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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빼미
양의 첫눈 북역 올빼미의 없음 어느 하루가 다르다면, 그것은 왜일까 무종 밤이 염세적이다 해설|한기욱 추천사 수록작품 발표지면 |
裵琇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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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처럼 서서히 가라앉는 이 오후. 잠들어 있는 나는 잠의 숨소리를 들었다. 숨소리는 숨소리를 더듬어갔다. 너와 얽히리라, 내 호흡이, 내 잠이, 그리고 내 꿈들이. 그리하여 나는 꿈을 계속하기를 원했다. 눈물과 땀이 흘러내려 얼굴과 손목시계와 베개를 적시고 있었다. 잠은 미지근한 물결 위를 흔들흔들 떠다녔다.
--- p.11 「올빼미」 중에서 그가 알고 있는 슬픔 중에는, 이른 아침 막 깨어났을 때의, 준비되지 않았으면서 아무런 방어도 없이 만나게 되는 그런 슬픔이 가장 시적이었다. --- p.57 「양의 첫눈」 중에서 그렇지만 사실 가장 중요하고도 아름다운 것은 그토록 찾아 헤매는 과정과 노고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가 이미 모두 다 알고 있는 그 사실 중에 그냥 있는 건지도 모르지. 달이나 별, 아니면 우리가 매일 부르고 있는 노래처럼 이미 모두 다 당연히 알고 있는 그런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에서. --- p.125 「북역」 중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걸어라, 울어라, 그리고 써라. 내가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그것뿐이었으므로. 걸어라, 울어라, 그리고 써라. 그러면서 한없이 비경제적이고 간헐적인 여행자로 죽는 날까지 남는 것일 뿐. --- p.177 「올빼미의 없음」 중에서 사랑이 아침에 하는 말과 밤에 건네는 눈빛이 각자 다르기 때문이었다. 또 어떤 사람은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려는데 상대편은 자신에게만 보이는 석양의 어스름을 향해 사랑의 마지막을 연기할 준비가 되어 있곤 했다. --- pp.185-186 「어느 하루가 다르다면, 그것은 왜일까」 중에서 참으로 오래전부터 당신에게 말하고 싶었다, 이곳은 이상하다고. 당신과 함께한 모든 장소는 나에게 이상하다고. 이질적인 공기와 흙, 고여 있는 바람과 평평한 하늘과 허공에서 움직이지 않는 커다란 새, 그리고 살갗을 감싸며 흐르는 기묘한 따스함까지 모두가 이상할 뿐이라고. --- pp.291-292 「무종」 중에서 사랑은 모순의 일인극이다. 민감하고 선명하게 각인되는 사랑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사랑은 외국어 낭송극이다. 사랑은 새로운 말과 언어를 만들고 그것들을 드러내려고 몸부림친다. --- pp.329-330 「밤이 염세적이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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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또한 동시에 꿈은 나였다.”
꿈처럼 새처럼 흐르는 배수아 문학의 감각적인 세계 문장 자체가 소설의 중심이 되는 『올빼미의 없음』은 꿈과 환상, 글쓰기와 죽음에 대한 사유를 통해 언어의 낯선 가능성을 실험해온 작가의 행보를 보여주는 이정표와도 같다. 배수아 소설 특유의 몽환적 문체와 철학적 사유가 절정에 이른 소설집은 선명한 서사를 해체하고, 어느 순간부터 이미 계속되고 있었던 것만 같은 환상적인 장면을 보여주며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깊게 끌어들인다. 「양의 첫눈」은 오래전 연인으로부터 재회를 요청받은 주인공 ‘양’이 그의 방문을 기다리며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이야기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대상에게 빠져들어 흔들리는 무의식적 감수성과 스쳐 지나간 타인을 각기 다른 배경에서 찍은 사진처럼 기억해내는 묘사가 백일몽 같은 아련한 풍경으로 펼쳐진다. 「북역」은 「양의 첫눈」과 같은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심리적 시간 속에 거주하며 자신만의 ‘단 한번의 노래’를 탐험하는 화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느 하루가 다르다면, 그것은 왜일까」에서는 꿈과 환상의 시공간이 현실에 중첩되고 기억이 주체를 옮겨 다니는 기이한 전이가 일어나며, 「밤이 염세적이다」에서는 꿈과 환상, 진술 자체가 서사를 완전히 압도하며 소설의 중심을 이룬다. 배수아의 소설들은 긴 복문의 문장을 활용해 익숙하지 않은 장면들을 펼쳐가지만, 이 언어의 숲에서 길을 잃는 체험을 온전히 겪어낸 후에는 그의 작품들이 눈부시게 빛나는 순간을 만끽할 수 있다. “지금에야 비로소, 내 생애 처음으로, 나는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앞서 언급한 소설들에서는 현실과 뒤섞인 몽환의 세계 자체가 소설이 되어 펼쳐졌다면, 「올빼미」와 「올빼미의 없음」에서는 꿈과 환상의 의미에 대한 사유와 토론, 그 과정에서 ‘나’의 문학을 뒤흔든 관계와 상실에 대한 묘사가 날카롭고 강렬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표제작 「올빼미의 없음」은 첫 작품인 「올빼미」와 함께 읽힌다. 「올빼미」는 작가 ‘나’와 비평가 ‘너’가 꿈과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나’가 사랑했던 작가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올빼미는 ‘너’의 창밖에 찾아와 방을 지켜보는 존재이고, ‘너’는 올빼미의 사진을 찍어 ‘나’에게 보낸다. 이것은 ‘너’가 보내는 “인정의 징표”(해설, 한기욱)이고, 국적과 나이를 초월하여 글쓰기로 연결된 문학적 관계의 상징이다. 「올빼미」가 꿈과 글쓰기를 통한 문학적 연대를 그렸다면 「올빼미의 없음」은 그 연대의 상실을 다룬다. 나이와 국적을 초월해 깊은 우정을 나누었던 ‘외르크’(너)의 죽음을 맞이한 작가에게 ‘올빼미의 없음’은 곧 ‘외르크의 없음’을 의미한다. 외르크(너)의 죽음 이후 ‘나’에게 ‘올빼미’는 깊은 상실감의 이미지로 전이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슬픔 중 단 한가지인 유일한 종류의 슬픔, 그 무엇과도 비교 불가한 상실”을 표현한 이 소설은 한 인간의 부재가 상징을 거쳐 상실의 언어로 전환되는 과정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너’의 부재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나’의 글쓰기와 꿈에 대한 인식은 자연히 변화되고 있었다. 거대한 슬픔 앞에서 “걸어라, 울어라, 그리고 써라”라고(「올빼미의 없음」) 외쳤던 화자는 한발 더 걸어나가 「무종」에 도착한다. 낯선 밤 모형비행기 수집가와 함께 무종의 탑을 찾아가는 이야기에 ‘나’가 유럽 곳곳을 여행하며 셋방을 구하러 다닌 기억이 이어지고, 그러는 동안 어느새 현실과 꿈은 분간할 수 없는 한몸이 된다. 여기에 기억과 문학에 대한 빛나는 에피소드들이 연결되고, 마침내 모든 것이 꿈속의 한마디로 수렴되는 시적인 장면이 펼쳐진다. “무의식과 접경지대를 파고드는 배수아의 끈질긴 실험이 여기서 어떤 경지에 이르렀음을 실감할 수 있다.”(해설) 『올빼미의 없음』이 꿈과 현실, 언어와 사유 사이를 누비는 여정은 문학이 줄 수 있는 가장 낯설고 아름다운 체험을 선사하며 내면에 고요한 장면들을 남긴다. 이 신비로운 언어의 숲은 배수아가 아닌 누구도 만들 수 없는 문학적 공간이다. 낯선 문장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들은 마침내 우리를 삶과 죽음, 존재와 부재에 대한 깊은 사유에 도착한다. 『올빼미의 없음』은 그 사유의 경계에서 피어나는 가장 고독하고도 찬란한 문학적 증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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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 작품 어때? 하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난해하고 지루하여 못 읽겠다는 독자의 불평을 들을 때 나는 그야말로 우리 문학의 진정한 자존심이라 여겼다. 배수아 소설이 바깥으로 넘어갔다고 하는 소리에도 나는 그가 소설 이외의 것을 써본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문학 바깥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배수아의 소설에는 수렴되어 있을 뿐이다. 그의 표현을 빌면 그에게 문학은 종교이자 영혼일 테다. 그는 이야기를 방목하는 작가가 아니다. 여러 독법이 있겠으나 나는 그가 서사를 물려놓은 자리에서 복원해내는 최초의 감각이 늘 경이롭다. 관념과 물리, 사물과 사람에 마음이 닿아 생기는 지점에서 아주 색다른 감각을 틔운다. 나는 그것을 ‘공명하는 감각’이라 이르고 싶다. 가슴과 배를 밀착하여 확보한 최대 면적에서 그의 언어는 떨고 있다. 그의 시선은 아주 높거나 낮다. 그 중심 없는 몇겹의 시선이야말로, 진정한 경계 넘기이자 우주적 상상력일 테고, 배수아의 언어는 아주 특별한 여로를 통해 그 심급에 닿은 것 같다. 인생에 대해 예지력이 뛰어난, 서툰 여행자여, “걸어라, 울어라, 그리고 써라.” - 전성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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