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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깨달음
조정래 등저
인물과사상사 2005.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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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정신과, 내 인식의 베이스캠프-정혜신(정신과 전문의)
외국과의 만남, 그리고 경계선 뛰어넘기-박노자(오슬로 대학 한국학 교수)
섞인 것이 아름답다-고종석(언론인)
서울 공덕동의 두 이야기-손석춘(언론인)
인생은 단 1회의 연극이다-조정래(소설가)
스님 방에서 본 지구의地球儀-장회익(물리학자)
20세기 감옥에서 꿈꾼 자유로운 영혼-박홍규(영남대 법대 교수)
멀티 인간, 실용 인간, 여자 인간의 ‘일’-김진애(도시건축가)
내 젊은 날의 초상-홍세화(언론인)

저자 소개 1

등저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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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 Jung Rae,趙廷來

1943년 전남 승주군 선암사에서 태어났다. 광주 서중학교를 거쳐 서울 보성고등학교 당시, 농촌 사회활동에 뜻이 있어 이과반에 적을 두고 있던 조정래는 3학년에 이르러 국문과로 진학 목표를 세우고 동국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한다. 이 무렵 같은 과 동기인 김초혜를 만난다. 197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한다. 단편집 『어떤 전설』,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 『황토』, 『한, 그 그늘의 자리』, 중편 『유형의 땅』, 장편소설 『대장경』, 『불놀이』 『인간 연습』, 『사람의 탈』,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산문집 『누구나 홀로 선 나무』,
1943년 전남 승주군 선암사에서 태어났다. 광주 서중학교를 거쳐 서울 보성고등학교 당시, 농촌 사회활동에 뜻이 있어 이과반에 적을 두고 있던 조정래는 3학년에 이르러 국문과로 진학 목표를 세우고 동국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한다. 이 무렵 같은 과 동기인 김초혜를 만난다. 197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한다. 단편집 『어떤 전설』,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 『황토』, 『한, 그 그늘의 자리』, 중편 『유형의 땅』, 장편소설 『대장경』, 『불놀이』 『인간 연습』, 『사람의 탈』,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산문집 『누구나 홀로 선 나무』, 청소년을 위한 위인전 『신채호』, 『안중근』, 『한용운』, 『김구』, 『박태준』, 『세종대왕』, 『이순신』, 자전 에세이 『황홀한 글감옥』 등을 출간하였으며, 현대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성옥문학상, 동국문학상, 단재문학상, 노신문학상, 광주문화예술상, 동리문학상, 만해대상 등을 수상했다. 조정래 작가의 작품은 영어 · 프랑스어 · 독일어 · 일본어 등으로 세계 곳곳에서 번역 출간되었고(중국어 · 스웨덴어 번역 중), 영화와 만화로 만들어졌으며, TV 드라마와 뮤지컬로도 제작되고 있다.

『조정래 문학전집』의 1권 「대장경」에서부터 부패한 권력에 대한 비판, 민중에 대한 신뢰, 예술적 완성을 향한 집념 등을 주제로 하고 있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거치며 ‘직접 체험을 소설로 쓰지 말아야 한다’는 자신의 소설 원칙을 철회하는 것과 아울러 갑오농민전쟁과 3.1운동 광주민중항쟁으로 이어지는 민중 항쟁의 역사를 대하소설로 풀어낼 계획을 세우고 「태백산맥」집필 준비에 들어간다.

고초 끝에 1만 6천 5백장 분량으로 6년간 연재된 태백산맥은 좌익운동의 실상을 객관적으로 파헤치며 우리 민족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모순을 비판적 시각으로 다뤄 젊은 세대의 공감과 엄청난 판매부수를 기록했다. 태백산맥은 완간 되자마자 문학담당기자와 문학평론가들에 의해 ‘1980년대 최고의 작품’, ‘1980년대 최대의 문제작’으로 꼽힌다.

태백산맥을 마치고 다시 1년쯤의 취재와 자료 정리기간을 거쳐 1990년 12월 아리랑 집필에 착수하고 1995년 7월에 2만장 분량의 원고를 탈고한다. 아리랑은 일제의 식민지배체제에서 왜곡된 민족의식을 바로 세우려는 작가의 집념이 서려 있다. 그리고 마침내 현대사 3부작의 말미를 장식하는 대하소설 「한강」을 마치고 ‘20년 글감옥’ 에서 출옥했다. 한강은 현대한국사회의 풍경화를 그려나간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3부작은 전 32권 5만3천여장의 원고지에 높이가 5m50㎝에 이르며 그간 조정래의 책은 1000만부 가까이 팔려나갔다.

그의 대하소설『태백산맥』은 원고지 1만 6천 5백장의 방대한 분량 속에서 60명이 넘는 주인공들이 등장해 각자 자신의 목소리를 선명하게 남기는 80년대 분단문학의 대표작 중의 대표작이다. 그 동안 반공이데올로기에 의해 일방적으로 왜곡되어왔던 해방직후의 역사적 진실을 현미경 들이대듯 파헤치고 있으면서도 작품 전체에서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 미덕을 지니고 있다.

『아리랑』은 식민지시대를 깊은 역사 인식으로 탐구한 대하소설로 김제 출신의 인물들이 군산, 하와이, 동경, 만주, 블라디보스톡 등지로 옮겨서 40여 년의 세월을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일제시대의 생활상뿐만 아니라 일제의 폭압에 맞선 우리 민족의 저항과 투쟁과 승리의 역사를 부각 시키고 있어 민족적 긍지와 자긍심, 자존심을 회복케 하는 역작이다.

『한강』은 1959년 이후의 한국현대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철저한 고증과 조사를 바탕으로, 한없이 세밀한 현미경의 시선과 한 번에 굽어보는 망원경의 시선이 교차하는 조정래 문학의 완결판이다. 4.19, 5.16, 10월 유신과 부마항쟁, 광주민주화운동과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격동의 세월을 10권의 책으로 묶었다. 저술에 들어가면 어느 작가보다도 근면하고 규칙적으로 원고지를 채워나간다는 작가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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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5년 05월 07일
쪽수, 무게, 크기
279쪽 | 568g | 148*223*20mm
ISBN13
9788959060085

책 속으로

어머니는 새벽마다 꼭 무슨 죄를 지은 사람처럼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나를 깨우고는 했다. 사람들이 많이 줄 서기 전에 빨리 물을 길어오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특히 겨울에는 이불 속에서 새벽잠을 깨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잠도 잠이지만, 따스한 이불 속에서 벗어나 추운 밖으로 나간다는 것을 너무 힘든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못 들은 척 좀더 이불 속에 있고 싶은 유혹을 단호하게 뿌리치며 이불을 박차고는 했다. 왜냐 하면 그 유혹을 못 이겨 게으름 피우다가 10분쯤 늦게 수도로 가보면 물통들이 열 쌍씩 줄 서 있곤 했기 때문이다.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더라면 기다릴 것 없이 바로 물을 받을 수 있는데 게으름을 피운 죄로 그보다 더 긴 시간을 기다리는 벌을 받아야 했던 것이다. 게으름을 피운다고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된다! 그것이 난 스스로에게 경고한 깨우침이었고, 결심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일에서 시건방지게도 인생을 발견하고 있었다. 인생이란 이런 것이다! 어느 순간 내 뇌리를 찌른 깨달음이었다. 그래서 내 가슴에 새긴 최초의 인생록 명언이 이렇다. 남보다 5분 먼저 일어나고, 5분 먼저 행동하라. 나는 그 후로 정말 내 인생에서 게으름을 없애버렸다. 매사에 '5분 먼저'를 실천하며 60 고개를 넘겼다. 그 효과가 어떠했는지는 굳이 말할 것이 없다.

--- p.139~140

미디어를 통한 문화적 헤게모니의 장악, 그리고 미국이나 외국 혹은 자본주의 긍정 일변도의 이미지 조작은 구체적으로 소련 사회를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페레스토리아카 이전의 외국 관련 뉴스는 주로 침략 전쟁, 인종차별, 실업 등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그런데 이런 문제에 대한 언급들이 TV에서 거의 사라졌다. 그리고 미국이나 서구의 상점 진열대를 가득 채운 풍요로운 상품들이 TV 화면에 등장해 물자 부족에 찌들어 있던 소련인들을 유혹하기 시작ㅈ했다. 동시에 주로 진보 운동가나 실업자 등 체제 비판자나 희생자들에 초점을 맞추었던 TV는 외국의 지배자들을 인격화시키며, 그들을 가깝고 따뜻한 인물로 그리기 시작했다. 미국의 키신저나 브레진스키와 같은 제국주의 전략가들이 차를 마시면서 민주주의의 세계화와 인권의 승리에 대해서 별의별 좋은 말을 다 늘어놓는 등 따뜻하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국내외 공산주의 운동의 경직성과 비민주성, 관료주의, 나아가서는 전체주의적 정치의식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제기되었다. 키신저의 비호 아래 피노체크가 총살했던 칠레의 수만 명의 좌파 운동가나 지식인들에 대해서도 전체주의자들이 마땅이 받아야 할 벌을 받은 게 아니었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증가하기 시작했다.

--- p.47

출판사 리뷰

* 20세기라는 감옥에서 꿈꾼 자유로운 영혼, 젊은 날의 깨달음
삶은 늘 직선의 형태로 진행되지 않는다. 삶에는 반복과 곡선이 있고, 어느 순간에는 도약의 계기가 주어지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누구에게나 젊은 날은 이러한 도약의 계기로 자리한다. 그만큼 세상은 새롭고 젊은 날에는 이를 받아들일 순수한 감성과 열정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저자들의 젊은 날, 그러니까 20세기를 살았던 그들이 세상과 인생과 일을 새롭게 발견했던 순간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그들은 그 깨달음을 삶의 정체성으로 삼고 인생의 행로로 만들어 왔다. 그것은 결국 ‘나’에 대한 물음이었고, ‘나’를 찾기 위한 여정이었다. 공적인 발언을 통해 만날 수 있었던 이들 지식인들의 사상 뒤에 숨겨진 진솔한 인생의 궤적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읽는 또 다른 눈을 얻을지도 모른다.

* 낮에는 정신과 의사로, 밤에는 정신과 환자로 …… 정혜신
의대 본과 2학년 때 의료봉사를 떠나면서 정신과에 대한 이유 없는 열정에 빠지게 된 정혜신. 이후 오로지 그의 삶을 지배한 것은 정신과 의사가 되기 위한 열정 하나였다. 임상실습 기간 중에는 정신과 병동에 홀로 남아 정신분열증 환자들의 비밀스런 무의식 세계를 엿보고자 했던 것도 그 하나. 그는 당시 정신과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행사하던 학과장의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끝내 정신과 전공의가 되는 ‘작은 혁명’을 일으킨다. 그리고 정신과에서 의사 지망생들에게 하는 권유를 받아들여 낮에는 의사로, 밤에는 정신분석을 받는 환자의 입장에서 2년을 보낸다. 그 통제불가능한 정신분석의와의 게임에서 발견한 자신의 설움, 욕망, 분노, 적개심, 질투, 그리고 감정의 전이(轉移)와 퇴행. 거기에서 정혜신이 깨달은 것은 정신과 의사와 환자 사이에 어떤 격차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정혜신은 말한다. 그 동안 만난 8천여 명의 환자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모르지만 정신과로부터 가장 큰 도움을 받은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

* 국경선이 만든 인간 이해의 장벽을 넘어 …… 박노자
소련 치하에서 외국은 책과 환상 속에만 존재했다. 그러나 페레스트로이카가 진행되고, 러시아가 본격적인 자본주의화의 길을 걸으며 한국은 그 모범국으로 러시아의 미래처럼 투영된다. 마침 러시아가 한국과 가까워지고, 북한과의 관계가 멀어지면서 김일성 종합대학에 교환학생으로 갈 예정이었던 박노자의 진로는 남한의 고려대로 바뀐다. 그리고 한국의 김포공항. 생애 처음인 외국과의 만남이었다. 그런데 정치?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화의 선진 모델이자 유교적인 지혜로 충만한 정신의 왕국이라 생각했던 한국 사회는 그와 달랐다. 너무나 익숙한 러시아의 모습이었다. 그 과정에서의 충격과 깨달음은 박노자의 삶을 결정짓는다. 그와는 형태는 똑같지만 내용은 전혀 다른, 소련을 이상적인 모델로 생각했던 한국의 좌파 운동과의 만남 등을 통해 인간을 분열시키는 허구적 이데올로기 너머에서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한다.

* 서른넷의 나이에 만난 유럽, 그리고 세계시민주의자의 길 …… 고종석
1992년 가을, 고종석은 저널리즘 연수 프로그램 때문에 처음으로 유럽에 발을 내딛는다. 그리고 아홉 달 뒤 서울로 돌아온 그는 서둘러 다시 가족과 함께 프랑스 파리로 가 네 해 남짓의 세월을 보낸다. 그 아홉 달 동안 고종석은 유럽에서 무엇을 봤던 것일까?
당시 저널리즘 연수 프로그램에는 세계에서 모인 사람들이 있었다. 유럽 통합이 본궤도에 오르던 시점이었고, 유고에서는 전쟁이 한참이었다. 그리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성숙한 프랑스 사회 ……. 그는 과도한 민족주의, 종교의 근본주의적 열정, 원시적인 인종주의 너머에서 그 어떤 것도 인간이라는 보편적 가치, 그리고 ‘나’라는 절대적 가치를 침범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러한 세계시민주의자가 되기 위해선 진리에 대한 사랑과 광신적 열정을 줄이고 그만큼 상대에게 문을 열어놓으라고 설파한다. 섞인 것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 서울 공덕동에 겹친 두 가지 삶 …… 손석춘
1969년, 충청북도 충주에서 서울로 전입해 만나게 된 서울, 그리고 마포 공덕시장 주변. 그러나 그것은 TV 등을 통해 훔쳐보던 서울의 풍경과는 달랐다. 그 주변을 오가면서 목격했던 풍경은 학교 교실에서도 어김없이 관철되던 ‘돈의 논리’와 함께 그에게 자본주의의 정체를 가르쳐 준 스승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끊임없이 현실과 다른 이미지를 제공하며 자신의 의식을 분열시켰던 언론의 실체에 대해서도 깨닫는다. 손석춘은 1970년대에서 80년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 목격했던 군사독재와 자본의 횡포 그리고 이에 맞섰던 젊은 시절, 이후 언론운동에 투신해 겪은 기자로서의 삶을 잔잔하게 전하고 있다.

* 인생은 단 1회의 연극이다 …… 조정래
시대에 맞서 진보적인 생각을 지녔던 대처승 그리고 박봉에 허덕이는 교사의 삶을 살았던 아버지. 조정래는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법일 스님이 바로 자신의 아버지였음을 밝힌다. 그러나 아버지에게는 자신을 포함해 여섯의 자식이 있었고, 6.25라는 참혹한 비극이 기다리고 있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동생 둘이 더 태어났다. 이런 그에게 가난은 목을 조이는 삶의 올가미였다. 하지만 교육열이 높았던 아버지는 무작정 상경을 해 성북동 골짜기를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삼았고, 조정래는 새벽마다 샘을 찾아 물지게로 물을 날라야 했다. 더운 여름에도, 비탈길이 얼어붙는 겨울에도 물지게를 나르기를 꼬박 7년, 그 사이에 허리가 구부러지는 애늙은이가 되었지만 조정래가 깨달은 것은 있었다. “남보다 5분 먼저 일어나라.”
동국대 국문과와 군대를 마친 뒤 교사 생활이 시작되었지만 그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소설 작품이 문제가 되어 학교에서 쫓겨난 그는 호구지책을 위해 출판사를 차렸는데 결코 문학에의 열망은 저버릴 수 없었다. 그러한 인생에서 자신을 지켜준 것은 가난한 삶에서 몸으로 터득한 치열하고 성실한 삶의 자세였다. 수십 년을 오로지 소설 창작으로만 보낼 수 있던 힘도 거기에 있었다. 그는 아들의 결혼식장 앞에 세워둔 메모판에 이렇게 적었다. “인생이란 연습도 재공연도 할 수 없는 단 1회의 연극이다.”

* 절대적 지식을 확신할 수 없는 학문, 최선의 지식을 향해 …… 장회익
대학에 다니던 어느 날, 우연히 법담(法談)을 나누었던 스님의 방에 있던 지구의. 물리학도로서 사물의 본질에 대해 탐구하던 장회익의 삶 역시 한편에선 물리학에서의 깨달음을 추구한 것이기도 했다. 결국 장회익의 가장 큰 학문적 관심사는 ‘생명’이었고, 이를 통해 ‘생명의 의미’ 그리고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회익이 그런 문제의식을 가졌던 것은 30이 다 될 무렵이었다. 거기에 이르기까지에는 20여 년의 학습과정이 필요했다. 긴 시간 생물학은 그에게 단순한 암기과목에 불과했다. 또 물리학을 하는 과정에서는 자신이 배우고 있는 것을 정말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에 부딪쳐 방황한 적도 있었다. 결국 그 방황을 끝낸 것은 이러한 문제에서는 절대적으로 옮은 지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타당성 높은 지식만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 때문이었다.
이어서 물리학의 언어로 생명을 정의할 방법을 찾기를 10년. 1970년대의 어느 날 그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환상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는 전체를 도외시한 채 개별 생명체 차원에서만 생명을 이해하려 했던 길을 되돌린다. 이른바 ‘온생명’의 발견이었다.

* 10대 때 만난 위대한 영혼, 니체 …… 박홍규
1961년 쿠데타가 일어난 뒤 아버지가 교원노조 사건으로 구속되어 경찰서 안뜰에서 머리를 빡빡 깎이던 일로부터 어린 시절의 첫 기억이 시작된다는 박홍규. 그에게 영원한 고향으로 남아 있는 곳은 10살 때 아버지를 따라 들어가 1년간 살았던 산골짝이다. 그는 그 곳에서 시와 소설을 읽으며 음악을 듣고 마음껏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그 뒤 도시로 나와 살면서 그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그가 기억하는 한국의 20세기란 감옥이었다. 이런저런 집단의 욕망과 모임에 갇혀 살아야 하는 감옥. 그래서 그는 패거리와 친구, 스승들 대신 그림과 음악과 책을 벗삼아 살았다. 그리고 중학교 시절 니체의 《차라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었다. 니체를 흉내내 비를 맞으면서도 뛰지 않은 적도 있었다고 하는 그는 어쩌면 니체처럼 ‘정신적 귀족(Edel des Geistes)’이 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니체라는 위대한 영혼은 그의 평생 반려가 되었다. 박홍규는, 오랜 시간 시대에 맞서며 새로운 사상적 모색을 해왔지만, 또 각종 모임에도 나가지 않는 등 자유의 정신을 지키고자 해왔지만 그러나 자신의 삶은 10대 때 형성된 생각을 지켜 가는 것이었다고 한다.

* 멀티 인간, 실용 인간, 여자 인간이라는 화두 …… 김진애
건축가, 도시설계가, 컨설턴트, 디자이너, 칼럼니스트, 작가, 평론가, 출판기획가, 사장, 등 수많은 꼬리표에 복잡한 이력을 안고 사는 김진애. 그러나 서울 공대 건축과에서는 보기 힘든 여학생이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대학 시절까지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이런 그가 일과 인생과 세상에 새로운 눈을 뜨게 된 것은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유학 시절의 경험 때문이었다. 김진애는 MIT에서의 첫 1년을 자신의 인생의 ‘카메오cameo’였다고 말한다. 그는 그때의 MIT를 기술 혁신과 인간 탐구와 세계 교류가 말 그대로 시너지(synergy, 융화)를 이루는, 학교라기보다는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가는 현장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그 뒤 자신을 멀티 인간, 실용 인간, 여자 인간으로 정의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리매김이 편한 것만은 아니었다. 한국 사회에서의 주류란 ‘단선적(單線的)이고, 이념.추상.원론적이며, 남자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는 그는 ‘중도강경파’인지도 모른다.

*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세상 살기 …… 홍세화
홍세화는 전쟁이 낳은 가난과 증오, 희망의 4.19와 배반의 5?16이라는 역사의 수레바퀴 치인 유년 시절이 있었지만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다. 어린 탓도 있지만 어른들의 보살핌 덕이기도 했다. 막연한 정의감에, 불의의 현실에 대한 심정적 거부감에 거리로 나서기도 했으나 그것은 그냥 정서적 부추김에 지나지 않았다.
이러한 그가 충격적인 진실과 만나면서 모든 것들을 갈아엎는 혼란을 겪게 된다. 분단의 비극과 전쟁의 참혹함은 모든 인간들을 추악한 동물적 생존본능에 충실하게 만들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또 한번 살아남기 위해 간악해지거나 간사해져야 했다. 그 중심에 가족이 있었고 홍세화가 있었다. 가치관의 완전한 붕괴, 그리고 인생을 알고 사랑을 느끼기 전에 증오를 배우면서 현실에서의 도피를 꿈꿨지만 그런 곳은 없었다.
이런 그가 한참을 에둘러 도달한 것은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사르트르의 명제였다. 실존에 눈뜬 것이다. 존재의 본질적 이유에 앞서 이미 존재하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명제는 그에게 실재하는 인간은 그 자체로 의의이며 이유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자신의 길을 휴머니즘으로 명명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는 홍세화로 하여금 인간을 인간답지 않게 만드는 장애에 저항하도록 했다. 홍세화는 말한다. 생명을 진정 살아있는 것으로 완결시키는 자유는 물신에 맞선 인간성을 지키는 것에서, 그리고 자기성숙이라는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는 것에서 온다고 …….
리뷰 총점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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