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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들어가며 1장 장애란 무엇인가 2장 장애, 한 인간의 일부분 3장 장애 인권운동의 역사 4장 비장애중심주의와 접근성 5장 장애를 대하는 예의 6장 미디어 속의 장애 맺으며 |
Emily Ladau
저자는 말한다. 장애는 결코 비극이거나(혹은 비극을 극복해 내는 감동 스토리거나), 열등함이거나, 부끄럽거나 무가치한 것이 아니라고. 그저 ‘인간 존재의 한 양상’이자, ‘삶의 경험의 자연스러운 일부분’, ‘끊임없이 진화하는 경험’, ‘독창적인 삶의 방식’이라고. 장애가 있는 몸으로 살아온 평생의 시간들 후 내려진 결론이기에 더 묵직하게 다가온 이러한 말들 앞에서 나는 자못 놀랐다. 눈이 뜨이고 귀가 열리는, 장애 자녀의 엄마로서 나도 모르는 새 내면화된 위축과, 두려움, 무력감을 일소시켜 주는 위력의 언어였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장애인 한 사람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모든 장애인을 다 아는 것처럼 여기지 말라. 그는 그저 한 명의 장애인에 불과하다. 어떤 장애가 있는 사람은 그 장애에 관한 한 전문가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가 겪은 장애 경험은 자신에게만 속하는 것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로 장애에 관한 수많은 책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 p.16~17 살다 보면 누구나 장애를 겪을 수 있다. 골절 같은 일시적 장애를 겪기도 하고, 청력 상실이나 청력 마비, 뇌 손상과 같은 장애를 겪는 시기도 있다. 비장애인에게 있어서 장애인이 된다는 생각은 사실 공포스럽다. 이해할 수 있다. 미지의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하거니와 나의 몸이 나의 통제를 벗어나는 방식으로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은 정말이지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두려움은 불행하게도 종종 장애인에 대한 편견으로 바뀌곤 한다. 다른 사람의 현실이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 p.56~57 ‘-주의’라고 불리는 용어들 중 몇 가지는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을 나타내는 용어로 누구나 익숙할 만큼 널리 쓰이고 있다. 성차별주의, 연령차별주의, 동성애 혐오주의, 성전환자 혐오주의, 외국인 혐오주의 같은 말처럼 말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러한 용어들이 계속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차별에 관한 이 같은 대화에서도 종종 누락되는 것이 바로 장애에 대한 차별, 비장애중심주의(ableism)다. --- p.100 접근성은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기회와 지원을 받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공평하게 만들어 주는 일이다. 이는 참여하고 함께하는 일, 이해에 대한 장벽을 제거하고 능력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주변의 세상을 몸과 마음 모두에 알맞게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접근성은 특별한 대우나 혜택을 뜻하지 않는다. --- p.112 개인의 공간을 존중하는 것은 서로 간의 상호 작용에 있어서 기본적인 규칙이지만 장애인을 대할 때는 이 규칙이 너무나 빈번히 무시되는 것 같다. 나의 경우 낯선 사람이 다가와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자기 팔걸이라도 되는 듯이 내 휠체어에 자기 팔을 얹곤 했다. 별것 아닌 일 같지만, 휠체어는 내 몸의 연장이고 내가 움직이는 수단이다. 누군가 내 휠체어에 손을 대거나 체중을 얹으면 휠체어에 앉아 있지 않고도 갇힌 느낌을 받게 된다. --- p.131 우리는 ‘장애가 없는 상태’를 인간의 기본 상태로 이해하도록 사회화되어 있다. 그것은 외관상 장애로 보이지 않는다면 보통 장애인이 아닐 거라 간주한다는 뜻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지금은 정말 열심히 달라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장애에 대한 모든 고정관념과 선입견을 버리자. 장애가 있어 보이는 것, 장애가 없다고 생각되는 것 모두에 대해 말이다. 마음대로 추측하지 말라. 대신 모든 상호 작용에서 장애에 대한 예의와 접근성을 포함해 달라. --- p.150 프로그램 제작자들은 다수의 시청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다. 즉, ‘더 괴상할수록 더 좋은 것’이다. 이런 종류의 프로그램은 간혹 교육적인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이 사회의 ‘다른 몸’과 ‘다른 정신’에 대한 병적인 호기심에 의존한다. 안타깝게도 이와 같은 프로그램들은 편견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호기심을 잔인함으로 빠르게 비화시키는 통로로 작용한다. --- p.186 많은 학교, 기업, 단체에서 비장애인 참가자들이 장애를 체험할 수 있는 장애 인식 및 공감 훈련 이벤트를 주최하곤 한다. 청각 상실을 이해하기 위해 귀마개를 착용하거나 시력 상실을 이해하기 위해 눈가리개를 쓰도록 요청하고, 휠체어를 밀거나 목발을 사용하여 걷게 한다. 흔히 사람은 경험을 통해 배운다고들 하지만 나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장애인의 경험을 이해하는 데 있어 이런 접근 방법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단순한 모의 체험으로 한 사람의 생애 전체를 가로지르는 경험과 정체성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 p.203 |
이 책을 읽고, 자기 때문에 사랑하는 연인이 인생을 망칠 것이라 여기며 괴로워하던 장애인 남자 주인공을 보며 눈물을 훌쩍였던 소설이 생각났다. 설리번 교사의 숭고한 희생이 없었다면 헬렌 켈러의 ‘기적’은 일어나지 못했을 거라던 훈화가 기억난다. 지금까지 장애인용 주차구역과 좌석, 엘리베이터를 보며 해왔던 온갖 생각들이 떠올랐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과연 이런 생각들을 퍼올릴 수 있었을까.
이 책은 장애에 대한 편견이 생각보다 넓고 깊이 존재하고 있음을 일깨운다. 장애와 장애인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들은 많다.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려면 그들에 대한 배려와 보호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그런 생각 또한 잘못된 편견이라 여긴다.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가부장적 남성중심 사회에서 여성들의 인격이 존중받지 못한 것처럼 비장애인 중심 사회는 장애인을 동등하게 대우하지 않는다. 비장애중심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불편하겠구나’ 정도로 단순히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인간이라면 마땅히 존중받고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누구나 원하는 교육을 받고 직업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이 당연한 권리를 얻기 위해 장애인들은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다. 식당과 극장을 방문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일, 선거일에 투표소를 방문하는 일, 학교에 등하교하는 일 하나하나가 장애인에게는 새로운 법과 제도를 마련해야만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비판하는 것은 이런 현실과 함께 장애와 장애인을 대하는 인식이다. 장애인은 어딘가 ‘잘못된’ 사람이며 ‘정상’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이들에게 저자는 그런 생각이 ‘그릇된 비장애중심주의’라고 외친다. 1장에서는 장애라는 개념을 둘러싼 다양한 인식들이 소개된다. 우리는 모두 동등한 인격체인 사람들이며 각자 다른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고, 도우 위에 올려진 갖가지 토핑들이 피자의 정체성을 만들어내듯 장애 또한 인간의 정체성을 이루는 토핑의 하나일 뿐이라고 말이다. 아주 오랫동안 장애인은 당당한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별종 취급을 받아왔다. 장애는 결함이나 삶의 오점으로 취급되어 왔다. 지금 무심코 쓰는 언어표현이나 사고방식 중에는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것들이 꽤 많다. 2장에서 저자는 그것이 왜 문제인지, 그것을 대체할 만한 다른 표현은 무엇인지 소개한다. 3장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잘못된 관행에 맞서 법과 제도를 보완하려 애쓴 인권 운동가들의 이야기다. 장애인에게는 깊은 감동과 벅찬 영감을 선사하고, 비장애인에게는 지금 누리고 있는 당연한 자유와 권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실감하게 할 것이다. 4장은 우리를 둘러싼 비장애중심주의에 관해 말한다. 장애인의 접근성을 고려하지 않은 공공시설, 교통 시스템, 노동환경, 사회서비스의 수많은 사례들이 그것을 직접 경험하며 살아온 저자의 시선으로 소개된다. 미디어 속에는 장애를 웃음거리 소재로 삼거나 동정을 유발하려는 의도로 기획된 수많은 이야기가 떠다닌다. 비장애중심주의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며 장애인들조차 자신의 삶을 가치없다고 여기게 만든다. 저자는 이처럼 ‘미묘하면서도 노골적인’ 비장애중심주의를 하나하나 소개하고 지적하면서 이것이 왜 문제인지 분명히 인식하길 바라고 있다. 5장은 장애인을 대하는 예의를 다룬다. 어쩌면 일상생활에서 가장 시급하게 와닿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배려를 가장하여 무례하게 질문하고 충고하는 일, 사적인 영역을 과도하게 침범하고 개입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저자의 주장은 간명하다. 비장애인 동료, 친구, 가족을 대하는 상식과 동일하게 하라. 나와 동등한 존재로 그 사람의 말과 생각을 존중하면 된다. 6장은 미디어가 비추는 장애에 관한 이야기다. 미디어는 인간의 삶과 분리될 수 없을 뿐더러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장애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다면 이것은 미디어에서 다룬 왜곡된 이미지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광고, 신문과 잡지, TV 프로그램, 출판된 책에서 장애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설명한 여러 사례들은 독자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장애인을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당연한 행동’이 대단한 선행이나 고귀한 행위로 부풀려지는 것 또한 미디어의 악영향이다. 친절은 불쌍한 장애인을 위해 베푸는 자선 행위가 아니라 타인을 대하는 기본적인 사회성 스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성별, 인종, 연령, 사회경제적 지위가 다양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들 모두는 동등한 인격으로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특정 성별, 인종, 연령, 지위의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한다고 해서 소수자의 인격이나 권리가 무시당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장애인에 대한 특별한 동정이나 배려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모두가 행복할 수 있게 필요한 것들을 갖추어 나가야 하고 장애인 또한 나와 동등한 인간임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