2. 지마와 지나, 고려인이 되다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에게 가는 것이니, 가거라 우리는 이제 이곳에서 살아야 한다 크레모보 정착촌?97 동남아엔 도마뱀, 연해주엔 지렁이 러시아라는 나라?104 우리들의 이름 지마와 지나 무엇이 우리를 이곳으로 오게 했는가 나의 첫 환자 실비아 아주머니 한 양동이의 감자와 한 바구니의 오이 로냐네의 하나밖에 없는 털모자 샤프카 남의 땅에 뿌리는 서러운 유랑의 눈물 3. 고려인,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왜 까레이스키가 되었는가 내는 마우자 피 섞는 것이 싫소 시베리아에 울려 퍼진 고국의 노래 내가 어찌 이 돈을 받으오 동토의 땅에 뿌린 독립의 씨앗 그 이름도 슬픈 수이푼강 기 죄없이 죽어간 사람들에게 인사드려라 그 이름 그대로, 파르티잔스크 리 올가 할머니의 노래 4. 대지의 버림받은 자들, 그리고 머나먼 유랑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는가 죽음보다 더한 40일 동안의 여정 살아 있는 것인가, 죽어 있는 것인가? 내 집 처마 밑으로 제비들은 날아오는지 우리가 살아난 것은 그냥 한 때문이오 5. 당신의 다른 이름은 우리입니다 온누리에 뿌리는 사랑, 온누리건강가족복지회 내일의 고려인은 더 이상 춥지 않으리라 아, 고국 길이 이렇게 좋소, 좋소 나라가 망해도 독립운동은 절대 하지 마라 고려인들의 슈바이처 박종덕 이옥자 부부 트랙터 한 대 가져보는 것이 소원이오 시베리아에도 봄은 온다 미래의 식량창고, 연해주 강 뾰뜨르 할아버지의 ‘빠스뽀르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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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한 사막에다 인간의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오아시스를 만들었다고 우리는 자부한다. 하지만 오늘이 있기까지 우리가 이 모래펄에다 파묻은 땀과 피눈물을 기억한다면 전혀 오늘이 자랑스럽지만은 않다. 갈대밭에다 움막을 둘러치고 살던 2년 동안에 같이 온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학질에 걸리고 이질에 걸렸지만 약 한번 못 써보고 무려 2백 명 넘게 죽었다. 소련은 우리를 여기다 갖다버렸을 뿐 인간 대접해 준 것은 없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우리들에게 목화를 재배하라고 했다. 개간을 해놓고 나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다 바치라고 강요했다. 노력영웅은 한마디로 일벌레를 뜻한다. 우리는 서로 노력영웅 되는 것을 더 없는 영광으로 알고 죽자 살자 일만 했다. 해마다 영웅 심사를 할 때 자기 이름이 뽑혀지는 감동을 위해서 일 년 내내 들판에서 흙 속에 파묻혀 지냈다. 정해진 면적에서 누가 더 많은 수확량을 내느냐가 영웅을 결정하는 주된 기준이다. 나도 영웅이다. 하루에 잠은 4시간 정도만 자고 나머지는 일을 했다. 가족들도 따라해야 하기 때문에 힘들다. 지금 생각해보면 허망하다. 물론 영웅이 되면 훈장을 받고 영웅 칭호를 들으며 무슨 행사 때마다 맨 위쪽에 앉게 되고 약간의 혜택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 콜호즈가 퇴락해 가고 소련이 붕괴된 뒤 독립 국가로 흩어지고 보니 내가 저 들판에 바쳤던 땀의 의미는 한마디로 소련의 권력층을 살찌게 해주기 위한 짓 밖에 못되었다는 결론이다. 내 몸에 남은 것은 모진 질병이고 내 가족에게 지워진 것도 그다지 넉넉하지 못한 썰렁한 살림과 마누라의 저 병신된 모습뿐이다. 내 땅 한 뼘 못 가진 채 이렇게 늙었을 뿐이다. 그리고 콜호즈가 변모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나도 머잖아 또 여기를 떠나 어디론가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그저 슬플 뿐이다. 이것이 영웅 대접이란 말인가.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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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은커녕 낡은 거적때기 하나 없는 허허벌판에 버려진 사람들, 그곳에 고려인들이 서 있었다. 그렇다. 버려진 것이다. 우르르 화물차의 쓰레기를 버리듯 사람인 그들은 그렇게 버려졌다. 살든 죽든 그것은 너희들의 팔자다, 기차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망연자실 두리번두리번 이곳이 어딘가 찾아보고 눈을 비벼 본다. 아무리 보아도 인적 하나 없는 이곳이 낯설다.
밤이 왔다. 어디든 들어가 잠을 청해야 하는데, 배는 고프고 마실 물조차 찾아지지 않는다. 1937년 겨울. 연해주에서 강제이주 당한 고려인들은 그렇게 또 하나의 죽음 같은 삶과 맞닥뜨리고 있었다. 그들은 맨손으로 땅굴을 팠고 그렇게 그 해 겨울을 나야 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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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물에 당신이 흐릅니다
이 책을 펴낸 저자 부부(김재영, 박정인)는 고려인돕기운동회 자원봉사자로 참가하여, 지금까지 4년 동안 러시아 연해주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들이 연해주 고려인의 눈물겨운 현실을 접한 것은 2000년이었습니다. 연해주와 중앙아시아를 둘러보고 온 저자의 은사님이 고려인의 안타까운 사정을 낱낱이 전해준 것입니다. 그날 밤 그들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합니다. 당시 그들은 경남 산청의 지리산 자락에 있는 ‘마근담농업학교’에서 농촌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는 도무지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휴직계를 냈고, 2001년 4월 23일 속초에서 러시아로 가는 동춘호에 몸을 맡겼습니다. 그렇게 크레모보 고려인 정착촌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너무나 가슴 아픈 현실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그리고 4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금도 그들은 여전히 연해주에 살고 있습니다. 이 책은 그들이 연해주에서 고려인과 함께 생활한 4년 동안의 기록입니다. 그들은 매일 같이 일지를 적었고 그것을 정리하여 이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입니다. 이 책에는 연해주를 다녀간 사진작가 안 빅토르, 류상수, 정을구 등의 사진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인생을 굽잇길 같은 주름을 달고 사는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 고된 노동으로 하루를 연명하는 우리의 아저씨 아주머니, 어린나이에 이미 삶의 무게를 온몸으로 짊어지고 사는 우리 아이들의 생생한 이미지를 함께 읽을 수 있습니다. 고려인, 그들은 누구일까요? 할아버지의 고향은 대한민국입니다. 아버지의 고향은 러시아 연해주입니다. 나와 내 아들의 고향은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러시아 연해주에서 살고 있습니다. 오랜 옛날 할아버지는 가난과 수탈을 피해 연해주로 오셨습니다. 이곳에서 할아버지는 농사를 지었습니다.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스탈린은 연해주에 살고 있던 한인들을 모두 중앙아시아의 허허벌판으로 내쫓았습니다. 그곳에서도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열심히 땅을 일구었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대학을 졸업했고 직장에 다녔습니다. 결혼도 하고 아이들도 낳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또 무슨 일입니까? 우즈베키스탄이 독립을 한 것입니다. 직장에서 더 이상 러시아말을 쓰지 못하게 했습니다. 직장을 그만 두어야 했습니다. 학교에서도 러시아말을 쓰지 못하게 했습니다. 아이들도 학교를 그만 두어야 했습니다. 그 와중에 할아버지마저 한을 품고 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우리는 우즈베키스탄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헐값에 집을 팔고 6000킬로미터나 떨어진 아버지의 고향 연해주로 왔습니다. 아무도 반겨 주지 않았습니다. 러시아 국적이 없는 우리 가족은 아무도 직장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와 나는 다시 땅을 일구어야 했습니다. 우즈베키스탄도 러시아도 자기네 국민이 아니라고 합니다. 할아버지의 나라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디일까요? 그러면 우리는 누구일까요? 고려인, 우리들의 오래된 자화상 우리가 오랜 동안 잊고 살았던 우리들의 오래된 자화상이 있습니다. 이들은 우리와 똑같은 얼굴로 얼어붙은 시베리아 땅을 일구며 살고 있습니다. 지긋지긋한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면서 빈 숟가락을 들고 고달픈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이 ‘먼 동쪽나라’를 뜻하는 ‘원동(遠東)’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던 연해주에 옮겨가 살게 된 데는 긴 역사를 가집니다. 1863년 13가구 한인이 처음으로 연해주에 발을 디뎠습니다. 그때는 1860년 베이징조약을 통해 연해주가 막 러시아의 땅이 되던 시기와 연결됩니다. 당시의 연해주는 무인지경의 땅으로 광활한 신천지 그대로였습니다. 고려인들은 그 땅을 개간해 농사를 지었고, 한인마을을 형성해 함께 살았습니다. 일제시대에는 그 마을들이 독립운동의 전지기지가 되기도 했습니다. 가난과 수탈을 피해 조국의 땅을 떠난 사람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두만강을 건넌 사람들, 하지만 그 땅은 이들을 쉽게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조국이 광복이 된지도 모른 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했습니다. 그리고 60여 년이 지난 후, 소련이 붕괴되면서 중앙아시아에서도 다시 쫓겨나 연해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다시 중앙아시아에서 연해주로 머나먼 유랑의 세월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남은 것은 절망뿐입니다. 연해주에는 절망 속에서도 여전히 우리들의 얼굴로 살아가고 있는 고려인이 있습니다. 광복 60주년,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민족사 2005년은 광복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을사조약이 체결된 것도 꼭 100년 전의 일입니다. 고려인들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그 누구보다도 많은 피를 흐리며 싸운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연해주로 이주한 것은 단순한 이민이 아니었습니다. 가난과 수탈을 피해 두만강을 건너간 사람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독립운동을 위해 연해주를 찾았습니다. 이들은 블라디보스톡 신한촌에 독립운동의 근거지를 세우고 목숨을 내놓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피 흘려 싸웠습니다. 하지만 고려인들은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조국과 단절되고 맙니다. 1937년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쫓겨난 강제이주의 뼈아픈 역사는 이들에게 조국의 존재를 잊어버리게 했습니다. 물론 조국도 이들의 존재를 잊어버린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들이 조국의 소식을 접한 것은 88서울올림픽 때였다고 합니다. 그제서야 이들은 조국 대한민국이 아직도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데올로기의 장막에 가려져 있던 조국의 실체를 50년 만에 다시 본 것입니다. 그리고 60여 년 동안 피와 땀과 눈물을 바친 중앙아시아에서도 쫓겨나 다시 연해주로 되돌아오고 있는 이들 고려인. 이들만큼 비극의 역사를 산 사람도 없을 것이다. 아시아 대륙을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쫓기고 쫓겨야 했던 이들의 수난의 역사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민족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