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철수 _7
작가의 말 _113 |
裵琇亞
배수아의 다른 상품
|
나는 가끔 생각한다. 내가 오래전에 알았던 어떤 사람들, 그리고 먼 미래에 내가 우연히 알게 될 불특정한 사람들이 밤의 지하철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들은 내 인생의 사람들이다. 내가 오래전에 알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제 다시는 나를 만나지 않고 살아갈 것이며 먼 미래에 내가 우연히 알게 될 사람들은 나를 모른다. 그들은 어두운 얼굴로 불빛 희미한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무감동하게 내 어깨를 밀치며 지나간다.
--- p.10 철수는 그것을 알까. 철수는 자라서 철수의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된다. 나 또한 자라서 나의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된다. 그러나 흰 벼랑에서 떨어진 또 다른 철수와 나는 비 오는 빈집의 창밖을 소리없이 지나갈 것이다. 시간의 시체들 위로 비가 내린다. --- p.90 눈물이 조금 내 눈에 고였다. 나는 지금까지도 슬픔이란 무엇인가 잘 알 수가 없다. 강렬하고 선명하게 내 가슴에 찾아오는 사나운 폭도 같은 슬픔. 그런 것이 무엇일까. 우리의 모든 일상과 권태와 반복과 연극을 투과해서 스며들어오는 슬픔이라는 것이 살을 찢는 고통이나 발바닥에 박히는 유리조각처럼 정말로 존재하는 어떤 것인가. --- p.83 이상하게도 시간은 반복되었다. 그것은 기억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철수는 옛날에도 어디에도 없었으며 앞으로도 마찬가지였다. 무의미한 감각은 피부에 남아 지워지지 않는 잇자국처럼 선명했다. 의도하는 것들을 밀어내며 거부하는 것들을 거부하며 노래하는 것들을 잊으며 시간은 사랑하는 사람의 백발처럼, 외면하는 일들로 가득하다. --- p.103 |
|
1998년의 ‘철수’, 그리고 2025년의 ‘철수’와 ‘나’
이것이 1988년에 일어난 일의 전부다. 1988년은 나에게 시작이며 끝이었다. 내 인생을 통틀어 특별히 불행하지도 않았고 특별히 더 행복하지 않았던 한 해였다. 그것은 1978년과 특별히 다르지 않았으며 1998년과 비교해볼 때 더 인상적이지도 덜 인상적이지도 않았다. 1988년에 일어났던 일들은 1978년에도 일어났으며 1998년에도 일어났을 것이다. 1988년에 만났던 사람들은 1978년에 지하철에서 내 어깨를 밀치며 지나갔었고 1998년 밤의 주유소 거리에서 무감동한 눈길로 마주친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가족이었고 낯선 중산층이었으며 영양실조에 걸린 군인들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변소였고 타인이었고 벼랑이고 까마귀이고 감옥이었다. 그들은 영원히 그들에 지나지 않았다. 제3의 불특정한 인칭들. _97~98p 1988년, 엄마와 오빠, 여동생과 함께 살아가는 화자 ‘나’는 냉정하고 무감동하게 가난과 부적응의 상태를 견뎌나가는 청년이다. ‘나’의 남자친구 철수 역시 단조로운 삶을 즐기는 사람이었지만, 군대에 간 이후 자기 욕망에 충실한 사람이 되어 ‘나’의 앞에 나타난다. 떠밀리다시피 군대에 있는 철수를 면회 가는 길은 마치 블랙홀처럼 불확실한 시간과 공간으로 변하고, 그에 반해 여전한 (타인들의) 일상과 변해버린 철수의 모습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다시 읽는 『철수』는 스토리뿐 아니라, 이를 이야기하는 방식과 스타일, 한 문장 한 문장 그 자체로 흔들리는 젊음의 이야기로 읽힌다. 1980년대와 1990년대라는 특정한 시공간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고 다시 2025년에 이른 지금까지, 그 모든 시절 우리는 또 다른 ‘철수’였고 ‘나’였으며, 2025년 오늘 이 도시의 한 켠에는 역시 수많은 ‘철수’와 ‘나’들이 저마다 흔들리는 시간을 살아내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심지어 1980년대 전으로 돌아간다 해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어떤 시대/세대가 맞닥뜨린 역사의 큰 소용돌이 아래 깊은 수면 속에서는 큰 물살에 휩쓸리면서도 또한 한없이 고요하게 혼자 제 물길을 찾아가는 개인/젊음들이 물살을, 시간을 견뎌내며 살아내고 있을 테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