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프롤로그 - 속삭일지언정 침묵하지 않는 5
1장 가해자의 흐릿한 실루엣 학살자 안와르 콩고의 눈물 15 사회적 지지를 얻은 폭력 26 배려심 깊은 나치 군인들 37 나만큼은 선하다는 믿음 48 2장 지극히 현대적인 제노사이드 오시비엥침의 시체 공장 65 공동체라는 톱니바퀴 72 ‘우리’와 ‘적’의 구분 81 수용소에 존재한 지하사회 92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 자 98 3장 존재했지만 들리지 않은 목소리 전쟁을 기록하는 여성 113 파괴된 도시의 주인들 124 피해자가 짊어진 책임감 138 고통을 다시 쓸 수 있다면 148 4장 도시 설계자의 죄의식 히틀러와 건축가의 계획 161 백지 위에 그려진 도시 172 하이 모더니즘의 욕망 183 밤섬 사람들의 부군당 196 5장 냉전, 추모가 금지된 시대 무덤이 없는 사람들 209 기념비 위에 세운 국가 221 저항운동으로서의 제사 233 가족을 갈라놓은 이념 241 6장 기억이 돌아오는 방식 경찰 가해자의 고백 259 기억과 교환한 스페인 민주화 274 문명을 지켜 낸 병사들 284 거리에 새겨질 이름 296 에필로그 - 기록이 존재를 대신할 수 없지만 317 주 324 |
김요섭의 다른 상품
|
속삭일지언정 침묵하지 않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 이야기들은 때로 너무 많은 것을 숨기고, 때로는 너무 복잡한 맥락을 거쳐야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그 사건이 어떤 경험이었는가를 우리에게 말해 줄 수 있다. 좋은 세상이 오면 알게 될 것이라는 말이 아니었다면 나는 광주에 대해, 억울한 죽음을 말할 수조차 없는 시대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안와르 콩고라는 노인을 보며 느꼈던 구토감. 처음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았을 때, 토할 것만 같았다. 이토록 잔혹하고 끔찍하고 역겨운 인간이 있다는 충격에서 비롯된 분노도, 혐오도 아니었다. 가장 곤혹스럽고 고통스러운 감각은 다름 아닌 공감이었다.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할 때 구토감을 견디며 힘겹게 변명하는 초라한 노인의 고통에 공감했다. --- p.24 〈액트 오브 킬링〉의 감독 조슈아 오펜하이머는 안와르 콩고의 죽음을 접하고 자신이 느낀 슬픔을 이야기한다. 조슈아 오펜하이머는 안와르 콩고가 “얼마나 끔찍한 삶을 살았는지, 얼마나 끔찍한 선택을 했는지, 얼마나 많은 가족을 파괴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죄책감이 그를 파멸시켰는지 알고 있”지만 그의 죽음에 눈물 흘린다. 그 눈물은 용서도, 이해도 아니다. 안와르 콩고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울”음이 터져 나왔다고 말한다. 안와르 콩고는 그런 삶을 살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런 삶을 살았다. --- pp.60-61 |
|
“그는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었어요”
당신이 가해자에게 공감하는 순간 1965년 인도네시아 정권을 잡은 국민당은 ‘반공’을 이유로 학살을 자행한다. 정부는 자신들을 대신해서 사람들을 죽일 조직이 필요했고, 이때 모집된 갱단과 준군사 조직 중 한 명이 안와르 콩고이다. 그는 당시 약 1000명을 죽였지만 어떤 처벌이나 반성 없이 평온한 삶을 살았다. 그러던 중 인도네시아 군부 쿠데타를 주제로 영화를 기획한 영화감독 조슈아 오펜하이머를 만나 영화의 주인공이 될 기회를 맞는다. 안와르는 카메라 앞에서 자신이 어떤 도구로 어떻게 사람을 죽였는지 영웅담을 늘어놓듯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당시 상황을 재연한다. 하지만 그가 피해자의 역할을 맡아 연기할 때 그의 오래된 믿음은 깨진다. 피해자들의 서 있던 자리에서, 피해자들의 입장이 되어 본 그는 재연을 멈추고 헛구역질을 참으며 자리를 떠난다. 저자 김요섭 평론가는 자신도 이 장면에서 구토감을 참지 못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김요섭 평론가는 안와르를 향한 분노 때문에 구토감을 느낀 게 아니라는 것을 고백한다. “나는 가해자가 자신이 행한 일의 대가를 겪기를 바란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들이 느끼는 고통과 슬픔에 공감한다. 그리고 그런 아픔이 없었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들이 우리, 아니 나와 그리 다르지 않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비통하게도.”(25~26쪽) 영화감독 조슈아 오펜하이머는 안와르 콩고가 피해자 역할을 할 때 매우 힘겨웠다면서 눈물을 보이자 “당신은 그 순간이 영화 촬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 일을 겪은 사람들에게는 현실이었다”(15쪽)고 그를 비난한다. 그리고 어느 날 안와르는 자신이 정말 죄를 지은 거냐고 묻는다. 조슈아는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울음을 터트린다. 그것은 용서나 이해의 눈물이 아니다. “그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었”(61쪽)기 때문에 울음을 터트린 것이다. 기록으로 저항하며 인간으로 남고자 한 자들 이 책은 잔혹한 가해자들만 조명하지 않는다. 저자는 폭력에 가려진 도시와 피해자들의 이름을 되찾는다. 폴란드의 도시 오시비엥침은 낯선 이름이지만, 우리는 이 도시를 잘 알고 있다. 독일어 발음으로 더 유명해진 아우슈비츠로 말이다. 그러나 “아우슈비츠를 둘러싼 마을의 존재를 기억할 때, 수용소의 풍경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69쪽) 아우슈비츠수용소를 둘러싼 주변 마을과 공동체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그동안 가해자의 막강한 힘에만 집중했다면 이제는 수용소의 수감자들과 관계를 맺고, 또 수용소 내부에도 그들만의 사회가 존재했다는 사실에 집중해야 한다. 이 책은 피해자가 증언과 기록을 통해 저항하며 인간으로 남고자 한 자들을 조명한다. 존더 코만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수용소의 노동자로서, 같은 유대인이지만 수감자들의 시체를 처리하는 일을 맡았다. 이들은 독일군의 트라우마를 줄이기 위해, 그리고 철저하게 노동력으로 계산되어 나치군의 업무에 투입된다. 하지만 존더 코만도 역시 증거 인멸을 위해 자신들이 처리한 시체와 마찬가지로 살해당했다. 이런 복잡한 상황 속에서 이들은 욕망이나 사고가 제어된 무기력한 자들로 오랜 시간 인식되었다. 하지만 수용소를 둘러싼 마을이라는 공동체와 수용소 지하에 형성된 수감자들의 사회에 의해 몰래 사진기를 가지게 된 존더 코만도는 죽음을 무릅쓰고 나치군이 자행한 학살의 순간들을 네 장의 사진으로 남긴다. 이는 무기력한 상황 속에서도 이들에게 인간으로서 저항할 능력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지나간 삶은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다양한 방식으로 쓰이고 있으며, 우리는 그 기록들을 언제고 다시 읽음으로써 폭력에 굴복하지 않을 인간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저자 김요섭 문학평론가는 “기록이 존재를 대신할 수는 없다”라고 하면서도, “다른 사람 앞에 선 사람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할 방법이 그곳에 있”(9쪽)다고 말한다. 이 말은 살아남은 자들과 죽은 자들의 기록을 우리가 읽어야 할 이유이며, 이 책이 바라는 단 한 가지라고 할 수 있다. |
|
진실은 의도적으로 외면당하고, 고통의 기억은 지워지고 있다. 『인간이 인간을 죽일 때』는 그런 시대에 맞서 묻는다. 우리는 왜 잊고 싶은가, 무엇을 외면하고 있는가. 반복될 수 있는 어둠 앞에서 이 책은 다시 말하고, 다시 듣게 한다. - 강성현 (역사사회학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