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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 5
에필로그_ 나는 빚진 자입니다 - 212 1부 상수의 계절 삼월의 수소문 - 12 손톱 - 14 획 - 15 향기로운 자 - 16 찰나 - 18 지문 - 19 정오 - 20 천변 - 22 곡우 - 23 등나무 꽃 - 24 지하철 타다 - 26 감나무였습니다 - 28 모란 - 29 상수의 계절 - 30 개구리 - 32 수도관 교체하다 - 34 녹색(0.1 G 5.2/6.2) - 36 그 집에 - 38 풀잎 끝 잠자리 - 39 바람의 집 - 40 달력 - 42 무사했구나 - 44 내 안의 연못 - 45 앵무새 놀이 - 46 제물 - 48 카페에서 - 50 봄 길 - 52 일요일 - 54 오후 네 시 - 56 선물 - 58 2부 뼈가 줄어드는 밤 망초꽃 - 60 어머니의 의자 - 62 식물성 언어 - 64 멸등 - 66 슬그머니 - 68 이석증 - 70 아카시아 꽃방 - 71 창 - 72 뼈가 줄어드는 방 - 74 여기에 - 76 삼겹살 - 78 서랍 - 80 지렁이 가다 - 82 새벽 - 84 양말 한 짝 - 86 공식적 죽음 - 88 벚꽃 - 90 빨강 - 91 그냥 - 92 고향 가는 길 - 93 염천 - 94 노송 - 96 가을이 온다 - 98 커피 내리는 아침 - 100 오후의 미용실 - 102 밤 - 104 여길 지나가 - 106 톤레샵 - 108 식탁보 - 110 장미가 흐드러졌습니다 - 112 3부 섭리의 밥 밥 1 - 114 밥 2 - 116 밥 3 - 117 밥 4 - 119 밥 5 - 121 밥 6 - 122 밥 7 - 123 밥 8 - 124 밥 9 - 125 밥 10 - 126 밥 11 - 128 밥 12 - 130 밥 13 - 131 밥 14 - 133 밥 15 - 135 밥 16 - 137 밥 17 - 139 밥 18 - 140 밥 19 - 142 밥 20 - 144 밥 21 - 146 밥 22 - 147 밥 23 - 149 밥 24 - 151 밥 25 - 153 약속 - 155 건축법 - 157 춤추는 손가락들 - 159 섭리의 밥 - 161 그날 아침 - 163 4부 낙엽 세공 보라 - 166 간지럼 - 167 어째야 쓰까 - 168 낙엽 세공 - 170 메디컬 - 172 풍경 - 174 도장 - 175 흰 - 176 공원을 독서해요 - 178 유월을 베껴요 - 180 낮은 것 - 182 지나간다 - 184 수건 - 185 Happy Day - 186 까마귀 - 188 겨울로 가는 마음 - 189 미끼 - 190 나의 생 - 192 이만하면 - 193 두레상 - 194 촉수 - 196 그날 - 198 오후 다섯 시 - 200 지금 - 202 날벌레 - 204 능금 - 205 비수기 - 206 누에를 아시나요? 208 부추 - 210 예약했습니다 - 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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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 그늘에
자리 펴고 앉았어요 금빛으로 출렁이는 강물에 아버지는 투망을 던졌어요 투망에 딸려 나온 각시붕어, 쏘가리, 동자개, 피라미, 가물치… 어머니의 손맛이 든 도시락을 열면 배추김치 붉은 물이든 꽃밥에서는 시큼한 냄새가 밀려왔어요 빛이 어른거리는 그늘에 누워 노란 환타를 돌려가며 마셨어요 녹색이 풀리고 우리들의 뼈마디도 물이 올라 미루나무처럼 명랑하게 자라고 그날 들에서 먹은 점심은 여름처럼 환했어요 --- 「밥 1」 중에서 어머니 가만히 되뇌기만 해도 눈물이 나요 칠만이 넘는 끼니를 차려내실 때도 눈치가 둔했던 우리 모든 끼니가 신선했음을 이제 깨달아요 두 번 삶아서 보드랍던 보리밥 팥물을 드려 쪄낸 찰밥 숭덩숭덩 떼어 넣어 끓여 준 수제비 노란 조밥 얼룩덜룩 수수밥 포실한 감자밥 달콤했던 고구마 밥 쑥 향기에 버무려진 나물 밥 여름이 깊어 지면 팔, 강낭콩을 삶아 가마솥 가득 끓여 내셨던 팥 칼국수 여름 저녁 죽 심부름을 다닐 때가 생각나요 발을 통통 구르며 걸어오던 골목 하늘에 달도 나를 따라오던 길 그때가 어제만 같아요 충만한 기억이 남아 있는 그곳으로 달려가고 있어요 --- 「밥 3」 중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던 밥그릇 쨍 소리를 내며 정지했다 진밥이 깨진 그릇에 조금 달라붙어 있었다 검게 그은 얼굴 둥글게 말린 등 빛바랜 치마폭에 싸인 층이 내려온 저녁을 어루만졌다 젖가슴을 어루만지는 아기의 손 맑은 눈동자가 반짝여 너는 어디에 놓아두어도 잘 살겠구나! 이마는 더 봉긋해지고 뜨거운 콧김을 불며 입술을 달싹거리는데 진밥이 싫은 남자 마당을 나갔다 --- 「밥 5」 중에서 트럭에 꽃을 싣고 온 남자가 골목에 임시 화원을 차렸다. 참새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듯 늘어선 화분 앞에 자리 잡고 앉았는데, 로즈마리. 트리안, 노벨리아 꽃 이름이 죄다 외국말이다. 수국이 나 좀 데려가라고 눈짓한다. 봄마다 꽃을 사는 내게 화분 좀 그만 늘리라는 가족들 말이 걸리는데, 수국은 마당 큰 화분으로 옮겨심었다. 삼백예순날 혼자 꽃을 돌보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투정할 수 없는 까닭이기도 한데 가끔은 물 한번 주지 않은 그들이 야속하기도 하다. 이듬해 수국이 열다섯 송이 하얀 꽃을 피웠다. 청바지 공장에서 틀을 돌리던 여자들이 믹스커피를 들고 수국 앞에서 오감을 쏟아놓고, 흰 꽃송이가 커다란 사발에 담긴 흰 쌀밥 같아서 마냥 좋은 나는 배가 불룩하도록 채우고, 철들 때까지 쌀밥 구경 못 한 한을 풀어주는 수국 꽃밥을 며칠째 먹고도 질리지 않아 밥맛없는 사람 죄다 불러서 수국 밥상에 앉히고 싶은 마음, 요즘으로 말하면 내가 정신 놓친 사람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겠다. --- 「밥 7」 중에서 일생을 타악기로 쓰시던 몸 채 두드린 자리 비늘이 수북했다 입으로 음식을 먹지 못한지 여러 날이 지나갔다 미지근한 물과 간 쇠고기를 채에 걸러 죽과 섞은 끼니는 콧줄을 타고 위장으로 흘러들었다 콧줄과 소변줄이 뽑히고도 흰 얼굴엔 남아 있던 맑은 미소 시간이 썰물로 빠져나가고 다시 돌아오지 않아 애가 탔다 실비 속에 길도 훌쩍거렸다 발이 치마폭에 걸려 손목뼈에 금이 갔다 아버지~~~ 바람이신가요 사방에 쏟아지는 빛이신가요 내가 생각하면 되짚어 오시는 것 아주, 가지 않았지요 아버지 지분 앞에 무릎을 꿇어요 --- 「밥 23-아버지 마지막 끼니」 중에서 민들레 홀씨들이 흩어져요 흰 밥알을 등에 태웠어요 골목과 빌딩 숲을 넘어 폭이 넓은 강가에 닿았네요 방금 지나친 강물 길이 지워졌어요 건너편 길을 달리는 것이 보여요 숨이 턱에 닿도록 뛰어요 흰옷을 입은 사람들과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의 행렬이 물결로 흘러가요 흘러가는 홀씨가 아름다워요 나만 따라가는 줄 알았어요 셀 수도 없는 수저들이 햇볕에 반짝여요 길모퉁이 민들레 밥집이 보여요 압력솥 뚜껑이 돌고 있어요 허공을 채우는 냄새가 맛있어요 세상에 없는 사람이 그립나요 세수하지 마세요 모자도 벗지 마세요 옷도 갈아입지 마세요 구멍 난 양말도 그대로 신고 와요 아무 때나 와요 먹는 것은 신선한 일 그래서 선포하는 것입니다 모든 마을은 밥집입니다 --- 「밥 25」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