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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의 글쓰기
제주4‧3과 한국전쟁의 제노사이드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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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여는 글 이름 없는 것과 정명正名의 사이에서

제1부 서론

1장 분단문학에서 제노사이드문학으로 _23
2장 무엇을 제노사이드문학이라 부를 것인가 _39
3장 제노사이드와 재현의 문제 - 가독성·고백·증언 _66

제2부 문학적 이행기 정의의 형성기 : 1972~1987

1장 가족의 위기와 망자의례라는 재현의 공간 _117
- 가족이라는 표적 _117
- 금지된 매장과 말해질 수 없는 기억 _131
- 매장의 회복과 실패 _149

2장 ‘순경 각시’와 제노사이드의 젠더 _168
- ‘순경 각시’와 여성의 위기 _168
- 남성의 부재, 여성 주체의 재귀속 _181
- 여성의 재현 공간과 제노사이드의 젠더 _193

3장 빨치산, 제노사이드와 국민의 경계 _213
- 역사로서의 빨치산과 상상된 가족사 _213
- 죄의식과 국민 되기 _222
- 점령지와 해방구, 국가의 시험대 _233

제3부 민주화 이후 제도적 이행기 정의와 문학의 재현

1장 민주화 이후 기억의 범람과 재현의 정치 _249
- 문예지 복간과 과거사 재현의 활기 _249
- 기억의 범람과 반공주의의 퇴조에 대한 기대 _257
- 국가로 회수될 수 없던 가능성들 _275

2장 소설과 구술사, 자전적 글쓰기의 전략 _284
- 증언과 구술, 자기 재현의 양상들 _284
- 재현의 공백과 확장 _295
- ‘고백’에서 ‘증언’으로 _312
- 훼손된 공동체와 소설가의 성장 _339

3장 제노사이드의 계보화와 해원(解?)의 서사 _355
- 이행기 정의와 소설형식의 변화 _355
- 기억을 새롭게 쓰는 주체 _366
- 괴물의 연대기와 외부화된 해원 _381

제4부 공식기억의 교체와 주체의 복권

1장 민주화가 품지 못한 것 - 외국과 외부, 내부와 내면 _395
- 제도적 이행기 정의와 그 외부들 _395
- 외국와 외부, 국가의 제도가 닿을 수 없는 자리 _400
- 내부와 내면, 문화적 부인과 제노사이드의 심성 _413

2장 공식기억의 교체와 전도된 저항 _433
- 신 공식기억의 등장과 역사부정론의 대두 _433
- ‘섬의 반란’과 전도된 저항 _445
- 탈이념적 피해자상과 우익의 소외감 _459

3장 소설의 개작과 또 다른 ‘기획자’를 복권하기 _475
- 정본 만들기와 소설의 개작 _475
- 제노사이드 재현의 확대와 구체화 _487
- 좌익의 정치적 주체화와 아버지의 복권 _509

제5부 결론 _541

저자 후기 다시, 살아남은 자의 글쓰기 _544

참고문헌 / 556
미주 / 574
색인-작가 & 작품 / 640

저자 소개 1

한국 현대문학 연구자. 문학평론가. 가톨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서 「한국 이행기 정의 국면의 제노사이드 문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현대소설과 제노사이드문학, 문학 제도를 연구하고 있다. 2015년 계간 「창작과비평」에서 신인 평론상을 수상하였고, 2022년에는 신동엽문학상 비평 부문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는 『인간이 인간을 죽일 때』(2025)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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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5월 19일
쪽수, 무게, 크기
648쪽 | 145*210*35mm
ISBN13
9788966551897

책 속으로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자행된 제노사이드로 인해 가족과 친족 집단이 경험한 주요한 위기는 제사와 매장에 대한 반공국가의 금지였다. 제노사이드로 인해 살해된 자의 무덤을 만들고 장례를 치르는 과정은 친족 의례의 질서에 따라서 이루어졌다. 자연히 이를 주도하는 것 역시 살해당한 이의 가족과 친족이었다. 하지만 제노사이드로 인해서 살해된 이의 유해를 수습하는 문제는 가족 만의 문제로 한정되지 않는다. 반공국가에 의해서 살해된 가족 구 성원이 무덤을 가질 수 없도록 폭력적으로 금지된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장에 대한 반공국가의 금지는 희생자에게 국민의 자격을 박탈하고, 그 유가족들의 사회적 위치 역시 불안하게 만드는 조치였다. 그러므로 제노사이드 과정에서 살해된 가족의 무덤을 만들고 제사를 지내는 일은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 모두가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회복하는 수단이었다. 이와 같은 죽음에 대한 격하와 금지는 제노사이드가 전쟁과 같은 다른 집단적 죽음과 구별되는 주요한 지점이다.
--- pp.52-53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 전쟁과 제노사이드 같은 국가폭력을 경험한 사회는 여성들에게 전혀 다른 방향의 모순된 요구를 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남성이 죽거나 실종되는 등 사라진 상황에서 여성들은 집 밖으로 나가 일해야 했다. 한국전쟁을 기점으로 가사노동에서 벗어나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여성 생계 부양자가 급격히 증가했고, 이들 중 상당수는 전쟁미망인과 같은 남성 가부장이 부재한 여성들이었다.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사회로 진출해서 일해야 했지만, 동시에 반공국가는 남성 가부장의 통제 바깥으로 나온 여성들을 다시 가정으로 귀속시키고자 했다. 살아남기 위해 생계 부양자가 되어야 했던 여성들은 동시에 ‘현모양처’라는 가족 내의 이상적 어머니로 살아야 한다고 요구받은 것이다. 이는 남성을 전쟁터의 군인으로 동원하고 부족한 노동력을 여성의 사회 진출에 의존하던 국가가 전역하는 군인들을 위해 산업구조를 다시 남성화하는 과정의 산물이자, 전후 핵가족화로 인한 새로운 가족 모델을 만들어가는 시도였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도 돌아올 남성이 없는 가족의 여성에게도 사회는 동일한 요구를 했다. 그리고 정치적 정체성을 의심받아야 했던 좌익 가족은 이러한 요구에 순응하는 일이 곧 생존의 전략이기도 했다.
--- p.181

87년의 민주화 직후 법적.제도적 이행기 정의를 진행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었을 때, 가장 큰 목표는 책임자 처벌이었다. 88 년의 광주청문회로 고조되었던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책임자 처 벌의 목소리는 노태우 정권의 완강한 거부와 3당 합당이라는 정치적 격변, 보상 문제의 대두 등으로 인해 점차 정치권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러나 정권이 정치적 위기에 직면할 때면 과거사 문제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보이면서 지지 여론을 끌어올리려고 한 김영삼 정권 시기에는 전체 국민의 90%가 책임자의 처벌에 찬성했다. 이러한 열망으로 전두환, 노태우는 내란죄로 중형을 선고받았으나 97년의 IMF 위기 이후 이들에 대한 사면 조치가 이루어지며 단죄라는 목표는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다. 하지만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중후반까지는 한국사회에는 (주로 광주민주화운동에 한정되었지만)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그들이 반성하길 요구하는 의지와 기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이러한 요구는 국가폭력의 책임자들이 여전히 사회와 정치의 중요한 세력으로 남아 있던 정치적 현실 속에서는 현실로부터 동떨어졌던 일이었다. 한국사회의 제도적 이행기 정의는 책임자를 처벌하는 응보적 정의의 형태가 아니라 진상규명과 피해자의 명예회복, 배.보상을 중심으로 한 ‘화해 모델’로 전개되었다.
--- pp.262-263

보도연맹사건은 한반도에서 발생한 단일 제노사이드 사건으로는 최대 규모지만 사회적 평가와 그에 대한 인식의 수준은 높지 않다. 민주화 이후 공식기억에 등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외면 속에서 축소된 보도연맹사건의 기억은 이중적인 망각의 공포(반공국가의 억압과 문화적 부인)에 맞서야 했다. 역사의 목격자인 달의 존재는 가해자가 피해자의 목소리를 억압하면서 만들어낸 공식기억에 저항하는 대항기억이 자라는 토양이자 더 나아가 사회적 기억의 영역 역시 다시 재편할 수 있다는 희망의 근거가 된다.

『밤의 눈』을 구성하는 6개의 장 중에서 보도연맹사건이 일어났 던 1950년이 배경인 것은 2장인 ‘그해 여름’ 하나뿐이다. 2장은 분량 면에서는 소설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지만, 학살 이후인 60-70년대의 상황을 묘사하는데도 그만큼의 분량이 할애되어 있다. 3장인 ‘유족회’에서는 대진읍과 인근 지역의 보도연맹 유족들이 ‘대금 피학살자 유족회’를 결성하고 진상 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게 된다. 그러나 군부 쿠데타 이후 유족회는 반공국가에 의해 처벌 대상이 되고, 이후 살아남기 위해서 사회적으로 고립될 뿐 아니라, 유신헌법 국민투표에 누구보다 먼저 나가 찬성표를 던지는 ‘과잉적응’을 통해 (반공) 국민임을 증명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인다. 『밤의 눈』은 4.19 직후 시도되었던 이행기 정의의 노력이 군부의 탄압에 의해 무력화 되고, 유족들이 진상규명의 희망을 잃고서 (반공) 국민을 창출하려는 반공국가의 ‘가독성’ 장치를 피하기 위해 반공주의적인 자기 재현, 즉 ‘고백’의 전략을 활용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 pp.418-419

제주4.3의 새로운 공식기억이 된 『4.3보고서』에 대한 현길언의 비판은 근거 없는 억측이나 자의적 판단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보고서 작성자들의 숨겨진 의도에 대한 추측을 중심으로 주 장을 전개할 뿐 아니라, 실제 사실과 다른 가짜 뉴스도 주요한 논거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현길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고 발언했다는 주장을 근거로 4.3 진상규명 보고서의 정치적 편향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해당 발언이 실제로 존재했는지 그 구체적 근거를 들지는 못해 4.3단체들로부터 강력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해당 발언을 처음으로 주장한 이는 뉴라이트 계열의 역사 교과서 집필로 논란을 일으켰던 교학사 교과서의 대표 필진인 이명희 교수(당시 현대사학회 회장)로 그는 당시 보수 성향의 여당 국회의원 김무성이 주최한 ‘근현대사 역사 교실’이라는 행사의 강연자로 참여해 문제의 발언을 했다. 해당 발언에 대해 논란이 일자 이명희 교수는 당시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 해당 주장이 실제로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면서 “우파 진영의 보편적 인식”이었으며 “통용되는 이야기를 인용한 것”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그가 해당 주장을 인용했다고 밝힌 극우 성향의 언론인 조갑제의 칼럼에서도 해당 발언이 있었다고 단언하지 않는다. 그 칼럼에서조차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 연설에서 나타나는 역사관이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아야 할 나라라고 몰아세워온 386 친북좌파세력의 논리를 대변”한다고 기술할 뿐이다.
--- pp.448-449

문학 연구자는 현장이나 생존자를 인터뷰할 일이 거의 없다. 그런데도 많은 유족을 만났다. 강의를 듣고, 책으로 읽던 연구자 중에도 학살 유족이 있었다. 연구했던 작가들 대다수가 유족이었다. 생각을 못 했던 사람에게 들은 고백도 있었다. 가까운 동료 연구자 중 한 사람은 알게 된 지 몇 년이 지난 뒤 자기 아버지의 이야기를 말해주었다. 전쟁 중 억울하게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뒤늦게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해서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던 일에 대해서 말이다. 그는 그런 좌절과 한으로 헌 가슴을 술로 가득 채우던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서 원망과 연민 사이의 어떤 감정을 말해주었다. 있을 수 있는 사연이었지만, 또래 친구의 이야기로 듣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기억은 항상 우리의 곁에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시 반복될 뻔했다. 마음의 어떤 부분이 무너지고 있음을 느꼈다.

--- p.547

출판사 리뷰

한국의 제노사이드문학과 작가들

20세기는 제노사이드의 시대였다. 정치학자들은 20세기에 정치·종교·인종 등의 이유로 발생한 제노사이드로 1억500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추정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세계는 제노사이드를 막기 위한 국제법(제노사이드 방지협약)을 만들었으나 20세기 내내 제노사이드는 반복되었다. 그리고 1952년 제노사이드 방지협약에 가입한 대한민국 역시 끔찍한 제노사이드가 벌어지던 냉전의 주변부, 열전으로서의 냉전을 경험한 곳 중 하나였다.

김요섭의 『살아남은 자의 글쓰기』는 제노사이드의 역사에서 잊힌 한국의 제노사이드가 어떻게 문학을 통해 기록되었는지 살핀다. 제주4·3과 여순사건부터 한국전쟁기의 국민보도연맹 학살 등으로 이어지는 20세기 중반 한국의 제노사이드 사건으로 최대 100만 명이 사망했지만, 해외 제노사이드 연구자 대부분은 한국의 사례를 알지 못한다. 제노사이드에 대한 무관심은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다. 민주화 이후 긴 시간 이어진 과거사 청산의 과정을 통해 진상규명과 국가의 책임 인정이 이어졌지만, 그 피해의 규모에 비해 사회적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제노사이드 사건이 분단과 전쟁의 일부분으로만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문학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제노사이드는 한국문학에도 끔찍한 상처를 남겼다. 김승옥, 김원일, 박완서, 이청준, 임철우, 현기영 등 한국 문학사의 주요 작가들이 제노사이드로 가족을 잃거나, 고향을 초토화하는 끔찍한 사건을 목격했으며, 그 사건이 남긴 기억이 평생에 걸쳐 그들의 문학에서 되풀이되었기 때문이다. 오빠의 죽음을 끝없이 변주해서 소설로 써온 박완서, 사라진 아버지와 초토화된 고향의 이야기를 반복해온 김원일, 인민군으로 위장하고서 마을을 습격한 경찰부대와 광주의 죄의식 사이에서 이야기를 틈새를 필사적으로 찾았던 임철우. 그리고 제주의 산천과 공동체를 찢어버린 제노사이드의 광풍을 소리 높여 고발했던 현기영 같은 작가들은 한국문학사에서 수십 년간 제노사이드의 기억을 소설로 써왔다. 하지만 이들의 작품은 한국문학 연구에서는 분단과 전쟁의 문학적 재현으로만 설명되어왔다. 『살아남은 자의 글쓰기』에서는 이들이 제노사이드 사건의 기억을 문학으로 재현하는 ‘제노사이드문학’의 계보로 새롭게 묶어 설명하고자 한다.

홀로코스트로 대표되는 제노사이드는 그 개념이 처음으로 제기된 20세기 중반부터 기존의 전쟁과는 다른 폭력, 특정한 인구 집단을 파괴하려는 폭력을 고발하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였다. 또 다른 참사들을 막기 위한 국제법인 ‘제노사이드 방지협약’ 역시 전쟁과 구분되는 집단을 향한 폭력으로 제노사이드를 전쟁 중 잔악 행위와는 분리해서 처벌하고 있다. 그러나 서구의 집단적 죄의식으로 남은 ‘예외적 사건’이 된 홀로코스트의 압도적인 존재감과 냉전기 강대국의 이해관계로 협약이 수십 년간 유명무실해짐에 따라 제노사이드는 다수의 인명을 죽은 참사 정도로 단순화되었다. 이는 대중적 인식뿐 아니라, 다수의 학자와 작가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살아남은 자의 글쓰기』는 제노사이드 개념의 창시자였던 법학자 라파엘 렘킨의 제노사이드 개념을 충실하게 활용하여 분단문학, 전쟁문학, 수용소문학 등과 구분되는 ‘제노사이드문학’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주장한다. 프리모 레비 등으로 대표되는 홀로코스트 문학은 서구 현대문학의 정전이 되었을 뿐 아니라, 참혹한 과거사를 재현하는 예술의 핵심 개념을 구성하고 있다. 홀로코스트는 역사와 문학 모두에서 인류가 잊어서는 안 될 기억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미국의 역사학자 티모시 스나이더가 비판하듯이 홀로코스트의 일부분, 전체 사망자의 절반 이하가 발생한 아우슈비츠와 같은 절멸수용소에 과잉된 대표성을 부여했던 것도 사실이다. 실제 홀로코스트 피해자의 절반은 전쟁 중에 점령된 마을과 마을 사이를 오가며 총살을 자행한 처형부대에 의해 발생했다. 이러한 처형은 한국의 사례를 비롯한 대부분의 제노사이드와 비슷한 방식이었다. 아우슈비츠보다 생존율이 낮았던 동유럽의 마을들이 잊혀졌으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서유럽 출신의 유대인들은 냉전기에 홀로코스트를 대표하는 증언자들로 기억될 수 있었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억은 증언자의 의도와 달리 중심부와 주변부 사이의 문학과 문화적 격차라는 탈식민주의적 쟁점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의 제노사이드 사건처럼 서구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연구자들로부터도 관심을 받지 못한 지역들은 재현의 주변으로 밀려났다.

살아남은 자의 글쓰기 - 은폐된 기억과 빼앗긴 권리를 위한 싸움

『살아남은 자의 글쓰기』가 내세우는 제노사이드문학은 서유럽 생존자 중심의 홀로코스트 문학이 만든 기억의 위계를 넘어서, 20세기의 제노사이드에 대한 문학적 재현을 이해하기 위한 틀이다. 서경식은 홀로코스트가 가진 문학적 대표성이 다수의 작품을 남기고 전파할 수 있는 서구의 문화적 힘에서 비롯된 데 반해, 아시아 등 주변부의 제노사이드는 재현의 공간을 거의 확보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살아남은 자의 글쓰기』가 보여주는 한국의 제노사이드문학사는 20세기의 제노사이드라는 근대적 폭력에 맞서는 문학적 작업이 홀로코스트 외부에도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살아남은 자의 글쓰기』는 제노사이드가 단순히 타자를 파괴하는 폭력을 넘어 새로운 사회를 설계하려는 행동, 즉 폭력적인 사회공학임을 설명한다. 제노사이드는 학살 이후에도 한국사회의 구조 안에 남아서 살아남은 자의 삶을 포획한다. 그러나 살아남은 자는 문학이라는 저항의 장에서 은폐된 기억을 말하고, 빼앗긴 권리를 회복하기 위한 싸움에 나설 기회를 찾는다. 이 책은 그동안 분단문학, 전쟁문학 등으로 이해되었던 한국의 소설들이 실은 제노사이드와 그 사건이 남긴 폭력적 사회에 맞서는 문학적 실천, 즉 제노사이드문학이었다고 주장한다. 가해자가 전쟁에서 패배한 홀로코스트와 달리, 대다수 제노사이드의 기억은 권력을 가진 가해자의 억압에 맞선 기억 투쟁을 통해 보존될 수 있었다. 독재정권 하에서 은폐된 기억을 말하고, 민주화의 과정을 거치며 기억의 발굴을 넘어 주체의 권리를 회복하려고 한 한국의 제노사이드문학은 지역적 사례가 아니라 20세기 제노사이드의 시대를 견딘 세계인 대다수의 경험을 반영하는 또 다른 문학적 보편성으로 재인식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김원일, 박완서, 임철우, 현기영 등 제노사이드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한 한국의 작가들이 70년대 냉전의 데탕트 국면부터 과거사 청산의 노력이 지속되는 2010년대까지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어떻게 제노사이드문학을 써왔는지 분석한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한국의 과거사를 재현하는 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이때, 한국 제노사이드문학사는 역사와 문학이 마주하는 순간의 역동성을 독자들에게 펼쳐놓을 것이다.

저자의 말


제노사이드문학 연구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석사 학위 논문이었던 『김원일·현기영 소설의 학살서사 연구』를 통해서였다. 부족한 논문이었지만, 그 두 분의 작가를 통해 이 책과 제노사이드문학 연구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김원일 선생의 개작 작업을 알게 되었을 때, 경험한 긴장과 전율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 엄혹한 시대에 수만 매에 달하는 원고를 계속 고쳐가며, 한 걸음씩 내딛은 김원일 선생의 작업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한 번도 만나 뵌 적 없는 선생을 찾아뵙고서 이 책을 드릴 수 있기를 오랜 시간 바랬다.

현기영 선생은 운이 좋게도 만나 뵙고서 석사 논문과 박사 논문을 드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어설픈 연구임에도 웃으시며 격려해주셨던 선생께는 항상 감사한 마음뿐이다. 이 책에서는 많은 분량을 할애하지 못했지만, 현기영 선생의 제주 역사소설인 『변방에 우짖는 새』와 『바람 타는 섬』은 그가 반공국가의 논리에 얼마나 치밀하고 치열하게 맞서며 4·3의 역사를 복권해갔는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었다. 그 소설들을 거쳐 『제주도우다』로 4·3 정명의 과제가 이어지고 있는 것을 동시대에 볼 수 있어 감사하다. 현기영 선생의 소설이 나아간 길 없이는 한국의 제노사이드문학을 설명할 수 없었다. 두 대가, 김원일 선생과 현기영 선생의 작품을 읽는 것이 이 책의 시작점이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의 제목인 ‘살아남은 자의 글쓰기’는 제주4·3 70주년 전국작가대회 학술행사에서 석사 학위 논문을 요약 정리한 발표문의 제목에서 따왔다. - ‘저자 후기’, 「다시 살아남은 자의 글쓰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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